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2/06/15 (6)
건빵이랑 놀자
8. 기존 주해서 『금강경언해』는 소명태자가 분절한 라집한역본(羅什漢譯本)과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구결(口訣)』이 실려있고 이 양자의 국역이 다 실려 있어, 나는 그 판본과 국역을 다 참조하였다. 불행하게도 세조언해본 『금강경』 판본은 아주 후대에 성립한 열악한 판본이며 우리 해인사본과는 출입(出入)이 크다. 연세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에 있는 장경준군(張景俊君, 도올서원 제12림 재생)이 『금강경언해』를 내가 활용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타이프치고 고어(古語)를 현대말로 옮겨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공로에 감사한다. 내가 『금강경』을 번역함에 있어 우리 옛말의 아름다운 표현이 참조될 부분이 있을 때는 그것을 살리도록 노력하겠다. 내가 참고로 한 판본은 홍문각(弘文閣) 영인본 『금강경언해(金剛..
7. 군주들의 인간적 고뇌 『금강경』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천하의 명주보다도 더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소명태자(昭明太子)가 이에 취해 그 유명한 분절(分節)을 창조했다면, 나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 금강경』의 향기에 취했던 자로서, 두 얼굴의 사나이, 총명과 예지로 번뜩이는가 하면 탐욕과 음험한 살육의 화신인 사나이, 경세치용의 명군인가 하면 조선의 역사를 부도덕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나이, 수양대군(首陽大君) 세조(世祖)를 서슴치 않고 들겠다. 우리나라 조선왕조의 초기의 사상적 형세는 실로 불교와 유교라는 양대(兩大) 의식형태의 충돌로 특징지워진다. 조선왕조가, 교과서에 나오듯이 1392년 7월 17일 무장(武將) 이성계(李成桂)가 왕(王)으로 추대되는 사건으로 성립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
6. 명심포니 회고컨대, 푸릇푸릇한 청춘의 시기에, 지적인 갈구에 영혼의 불길이 세차게 작열하고 있었던 그 시기에 내가 『반야심경』을 포(褒)하고, 『금강경』을 폄(貶)한 것은 실로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금강경』과 『반야심경』은 그 성립시기가 약 3세기 정도(정확한 시기를 추정키는 어렵지만)의 세월을 격한다. 비록 『반야심경』은 『금강경』에 비해 분량이 극소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금강경』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개념과 논리적 결구로 이루어져 있다. 『금강경』은 원시불교의 아주 소박한 수뜨라의 형태, 즉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하여 ‘환희봉행(歡喜奉行)’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소박한 붓다설법의 기술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야심경』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반야심경』은 이미 이러..
5. 두 경전과의 최초 만남 나의 생애에서 이 지혜의 서를 처음 접한 것은, 1960년대 내가 당시로서는 폐찰이 되다시피 쇠락하였던 고찰, 천안의 광덕면에 자리잡고 있는 광덕사(廣德寺)에서 승려생활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계통을 밟아 정식 출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 깎고 승복 입고 염불을 외우며 승려와 구분 없이 지냈으니 출가인(出家人)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구멍 숭숭 뚫린 판잣대기로 이어붙인 시원한 똥간에 앉아 있는데, 밑 닦으라고 꾸겨놓은 휴지쪽 한 장에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이 현토를 달아 뜻이 통하도록 해석되어 있는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랫도리에 힘을 주는 일도 잊고 꾸부린 가랭이가 완전히 마비되도록 하염없이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랫도리에 힘을..
4. 소명태자 『금강경』의 경우, 한역본으로 우리는 보통 다음의 6종을 꼽는다. 이를 시대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후진(後秦)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역(譯),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402년 성립. 2. 북위(北魏) 보데류지(菩提流支, Bodhiruci) 역(譯),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509년 성립. 3. 진(陳) 진체(眞諦, Paramārtha) 역(譯),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562년 성립. 4. 수(隋) 급다(笈多, Dharmagupta) 역譯, 『금강능단반야바라밀경(金剛能斷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590년 성립. 5. 당(唐) 현장(玄奘) 역(譯),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
3. 현장의 신역 다음으로 내가 ‘논리적 이유’라 말한 뜻은 무엇인가? 논리적 이유라 함은, 비록 『금강경』의 성립과 선종(禪宗)의 성립 사이에 5ㆍ6세기의 시간이 가로놓여 있지만, 그리고 선종의 불립문자적 정신으로 볼 때, 『금강경』은 부정되어야 할 문자로 이루어진 초기경전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선종이 ‘불립문자(不立文字)ㆍ직지인심(直指人心)ㆍ견성성불(見性成佛)’등의 말을 통하여 표방하고자 하는 모든 논리적 가능성이, 아니, 정확하게는 논리 이전의 가능성이, 이미 『금강경』이라는 대승불교의 초기경전 속에 모두 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금강경』이라는 대승교학의 바이블은 비록 그것이 교학불교의 남상(濫觴)을 이루는 원천적인 권위경전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선(禪)이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