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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 2. 한 글자를 찾아서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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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 2. 한 글자를 찾아서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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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 글자를 찾아서

 

 

한 글자를 지워 언어감각을 키우다

 

송나라 때 어느 원벽(院壁)두보(杜甫)곡강대우(曲江對雨)시가 적혀 있었는데, “숲속 꽃잎 비 맞아 연지가 젖었구나[林花着雨臙脂濕].”라 한 구절의 마지막 ()’자가 떨어져 나갔다.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과 진관(秦觀)과 불인(佛印) 등이 제각기 ()’()’, ‘()’()’으로 채웠으나, 원시의 ()’이 주는 선명하고 촉촉한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듯 보인다.

 

소동파(蘇東坡)가 일찍이 병학(病鶴)시를 지었는데 석 자 되는 긴 다리에 마른 몸을 얹었네[三尺長脛閣瘦軀]”란 구절이 있었다. 하루는 소동파(蘇東坡)()’자를 가리고서 임덕장(任德章) 등에게 적당한 글자로 채워 넣게 하였으나 끝내 알맞은 글자를 찾지 못하였다. 소동파(蘇東坡)가 천천히 그 원고를 꺼내 보여주는데 ()’자가 써 있었다. ‘()’이란 놓아두다는 뜻인데, 이 글자가 놓이고 보니 가뜩이나 위태로워 보이는 긴 다리에 병들어 수척한 몸뚱이를 얹어 놓고 힘에 겨워하는 병든 학의 모습이 마치 눈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나온다.

 

청대(淸代) 매증량(梅曾亮)의 문집을 보면 시미(詩謎) 또는 시보(詩寶)ㆍ시조(詩條)라고도 불리는 유희에 대해 말한 대목이 있다. 시미(詩謎)란 위에서 본 예처럼 옛 시인의 시집에서 한 구절을 따다가 그 가운데 안자(眼字)가 되는 한 글자를 지워버리고, 원래 있던 글자 외에 그럴듯한 네 글자를 늘어놓아 제 글자를 찾아 맞추는 놀이를 말한다. 말하자면 오지선다형이다. 시미(詩謎) 유희는 뒷날 시를 배우는 한 방편으로 널리 성행하였는데, 위 네 예화 같은 것이 바로 이 놀이의 연원이 된 것이다. 현대시에서도 이런 놀이가 가능할까.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언어의 감각을 키우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글자의 고심과 모자 고르기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놀이는 행해졌던 듯하다. 심의(沈義)대관재기몽(大觀齋記夢)에 나오는 다음 삽화가 그 예증이다. 이 작품은 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데, 심의(沈義)가 잠깐 꿈속 문장(文章) 왕국(王國)에 들어가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현세에서의 갈등을 마음껏 해소하고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이 가운데 한 삽화로, 몽중(夢中) 문장왕국(文章王國)의 천자 최치원(崔致遠)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에 보내네[風敲夜子送潮沙].”라 한 구절을 놓고 ()’자가 마음에 안 든다 하여 신하들에게 고치게 하니, 진화(陳澕)()’자를, 정지상(鄭知常)()’자를, 주인공인 심의(沈義)()’자를 각각 올렸는데, 천자는 ()’에 낙점하여 후한 상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필자가 최치원(崔致遠)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을 뒤져 보니 위 구절은 석상왜송(石上矮松)이란 시의 제 4구로 본래부터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에 떨구었도다[風敲夜子落潮沙].”라 한 구절이 멀쩡하게 실려 있었다. 그래서 이것이 시미(詩謎) 놀이의 한 가지임을 알았다.

 

이 경우 여러 사람이 내놓은 글자들을 차례로 원시에 대입시켜 보면 의경(意境)의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 사이 언어의 질량을 저울질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상승의 경계에 진입한 자일 터이다.

 

風敲夜子送潮沙 (최치원)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에 보내네.
風敲夜子過潮沙 (진화)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을 지나네.
風敲夜子集潮沙 (정지상)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을 모으네.
風敲夜子落潮沙 (심의)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에 떨어뜨리네.

 

()의 사진(謝榛)은 시인이 알맞은 한 글자의 선택을 위해 심혈을 쏟는 것을 모자 고르기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급히 모자를 사려고 시장에 들어가 여러 개를 꺼내 놓고 하나하나 써보면 반드시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자 고르는 법을 쓸 수만 있다면 시안(詩眼)은 공교롭지 않음이 없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한 글자를 찾아서

2. 한 글자를 찾아서

3. 뼈대와 힘줄

4. 뼈대와 힘줄

5. 한 글자의 스승

6. 한 글자의 스승

7.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8.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9.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10.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11. 시안(詩眼)과 티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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