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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 10.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④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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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 10.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④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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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일자사(一字師)의 미감(美感) 원리(原理)

 

 

김부식과 정지상의 원한 관계에 빗댄 일화

 

다음은 이규보(李奎報)백운소설(白雲小說)에 실려 전하는 일화이다. 정지상(鄭知常)의 재주를 시기한 김부식(金富軾)은 그를 죄로 얽어 죽였다. 하루는 김부식(金富軾)이 시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버들은 천 실이 푸른 빛이요 복사꽃은 만 점이나 붉게 피었네.

 

그러자 공중에서 홀연 정지상(鄭知常)의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金富軾)의 뺨을 치며 천사(千絲)와 만점(萬點)은 누가 세어 보았더냐. 어찌 버들은 실실이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도다[千絲萬點, 有孰數之也? 何不曰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라 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이 경우 과연 ()’()’으로 규정함보다 사사(絲絲)’점점(點點)’의 모호가 낫지 않은가. 실실이 푸른빛을 머금고 하늘거리는 버들가지와, 온 산을 점점이 찍어 붉게 물들인 복사꽃의 정취는 ()’()’으로 한정 지웠을 때보다 한결 생생하다.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 버들은 실마다 푸른 빛이요 복사꽃은 점마다 붉게 피었네.

 

잠시 이야기는 곁가지로 나가지만, 시화(詩話)에 전하는 김부식(金富軾)정지상(鄭知常)의 불화(不和)의 시말은 이러하다. 한 번은 두 사람이 함께 산사(山寺)를 찾아 놀 때 정지상(鄭知常)이 다음 시구를 읊었다.

 

琳宮梵語罷 山色淨琉璃 절에서 독경(讀經)소리 끝나자마자 하늘은 유리처럼 깨끗해지네.

 

청아한 독경(讀經) 소리가 하늘로 울려 퍼지자, 그 소리에 씻긴 듯 하늘빛이 유리처럼 맑아지더라는 이야기다. 독경(讀經) 소리에 쇄락해진 마음을 맑아진 하늘에서 새삼 확인하고 있는 교감적 심상의 교묘한 결합이다. 김부식(金富軾)이 이 시구를 좋아하여 자기 것으로 해달라고 했으나 정지상(鄭知常)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앙심을 품은 김부식(金富軾)이 사건을 꾸며서 급기야 정지상(鄭知常)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 뒤 김부식(金富軾)이 어떤 절에 가서 해수각(解愁閣)에 앉아 용변을 보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정지상(鄭知常)의 귀신이 음낭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네 얼굴빛이 어찌 그리 붉은가[不飮酒何面紅]?” 지기 싫어하는 김부식(金富軾)은 곧 죽어도 건너편 언덕의 단풍이 얼굴에 비쳐서 붉다[隔岸丹楓照面紅].”고 대답했다. 이에 음낭을 더욱 세게 움켜쥐자 그만 김부식(金富軾)은 죽고 말았다. 이 무슨 해괴한 장난이었을까? 두 사람을 라이벌로 설정한 양상도 그렇고, 시 한 수, 아니 한 글자를 두고도 티격태격하는 그 모습에 담긴 뒷사람의 장난끼도 꽤나 고약하다.

 

 

 

의미를 풍성하게 해주는 글자

 

너무나도 유명한 정지상(鄭知常)송인(送人)34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물결 보태나니[大洞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는 원래 첨록파(添綠波)’가 아니라 첨작파(添作波)’였다. 이를 뒤에 홍재(洪載)란 이가 옮겨 적으면서 다시 창록파(漲綠波)’로 바꾸었다. ‘첨작파(添作波)’보태어져 물결이 된다의 뜻이라면 창록파(漲綠波)’푸른 물결로 넘쳐 흐른다가 된다. 이별의 눈물이 물결을 일으킨다는 것은 작위적 느낌을 주고, 푸른 물결로 넘실댄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 거슬린다. 이에 이제현(李齊賢)은 지적하기를, “‘()’이나 ()’ 두 글자는 다 원만치 않다. 마땅히 첨록파(添綠波)’일 뿐이다라 하여 마침내 이것을 정론으로 삼는다. 푸르게 흘러가는 강 물결 위에 이별의 눈물이 그저 가세할 뿐이라는 것이다. 온자(蘊藉)한 맛이 있다. 이 이야기는 동인시화(東人詩話)에 실려 있다.

 

또 매천 황현(黃玹)압강도중(鴨江途中)시의 34구는 원래 다음과 같다.

 

微有天風驢更快 바람이 건듯 부니 나귀 걸음 빨라지고
一經春雨鳥皆姸 봄비를 맞고 나니 새는 모두 고웁구나.

 

김택영(金澤榮)이건창(李建昌)이 이를 보고 ()’()’으로 고치게 하였다. ‘()’이라 하면 새가 더욱 고웁구나가 되어 위 구의 ()’과 잘 어울리는 대구가 된다. 나귀의 걸음이 산들바람에 더욱 경쾌해졌다면 한 번 봄비를 맞아 깨끗하게 씻겨진 새는 더욱 고울 것이 당연하다. 이 모두 봄날 상쾌한 바람과 대지를 적시는 봄비 속에서 새삼 느끼는 생명의 약동을 경쾌한 리듬으로 포착한 것이다.

 

微有天風驢更快 바람이 건듯 부니 나귀 걸음 빨라지고
一經春雨鳥增姸 봄비를 맞고 나니 새는 더욱 고웁구나.

 

일자사(一字師) 이야기가 보여주는 한시(漢詩)의 미감 원리는 물론 이 세 가지만으로 한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경계에는 더 많은 변주들이 존재한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한 글자를 찾아서

2. 한 글자를 찾아서

3. 뼈대와 힘줄

4. 뼈대와 힘줄

5. 한 글자의 스승

6. 한 글자의 스승

7.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8.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9.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10.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11. 시안(詩眼)과 티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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