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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철, 한국시화에 나타난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 1. 시화라는 명칭의 등장과 흐름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박순철, 한국시화에 나타난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 1. 시화라는 명칭의 등장과 흐름

건방진방랑자 2022. 10. 23.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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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화(韓國詩話)에 나타난 존당파(尊唐派)ㆍ존송파(尊宋派)의 평론연구(評論硏究)

- 이백(李白), 두보(杜甫),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평론(評論)을 중심(中心)으로 -

 

박 순 철

 

 

 

1. 시화라는 명칭의 등장과 흐름

 

 

한ㆍ중 양국은 동양 한자문화권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교류를 진행하였다. 문학 방면에서도 많은 교류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분야 중의 하나는 시 분야이다. 시는 한ㆍ중 양국에서 모두 극성하였고 이로 인하여 시에 대한 창작과 감상, 비평에 대한 책들이 저술되어 시화(詩話)라는 이름으로 명명되기에 이르렀다.

 

 

최초 시화(詩話)라는 명칭의 등장과 성격

 

시화(詩話)라는 명칭은 송대(宋代)구양수(歐陽脩)가 자신이 쓴 시화를 육일시화(六一詩話)라고 이름 지음으로써 처음으로 생겨났다. 구양수가 육일시화(六一詩話)의 서두에 내가 여음 땅으로 물러나 한거할 때, 한담(閑談)의 자료로 모아 놓았다[居士退居汝陰, 而集以資閑談也].”라고 하였듯이 초기의 시화는 자유로운 수필체의 형식으로 시인과 창작에 관련된 자잘하고 숨겨진 이야기들을 소재로 썼다. 그 뒤로 시화라고 명명한 작품들이 명ㆍ청대로 내려오면서 대량으로 창작되어 약 1390여 편蔡鎭楚,中國詩話史, 湖南文藝出版社, 2001. 33, 中國人文科學 第52에 달하였고 그 내용도 점차 다양해졌다.

 

중국의 채진초(蔡鎭楚)는 중국시화사(中國詩話史)에서 시화의 정의를 협의와 광의로 나누고 협의의 시화는 내용적으로 말하면 시가에 관한 고사를 얘기한 것이고 문체로 말하면 시가에 관한 수필체이다.”라고 하였고, “광의의 시화는 일종의 시가평론형식으로 시인, 시가, 시파, 시인의 이론과 행사를 기록한 저작 등을 모두 포함한다위의 책, 5, “狹義的詩話, 按其內容來說, 是詩歌之話, 就是關于詩歌的故事: 按其體裁而言, 就是 關于詩歌的水筆體.……廣義的詩話, 乃是一種詩歌評論樣式, 凡屬評論詩人, 詩歌, 詩派以及記述詩 人議論行事的著作, 皆可名之曰詩話.”라고 하였다. 이 외에도 한국의 조종업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 이 시화의 정의에 대하여 언급하였지만 각각 조금씩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시화에 대하여 어떠한 정의를 내리든 간에 그 내용적으로 볼 때 대체적으로 세 부류, 시론을 전개한 시화, 시론을 바탕으로 하여 시평을 전개한 시화, 작품이나 작자에 관계된 주변의 이야기를 담은 단순한 시일화(詩逸話)로서의 시화이 세 가지 분류는 한국고전시학사의 분류를 따른 것이다. 전형대 외 3, 한국고전시학사, 기린원, 1988, 24. 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시화의 등장

 

한국은 예로부터 중국의 문자인 한자로 문학창작을 하였으므로 중국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에서 시화가 처음으로 저술된 것은 고려중기의 이인로에 의해서이다. 그는 시화의 제목을 파한집(破閑集)이라 붙였는데 파한(破閑)’한가함을 깨뜨린다.’는 뜻으로 육일시화(六一詩話)의 창작동기와 상통하는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화라는 명칭을 붙여 지은 최초의 시화는 조선전기의 학자인 서거정이 지은 동인시화이다. 동인시화의 탄생은 한국에서 본격적인 시화 창작의 시대가 열렸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시화 창작이 활발해져 조선조 말기까지 내려오면서 약 129이 통계는 趙鍾業韓國詩話叢編에 따른 것임의 시화가 창작되었다.

 

한국의 시화는 편수가 비록 중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훌륭한 시 창작을 위한 다양한 시론,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역대 작가들에 대한 평과 그들의 시에 대한 평, 시일화(詩逸話) 등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시화의 주요논쟁: 존당파(尊唐派)와 존송파(尊宋派)

 

특히 시화 창작자마다 자신의 시론을 내세움에 있어서 항상 시는 어느 시대의 시가 가장 좋고 어느 시인의 시가 가장 우수하다는 등의 전범을 들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두보이백을 중심으로 시문학의 꽃을 피웠던 당대(唐代)의 시()를 전범(典範)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소식과 황정견을 중심으로 또 한 번 꽃을 피웠던 송대(宋代)의 시()를 전범(典範)으로 할 것인가의 논쟁은 그 논쟁의 중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의 당시ㆍ송시 논쟁은 송시가 면모를 갖춘 후에 이루어졌는데 명대(明代)의고주의(擬古主義)를 주장한 전후칠자(前後七子)와 반의고주의자(反擬古主義者)에 의해서 드러나기 시작하여 청초에 이르러 오위업을 시작으로 형성되었던 종당파와 전겸익을 시작으로 형성되었던 종송파 간의 본격적인 논쟁이 일어났다. 한국의 경우는 비록 중국처럼 유파를 형성하지는 않았지만 중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당ㆍ송시 논쟁에 대한 연구는 조선후기 시화사에서 개괄적으로 언급한 것안대회, 조선후기 시화사, 소명출판사, 2000, 42-50. 외에는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한국에서 있었던 두 부류를 각각 존당파(尊唐派)ㆍ존송파(尊宋派)라고 명명하고 그들의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에 대한 평론을 고찰함으로써 존당파(尊唐派)와 존송파(尊宋派)의 당()ㆍ송시(宋詩)에 대한 총론(總論)의 특징(特徵)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존당파가 전범으로 삼았던 이백, 두보와 존송파가 전범으로 삼았던 소식, 황정견에 대한 구체적 평론을 살펴봄으로써 총론에서 살펴보지 못한 부분을 보충하고 그들에 대한 평론의 특징을 규명하여 존당(尊唐)과 존송(尊宋)의 실체를 밝히고자 한다. 끝으로 이러한 평론의 특징이 중국 문인들의 당ㆍ송시에 대한 비평과는 어떠한 연계성이 있는가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한국시화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조종업(趙鍾業)의 한국시화총편(韓國詩話叢編)을 근거로 시 관련 평론만을 뽑아서 편찬한 홍콩의 광건행(鄺健行) 2인의 한국시화중론중국시자료선수(韓國詩話中論中國詩資料選粹)에 수록된 시화 56종을 주 연구대상으로 한다. 이 책은 56종의 시화 중 34편이 이장우 외 2인에 의하여 우리나라 선비들의 중국시 이야기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본 논문의 번역부분은 이 책을 참고로 하였음을 밝힌다.

 

 

 

인용

목차 / 지도

1. 시화라는 명칭의 등장과 흐름

2. 한국시화(韓國詩話)의 당송시(唐宋詩)에 대한 총론(總論)

3. 존당파(尊唐派)ㆍ존송파(尊宋派)의 개별(個別) 시인(詩人)에 대한 평론(評論)

1) 존당파의 이백, 두보, 소식, 황정견 평론(評論)

2) 존송파의 이백, 두보, 소식, 황정견 평론(評論)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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