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학과 조롱의 수단
해학(諧謔)은 예교(禮敎)를 앞세운 조선 지식인들에게 금기시되는 단어 중의 하나였다. 조선전기에 긴장된 관료생활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사대부의 심심파적으로 이용되던 골계류(滑稽類)의 찬집과 유행이 중기로 접어들면서부터 점차로 사라지게 된 것도 어쩌면 엄숙한 유교적 예교주의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허균(許筠, 1569~1618)은 이와 같이 엄숙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방달한 삶의 방식을 택하였고 이단으로 취급되던 도불(道佛)에 경도되었으며 서얼과 통교하였다. 한편 고문가로 자처하면서 옛사람의 글을 본뜨지 말고 평이하면서도 유창한 자신만의 글쓰기를 강조하였다【許筠, 『惺所覆瓿稿』 卷12, 「文說」, 238면.】. 그의 방달불기한 이단적 성향과 고문 지향의 창작의식은 문학적으로 어떻게 융합될 것인가?
자네의 애첩은 매우 깜찍하고 지혜로워 젊음이 잠깐임을 반드시 알 것인데, 그녀가 비구니가 되어서 끝까지 절개를 지킬 것인가? 속언에 열 번 찍어 넘어지지 않을 나무가 없다고 했으니 잘해 보게나. 그녀가 비록 금빛 휘장과 맛좋은 고아주(羔兒酒)의 맛에 익었지만 눈 녹은 물에 끓인 차도 특별히 운치 있는 일이네.
君家文君甚警慧, 必知春色片時. 其肯爲沙吒利終守節乎? 諺曰, ‘十斫木無不顚,’ 君其圖之. 彼雖熟金帳羔兒之味, 雪水煎茶, 殊亦雅事.
만일 그녀가 나를 찾아온다면 반드시, 하마터면 인생을 헛되어 보낼 뻔했다고 말할 것이네. 자네가 그녀에게 나는 놈 위에 타는 놈이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그 말에 마음이 움직일 걸세.
使其過我, 必曰幾乎虛度此生也. 君語之曰, ‘飛者上有跨者’, 則必動於言矣. -許筠, 惺所覆瓿稿 卷21, 與李汝仁 戊申四月, 319면.
위의 편지는 허균이 1608년 4월에 절친한 벗인 이재영(李再榮, 1553~1623)에게 부친 편지인데, 애첩 때문에 애가 단 친구를 속언을 이용하여 놀리고 도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속언은 허균의 방달불기한 성향을 척독에 잘 융합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덕무는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당시의 인정물태를 잘 형용한 예로써 유명한 풍속화가인 조영석의 동국풍속도에 대하여 허필(許佖, 1709~1761)【許佖: 1735년(영조 11)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관직을 갖지 않고 학문과 시ㆍ서ㆍ화에 전념하여 당시에 三絶로 불렸다. 李用休가 쓴 허필의 誌銘에는 청빈하고 소탈한 성격과 文學과 古藝 術品을 사랑하는 태도가 잘 묘사되어 있으며, 또한 모든 書體에 능통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篆書와 隷書에 뛰어났다고 하였다. 저서로는 仙槎唱酬錄과 烟客遺稿客가 있다.】 등이 시 형식으로 품평한 말을 수록하였다.
어떤 사람이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이 그린 동국풍속도(東國風俗圖)를 수집하여 그대로 그린 것이 70여 첩이 되었다.
연객(煙客) 허필(許佖)이 이언(俚諺)으로 평을 했는데, 세 여자가 재봉하는 그림에 쓴 것은, 한 계집은 가위질 하고[一女剪刀] 한 계집은 주머니 접고[一女貼囊] 한 계집은 치마 기우니[一女縫裳] 세 계집이라 간(姦)이 되어[三女爲姦] 접시를 뒤엎을 수 있겠군[可反沙碟]이라고 하였다.
有人輯摹趙觀我齋榮祏所畵東國風俗, 凡七十 餘帖. 許烟客泌, 以俚諺評, 其題三女裁縫曰, 一女剪刀, 一女貼囊, 一女縫裳, 三女爲姦, 可反沙碟. -李德懋, 『靑莊館全書』 卷52, 「耳目口心書」, 443면.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이 그림을 보면, 세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재봉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에 대하여 허필(許佖)은 앞의 세 구절에서 차분히 재봉에 열중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각각 묘사하다가 끝의 두 구절에서 난데없는 “여자가 셋 모이면 새 접시를 뒤집어 놓는다”는 속언을 활용하여, 그림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아낙들이 지닌 고유의 유쾌한 속성을 드러내는 해학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인용
1. 문제의 제기
3. 속언 활용의 제양상
2. 문학 창작의 재료로 활용
2) 한시의 소재로 활용
3) 해학과 조롱의 수단
4) 변증 재료에의 활용
4.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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