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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박순철, 한국시화에 나타난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 2. 한국시화의 당송시에 대한 총론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박순철, 한국시화에 나타난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 2. 한국시화의 당송시에 대한 총론

건방진방랑자 2022. 10. 23.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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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국시화(韓國詩話)의 당송시(唐宋詩)에 대한 총론(總論)

 

 

1. 홍경우~홍만종까지 시화집의 흐름

 

 

 

홍경우~홍만종까지 시화집의 흐름

 

한국 역대(歷代) 시화(詩話) 중의 존당(尊唐)ㆍ존송(尊宋)의 논쟁은 고려후기로부터 시작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고려후기(高麗後期) 이래 조선전기(朝鮮前期)까지는 대개 송시(宋詩)가 우세를 보인 반면, 중기(中期)에는 당시풍(唐詩風)이 우세를 보이고 후기(後期)에는 당시(唐詩)와 송시(宋詩)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향을 보인다안대회, 조선후기시화사, 소명출판사, 43고 하였다. 이를 토대로 연구의 편의를 위하여 한국에서는 존당파(尊唐派)ㆍ존송파(尊宋派)이 양파(兩派) 사이에 당송겸존파(唐宋兼尊派)도 있었는데 대표적 인물은 홍만종(洪萬宗), 김창협(金昌協) 등을 들 수 있음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 중 존송파(尊唐派)의 대표적 인물로는 양경우(梁慶遇), 허균(許筠), 이수광(李睟光), 홍만종(洪萬宗), 남용익(南龍翼), 김만중(金萬重), 윤춘년(尹春年), 임방(任埅), 차천로(車天輅), 이안눌(李安訥), 권필(權韠), 정두경(鄭斗卿) 등을 들 수 있고, 존송파(尊宋派)의 대표적 인물로는 이인로(李仁老), 이제현(李齊賢), 권응인(權應仁), 최자(崔慈), 남효온(南孝溫), 이의현(李宜顯),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조희룡(趙熙龍) 등을 들 수 있다. 아래에 이들 중에서 대표적인 당ㆍ송시에 대한 평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비평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尊唐派 梁慶遇, 許筠, 李睟光, 洪萬宗, 南龍翼, 金萬重, 尹春年, 任埅, 車天輅, 李安訥, 權韠, 鄭斗卿
唐宋兼尊派 洪萬宗, 金昌協
尊宋派 李仁老, 李齊賢, 權應仁, 崔慈, 南孝溫, 李宜顯, 申緯, 金正喜, 趙熙龍

 

 

홍경우: 같이 전고(典故)를 쓰지만, 당시(唐詩)가 격률음향(格律音響)에선 좋다

 

조선 중기의 학자였던 양경우(梁慶遇, 1568-?)제호시화(霽湖詩話)1에서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의 차이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세상에서 시를 논하는 자들은 당체다 송체다 말한다. 만당의 시를 배운 자들은 용사를 가리켜 당의 시법이 아니다고 하지만 성당의 시에도 용사한 곳이 또한 많고 때때로 송시와 비슷한 것도 있다. 그러나 당시와 송시는 구를 만드는 법은 서로 다른데 세상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 당시와 송시의 변별성은 격률과 음향 사이에 있을 뿐이니 오직 아는 자만이 그것을 알 것이다.

世之論詩者曰唐體, 曰宋體. …… 學晩唐者指用事曰: ‘非唐也’, 盛唐用事處亦多, 時時有類宋詩, 然句法自別, 世人鮮能知之. …… 唐宋之辨, 在於格律音響間, 惟知者知之.

 

 

위의 인용문에서 양경우는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의 같은 점은 전고(典故) 사용이 많은 점이라 하고 다른 점은 격률(格律)과 음향(音響)임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서 격률은 글자 수, 시구의 수, 대구, 평측, 압운 등 면에서의 격식과 규칙을 말하고, 음향(音響)은 시의 성운(聲韻, 韻律)의 효과를 말한다. 따라서 시의 형식이나 구법, 운율 면에서는 당시가 송시보다 뛰어나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홍만종: 각 시를 배척하지 말고 장점을 배우라

 

조선후기의 학자인 홍만종(洪萬宗, 1634~1725)시평보유(詩評補遺)에서 당시와 송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문장이 비록 작은 기예이지만 학업 중에서 가장 정밀함을 요하는 것이다. 거친 마음으로 대담하게 덤비는 사람이 쉽게 말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당시(唐詩)를 주장하는 사람은 송시(宋詩)를 배척하여 비루(鄙陋)하여 배울 것이 못된다고 말한다. 송시(宋詩)를 배우는 사람은 당시(唐詩)를 배척하여 위약(萎弱)하여 배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모두 편벽된 의론에서 나온 것이다.

文章雖曰小技, 業之精者也. 蓋非麤心大膽之所可易言. 而世之言唐者, 斥宋曰鄙陋不足學也. 學宋者, 斥唐曰萎弱不 必學也. 玆皆偏僻之論也. -洪萬宗,詩評補遺下卷 百二十九則.시화총림부록 證正9(477-478)

 

 

이를 통하여 우선 당시(唐詩)는 나약하고 송시(宋詩)는 비루하다는 인식은 홍만종이 살았던 17~18세기 사람들의 관점으로 그 당시에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루와 나약은 모두 시의 풍격을 말하는데 송시가 비루(鄙陋)하다는 것은 신변의 잡기까지 모두 시로 쓴 송시(宋詩)의 소재(素材) 확대에 따른 시적 운치의 반감을 지적한 것으로 여겨지고, 당시(唐詩)가 위약(萎弱)하다는 것은 당시(唐詩)가 정()을 위주로 하여 시를 읊음으로써 정()에 매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한 의지의 허약함을 비평한 말로 여겨진다. 홍만종은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편벽된 태도이므로 서로 지양하고 각 시의 장점을 취하여 배워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는 홍만종(洪萬宗)이 당시(唐詩)와 송시(宋詩)를 모두 존중하는 당송겸존(唐宋兼尊)의 태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김창협, 천기와 성정이란 잣대로 시를 비평하다

 

 

농암, 천기란 잣대로 모방에 분주한 당풍과 의론만 일삼는 송풍을 비판하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김창협(金昌協, 1651~1708)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시의 본질에 대해 새로이 접근하고 방향을 제시한 문인안대회, 조선후기 시화사, 소명출판사, 2000, 126.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당시와 송시에 대하여 비교적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 농암잡지(農巖雜誌)외편 13에서 당시(唐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라는 것은 성과 정이 발동하는 것이고 천기(天機)가 움직이는 것이다. 당나라 사람들의 시에는 이러한 것이 있었으니, 초당ㆍ성당ㆍ중당ㆍ만당을 막론하고 대체로 모두 자연스러움에 가까웠다.

詩者, 性情之發而天機之動也. 唐人詩有得於此, 故無論初盛中晩, 大抵皆近自然.

 

 

인용문에서 농암은 먼저 시에 대하여 성정(性情)이 발동하고 천기(天機)가 움직여서 나오는 것이라고 정의한 다음, 이런 시라야 진정한 시이며 또 이런 시라야 자연에 가까운 시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성정이란 진실한 감정을 말하고 천기란 천부적인 영감을 말한다. 당시는 바로 이러한 진실한 감정을 가지고 천부적인 영감을 발휘하여 써냈기 때문에 자연(自然)스럽다고 하였다. 이 자연(自然)은 시 작품 속에 작자의 감정과 사물의 본래 모습이 그대로 소박하게 표현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창작의 대상에 대하여 진실되고 자연스럽게 표현해야지 두서없는 나열, 생경한 언어의 조탁(雕琢), 화려한 표현의 추구, 지나친 용사(用事) 등은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야말로 시로서의 훌륭한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나는 일찍이 당나라 시의 어려움을 말하면서 기이하고 뛰어나며 시원하고 활달한 것[奇俊爽朗]은 어렵지 않지만 조용하고 자연스러우며 한갓지고 고아한 것[從容閒雅]은 어렵다고 하였고, 아주 화려하고 멋지게 아름다운 것[高華秀麗]은 어렵지 않지만 온화하고 두터우며 깊고 담박한 것[溫厚淵澹]은 어렵다고 하였고, 쟁쟁거리면서 음이 맑게 울리는 것[鏗鏘響亮]은 어렵지 않지만 잘 어울려 아득히 멀리 퍼지는 것[和平悠遠]은 어렵다고 하였다.

余嘗謂唐詩之難, 不難於奇俊爽朗, 而難於閒雅; 不難於高華秀麗, 而難於溫厚淵澹; 不難於鏗鏘響亮, 而難於和平悠遠.

 

 

인용문에서는 여섯 가지 시 풍격을 이야기한 다음, 이 중에서 종용한아(從容閒雅)’, ‘온후연담(溫厚淵澹)’, ‘화평유원(和平悠遠)’한 풍격(風格)은 이루기가 어려운 것인데 당시(唐詩)는 이러한 풍격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훌륭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아울러 이는 당시(唐詩)의 풍격특징(風格特徵)에 대한 개괄이라고 볼 수 있다.

 

 

시는 진실로 마땅히 당나라 시를 배워야 하지만 반드시 당나라 시와 비슷할 필요는 없다. 당나라 사람의 시는 성정과 흥기를 주로 하였고 옛 사실(故實)이나 의론을 일삼지 않았다. 이것은 본받을 만한 것이다.

詩固當學唐, 亦不必似唐. 唐人之詩主於性情興寄, 而不事. 故實議論. 此其可法也.

 

 

농암잡지(農巖雜誌)외편 15에서 당시(唐詩)의 훌륭한 점을 누누이 설명하면서도 당시를 배울 때는 무턱대고 모두 배울 것이 아니라 성정(性情)과 흥기(興寄)를 주로 한 것과 옛 사실이나 의론을 일삼지 않은 부분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엄우(嚴羽)창랑시화(滄浪詩話)』 「시변(詩辨)에서 시는 성정을 읊는 것이다[詩者, 吟詠情性也.]곽소우 지음, 김해명ㆍ이정우 옮김, 창랑시화, 소명출판, 2001, 59..”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정성(情性)과 성정(性情)은 같은 말로 진실한 감정을 읊는다는 것이다. 농암은 당시(唐詩)가 바로 이러한 성정을 읊은 특성이 있다고 하였다. 흥기(興寄)는 흥을 사물에 기탁한다는 뜻으로 말은 쉽게 했으나 뜻이 심오하여 여운이 끝없는, 곧 시가에서 특별히 지닌 미학속성과 예술 정취를 가리킨다陳伯海 지음, 李鍾振 옮김, 당시학의 이해, 사람과 책, 2001. 55.. 옛 사실(故實)은 전고(典故)와 같은 말이고 의론(議論)은 시속에서 전개된 사변(思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농암의 전고를 많이 쓰고 의론으로 시를 짓는 송시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의론에 빠지되 천기가 드러난 송시를 높게 평가하다

 

엄우는 일찍이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근래 여러 시인들은 기이하고 독특한 이해를 가져 마침내는 산문으로 시를 짓고, 재능과 학식으로 시를 짓고 의론으로 시를 짓곤 한다[近代諸公乃作奇特解會, 遂以文字爲詩, 以才學爲詩, 以議論爲詩]곽소우 지음, 김해명ㆍ이정우 옮김, 창랑시화, 소명출판, 2001, 60, “.라고 하였는데 농암의 견해는 엄우의 이 견해와 비슷하여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 그의 송시에 대한 평을 농암잡지(農巖雜誌)외편 14에서 보도록 하자.

 

 

송나라 사람들의 시는 옛날의 사실이나 의론을 위주로 하였으니, 이것이 시인들의 큰 병폐였다. …… 송나라 사람들은 비록 옛날의 사실이나 의론을 위주로 하였지만, 축적된 학문과 가슴에 맺힌 의지가 감격하고 촉발하여 뿜어져 나온 것이 그대로 쓰여 격조에 구속되지 않았으며 관습에 매몰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기상이 호방하고 시원시원했으며 때로는 천기(天機)가 드러나는 것에 가깝기도 했으며,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 마치 참된 성정을 보는 것 같다.

宋人之詩, 以故實議論爲主, 此詩家大病也;……宋人雖主故實議論, 然其問學之所蓄積, 志意之所蘊結, 感激觸發, 噴薄輸寫, 不爲格調所拘, 不爲塗轍所窘, 故其氣象豪蕩淋漓, 時有近於天機之發, 而讀之猶可見其性情之眞也.

 

 

송시(宋詩)가 비록 고실(故實)과 의론(議論)을 위주로 쓴 것은 단점이지만, 송시(宋詩)가 나름대로 가치를 갖는 것은 때때로 천기의 발동과 가까운 것이 있어서 성정의 참[]이 드러나 있고 호방한 기상이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농암의 시란 성정과 천기가 발동하여 지은 것이다.”라는 시론과도 부합한다. 이를 근거로 보면 농암은 자신의 시론에 입각하여 당시(唐詩)를 송시(宋詩)보다는 좋게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기 두 인용문을 토대로 농암의 시평 기준을 종합해 보면, ‘성정천기라는 두 개의 큰 기준을 가지고 당ㆍ송시를 평가하여 당시(唐詩)를 기준으로 송시(宋詩)의 산문화와 의론화, 즉 산문으로 시를 쓴다는 송시의 병폐를 비판하고 송시 중에서 당시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시는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당시를 극찬한 이수광

 

 

당과 송의 극단적 비교

 

한국시화에서 중국시에 대하여 많은 평론을 전개한 한 사람은 조선중기의 학자인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을 들 수 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峯類說)』 「시평(詩評)에서 전문적인 시론서의 체계를 갖추어 시법(詩法), 시평(詩評), 각종(各種) 시체(詩體), () 시대(時代) ()의 특징(特徵)에 대하여 평론을 전개하였다. 우선 그의 당ㆍ송시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자.

 

 

시경 삼백 편은 옛글이다. 한나라와 위나라의 시는 옛글에 가까워서 질박하다. 이진(二晉) 때의 시는 질박한 것이 변하여 아름답다. 양나라와 진나라 때의 시는 아름다운 것이 변하여 수식에 치우친다. 당나라에 이르러서는 빈빈(彬彬)하다. 송나라에서는 또 변하여 쇠하였다.

詩三百篇古矣. 漢魏近古而質矣. 二晉質變而文矣. 梁陳文變而靡矣. 至于唐則彬彬矣. 宋則又變而衰矣.

 

 

인용문에서 이수광은 역대의 시를 논하면서 당시와 송시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당시는 빈빈(彬彬)하다고 하였는데 빈빈(彬彬)’은 수식과 내용이 알맞게 갖추어진 훌륭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송시는 쇠하였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그가 당시를 더 수준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를 극찬하다

 

그는 또 구체적 시구를 들어 당ㆍ송시를 비교 평가하였다.

 

 

당나라 유가(劉駕)의 시에 말하기를 취해 향기로운 풀 속에 누웠더니, 해가 저문 뒤에야 술이 깨었네. 술병과 잔이 반은 기울어지고 엎어지고 하였으니, 손님이 간지도 아마 이미 오랜가보다. 꽃 꺾은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데, 어째서 꽃이 손에 있을 수 있을까.”라고 하였다.

구양수의 시에 때로는 취해서 냇가의 돌 위에 누우면, 푸른 산과 흰 구름은 베개가 되고 병풍이 되네. 꽃 사이에 새가 있어서 부르건만 깨이지 않더니, 해 저문 뒤 산바람이 부니 저절로 깨었다네.”라 하였다.

구양수의 시가 진실로 아름다우나 유가의 시에 비하면 떨어지는 것 같다. 가히 당나라 시와 송나라 시의 차이를 알 수 있다.

唐劉駕詩云: ‘醉臥芳草間, 酒醒日落後. 壺觴半傾覆, 客去應已久. 不記折花時, 何得花在手.’

歐陽文忠詩云: ‘有時醉倒臥溪石, 靑山白雲爲枕屛. 花間有鳥喚不覺, 日落山風吹自醒.’

歐詩固好, 而視劉作似劣, 可知唐宋之辨矣.

 

송나라 사람의 시에 두곡(杜曲)에는 꽃이 아름다워 술처럼 무르익었고, 패릉의 봄빛은 사람보다 더 늙었네.’라고 한 것이 있다. 당시 사람들이 뛰어난 좋은 시구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나라 경위(耿湋)의 시에 온화한 바람 취한 속에는 은혜를 받든 분들 있고, 꽃다운 풀 돌아가는 길엔 실의한 사람들일세.’라고 한 것에 비교하면 크게 차이가 있다.

宋人詩曰: ‘杜曲花芳濃似酒, 霸陵春色老於人.’ 時以爲警句.

然較諸唐耿湋詩 和風醉裏承恩客, 芳草歸時失意人’, 大有逕庭.

 

 

지봉유설(芝峯類說)』 「당시(唐詩)지봉유설(芝峯類說)』 「시평(詩評)의 두 인용문에서 이수광은 시구만 나열하고 당시가 송시보다 낫다고 하면서 그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 설명을 가하지 않고 있지만, 시작법(詩作法) 중에서 대구(對句)와 운치(韻致)를 중심으로 비교하여 당시(唐詩)의 우위(優位)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운치(韻致)는 운외지치(韻外之致)라고도 하는데 언어와 문자로 표현된 것의 밖에서 시의 아름다움과 여운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시가작품에 묘사된 인생사와 자연경물에 대하여 뜻을 형상 가운데 전부 드러내지 않으면서 구체적인 형상을 추월한 미적 체험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수광은 구양수 시는 유가의 시보다 못하고, 송나라 사람의 시는 당나라 경위(耿湋)의 시보다 못하다고 평한 것이다.

 

 

 

4. 송시를 만당풍보다 높게 친 이의현

 

 

이의현: 만당을 극복하고 당시 못지않아진 송시

 

조선후기의 학자인 이의현(李宜顯, 1669-1745)도곡잡저(陶谷雜著)에서 당시와 송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은 사채(辭采)를 숭상하였으나 끝내 화평(和平)하여서 절대로 부만(浮慢)한 태도가 없었다. 그러므로 고시(古詩)와 가장 가까웠다. 말류에 이르러서 수준이 조금 떨어지니 송대(宋代)소식(蘇軾)과 진사도(陳師道) 등 여러 공이 기격(氣格)으로 바로잡았다. 그러나 후에 또한 조로(粗鹵)한 병폐를 면하지 못하였다.

余曰:……唐以辭采爲尙, 而終和且平, 絶無浮慢之態, 所以去古最近. 末流稍趨於下, 則宋蘇陳諸公矯以 氣格, 後又不免粗鹵之病.

 

 

사채(辭采)는 시문의 수식으로 언어의 표현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을 가리키고, 화평(和平)은 시의 풍격으로 농암잡지에 나오는 화평유원(和平悠遠)의 줄임말로 여겨지는데 잘 어울려 아득히 퍼진다는 뜻이다. 기격(氣格)에서 기()는 시인의 정신 기질이 작품에 관통되어 형성된 함축, 생기, 기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시의 구체적인 내용과는 다르다. ()은 품격으로 지의(旨義)와 취상(趣尙, 興趣)인데 시의 내용에 속하는 것이다. 이의현은 존송파로서 송시가 기격(氣格)으로 만당의 폐단을 극복하여 송시의 특징을 갖춤으로써 당시 못지않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의현(李宜顯)의 관점(觀點)은 시()에 있어서 고시(古詩)가 제일이고 다음으로 당시(唐詩)이며 송시(宋詩)만당(晩唐)의 시()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의현(李宜顯)의 입장(立場)은 고시(古詩)와 당시(唐詩)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송시(宋詩)의 훌륭함을 말한 것으로 그는 일찍이 당시(唐詩)()’이고 송시(宋詩)()’이라는 말위의 책, 195, “譬之則三百篇楚辭漢魏, 以至盛唐李杜諸公, 其才雖有等差, 而皆是玉也. 玉亦有品之高下故也. 宋則珉也.”을 하였는데 이 말을 통하여서도 그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존당파ㆍ존송파의 흐름

 

이상에서 양경우, 홍만종, 김창협, 이수광, 이의현의 당시와 송시에 대한 총론적 성격의 비평을 살펴보았는데 양경우, 이수광은 존당파의 입장에서 당시와 송시에 대한 총론을 전개하였고, 홍만종, 김창협은 당송겸존의 입장, 그리고 이의현은 존송의 입장에서 총론을 전개하였다. 이들의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대한 평론(評論)은 본질론, 작시론, 시평으로 정리할 수도 있고 내용, 형식, 표현, 풍격 네 방면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논의의 수월성을 위하여 후자를 따라 분류하면이러한 분류 중 평론 자체가 복합적이어서 내용적인 측면과 형식적 측면을 동시에 포함하는 용어가 있다. 예를 들면 격률(格律)은 시의 본질론에 속하여 내용과 형식을 동시에 포괄하는 개념으로 의격(意格)과 율조(律調)를 합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본 논문에서는 율조(律調)의 측면을 중시하여 시의 형식 부분에 넣었다., 먼저 시의 내용에 대한 평론은 참된 성정(性情)의 표현(表現), 흥기(興寄), 기격(氣格) 등을 지적하였고, 형식은 구법(句法), 격률(格律), 음향(音響), 대구(對句), 등을 거론하였다. 표현은 자연(自然), 다용(多用) 전고(典故, 故實), 의론(議論), 운치(韻致), 사채(辭采) 등이 거론되었고, 풍격(風格)은 나약(懦弱), 비루(鄙陋), 종용한아(從容閒雅), 온후연담(溫厚淵澹), 화평유원(和平悠遠), 화평(和平), 호방(豪放) 등이 거론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정리하면, 존당파는 당시(唐詩)의 내용적 측면은 참된 성정(性情)의 표현(表現), 흥기(興寄), 형식적 측면은 구법(句法), 격률(格律), 음향(音響), 대구(對句), 표현적 측면은 자연(自然), 사채(辭采), 풍격적 측면은 화평(和平) 등이 당시(唐詩)의 특징이라고 하고 송시의 특징은 표현적 측면의 의론(議論), 다용전고(多用典故, 故實) 등이라고 하였다. 존송파의 송시에 대한 관점은 존당파의 송시의 특징을 말한 것과 대동소이하다. 최종적으로 총론에서 당시와 송시의 우열문제 있어서는 당시가 송시보다는 뛰어나다고 보았다.

 

  尊唐派 唐宋兼尊 尊宋派
대표자 양경우, 이수광 홍만종, 김창협 이의현
내용적 측면 참된 性情表現, 興寄    
형식적 측면 句法, 格律, 音響, 對句    
표현적 측면 自然, 辭采,   議論, 多用典故(故實)
풍격적 측면 和平    

 

 

 

 

인용

목차 / 지도

1. 시화라는 명칭의 등장과 흐름

2. 한국시화(韓國詩話)의 당송시(唐宋詩)에 대한 총론(總論)

3. 존당파(尊唐派)ㆍ존송파(尊宋派)의 개별(個別) 시인(詩人)에 대한 평론(評論)

1) 존당파의 이백, 두보, 소식, 황정견 평론(評論)

2) 존송파의 이백, 두보, 소식, 황정견 평론(評論)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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