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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정경론(情景論) - 4. 정수경생 촉경생정(情隨景生, 觸景生情)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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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정경론(情景論) - 4. 정수경생 촉경생정(情隨景生, 觸景生情)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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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수경생 촉경생정(情隨景生, 觸景生情)

 

 

울적할 때 환하게 떠오르는 해

 

舟中晨起坐 相對是靑燈 새벽녘 배 위에 일어나서는 푸른 등불 마주 보며 앉아 있자니,
鷄犬知村近 星河驗水澄 닭 울음에 개 짖어 마을 가깝고 은하수 비취니 물이 맑구나.
隨身唯老病 屈指少親朋 늙음과 질병만이 이 몸 따르고 손꼽아도 친구는 몇이 안 되네.
世事又撩我 東方紅日昇 세상 일로 마음은 심란만 한데 동녘에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홍귀달(洪貴達)광진주중조기(廣津舟中早起)란 작품이다. 떠도는 것이 인생살이라지만 그는 무슨 일로 배 위에서 밤을 지새웠을까. 축축하고 서늘한 서리 새벽에 일어나니 밤은 아직도 깊었다. 조금이라도 따뜻해질까 싶어 등불과 마주 앉는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가물거리는 등불을 보다가 시인은 허망한 느낌이 일었다. 2구의 상대(相對)’란 말에 그 뼈저린 허전함을 담았다.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 덩달아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인가가 멀지 않음을 알겠다. 강물엔 은하수가 그대로 떠 있다. 참 맑은 물이다. 마을을 가까이 두고도 그는 배를 그리로 댈 생각 없이 새벽 맑은 강에 어린 별빛과 푸르스름한 등불만을 바라보며 오두마니 앉아 있다. 허균(許筠)국조시산(國朝詩刪)에서 처음 네 구를 두고 추경심교(秋景甚巧)’ 즉 가을 경치 묘사가 기가 막히다는 평어(評語)를 남겼다.

 

가을 새벽의 해맑은 경()은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보는 시인의 정()을 일으켰다. 돌아보면 이룬 것 없는 평생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늙고 병든 고단한 몸뚱이뿐이다. 손꼽아 헤일 만한 벗도 없다. 가뜩이나 힘겨운데 세상일은 더하여 마음을 심란케 한다. 이때 동편 저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실망하지 말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위로하는 것 같다. 분명치 않게 몽롱하던 것들이 새벽 첫 빛에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4구를 경()으로 시상을 연 뒤, 다음 세 구로 정()을 받쳤다. 그리고는 끝구에서 다시 경()을 끌어와 의경을 반전하였으니, 앞뒤의 경으로 정을 감싸 안았다.

 

 

 

가녀린 꽃잎에 가닿은 마음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간 밤 비 맞고서 꽃을 피우곤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누나.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슬프다 한해 봄날의 일이 비바람 가운데서 오고 가노매.

 

송한필(宋翰弼)우음(偶吟)이다. 1구와 2구는 다섯 글자가 정연한 대구를 이루었다. 꽃을 피운 것은 작야우(昨夜雨)’이고, 꽃을 떨군 것은 금조풍(今朝風)’이다. 간밤 비 맞고 핀 꽃이 아침 바람에 진흙탕 속에 잎을 떨구었으니, 겨우내 눈을 아끼고 망울을 부퍼 마침내 꽃피운 보람은 당초 무색하게 되고 말았다. 시인은 이를 가련(可憐)’이란 한 마디로 압축했고, 한 해 봄 일이 비바람 가운데 오간다 하여, 우리네 인생살이도 풍파 속에 덧없음을 보였다. 아름다운 자태를 선뵐 겨를도 없이, 가꾼 보람 허망하게 떨어진 꽃잎들이 세상에 어디 한 둘이겠는가? 바람은 언제나 딴 데서 불어오고 그 불공(不公)을 탓하기엔 꽃잎의 힘은 너무 가녀리다. 떨어진 꽃잎에 정()이 촉발되어 일춘사(一春事)’일생사(一生事)’로 확장되었다.

 

 

 

어둠이 찾아올 때 간절한 것

 

落葉鳴沙逕 寒流走亂山 낙엽이 답쌓인 명사(鳴沙) 길에서 찬 물은 어지런 산 달려가누나.
獨行愁日暮 僧磬白雲間 나그넨 날 저묾이 근심겨운데 구름 저편 스님은 경쇠를 친다.

 

백광훈(白光勳)과보림사(過寶林寺)이다. 가을의 찬 시내는 비죽 솟은 산들이 어지럽다고 쏜살같이 내달려 달아난다. 낙엽이 쌓인 모래사장은 모래의 사각이는 소리에 낙엽 밟는 소리를 곁들였다. 낙목귀근(落木歸根), 모든 것은 제 자리를 찾아 떠나가는데, 허허로운 가을 산길에 강물은 또 무엇이 바빠 저리 서두는가. 갈 데 없이 달려가는 시내를 바라보다 문득 나그네의 마음도 부산해진다. 하루해가 저무니 길 가는 나그네는 짙어오는 땅거미가 근심에 겹다. 오늘은 어디서 묵어갈 것인가. 반본환원(返本還元), 잎이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듯 피곤한 몸을 길게 누일 안식의 자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때다. 두서없는 근심 속에 댕그렁 댕그렁 흰 구름 사이로 은은한 풍경소리를 들은 것은. 무얼 걱정하느냐고, 여기 절이 있다고, 와서 쉬어 가라고.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가장자리가 없다

2. 가장자리가 없다

3. 정수경생 촉경생정(情隨景生, 觸景生情)

4. 정수경생 촉경생정(情隨景生, 觸景生情)

5. 이정입경 경종정출(移情入景, 景從情出)

6. 이정입경 경종정출(移情入景, 景從情出)

7.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

8.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

9. 정경교융 물아위일(情景交融, 物我爲一)

10. 지수술경 정의자출(只須述景, 情意自出)

11. 지수술경 정의자출(只須述景, 情意自出)

12. 즉정견경 정의핍진(卽情見景, 情意逼眞)

13. 즉정견경 정의핍진(卽情見景, 情意逼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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