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군자는 내면은 절로 드러난다
7a-21.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영토를 넓히고 백성의 인구를 늘리는 일은【‘광토중민(廣土衆民)’을 ‘넓은 땅과 많은 백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광(廣)’과 ‘중(衆)’은 타동사이다】 이 세상의 지배자인 군자(君子)【沃案: 본 장에서 쓰이고 있는 ‘군자(君子)’라는 용어가 묘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전후맥락으로 보아 ‘군자’는 분명 제후급의 왕이다. 그러나 앞서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의 ‘군자’는 정치적 맥락을 초월한 ‘대인(大人)’이다. 본 장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오버랩되어 나타나고 있다. 말년의 맹자의 의식세계에 있어서는 ‘왕천하(王天下)’를 꿈꾸는 제후들이야말로 자기와 같은 진정한 ‘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장의 의미를 정확히 풀이할 수 없다. 앞에서 ‘왕천하불여존언(王天下不與存焉)’이라 했는데 어찌 여기서 ‘중천하이립(中天下而立)’이 ‘락(樂)’의 대상으로 등장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정직하게 고민하는 주석가들이 없다】가 욕심내는 바이지만, 그가 낙(樂)으로 삼는 것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7a-21. 孟子曰: “廣土衆民, 君子欲之, 所樂不存焉. 하늘 아래의 한가운데 당당히 서서 사해의 민중을 다 평정하는 것은 군자가 낙으로 삼는 것이지만, 그가 자신의 본래적 성으로 삼는 것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中天下而立, 定四海之民, 君子樂之, 所性不存焉. 군자가 성으로 삼는 것, 그 본래적인 것은 자기의 정치적 이상이 크게 실현되었다 할지라도【‘대행(大行)’은 2a-1에 기출】 증가될 건덕지가 없으며, 영락하여 빈궁하게 은거할지라도 감소되거나 할 건덕지가 없다【沃案: 맹자의 은퇴기에는 이미 대군주로서 영화를 누린 자도 하루아침에 영락하여 초라한 인간이 되는 사태가 비일비재한 현실이었다】. 그것은 본래적인 것으로 하늘에서 분수(分受)받을 때 이미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君子所性, 雖大行不加焉, 雖窮居不損焉, 分定故也. 그렇다면 도대체 군자가 성(性)으로 삼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인ㆍ의ㆍ예ㆍ지라는 것이니, 그것은 우리의 본래적 마음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그것은 반드시 우리 몸에서 색조(色調)로서 나타나는 것이니 그 기운이 청화하고 순결하기 그지없다【沃案: ‘수연(睟然)’을 보통 뒤로 붙여 읽었는데 그리하면 수연의 의미가 ‘면(面)’에만 한정된다. 앞으로 붙여 읽어야 한다. ‘수연(睟然)’을 주희는 ‘청화윤택(淸和潤澤)’이라 하였는데 나는 너무 ‘기름진다’라는 표현이 그 본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청화한 느낌이 풍요롭다는 의미 이상으로 ‘윤택’이 해석되면 안된다. 순수ㆍ순결에 더 강조점이 있어야 한다】. 그 청화하고 순결한 색조는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따라 얼굴이나 앞모습에 환히 드러나며, 등이나 뒷태에도 가득히 넘쳐나며, 팔과 다리 사지에도 곳곳에 뻗쳐 약동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삶과 소성의 모습을 타인에게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盎於背, 施於四體, 四體不言而喩.” |
몸철학(Philosophy of Mom)의 성전(聖典)이라 할 수 있는 너무도 소중한 맹자의 말씀이다. 군자의 복합적 의미는 이미 본문의 옥안(沃案)에서 밝혔지만 말년의 맹자는 이미 ‘왕천하(王天下)’의 꿈을 꾸는 군주들을 어린아이들처럼 굽어 내려다보고 있다. 그들과 범인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이다. 지극히 고양된 맹자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여기 논조에는 ‘소욕(所欲)’과 ‘소락(所樂)’과 ‘소성(所性)’의 가치론적 서열이 있다는 것도 반드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1단계 | 소욕(所欲) | 광토중민(廣土衆民) |
2단계 | 소락(所樂) | 중천하이립(中天下而立) 정사해지민(定四海之民) |
3단계 | 소성(所性) | 인의예지(仁義禮智) 사체불언이유(四體不言而喩) |
이것은 수신(修身)의 심화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수신은 추상적 과정(abstract process)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몸의 단련과정(the discipline process of Mom)이다. 따라서 수신의 전과정은 반드시 몸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것도 반드시 몸의 색깔로 표현되어야 한다. 여기 ‘색(色)’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칼라(color)’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수련의 정도를 나타내는 ‘인격의 빛깔’을 나타낸다. 그것은 핀포인트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너무도 명백하게 물리적 근거를 갖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보통 ‘건강(Health)’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건강이란 반드시 신체적ㆍ정신적 요 소를 총괄하는 개념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창조적 유의(儒醫)인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 1837~1900)는 여기 맹자가 말하는 앞모습과 뒷모습의 색깔을 구체화시켜 사상(四象)의 원리로 삼았다. 앞모습에서는 이(耳)ㆍ목(目)ㆍ비(鼻)ㆍ구(口)와 함(頷)ㆍ억(臆)ㆍ제(臍)ㆍ복(腹)을 말하고 뒷모습에서는 폐(肺)ㆍ비(脾)ㆍ간(肝)ㆍ신(腎)과 두(頭)ㆍ견(肩)ㆍ요(腰)ㆍ둔(臀)을 말하였다: 그리고 이ㆍ목ㆍ비ㆍ구에는 천시(天時)ㆍ세회(世會)ㆍ인륜(人倫)ㆍ 지방(地方)을 배속시켰고, 폐ㆍ비ㆍ간ㆍ신에는 사무(事務)ㆍ교우(交遇)ㆍ당여(黨與)ㆍ거처(居處)를 배속시켰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상초(上焦)ㆍ중상초(中上焦)ㆍ중하초(中下焦)ㆍ하초(下焦)에 배속시켜 사상(四象)의 체질과 관련지었던 것이다. 이것을 간단히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폐(肺) | 비(脾) | 간(肝) | 신(腎) | |
신체의 뒷모습 인사(人事) |
폐달사무 肺達事務 |
비합교우 脾合交遇 |
간립당여 肝立黨與 |
신정거처 腎定居處 |
두頭 | 견肩 | 요腰 | 둔臀 | |
두유식견 頭有識見 |
견유위의 肩有威儀 |
요유재간 腰有才幹 |
둔유방략 臀有方略 |
|
체질관련 | 상초 上焦 |
중상초 中上焦 |
중하초 中下焦 |
하초 下焦 |
태양인 太陽人 |
소양인 少陽人 |
태음인 太陰人 |
소음인 少陰人 |
|
신체의 앞모습 천기(天機) |
이耳 | 목目 | 비鼻 | 구口 |
이청천시 耳聽天時 |
목시세회 目視世會 |
비후인륜 鼻嗅人倫 |
구미지방 口味地方 |
|
함頷 | 억臆 | 제臍 | 복腹 | |
함유주책 頷有籌策 |
억유경륜 臆有經綸 |
제유행검 臍有行檢 |
복유도량 腹有度量 |
태양(太陽) 기운 |
소양(少陽) 기운 |
태음(太陰) 기운 |
소음(少陰) 기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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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 | 애성(哀性) | 노성(怒性) | 희성(喜性) | 락성(樂性) |
천기(天機) | 천시(天時) | 세회(世會) | 인륜(人倫) | 지방(地方) |
정(情) | 애정(哀情) | 노정(怒情) | 희정(喜情) | 락정(樂情) |
인사(人事) | 사무(事務) | 교우(交遇) | 당여(黨與) | 거처(居處) |
박통(博通) | 주책(籌策) | 경륜(經綸) | 행검(行檢) | 도량(度量) |
사심(邪心) | 교심(驕心) | 긍심(矜心) | 벌심(伐心) | 과심(誇心) |
독행(獨行) | 식견(識見) | 위의(威義) | 재간(才幹) | 방략(方略) |
태행(怠行) | 탈심(奪心) | 치심(侈心) | 나심(懶心) | 절심(竊心) |
태양인 | 소양인 | 태음인 | 소음인 |
언뜻 보기에 매우 번쇄하고 황당무계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임상의로서 이 도표를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인간세를 굽어보아왔다. 이것이 계발시키는 인간학의 유용한 시각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매우 창조적이고 정교한 논의라고 생각된다. 동무 이제마(李濟馬)야말로 조선 사맹학파의 거두(巨頭)라 이를 만하다. 인간의 신체의 앞모습에서는 끊임없이 천기(天機)를 받는 모습을 보고, 뒷모습에서는 그것이 인사(人事)로 발현되는 것을 보니, 인간은 뒷모습만 쳐다보아도 그 인품을 다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요즈음 지도자라 하는 사람들이 국고 털어먹을 생각만 하고, 순결한 대중을 등쳐먹을 생각만 하고, 혈세를 악용할 생각만 하고, 검찰과 정보력을 사용할 생각만 하면서 얼굴에 보톡스만 맞고 성형수술을 자행 하니 그 뒷모습만 보아도 역력한 서생원이요 구차스럽고 졸렬한 군상만 어른거린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로다! 인물은 그 몸이 말해준다는 것을 잊지 말자! 지나간 대통령들, 그 초라한 독재자들의 얼굴을 한번 생각해보라! 과연 함(주책)ㆍ억(경륜)ㆍ제(행검)ㆍ복(도량)을 제대로 갖춘 인물이 있었는가?
소욕(所欲)ㆍ소락(所樂)과 소성을 대비시킨 논리는 6a-16, 6a-17에도 근거가 있다.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심(心)에 관해서는 2a-6, 6a-6, 그리고 4a-27, 7b-24를 참조할 것.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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