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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국시화(韓國詩話)에 나타난 존당파(尊唐派)ㆍ존송파(尊宋派)의 평론연구(評論硏究)- 李白, 杜甫, 蘇軾, 黃庭堅 評論을 中心으로 - 박 순 철 ―――――――― 「 목차(目次) 」 ――――――――1. 시화라는 명칭의 등장과 흐름 2. 한국시화(韓國詩話)의 당송시(唐宋詩)에 대한 총론(總論)1) 홍경우~홍만종까지의 흐름2) 김창협, 천기와 성정이란 잣대로 시를 비평하다3) 당시를 극찬한 이수광4) 송시를 만당풍보다 높게 친 이의현 3. 존당파(尊唐派) 개별(個別) 시인(詩人)에 대한 평론(評論)1) 이백(李白)보다 두보(杜甫)를 더 우위에 둔 남용익과 김만중의 평론(評論)2) 이백(李白)보다 두보(杜甫)를 더 우위에 둔 이식의 평론(評論)3) 이수광, 두보 시를 낮추어 평가하다4) 이수광, 두보시를 강서시와..
5. 결론 한국시화에 기록된 중국문인과 시에 관련된 내용은 양과 질적인 면에서 대단한 수준이다. 한국시화에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국시와 관련된 총론, 시론, 풍격, 시의, 자구의 오류 등 다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한국시화에는 거의 동시대의 중국의 유명 시화의 내용을 직접 인용하고 혹은 중국문인의 시나 시구를 들어 비평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한국의 문인들이 중국시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시의 주석에 대하여 그 정오(正誤)를 논할 만큼 시 해석에 있어서 대단히 정확하고 치밀하였다. 본 논문은 한국시화의 내용 중에서 당시와 송시에 대한 평론을 중심으로 존당과 존송의 내용과 각각의 시대를 대표하는 이백, 두보와 소식, 황정견에 대한 평..
4. 이의현, 존송파(尊宋派)임에도 두보를 시의 정맥으로 보다 고려 말의 학자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역옹패설(櫟翁稗說)』에서 두보는 시의 표현이 절묘하고【위의 책, 제1권의 「櫟翁稗說」, 144쪽, “杜少陵有‘地偏江動蜀, 天遠樹浮秦’……方知此句少陵爲, 秦ㆍ蜀傳神, 而妙處正在阿堵中也.”】 동파의 시는 호탕하다【위의 책, 제1권의 「櫟翁稗說」, 158쪽 “東坡云: 火色上騰雖有數, 急流勇退豈無人? 又豪宕可人.”】고 하였는데 이는 소식 시에 나타나고 있는 호탕한 풍격을 평한 말이다. 두보를 정점으로 삼은 이의현 한편 이의현(李宜顯)은 『도곡잡저(陶谷雜著)』 4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는 성정을 말하는 것으로 시경삼백 편에 비록 정(正)과 변(變)이 있을지라도 대략 온유돈후라는 네 글자를..
3. 최자, 『보한집』에서 존송(尊宋)의 가치를 드러내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 이외에도 존송파로서 송시의 뛰어남을 평론한 문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후기의 학자 최자(崔滋, 1188~1260)는 존송파로서 『보한집(補閒集)』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소식 시의 “짙푸른 못은 마치 내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 같고, 흰 탑은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네.”라는 시구를 들어 이 시구가 참신한 뜻(新意)이 있다【이는 소동파 시구의 신의(新意)에 대하여 최자가 유숭단의 말을 인용하여 비평한 것이다.】. 予嘗謁文安公, 有一僧持『東坡集』,質疑於公, 讀至“碧潭如見試, 白塔若相招”一聯, 公吟味再三, 曰:“古今詩集中, 罕見有如此新意. 뜻이 가는대로 즉석에서 지은 시로는 이백의 “버들눈은 황금색으로 부드럽고, 이화..
2. 김창협, 존송파(尊宋派)의 기본 위에 성당풍(盛唐風)을 갖추라 말하다 김창협(金昌協)은 『농암잡지(農巖雜誌)』 외편 16에서 황정견과 진사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송(宋)나라 시에서 황정견(黃庭堅)이나 진사도(陳師道)의 시는 한때 최고의 으뜸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황정견(黃庭堅)의 시는 마음대로 비틀어대어 자연스럽지 못하고 진사도의 시는 앙상하며 매우 엄혹하니 이미 온화하고 두터운 뜻을 잃어버렸으며, 또한 초탈하고 구속을 받지 않는 운치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진실로 당나라 시로부터도 멀고 두보로부터도 잘 배우지 못했으니, 색과 향기가 흐리지 않는다고 이몽양이 비판한 것은 참으로 정확한 주장이다. 진여의(陳與義)는 비록 기가 조금 막힌 바가 있지만 두보의 음절을 얻었고, 육유(陸游)는 비록..
4. 존송파(尊宋派)의 개별(個別) 시인(詩人)에 대한 평론(評論) 1. 이인로와 권응인의 존송파(尊宋派)에 대한 평론(評論) 조선 전기의 학자 조신(曹伸, 1450~1521?)이 쓴 『소문쇄록(謏聞瑣錄)』에는 (李定이) “하루는 궁중의 잔치에서 술에 매우 취하여 임금 앞에 나아가 ‘소식과 왕안석 중에 누가 더 낫습니까?’라고 하니, 왕이 대답을 하지 않고 다만 ‘아직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이정이 ‘왕안석이 더 낫습니다.’라고 했다[一日侍內宴, 醉甚, 近就御前平坐, 請曰: ‘蘇與王孰優?’ 上不答, 但曰: ‘未可知.’ 永川曰: ‘荊公優矣.’].”【위의 책, 제1권의 「謏聞瑣錄」, 237쪽】는 기록이 있다. 『소문쇄록(謏聞瑣錄)』은 중종(中宗) 20년 1521년에 만들어진 책으로 조선전기의 대표적 시화..
6. 이수광의 송풍(宋風)의 모방과 산문화를 비판하다 송풍의 모방을 비판하다 이수광은 또한 소식과 황정견의 시에 대해서도 시의 자구선택, 시구의 정확성, 구법과 대구에 관한 문제 등에 대하여 평하고 있다. 우선 소식의 시의 자구 선택문제에 대한 평을 보도록 하자. 당나라 유가(劉駕)의 「조행(早行)」시에 이르기를 “말 위에서 남은 꿈을 계속 꾸다가, 말이 울 때마다 다시 놀란다.”라고 하였다. 소식이 이것을 모방하여 말하기를 “말 위에 서 우뚝 남은 꿈을 꾸다, 아침 해가 올라온 것을 알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 자세히 음미하여 보면 잘됨과 졸렬함이 저절로 드러난다. 그리고 동파의 “올잔몽(兀殘夢)”이라고 한 “올(兀)”자를 후인이 나무라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唐劉駕「早行」詩云: ‘馬上續殘..
5. 이수광, 이백와 황정견의 시를 비교하다 이수광은 이백 시에 대하여서도 많은 평을 하였는데 주로 표현의 자연스러움, 시법, 시구의 원류【위의 책, 2권의 「芝峯類說」, 191쪽, “喬知之詩曰: ‘草綠鴛鴦殿, 花紅翡翠樓.’ 按李白詩‘水綠南薰殿, 花紅北闕樓.’; 又‘玉樓巢翡翠, 金殿鎖鴛鴦.’ 蓋出於喬矣.”】, 시구의 주석, 인품과 시품의 관계, 습작문제, 정확성 문제 등에 대하여 논하였다. 이백의 악부에 말하기를 “홀로 물속의 진흙을 거르려하나 물은 깊은데 달을 볼 수 없네. 보지 않아도 달은 그냥 있겠지만, 물이 깊어서 행인이 빠지겠네.”라고 하였다. 이 사의 구법은 희롱하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는 뜻이 있어서 기뻐할 만하다. 산곡 황정견이 이것을 본받아짓기를 “돌은 내가 너무 좋..
4. 이수광, 두보시를 강서시와 비교하다 강서시보단 두보시 다음은 강서시파의 한 사람인 진여의(陳與義)의 시와 두보 시를 비교하여 그 우열을 논한 부분으로 『지봉유설(芝峯類說)』 「시평(詩評)」에 나온다. 진여의(陳與義)의 시에 “만 리를 와서 노닐면서 도리어 먼 곳을 바라보려고, 삼년 동안 어려움도 많았거니, 다시 위태한 곳에 기대어 섰네.”라고 한 것이 있다. 나는 이 시구를 매우 좋아한다. 두시에 말하기를 “만 리에 가을이 슬프다. 이 몸은 항상 나그네 되어, 백년에 병 많은 몸 홀로 누대에 오른다.”라고 하였다. 이에 진여의의 이 글귀가 오로지 두보 시에서 나온 것을 알겠다. 그러나 두보시가 더 좋다.簡齋詩‘萬里來游還望遠, 三年多難更憑危.’ 余常喜之. 杜詩云: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
3. 이수광, 두보 시를 낮추어 평가하다 이수광(李睟光)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당시(唐詩), 오대시(五代詩), 원시(元詩), 명시(明時) 등 각 조대의 시인의 시에 대하여 비평을 하였다. 그가 평한 당대와 송대의 시인을 총괄적으로 살펴보면, 당(唐) 시인 중에서는 우세남(虞世南)ㆍ왕발(王勃)ㆍ낙빈왕(駱賓王)ㆍ송지문(宋之問)ㆍ이백(李白)ㆍ교지지(喬知之)ㆍ이교(李嶠)ㆍ진자앙(陳子昻)ㆍ맹호연(孟浩然)ㆍ왕유(王維)ㆍ두보(杜甫)ㆍ김운경(金雲卿)ㆍ위응물(韋應物)ㆍ한유(韓愈)ㆍ유가(劉駕)ㆍ원진(元稹)ㆍ이하(李賀)ㆍ왕건(王建)ㆍ두목(杜牧)ㆍ두공(竇鞏)ㆍ이상은(李商隱)ㆍ허혼(許渾)ㆍ육구몽(陸龜蒙)ㆍ두상(杜常) 등을 거론하여 그들의 시와 자구에 대하여 비평하였고, 宋 시인 중에서는 구준(寇準)ㆍ안수(晏殊)ㆍ양휘지(..
2. 이백(李白)보다 두보(杜甫)를 더 우위에 둔 이식의 평론(評論) 왕세정의 견해를 이어받아 두보를 더 높게 평가한 이식 조선 중기의 학자 이식(李植, 1584~1647)은 「학시준적(學詩準的)」에서 이백과 두보의 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이백(李白)의 고시(古詩)는 표일(飄逸)해서 모방하기가 어렵다. 두보 시의 변체는 성정(性情)과 사의(詞意)에 있어 고금을 통틀어 최고이다. 그의 기행이나 「삼리(三離)」, 「삼별(三別)」 등 작품은 아낄만한 점이 분명히 있으니 숙독하고 모방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이를 준칙으로 삼아야 한다. 「팔애(八哀)」와 같은 장편은 학식이 풍부하고 재주가 뛰어나지 않으면 배울 수 없으며 또 시의 정통도 아니니 우선은 그냥 놔두어도 된다.李白古詩飄逸難學. 杜詩變體, ..
3. 존당파(尊唐派) 개별(個別) 시인(詩人)에 대한 평론(評論) 1. 이백(李白)보다 두보(杜甫)를 더 우위에 둔 남용익과 김만중의 평론(評論)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대한 총론에서 각 시를 추존(追尊)하는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나 한정된 몇 사람만이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대하여 총론(總論)을 전개함으로써 각각의 추존(追尊)의 근거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점이 있다. 이에 따라 존당파가 추존했던 당시(唐詩)를 대표하는 이백과 두보, 존송파가 추존했던 송시(宋詩)를 대표하는 소식, 황정견에 대한 양파(兩派)의 평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존당파와 존송파의 이론적 근거를 좀 더 파악하여 각 파의 당ㆍ송시에 대한 평론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尊唐派尊宋派 이백, 두보소식, 황정견 다시 말하면 각..

4. 결론 한국시화에 기록된 중국문인과 시에 관련된 내용은 양과 질적인 면에서 대단한 수준이다. 한국시화에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국시와 관련된 총론, 시론, 풍격, 시의, 자구의 오류 등 다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한국시화에는 거의 동시대의 중국의 유명 시화의 내용을 직접 인용하고 혹은 중국문인의 시나 시구를 들어 비평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한국의 문인들이 중국시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시의 주석에 대하여 그 정오(正誤)를 논할 만큼 시 해석에 있어서 대단히 정확하고 치밀하였다. 본 논문은 한국시화의 내용 중에서 당시와 송시에 대한 평론을 중심으로 존당과 존송의 내용과 각각의 시대를 대표하는 이백, 두보와 소식, 황정견에 대한 평..
2. 존송파(尊宋派)의 이백(李白), 두보(杜甫),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평론(評論) 1. 이인로와 권응인의 존송파(尊宋派)에 대한 평론(評論) 조선 전기의 학자 조신(曹伸, 1450~1521?)이 쓴 『소문쇄록(謏聞瑣錄)』에는 (李定이) “하루는 궁중의 잔치에서 술에 매우 취하여 임금 앞에 나아가 ‘소식과 왕안석 중에 누가 더 낫습니까?’라고 하니, 왕이 대답을 하지 않고 다만 ‘아직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이정이 ‘왕안석이 더 낫습니다.’라고 했다[一日侍內宴, 醉甚, 近就御前平坐, 請曰: ‘蘇與王孰優?’ 上不答, 但曰: ‘未可知.’ 永川曰: ‘荊公優矣.’].”【위의 책, 제1권의 「謏聞瑣錄」, 237쪽】는 기록이 있다. 『소문쇄록(謏聞瑣錄)』은 중종(中宗) 20년 1521년에 만들어진 책..
3. 존당파(尊唐派)와 존송파(尊宋派) 개별(個別) 시인(詩人)에 대한 평론(評論) 1. 존당파(尊唐派)의 이백(李白), 두보(杜甫),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평론(評論) 1. 이백(李白)보다 두보(杜甫)를 더 우위에 둔 남용익과 김만중의 평론(評論)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대한 총론에서 각 시를 추존(追尊)하는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나 한정된 몇 사람만이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대하여 총론(總論)을 전개함으로써 각각의 추존(追尊)의 근거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점이 있다. 이에 따라 존당파가 추존했던 당시(唐詩)를 대표하는 이백과 두보, 존송파가 추존했던 송시(宋詩)를 대표하는 소식, 황정견에 대한 양파(兩派)의 평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존당파와 존송파의 이론적 근거를 좀 더 파악하..
3. 존당파(尊唐派)와 존송파(尊宋派) 개별(個別) 시인(詩人)에 대한 평론(評論) 1. 존당파(尊唐派)의 이백(李白), 두보(杜甫),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평론(評論) 이백(李白)보다 두보(杜甫)를 더 우위에 둔 남용익과 김만중의 평론(評論)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대한 총론에서 각 시를 추존(追尊)하는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나 한정된 몇 사람만이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대하여 총론(總論)을 전개함으로써 각각의 추존(追尊)의 근거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점이 있다. 이에 따라 존당파가 추존했던 당시(唐詩)를 대표하는 이백과 두보, 존송파가 추존했던 송시(宋詩)를 대표하는 소식, 황정견에 대한 양파(兩派)의 평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존당파와 존송파의 이론적 근거를 좀 더 파악하여 ..
한국시화(韓國詩話)에 나타난 존당파(尊唐派)ㆍ존송파(尊宋派)의 평론연구(評論硏究)- 이백(李白), 두보(杜甫),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평론(評論)을 중심(中心)으로 - 박 순 철 1. 시화라는 명칭의 등장과 흐름 한ㆍ중 양국은 동양 한자문화권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교류를 진행하였다. 문학 방면에서도 많은 교류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분야 중의 하나는 시 분야이다. 시는 한ㆍ중 양국에서 모두 극성하였고 이로 인하여 시에 대한 창작과 감상, 비평에 대한 책들이 저술되어 시화(詩話)라는 이름으로 명명되기에 이르렀다. 최초 시화(詩話)라는 명칭의 등장과 성격 시화(詩話)라는 명칭은 송대(宋代)의 구양수(歐陽脩)가 자신이 쓴 시화를 『육일시화(..
35. 五言排律 始見於初唐 而杜子美爲一百韻 至高麗李相國奎報爲三百韻 七言排律 始見於盛唐 而皇明張天使寧爲六十韻 至近世車五山天輅爲一百韻 可謂尤多矣 然中多累句 不足稱也
34. 凡爲詩者貴乎自得 而格有高下 才有分限 不可强力至也 唐以上人意趣自高 欲卑不得 宋以下人氣格自卑 欲高不得 是知天稟自然不能易也 尹海平, 柳西坰甞言於詩全不曉格律 余謂詩舍格律 何以哉 於二公之言 竊有疑焉
33. 凡詩賦冒頭云者 先於起句 遠引他事 而累句以後 方入題語 謂之冒頭 今人以起句雙脚語爲冒頭則失矣
32. 古人爲詩 首句或押旁韻 而篇中則絶無散押者 我東詞人 雖絶句多用旁韻 余甚病之 王世貞以勿押旁韻爲戒 學者不可不察
31. 集句詩者 摘古人詩句而湊成者也 自王荊公始倡之 有曰相看不忍發 慘惔暮潮平 欲別更携手 月明洲渚生 甚可喜 黃山谷謂之百家衣體 其法貴拙速而不貴巧遲 文天祥及前朝林惟正多効此體 然不足法也
30. 王世貞曰 子瞻多用事 從老杜五言古詩排律中來 魯直用拗句法 從老杜歌行中來 信斯言也 宋以後詩 槪以老杜爲祖耳
29. 詩用體字 古人不以爲嫌 最忌意疊 如蘇子瞻律絶中疊使數字者多矣 至於杜韓兩詩疊押韻字 此則不爲病 唯觀作句工拙如何 然語其精則恐亦不免小疵耳
28. 白樂天詩云百歲無多時壯健 一春能幾日晴明 杜樊川詩云一千年際會 三萬里農桑 又四百年炎漢 三十代宗周 二三里遺堵 八九所高丘 又永安宮受詔 籌筆驛沈思 亦變體之變者 中唐以上人所不道也
27. 陶淵明詩多用酒字 自家天詩二千八百首 其使酒字者九百首 亦見其爲人樂易也
26. 詩人例有喜用文字 昔鄭谷好用僧字 許運好用水字 魏野好用鶴字 今車五山天輅好用劍字 十居八九 且如李白喜作游俠詩 王建喜作樂府 溫庭筠喜作艷體 亦其所尚然也
25. 韓昌黎詩 多押險韻 殆不遺一字 所以示奇也 嗟元和聖德詩 雜用語御麌遇哿箇馬禡有宥韻 此日足可惜詩 散押東冬江陽庚靑韻 亦猶兵家用奇 奇正雜出 乃所以奇也
24. 七言詩 以上四下三成句 而韓昌黎詩曰雖欲悔舌不可捫 又曰落以斧引以纏徽 嗟我道不能自肥 乃變體之變者 恐不足學也
22. 杜詩桃花細逐楊花落 黃鳥時兼白鳥飛 楊愼以爲此句法不雅 而後人多效之 按梅聖兪詩 南隴鳥過北隴叫 高田水入低田流 蓋出於杜 而似村童俗語 恐不必效也
21. 羅大經曰 杜陵有全篇用俗語者 不害爲超妙 如一夜水高三尺强 數日不可更禁當 南市津頭有船賣 無錢卽買繫籬傍 江上被花惱不徹 無處告訴欲顚狂 白頭老罷舞復歌 杖藜不寐誰能那是也 楊誠齋多效此體 痛快可喜云 余謂以此格爲超妙痛快則不可知也
20. 羅大經曰 詩用助語 如老杜云古人稱逝矣 吾道卜終焉 山谷云且然聊爾耳 得也自知之 韓子蒼云曲檻以南靑嶂合 高堂其上白雲深 皆渾然妥帖云云 余謂如此句法 後生效之 恐有刻鵠之譏 夫已多乎道
19. 古詩有七平七仄 梨花梅花參差開 七平也 有客有客字子美 七仄也 韓詩中亦有此體 蓋詩之變也 又有五平五仄 如李白處世若大夢 胡爲勞其生是也 詩家多有此體
18. 王世貞言摩詰七言律一二首外 多用仄法 不足學也 此言似然矣
17. 王摩詰律詩 酌酒與君君自寬 人情飜覆似波瀾 白首相知猶按劍 朱門先達笑彈冠云云 岑嘉州詩 嬌歌急管雜靑絲 銀燭金尊映翠眉 使君地主能相送 河尹天明坐奠辭云云 王世貞以爲皆拗體 以此言之 今人知用字平仄之爲拗體 而不知用律平仄爲拗體也
16. 唐汝詢曰 唐人詩中有絶類楚詞者 如李白鳴皐摩詰山中人之屬語旣參錯 調亦不倫 又退之琴操 有通篇四言者 高氏幷目爲七言古詩朱制殊甚 此言是
15. 嚴滄浪曰 五言絶句 眾唐人是一樣 少陵是一樣 韓退之是一樣 余謂非特五言絶句 至於七言絶句律詩古詩 大抵然矣
12. 王世貞曰 七言排律 創自老杜 然亦不得佳 蓋七字爲句 束以聲偶 氣力已盡矣 又衍之使長 調高則難續而傷篇 調卑則易冗而傷句 信哉斯言也
10. 詩有假借格 如孟浩然詩庖人具鷄黍 稚子摘楊梅 以鷄對楊 杜子美詩枸杞因吾有 鷄栖奈爾何 以枸對鷄 張子容詩樽開栢葉酒 燈落九枝花 以栢對九佳矣 然庾肩吾詩聊開栢葉酒 試奠五辛盤 蓋襲用此耳
9. 詩家所謂正格 乃第二字側入 如天上秋期近之類是也 所謂偏格 如四更山吐月之類是也 唐人多用正格 杜詩用偏格 亦十無二三 然古人於詩 蓋出於自然 非有心於偏正也
8. 溫公詩話曰 唐人賡和 有次韻用韻依韻 次韻是交其次第韻 用韻用彼之韻 不必次之 依渭在一韻中爾 按次韻之作 始於元白而盛於趙宋 我國則尤以華國爲重 故爭尚此法 如擧子習科業者之爲 豈曰詩哉
7. 扇對格者 以第三句對第一句 以第四句對第二句也 如杜詩得罪台州去 時危棄碩儒 移官蓬閣後 穀貴歿潛夫 李詩吾憐宛溪好 百尺照心明 可謝新安水 千尋見底淸 唐詩中此類甚多
6. 晉傅咸作集經詩略曰 聿修厥德 令終有俶 勉爾遁思 我言斯服 此蓋後世集句之始
5. 七哀詩起於曹子建 王仲宣 如言王噫四愁之類也 老杜八哀 則所哀者八人 王思禮, 李光弼, 蘇源明, 李邕, 汝陽王璡, 鄭虔 張九齡, 嚴武 蓋歎舊懷賢而作也
4. 絶句者一句一絶 如陶淵明春水滿四澤 杜子美兩個黃鸝鳴翠柳二詩是也 南史劉昶爲斷句詩 蓋卽絶句 以是爲題目耳 按古詩類苑 春水滿四澤 非淵明詩 乃顧愷之之作云
3. 古之詞人以筆爲戲 用金石絲竹匏土革木成八韻者 謂之八音詩 用建除滿平等十二字者 謂之建除體 用鳥獸草木者 謂之演雅體 廻復押韻者 謂之廻文詩 又有朴名藥名數名州名六甲離合等詩 六朝以前 此體最多 然類俳不足效也
2. 詩家有往體有近體 往體卽古詩 近體卽律詩 又二韻近體今絶句 四韻近體今律詩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