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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 9.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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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 9.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③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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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일자사(一字師)의 미감(美感) 원리(原理)

 

 

()와 만(滿)의 분위기 차이

 

일자사(一字師)의 세 번째 미감 원리는 여운(餘韻)을 남기되 앞뒤 호응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여운(餘韻)은 딱 부러지게 규정하지 않은 추상의 여백에서 생겨난다. 시가(詩家)는 단정적 언사를 꺼린다. 상식에 절은 타성을 거부한다. 사물과 시인이 만나 빚어내는 의경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명징한 장면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리는데 묘한 맛이 있다. 그렇지만 의경(意境)의 일관된 호흡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다음은 엽몽득(葉夢得)금릉오제(金陵五題)중 한 수이다.

 

生公說法鬼神聽 생전의 공의 설법 귀신도 들었거니
身後空堂夜不扃 죽은 뒤 빈 집은 밤에도 걸지 않네.
猊座寂廖塵漠漠 불좌(佛座)는 적막하고 먼지만 자옥한데
一方明月可中庭 둥두렷한 밝은 달은 뜰 가운데 쯤이로다.

 

어떤 이가 소동파(蘇東坡)에게 왜 끝구를 (滿)’이라 하지 않고 ()’라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소동파(蘇東坡)는 픽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웃은 이유는 무엇일까? ‘만중정(滿中庭)’이라 하면 밝은 달이 뜰 가운데 가득찼다는 뜻이 된다. 이래서는 윗 구절의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해친다. 명월(明月)’이라 해놓고 다시 (滿)’을 말하면 중복되어 의경도 천근(淺近)해진다. ‘()’의 의미다. 밝은 달이 뜰 가운데쯤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두텁다. 이제현(李齊賢)역옹패설(櫟翁稗說)에 보인다.

 

 

 

한 풀 꺾인 감정을 담다

 

두보(杜甫)곡강대주(曲江對酒)34구에 다음과 같이 썼다.

 

桃花細逐楊花落 복사꽃 버들꽃 좇아 가녀리게 떨어지고
黃鳥時兼白鳥飛 꾀꼬리는 해오라비 따라 이따금 난다.

 

한 사대부의 집에 두보(杜甫)가 직접 쓴 친필(親筆)의 초고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3구를 복사꽃은 버들꽃과 함께 말을 나누려 하고[桃花欲共楊花語].”라 되어 있었다. 그것을 엷은 먹으로 세 글자를 고쳐 위와 같이 만들었다. 이 시를 지을 당시 두보(杜甫)는 장안(長安)에서 습유(拾遺)에 임명되어 한때 희망에 부풀었으나, 희망은 곧이어 좌절과 무력감으로 바뀌어 그는 다만 강가에 앉아 하릴 없이 꽃 지고 새 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견디기 힘든 적막과 무료를 토로하던 터였다. 이러한 때 복사꽃과 버들꽃이 다정히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고 한 처음의 의경은 당시 그가 처한 상황에서 보면 마땅치 않다. 이제 세 글자를 고침으로써 두보는 한풀 꺾인 자신의 현재 심경을 적실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14글자 중 두 글자를 바꿔 의미를 강화하다

 

증길보(曾吉甫)증왕언장(贈王彦章)시에 다음과 같이 썼다.

 

白玉堂中曾草詔 백옥당(白玉堂) 가운데서 조서(詔書)를 초 잡았고
水晶宮裏近題詩 수정궁(水晶宮) 안에서는 시 짓기를 가까이 했네.

 

한자창(韓子蒼)이 읽더니 ()’()’으로, ‘()’()’으로 바꾸었다. ‘()’()’는 아무래도 단순하고 엷은데, ‘백옥당(白玉堂) 깊은 곳에서수정궁(水晶宮) 서늘한데로 바꾸고 나니, 천근(淺近)하던 표현에 심원(深遠)한 기운이 감돈다.

 

白玉堂深曾草詔 백옥당(白玉堂) 깊은 데서 조서(詔書)를 초 잡았고
水晶宮冷近題詩 수정궁(水晶宮) 서늘한데도 시 짓기를 가까이 했네.

 

또 고려 때 이첨(李詹)이 정이오(鄭以吾)와 더불어 시를 논하다가 시구를 다음과 같이 얻었다.

 

烟橫杜子秦淮夜 안개 낌은 두목지(杜牧之)의 진회(秦淮)의 밤과 같고
月白坡仙赤壁秋 달 밝음은 소동파(蘇東坡)의 적벽(赤壁)의 가을일세.

 

정이오(鄭以吾)가 두 번 세 번 읊조리다가 ()’()’으로, ‘()’()’로 바꿀 것을 말하니, 이첨(李詹)이 처음엔 긍정하지 않다가 마침내 인정하였다. ‘()’이라 함은 에워쌌다는 것이니 ()’보다 강하고, ‘()’()’에 비해 약하니, 쥐었다 놓았다 하는 미묘한 줄다리기가 있어 먼저 번보다 정채(精彩)로움이 백배 더하다. 서거정(徐居正)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한 말이다.

 

烟籠杜子秦淮夜 안개 에워쌈은 두목지(杜牧之)의 진회(秦淮)의 밤과 같고
月小坡仙赤壁秋 달빛 적음은 소동파(蘇東坡)의 적벽(赤壁)의 가을일세.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한 글자를 찾아서

2. 한 글자를 찾아서

3. 뼈대와 힘줄

4. 뼈대와 힘줄

5. 한 글자의 스승

6. 한 글자의 스승

7.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8.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9.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10.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11. 시안(詩眼)과 티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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