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낚시꾼 노인인 여상과 엄광을 조롱하며
조이조수(嘲二釣叟)
김시습(金時習)
風雨蕭蕭拂釣磯 渭川魚鳥識忘機
桐江江上釣煙波 生計蕭條一短蓑
漢家若無星象動 千秋定不累完名 右嚴光
太公之佐周室, 功則大矣. 以商世觀之, 義不能侔西山; 子陵之去漢帝, 節則高矣. 以漢室觀之, 忠不能盡雲臺.
嗚呼! 當殷商無道, 天命雖去, 人心縱離. 太公, 一商民也, 可忍佐異姓誅其君乎?
當莽之亂, 炎祚已傾, 光武以雄渾之量, 誅賊救民, 欲光復漢室. 子陵以區區之節, 浩然歸去, 可忍潔其身, 而亂其倫乎?
然則太公之就, 能助周家之業, 不能全君臣之大義; 子陵之去, 能成光武之大, 不能補漢祚之中興. 屈子所謂: “明有所不照, 智有所不逮” 信夫. 『梅月堂詩集』 卷之二
해석
風雨蕭蕭拂釣磯 풍우소소불조기 | 바람과 비가 소소하게 낚시터를 휩쓰는데, |
渭川魚鳥識忘機 위천어조식망기 | 위수의 물고기와 새들도 그가 세상의 욕망 잊은 것을 알더니, |
如何老作風雲將 여하로작풍운장 | 어째서 늙어 용맹스런 장수가 되어서, |
空使夷齊餓采薇 공사이제아채미 | 공연히 백이ㆍ숙제로 굶주려 고사리를 캐게 했던가? 여기까진 여상에 대한 것이다[右呂望] |
桐江江上釣煙波 동강강상조연파 | 동강의 강가에서 아지랑이 핀 물결을 낚으니 |
生計蕭條一短蓑 생계소조일단사 | 생계는 보잘 것 없이 하나의 짧은 도롱이뿐. |
漢家若無星象動 한가약무성상동 | 한나라 왕실에 만약 별자리의 움직임이 없었다면 |
千秋定不累完名 천추정불루완명 | 천년 뒤에 정히 완전한 이름에 누는 없었을 텐데. 여기까진 엄광에 대한 얘기다[右嚴光] 『梅月堂詩集』 卷之二 |
太公之佐周室, 功則大矣,
태공망이 주나라 왕실을 보좌했으니 공이 크지만
以商世觀之, 義不能侔西山;
상나라의 관점으로 보자면 의리는 백이ㆍ숙제【서산(西山): 수양산(首陽山)에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고사리만 뜯어 먹다가 죽었다는 백이(伯夷)ㆍ숙제(叔齊)를 가리킴.】와 견줄 수 없다.
子陵之去漢帝, 節則高矣,
자릉【엄광: 자는 자릉(子陵)이다. 한나라 광무제(光武帝)와 동학(同學)한 사이였는데, 광무제가 황제가 된 뒤에 변성명(變姓名)하고서 숨어 살았다. 광무제가 엄광을 찾아내어 조정으로 불렀으나 오지 않다가 세 번을 부른 다음에야 겨우 나왔다. 광무제와 엄광이 함께 잠을 자던 중에 엄광이 광무제의 배에 다리를 올려 놓았다. 그다음 날 태사(太史)가 아뢰기를, “객성이 어좌(御座)를 범하였습니다.” 하니, 광무제가 웃으면서, “짐이 옛 친구인 엄자릉과 함께 잤을 뿐이다.” 하였다. 그 뒤 광무제가 조정에 머물러 있기를 권하였으나, 엄광은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부춘산(富春山)으로 들어가 엄릉뢰(嚴陵瀨)라는 물가에서 낚시질을 하며 지냈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嚴光」】이 광무제를 떠났으니 절개가 높지만,
以漢室觀之, 忠不能盡雲臺.
한나라의 관점으로 보자면 충성은 운대【운대(雲臺): 후한(後漢) 명제(明帝)가 전세(前世)의 공신(功臣)들을 추념(追念)하여 등우(鄧禹) 등 28명의 초상화를 그려서 걸어 놓았던 대각(臺閣) 이름이다.】를 다하지 못했다.
嗚呼! 當殷商無道,
아! 은나라와 상나라가 무도함에 당하여
天命雖去, 人心縱離.
천명은 비록 떠났고 사람들의 마음은 멋대로 흩어졌지만,
太公, 一商民也,
태공망은 한 명의 상나라 백성으로
可忍佐異姓誅其君乎?
차마 다른 나라 임금을 보좌하고 상나라 임금을 베겠는가?
當莽之亂, 炎祚已傾,
왕망의 변란에 당하여 한나라의 국운【염조(炎祚): 한고조(漢高祖)가 나라를 창건할 적에 상징으로 삼았던 화덕(火德)을 가리키는 것이다. 곧 한나라의 국운(國運)을 의미한다.】이 이미 기울었지만,
光武以雄渾之量, 誅賊救民, 欲光復漢室.
광무제는 웅혼한 기량으로 적을 베고 백성을 구하여 한나라 왕실을 회복하려 했었다.
子陵以區區之節, 浩然歸去,
그러나 자릉은 자잘한 절개로 홀연히 떠나가
可忍潔其身, 而亂其倫乎?
차마 그 몸을 깨끗이 하면서 인륜을 어지럽히겠는가?
然則太公之就, 能助周家之業, 不能全君臣之大義;
그러나 태공은 등극되어 주나라의 업을 보좌할 수 있었지만 군신의 대의를 보전할 순 없었고
子陵之去, 能成光武之大, 不能補漢祚之中興.
자릉은 떠나 광무제의 위대함을 성취시켜줬지만 한나라 중흥을 보필할 순 없었다.
屈子所謂: “明有所不照, 智有所不逮” 信夫.
굴원이 “임금의 현명함으로도 비추지 못하는 곳이 있고 지혜로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다.”고 했던 말이
信夫!
참이로구나!
해설
이 시는 두 낚시질하는 늙은이 가운데 하나인 강태공(姜太公)을 놀리면서 지은 풍자시(諷刺詩)이다.
쓸쓸히 비바람이 부는 낚시터에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渭水) 주변의 물고기와 새들은 강태공이 세속적 욕망을 잊은 줄 알고 강태공 주변에서 노닐고 있다. 그런데 어쩌자고 노년에 용맹한 장수 되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같은 절개를 지키는 사람들을 수양산에서 굶어 죽게 하였는가?
이제신(李濟臣)의 『청강시화(淸江詩話)』에 의하면, “김시습이 낙척 불우하였으나 시문은 매우 고상하였다. 서거정(徐居正)이 일찍이 그를 맞이하여 강태공이 낚시하는 그림을 보여 주며 제화시를 청하자 곧 다음과 같은 시를 써 주었다. ……서거정이 묵묵히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그대의 시는 곧 나의 죄안을 밝힌 문건이오.’라고 하였다[金悅卿落拓不遇, 詩文極高. 徐達城嘗一邀致, 出姜太公釣魚圖請題, 卽書一絶云: ‘風雨蕭蕭拂釣磯, 渭川魚鳥識忘機. 如何老作鷹揚將, 空使夷齊餓采薇.’ 達城默然良久曰: ‘子之詩, 吾之罪案也.’].”라고 하여, 서거정(徐居正)의 요청으로 지은 것으로 되어 있고 『지봉유설(芝峯類說)』 문장부에는 한명회(韓明澮)가 요청한 것으로 되어 있고, 『병자록(丙子錄)』에는 권람(權擥)의 집을 방문하였다가 만나 보지 못하고 벽에 걸린 조어도를 보고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김시습은 강태공(姜太公)의 발자취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강태공을 한명회(韓明澮)나 서거정(徐居正)에, 백이와 숙제를 세조(世祖)에게 희생당한 사육신(死六臣)과 자신 같은 사람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제화시(題畵詩)이지만 역사적 인물인 강태공을 소재로 사육신(死六臣) 사건을 풍자(諷刺)하고 있는 것이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106~10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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