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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맹자한글역주, 진심장구 상 - 20.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진심장구 상 - 20.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건방진방랑자 2022. 12. 31.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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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7a-20.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에게 삼락(三樂)이 있으니, 천하를 통일하는 왕자가 되어 왕도를 구현하는 일조차도 이 속에는 들어가 있지 않다.
7a-20. 孟子曰: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엄마ㆍ아버지가 다같이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형과 동생이 모두 별 사고 없이 지내고 있으면 그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하늘을 우러러 보아 부끄러움이 없고 인세를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으니 그러한 공명정대한 삶의 모습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천하의 영재(英才)를 얻어 그들을 교육(敎育)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군자에게 이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를 통일하는 왕자가 되어 왕도를 구현하는 일조차도 이 속에는 들어가 있지 아니 하노라.”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앞서 말했듯이, 조선의 유자들이나 오늘까지 한학의 도사라고 하는 자들이 모두 맹자를 제대로 해석하질 못했다. 항상 맹자를 측면에서 보고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여기 왕천하(王天下)’라 하는 것은 단순히 왕노릇 한다는 것을 의미하질 않는다. 그러나 조선의 유자들은 이것을 단순히 왕노릇 함이라는 시공이 단절된 의미체계로서 추상적으로 이해했다. 왕노릇하는 것도 거추장스러운 일이니 군자의 삼락(三樂) 속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맹자라는 텍스트 상으로 볼 때 왕천하(王天下)’는 단순히 왕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시대의 모든 인간들의 열망이었던 천하통일을 인정(仁政)을 통하여 달성한다는 왕도의 구현이었다. 이 왕도의 구현이야말로 모든 제후와 모든 지식인들과 모든 민중이 갈망하던 이상적 사태였다. 따라서 왕천하(王天下)’가 군자의 삼락(三樂)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맹자의 삶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매우 모순된 멘트가 된다. 맹자 자신이 왕자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왕자를 만드는 것은 자기와 같은 지식인일 뿐이며, 그러한 현신(賢臣)의 도움이 없이 왕자가 등장한 사례는 역사에 없다고 단언했다. 맹자는 일치일란(一亂一治)의 역사 속에서 지금과 같은 심각한 란()의 상태는 없었으며 따라서 치()의 열망이 가장 강렬한 시기가 바로 맹자 본인이 살고 있는 전국 중엽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만약 이 천하를 평치(平治)하시려고 한다면, 이 어지러운 세상을 당하여 과연 나를 빼놓고 누가 왕자의 정도를 구현케 하도록 할 수 있단 말이냐?”(2b-13).

 

그렇다면 여기 왕천하(王天下)’가 군자의 삼락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도무지 어불성설이다. 군자의 삼락이 결국 왕천하로 귀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 기르는 것도 왕천하를 도외시하고, 즉 왕도의 구현이라는 지상의 과제를 포기하고서는 별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인 학자 이토오 진사이(伊藤仁齋)불여존언(不與存焉)’의 의미를 이 삼락 중 한 가지라도 왕천하(王天下)’하는 것과는 바꿀 수 없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삼락보다 왕천하의 가치를 지고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망문생의(望文生意)의 날조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 정당한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앞 장까지 내려온 로기온자료들의 의미맥락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20장의 편집이 19장 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9장의 내용은 실제로 맹자 본인의 삶의 과정에 대한 독백이기도 한 것이다. 처음에는 군주 하나 잘 모실 생각이었으나, 그것은 포기되었다. 그리고 사직(社稷)이라도 올바르게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그것도 변변치 않았다. 그리고 천하를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그 천민(天民)’의 꿈도 모든 종횡가의 말로가 그러하듯이 결국 일장춘몽에 그치고 만다. 맹자의 은퇴 후의 심경은 오직 대인(大人)’의 꿈이다. ‘왕천하의 꿈조차 잊어버린 지 오래다. 맹자의 말년의 심경은 이미 현실적 국가영토라는 개념을 초탈하였고, ‘왕천하의 꿈도 그가 추구하는 인정(仁政)’의 방법에 의한 실현의 가능성은 접은 지 오래였다. 따라서 은퇴 후의 말년의 심경은 여기 삼락(三樂) 이상의 어떠한 꿈도 허황되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작은 것에서 지대(至大)의 이상을 발견하는 새로운 맹자의 모습이다. 왕천하조차도 영재 하나를 바르게 키우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맹자의 삶의 궁극적 자각이 인류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왕천하불여존언(王天下不與存焉)’이 한마디를 나는 삼락보다 더 귀하게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선비됨의 궁극적 프라이드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청와대 5년의 공적이 어찌 도올의 원고지 한 장을 따를손가?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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