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 6. 한 글자의 스승② 본문

카테고리 없음

한시미학산책,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 6. 한 글자의 스승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08:55
728x90
반응형

6. 한 글자의 스승

 

 

()’()’으로 바꾼다는 것

 

또 당나라 때 임번(任翻)이 과거에 낙제하여 돌아가는 길에 절강(浙江)의 천태산(天台山)에 들렀다가 시정(詩情)이 동탕(動蕩)하여 절 담장 위에 시 한 수를 써 놓았다.

 

絶嶺新秋生夜凉 산마루 새 가을에 밤 한기 돋아나니
鶴翔松露濕衣裳 학 날자 솔 이슬은 옷깃을 적시누나.
前村月落一江水 앞마을에 온강 가득 달빛이 떨어져도
僧在翠微閑竹房 산중턱의 스님네는 죽방(竹房)에서 한가롭네.

 

천태산(天台山)을 내려와 전당강(錢塘江)에 다다른 그가 늦은 밤 강물에 비친 달빛을 보니, 강물이 조수를 따라 물러나자 달빛도 단지 반강(半江)’에만 남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전날 시에서 일강수(一江水)’라 한 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마음이 불안하여 길을 되짚어 절로 달려갔다. 그랬더니 웬걸, ‘()’자 위에는 이미 누가 한 획을 가로 긋고, 다시 세로로 한 줄을 그은 뒤 점 두 개를 찍어 ()’자로 고쳐 놓은 것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든 그가 절에 스님들에게 수소문해보니, 그가 시를 써놓고 간 뒤 얼마 못 되어 한 관리가 이곳을 지나다가 그렇게 고쳐 놓고 갔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관리가 누군지를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결국 알 수가 없어 안타까워하며 돌아갔다. 홍만종(洪萬宗)소화시평(小華詩評)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민구(李敏求)가 금강산에 놀러 갔다가 시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千崖駐馬身全倦 벼랑에 말 세우니 몸이 너무 피곤하여
老樹題詩字未成 늙은 나무에 시 쓰려도 글자가 되질 않네.

 

계속된 여정에 지칠 대로 지친 나그네는 아마득한 벼랑 앞에 말을 세운다. 솜처럼 노곤하다. 노수(老樹)의 껍질을 벗겨 시를 쓰려 하니 지친 몸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뒤에 김상헌(金尙憲)이 이 시를 보더니 대뜸 ()’자를 ()’자로 고쳤다. 그러자 갑자기 정채(精彩)가 확 살아났다. 과연 글자가 도무지 써지질 않는다고 하는 것보다 반만 이루었다고 하니 온유돈후(溫柔敦厚)한 기상을 담게 되었다. 남용익(南龍翼)호곡시화(壺谷詩話)에 나오는 이야기다.

 

 

 

시의 의미를 제대로 전해줄 한 글자

 

시승(詩僧) 교연(皎然)에게도 한 승려가 찾아와 이 물결 제택(帝澤)을 머금고 있어, 티끌 묻은 갓끈을 씻을 곳 없네[此波涵帝澤, 無處濯塵纓].”라 한 어구(御溝)시를 보여준 일이 있었다. 교연(皎然)자가 좋지 않으니 다른 글자로 고치라고 하자, 그 승려는 불복하여 시를 가지고 떠나버렸다. 교연(皎然)은 그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자기 손바닥 가운데 한 글자를 써놓았다. 얼마 뒤 승려가 허겁지겁 돌아오더니 조금 들뜬 어조로, “스님의 지적이 과연 옳습니다. ‘()’자를 ()’자로 고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교연(皎然)이 빙그레 웃으며 손바닥을 펴 보였다. 거기에는 이미 ()’자가 써 있었다. 둘은 소리 내어 껄껄 웃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아들 이종학(李種學)과 함께 자주 서주루(西州樓)에 올라가 제서주성루(題西州城樓)라는 시를 지었다.

 

西林石堡入雲端 서림(西林)의 성벽은 구름 끝에 들었는데
亭樹含風夏尙寒 정수(亭樹)에 바람 불어 여름인데도 아직까지 춥구나.

 

돌아오는 길에 종학(種學), “아버님의 시 가운데 ()’자는 ()’자의 온당함만 못할 듯싶습니다[大人詩中尙字, 不如亦字之穩].”라 하자, 목은(牧隱)과연 그렇구나[果是也].”하고는 아들에게 빨리 되돌아가 고치게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을 일자사(一字師)로 삼은 이야기이다.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나온다. ‘하상한(夏尙寒)’이라 하면 여름인데도 아직까지 춥다는 뜻이니 지속적으로 추웠다는 뜻이 되고, ‘하역한(夏亦寒)’이라 하면 여름에도 또한 춥다가 되어 지속의 의미는 상당히 줄어든다.

 

亭樹含風夏亦寒 정수(亭樹)에 바람 불어 여름에도 또한 춥구나.

 

 

 

김홍도,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18세기, 164X76cm, 개인 소장

뱃전에 기대앉아 언덕 위 매화를 바라본다. 내 인생에 저 꽃을 몇 번 더 보려나. 이런 마음이었겠지. 술병 하나 앞에 놓였고, 아이는 무료해서 제 무릎을 안았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한 글자를 찾아서

2. 한 글자를 찾아서

3. 뼈대와 힘줄

4. 뼈대와 힘줄

5. 한 글자의 스승

6. 한 글자의 스승

7.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8.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9.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10. 일자사(一字師)의 미감원리(美感 原理)

11. 시안(詩眼)과 티눈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