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일자사(一字師)의 미감(美感) 원리(原理)②
태평을 한스럽게 여기다?
일자사(一字師)의 두번째 미감 원리는 시사(詩思)의 온유돈후(溫柔敦厚)를 중시하라는 것이다. 감각적 직설(直說)보다는 에돌려 말하는 데서 오는 온건한 맛이 더 깊고, 모난 말보다는 각지지 않은 표현에서 중후한 체취가 풍겨난다.
獨恨太平無一事 | 홀로 태평하여 일 없음을 한하니 |
江南閑殺老尙書 | 강남 땅서 한가로운 늙은 상서(尙書)로다. |
장괴애(張乖崖)란 이가 늙마의 한가로움을 이렇게 읊자, 소초재(蕭楚材)가 못마땅한 낯빛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라가 하나로 통일되고, 공의 공명과 지위가 높고 중한데, 홀로 태평함을 한스러워한다 함은 무엇입니까?”하고는 한 글자를 고쳤다. 무슨 글자였을까? 첫 구의 ‘한(恨)’자를 지우고 그 자리에 ‘행(幸)’자를 써 넣었다. 언뜻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고치고 보니 두터운 맛이 한결 다르다. 태평하여 아무 일 없는 것이 ‘한(恨)’스럽다하는 것과, 다행스럽다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전자가 뭔 일이 안 일어나나 하고 기다리는 형국이라면, 후자는 한가로운 만년을 보내는 ‘노상서(老尙書)’의 노경(老境)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보인다.
부정적 시선을 긍정적 시선으로 바꾸다
이와 비슷한 예화가 『지봉유설(芝峯類說)』에 하나 더 있다. 판서 오상(吳祥)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羲皇樂俗今如掃 | 희황(羲皇) 적 즐거운 풍속 쓸어낸 듯 사라지니 |
只在春風杯酒間 | 봄바람 술 잔 사이에만 남아 있을 뿐일세. |
상진(尙震)이 읽더니, “말을 어찌 이리도 박절하게 하는가[何言之薄耶]?”하며 나무라고는 이렇게 고쳤다.
羲皇樂俗今猶在 | 희황(羲皇) 적 즐거운 풍속 지금껏 남았으니 |
看取春風杯酒間 | 봄바람 술 잔 사이를 살펴보게나. |
한 사람은 상고의 즐거운 풍속이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길이 없어 봄바람 맞으며 술 마시는 속에서 겨우 그 남은 즐거움을 찾노라 했고, 한 사람은 그 즐거움은 지금도 오히려 그대로 남아 있으니, 봄날의 즐거운 술자리가 바로 그 증거라고 하였다. 과연 몇 글자의 차이 속에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인생관이 뚜렷한 편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용
1. 한 글자를 찾아서①
2. 한 글자를 찾아서②
4. 뼈대와 힘줄②
5. 한 글자의 스승①
11. 시안(詩眼)과 티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