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귀신(鬼神)의 조화와 시인(詩人)의 궁달(窮達)②
귀신이 시로 사람을 출세시키다
또 『성수시화(惺叟詩話)』에는 귀신이 시로써 김안로를 출세시킨 이야기도 실려 있다. 김안로가 어릴 적 관동지방을 유람하였는데, 꿈속에 귀신이 나타나서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春融禹甸山川外 | 우임금의 산천 밖엔 봄 기운이 한창인데 |
樂奏虞庭鳥獸間 | 순임금 뜰 짐승 사이에서 음악을 연주하네. |
그러면서 “이는 네가 벼슬을 얻을 말일 것이다[此乃汝得路之語].”라고 하였다. 이듬해 그가 정시(庭試)를 치러 들어갔더니, 연산군이 율시 6수를 내어 시험 치는데, 그 가운데, “이원(梨園)의 제자(弟子)들이 심향정(沈香亭) 가에서 한가로이 악보(樂譜)를 들쳐본다[梨園弟子, 沈香亭畔, 閒閱樂譜].”는 제목이 있었는데, ‘한(閑)’자로 압운하였다. 퍼뜩 귀신이 읊어준 시구를 떠올린 김안로는 그것을 써서 바쳐, 마침내 장원 급제하였다. 김안국(金安國)이 그때 시관(試官)으로 자리에 있다가 “이것은 귀신의 말이지 사람의 말이 아니다[此句, 鬼語, 非人詩也].”라고 하였다. 이에 김안로가 사실대로 이야기하니 사람들이 김안국의 식견에 모두 탄복하였다.
귀신이 시로 사람을 죽이다
조기종(趙己宗)이란 젊은 서생이 남학(南學)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는 구두(句讀)도 뗄 줄 모르고 시를 지을 줄도 몰랐다. 하루는 꿈에 빈 집에 들어갔는데 넓고 조용하였고, 대추꽃이 막 피어나 마치 초여름과 같았다. 두 세 명의 서생이 그곳에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조기종에게 굳이 시 짓기를 청하였다. 이에 조기종이 시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樹上棗滿開 空家寂無人 | 나무 위엔 대추꽃이 활짝 피었고 빈 집은 적막하여 아무도 없네. |
春風吹不盡 萬里草多新 | 봄바람 끝없이 불어오더니 만리에 봄 풀이 새로웁구나. |
꿈에서 깬 뒤 그는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꿈에서 지은 시를 써서 벽에 붙여 놓았는데, 이튿날 죽고 말았다. 이것이 귀신이 시로써 사람을 죽인 이야기다. 『소문쇄록(謏聞鎖錄)』에 실려 있다.
인용
9. 귀신(鬼神)의 조화와 시인(詩人)의 궁달(窮達)①
10. 귀신(鬼神)의 조화와 시인(詩人)의 궁달(窮達)②
11.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