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미(五美)와 사악(四惡)
子張問於孔子曰: “何如斯可以從政矣?” 子曰: “尊五美, 屛四惡, 斯可以從政矣.” 子張曰: “何謂五美?” 子曰: “君子惠而不費, 勞而不怨, 欲而不貪, 泰而不驕, 威而不猛.”
費, 芳味反.
子張曰: “何謂惠而不費?” 子曰: “因民之所利而利之, 斯不亦惠而不費乎? 擇可勞而勞之, 又誰怨? 欲仁而得仁, 又焉貪? 君子無衆寡, 無小大, 無敢慢, 斯不亦泰而不驕乎? 君子正其衣冠, 尊其瞻視, 儼然人望而畏之, 斯不亦威而不猛乎?”
焉, 於虔反.
子張曰: “何謂四惡?” 子曰: “不敎而殺謂之虐;
虐, 謂殘酷不仁.
不戒視成謂之暴;
暴, 謂卒遽無漸.
慢令致期謂之賊;
致期, 刻期也. 賊者, 切害之意. 緩於前而急於後, 以誤其民, 而必刑之, 是賊害之也.
猶之與人也, 出納之吝, 謂之有司.”
出, 去聲.
○ 猶之, 猶言均之也. 均之以物與人, 而於其出納之際, 乃或吝而不果. 則是有司之事, 而非爲政之體. 所與雖多, 人亦不懷其惠矣. 項羽使人, 有功當封, 刻印刓, 忍弗能予, 卒以取敗, 亦其驗也.
○ 尹氏曰: “告問政者多矣, 未有如此之備者也. 故記之以繼帝王之治, 則夫子之爲政可知也.”
해석
子張問於孔子曰: “何如斯可以從政矣?” 子曰: “尊五美, 屛四惡, 斯可以從政矣.”
자장이 공자께 “어떻게 해야 정치에 종사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여쭈니, 공자께서 “오미(五美)를 높이고 사악(四惡)을 물리치면 정치에 종사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 ‘논어’ ‘요왈(堯曰)’편 제2장은 자장(子張)이 공자에게 어떻게 해야 정사(政事)에 종사할 수 있느냐고 묻자, 공자가 그 방도를 자세하게 일러주는 대용이다. 공자는 오미(五美)를 높이고 사악(四惡)을 물리치면 정사(政事)에 종사할 수 있다고 개괄적으로 말했다. 존(尊)은 높여 받는다는 말이다. 준(遵)으로도 쓴다. 병(屛)은 제거(除去) 함이다. 사(斯)는 ‘그러면 이에’라는 뜻이다. 정(政)은 정치를 담당하여 실제 정무(政務)를 보는 것을 말한다.
이 제2장은 앞서의 여러 편에 나온 내용과 중복되는 것이 많다. 하지만 윤둔(尹焞)이란 학자는 “정치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답해 주신 것이 많지만 이와 같이 구비된 말은 있지 않으므로 이것을 기록하여, 앞 장에서 제왕의 정치에 관해 기록한 뒤에 이어두었다. 이것을 통해서 공부자(孔夫子)의 정치관을 알 수가 있다”고 했다. 정약용도 이 장은 백성을 다스리는 묘결(妙訣)을 말한 것이어서 앞서 왕정(王政)에 대해 말한 기록 다음에 실었다고 보았다.
오미(五美)는 무엇인가.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되 재화를 낭비하지 않는 것, 백성을 수고롭게 하되 백성이 원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 욕심을 지니지만 남의 것을 결코 탐하지는 않는 것, 태연한 자세를 취하지만 교만하게 굴지 않는 것, 위엄을 지니고 있지만 사납지 않은 것 등 다섯 가지다.
사악(四惡)은 무엇인가. 백성을 교육하지 않고서 백성이 범죄를 저지르자마자 죽이는 일, 백성에게 평소 주의를 주어 지도하지 않고서 백성에게 실적을 보이라고 강요하는 일, 명령을 제때에 내리지 않고서 백성에게 기한을 반드시 지키라고 재촉하는 일, 반드시 다른 관리에게 내주어야 하거늘 물건 내주기를 아깝게 여기는 일 등 네 가지다.
오미(五美)와 사악(四惡)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군주제에 해당하는 내용이 많지만 현대 정치에 응용할 수 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子張曰: “何謂五美?” 子曰: “君子惠而不費, 勞而不怨, 欲而不貪, 泰而不驕, 威而不猛.”
자장이 “무엇을 오미(五美)라 말합니까?”라고 여쭈니, 공자께서 “군자가 은혜롭되 소비하지 않고 수고하되 원망하지 않으며 하고자 하되 탐욕부리지 않고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으며 위엄 있되 사납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費, 芳味反.
○ 자장(子張)이 어떻게 해야 정사(政事)에 종사할 수 있느냐고 묻자 공자는 오미(五美)를 높이고 사악(四惡)을 물리치면 된다고 말했다. 자장이 오미(五美)란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그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불비(不費)는 자신의 재산을 낭비하지 않음이다.
노이불원(勞而不怨)은 ‘자장(子張)’편 제10장에서 자하(子夏)가 위정자들이 주의할 점을 지적하여, ‘군자(君子)는 신이후(信而後)에 노기민(勞其民)이니 미신즉이위려기야(未信則以爲厲己也)니라’고 했던 말과 통한다. ‘군자는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은 뒤에 백성을 수고롭게 하나니, 신임을 얻지 못하고 수고롭게 하면 백성들은 군자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여긴다’는 뜻이었다.
욕이불탐(欲而不貪)은 위정자는 욕망을 지니되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국가의 재부(財富)를 군주의 소유물로 간주하던 시기에 군주의 탐욕을 억제하기 위해 이 덕목을 세웠을 것이다.
태이불교(泰而不驕)는 ‘자로(子路)’편 제26장에서 공자가 ‘군자(君子)는 태이불교(泰而不驕)하고 소인(小人)은 교이불태(驕而不泰)니라’고 했던 말 속에 이미 나왔다. ‘군자는 여유 있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되 여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위이불맹(威而不猛)은 ‘술이(述而)’편 제37장에서 공자의 태도를 서술하여 ‘자온이려(子溫而厲)하시며 위이불맹(威而不猛)하시며 공이안(恭而安)이러시다’라고 했던 표현 속에 이미 나왔다. ‘공자는 온화하면서도 엄숙하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으며 공손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는 뜻이었다. 군자오미(君子五美)의 여러 덕목이 현대의 위정자에게도 요청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子張曰: “何謂惠而不費?”
자장이 “무엇을 ‘은혜롭되 소비하지 않는 것’이라 말합니까?”라고 여쭈었다.
子曰: “因民之所利而利之, 斯不亦惠而不費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는 것에 따라 이롭게 해주니 이것이 또한 은혜롭되 소비하지 않음이 아니겠는가.
○ 자장(子張)의 질문에 응해 공자는 오미(五美)를 높이고 사악(四惡)을 물리치면 정사(政事)에 종사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는데, 자장이 오미(五美)에 대해 물었으므로 그 내용을 설명했다. 그런데 다시 자장(子張)이 오미(五美)의 혜이불비(惠而不費)란 무슨 뜻이냐고 묻자, 공자는 오미(五美) 전체에 대해 부연(敷衍)하였다. 위는 그 가운데 혜이불비(惠而不費)를 부연한 말이다.
이민지소리(因民之所利)는 ‘백성들이 스스로 이익으로 여기는 것에 근거해서’라는 뜻이다. 리지(利之)는 그들을 이롭게 한다는 말이다. ‘맹자’ ‘진심(盡心)’의 ‘살지이불원(殺之而不怨)하며 이지이불용(利之而不庸)이라’는 말은 이 구절과 통한다. ‘맹자’의 구절은 ‘죽여도 원망하지 않으며 이롭게 하여도 공(功)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에 의거해서 악한 자를 제거하는 것이지 백성을 죽이려 하는 데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므로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고, 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는 것에 의거하여 이롭게 해주는 것이지 억지로 이롭게 해주겠다는 마음을 두지 않으므로 위정자가 자기 공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백성들의 욕구를 고려하여 백성들의 삶을 이롭게 하는 정책을 실시하는 일은 ‘서경’ ‘주관(周官)’의 ‘령출유행 불유반(令出惟行 弗惟反)’이란 말과도 상관이 있다. 곧, ‘명령을 내는 것은 순순히 행하려 함이지 역행하려 함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스스로 이익으로 여기는 것이란, 선량한 일반인이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정당하게 욕구하는 바를 가리킨다. 백성이 부당한 욕망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은 전제하지 않으니, 백성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 태도가 낭만적이라면 낭만적이다. 하지만 백성들의 양심과 건전한 욕망을 신뢰하는 그 정신자세야말로 오늘날 위정자들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아니겠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擇可勞而勞之, 又誰怨?
수고로울 것을 택하여 수고롭게 하니 또한 누가 원망하겠는가.
○ 자장(子張)이 공자가 종정(從政)의 다섯 가지 덕목으로 거론한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고 청하자, 공자는 오미(五美) 전체에 대해 부연(敷衍)하였다. 위는 그 가운데 노이불원(勞而不怨)을 부연한 말이다.
택가로(擇可勞)는 백성들이 스스로의 건전한 욕구와 관련이 있어서 수고와 노동을 감내하겠다고 나서는 일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정약용은 흥리어환(興利禦患, 이익을 일으키고 환란을 막음)의 일을 말한다고 풀이하였다. 농경에 필요한 보와 저수지 수축, 도로와 교량의 건설이나 하천의 준설, 공동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산림 개발과 어장의 확보, 외침에 대비한 군사훈련과 방어진지 구축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수원(誰怨)은 ‘누가 원망하겠는가’로도, ‘누구를 원망하겠는가’로도 풀이할 수 있다. 수(誰)를 주어로 볼 수도 있고, 의문문에서 목적어인 의문사가 앞으로 나왔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의 김수온(金守溫)은 문의현(文義縣) 민화루(民和樓)의 축성을 기념하는 글에서, ‘누정은 없어도 되지만 백성은 없어서는 안 되고, 누대는 낮아도 되지만 백성들은 수고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하고, 이 누대만은 안민(安民, 백성을 안정시킴)과 부민(富民, 백성들을 부유하게 함)을 이룬 뒤 백성의 뜻에 따라 지은 것이어서 민화(民和, 백성들과 화합함)의 상징이라고 칭송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장(子張)’편 제10장에서 자하(子夏)는 위정자들이 주의할 점을 지적하여 ‘군자(君子)는 신이후(信而後)에 로기민(勞其民)이니 미신즉이위려기야(未信則以爲厲己也)니라’고 했다. ‘군자는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은 뒤에 백성을 수고롭게 하나니, 신임을 얻지 못하고 수고롭게 하면 백성들은 군자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여긴다’는 뜻이었다. 자하는 위정자의 신뢰성을 중시한 데 비해 여기서의 공자는 백성들의 건전한 욕망을 중시하였다. 두 관점 모두 오늘의 위정자들에게 절실하게 요청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欲仁而得仁, 又焉貪?
인을 하고자 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한 탐욕이겠는가.
焉, 於虔反.
○ 자장(子張)의 질문을 받고 공자는 위정자가 오미(五美)의 덕을 지녀야 한다고 말하고서 그 하나하나에 대해 부연(敷衍)하였는데, 위는 그 가운데 욕이불탐(欲而不貪)을 부연한 말이다. 욕이불탐(欲而不貪)은 욕심을 지니지만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욕심을 지닌다는 것은 인(仁)을 얻고자 바란다는 뜻이라고 재차 풀이했다.
욕인이득인(欲仁而得仁)은 ‘술이(述而)’편에서 공자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에 대해 ‘인(仁)을 추구하여 인(仁)을 얻었거늘 다시 무엇을 원망하랴’라고 대답한 구인득인(求仁得仁, 仁을 추구하여 仁을 얻음)의 경지와 통한다. 이를 근거로 위의 구절을 생각하면, 위정자가 인도(仁道)를 추구하여 인도(仁道)를 완성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므로 백성의 재물을 탐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고, 위정자가 인도(仁道)를 완성하면 백성들도 인도(仁道)를 이루려고 흥기(興起)하므로 달리 바랄 것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약용은 욕인(欲仁)을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고 함’이라고 풀이했다. 그리고 ‘목민심서’에서는 욕인(欲仁)을 대탐(大貪, 큰 탐욕)이라고 은유했다. ‘청렴(淸廉)은 천하에서 가장 큰 장사이므로 큰 탐욕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다. 사람이 청렴하지 않은 이유는 지혜가 짧아 그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인(里仁)’편의 ‘인자(仁者)는 안인(安仁)하고 지자(知者)는 리인(利仁)이니라’는 말을 이용하여 ‘렴자(廉者)는 안렴(安廉)하고 지자(知者)는 리렴(利廉)이니라’고 하였다. ‘청렴한 사람은 청렴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는 뜻이다. 어째서인가? 정약용은 자문자답했다. ‘재물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게 욕망한다. 하지만 재물보다 더 크게 욕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재물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군자는 청렴을 통해서 인도(仁道)를 이루려는 ‘큰 탐욕’을 지니고 있기에 남의 재물을 탐내는 ‘작은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말 멋진 말이 아닌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君子無衆寡, 無小大, 無敢慢, 斯不亦泰而不驕乎?
군자는 많고 적음도 없고 크고 작음도 없으며 감히 거만함도 없으니 이것이 또한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은 게 아니겠는가.
○ 공자는 위정자가 오미(五美)의 덕을 지녀야 한다고 말하고서 그 하나하나에 대해 부연(敷衍)하였는데, 위는 그 가운데 태이불교(泰而不驕)를 부연한 말이다.
무중과(無衆寡)와 무소대(無小大)는 서로 반대되는 뜻을 지닌 두 형용사의 복합어 위에 무(無)를 더한 형태로, 그 형용사들이 지시하는 양 극단의 어느 경우라도 관계없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런데 조익(趙翼)과 정약용(丁若鏞)은 무중과(無衆寡)와 무소대(無小大)를 호문(互文, 두 어구의 뜻이 서로 기워져서 전체 뜻을 이루는 문장)으로 보아 ‘상대방이 중차대(衆且大, 많으면서 큼)하든 과차소(寡且小, 적으면서 작음)하든 관계없이’라는 뜻으로 풀었다. 무감(無敢)은 ‘감히 ∼함이 없다’ ‘감히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서경’ ‘강고(康誥)’편에는 ‘성인(聖人, 文王)은 환과고독(鰥寡孤獨) 등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감히 업신여기지 않았다’는 말이 있는데 불감모(不敢侮)는 여기의 무감만(無敢慢)과 통한다.
인조 때 비변사(備邊司) 대신들이 쓰시마 도주(島主)의 외교문서를 수령하지 않자 조익(趙翼)은 교린(交隣)의 도리에 비춰 문서를 받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성인은 환과고독을 감히 업신여기지 않았다고 했는데, 환과고독이 어찌 두려워할 만한 존재라서 그랬겠습니까. 군자는 많고 적거나 크고 작거나 감히 교만하게 대하지 않는 법이라고 공자는 말했는데, 적고 작은 사람들에게 어찌 두려워할 만한 점이 있어서 그랬겠습니까. 성인은 사람을 대할 때 그가 두려워할 만한 자가 아니더라도 이처럼 두루 사랑하지 않음이 없으셨으니, 이 어찌 본받아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서경’과 ‘논어’의 구절을 인용하여 실리 외교를 주장한 것이다. 외교 문제는 명분만 주장해서는 안 될 듯도 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君子正其衣冠, 尊其瞻視, 儼然人望而畏之, 斯不亦威而不猛乎?”
군자가 의관을 정제하고 보는 것을 존중하고 위엄 있게 사람이 바라보며 두려워하니 이것이 또한 위엄이 있되 사납지 않은 게 아니겠는가.”
○ 공자는 위정자가 지녀야 할 오미(五美)에 대해 하나하나 부연(敷衍)했는데 위는 위이불맹(威而不猛)을 부연한 것이다. 첨시(瞻視)는 사물을 바라봄이다. 엄연(儼然)은 장엄함을 형용하는 말이다. 위이불맹(威而不猛)은 ‘술이(述而)’편에서 공자의 위의(威儀)를 서술하여 ‘온이려(溫而厲)하시며 위이불맹(威而不猛)하시며 공이안(恭而安)이러시다’라고 했던 말에도 나왔다. 공자는 온화하면서도 엄숙하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으며 공손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는 뜻이었다.
‘자장(子張)’의 제9장에서 자하(子夏)는 군자(君子)에게는 삼변(三變)이 있다고 하여, ‘망지엄연(望之儼然)하고 즉지야온(卽之也溫)하고 청기언야려(聽其言也厲)니라’라고 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외모가 장중(莊重)하고 앞에 다가가면 안색이 온화(溫和)하며 말을 들어보면 언사가 명확(明確)하다는 것이다. 또 ‘계씨(季氏)’편 제10장에서 공자는 시(視), 청(聽), 색(色), 모(貌), 언(言), 사(事), 의(疑), 분(忿, 화를 냄), 견득(見得, 이익을 눈앞에 봄)의 아홉 가지에서 마음을 전일(專一)하게 지니라 했으니 그 구사(九思)에서 시(視)의 전일(專一)을 강조한 것은 여기의 존기첨시(尊其瞻視)와 통한다.
정기의관(正其衣冠)과 관련하여 우리 선비들은 특히 의관정제(衣冠整齊)를 중시했다. 북송의 진백(陳柏)이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빗질하고 의관을 차리고 단정히 앉아 몸을 추슬러야 한다’고 가르친 것과 관련 있다. 이황도 ‘성학십도’의 제10도를 ‘숙흥야매잠도’로 하였다. 옛사람이 ‘용모를 바르게 해야 한다[正容貌]’, ‘위의를 삼가야 한다[愼威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다[不重則不威]’고 말한 것은 역시 까닭이 있지 않겠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子張曰: “何謂四惡?”
자장이 “무엇을 사악(四惡)이라 말합니까?”라고 여쭈었다.
子曰: “不敎而殺謂之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을 잔학하다 하고
虐, 謂殘酷不仁.
학(虐)은 잔혹하여 인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不戒視成謂之暴;
경계하지 않고 성공을 보이라 하는 것을 폭력이라 하며,
暴, 謂卒遽無漸.
포(暴)는 갑작스러워 조금씩 하는 게 없는 것을 말한다.
慢令致期謂之賊;
명령을 늦추어 기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도적이라 하고
致期, 刻期也.
치기(致期)는 기간을 각박하게 하는 것이다.
賊者, 切害之意.
적(賊)은 해침을 절박하게 한다는 뜻이다.
緩於前而急於後, 以誤其民,
앞에선 느슨히 하지만 뒤에서 급작스럽게 하여 백성을 잘못되게 함으로
而必刑之, 是賊害之也.
반드시 형벌하는 것, 이것이 백성을 해치는 것이다.
猶之與人也, 出納之吝, 謂之有司.”
같이 남에게 주고선 출납엔 인색한 것을 유사라 한다.”
出, 去聲.
○ 猶之, 猶言均之也.
유지(猶之)란 ‘균지(均之)’라는 말과 같다.
均之以物與人, 而於其出納之際,
균등하게 물건으로 남에게 주고선 출납을 해야 할 때엔
乃或吝而不果.
혹 인색하여 과감히 하지 않는다.
則是有司之事, 而非爲政之體.
이것은 유사의 일이지 정치를 하는 본체는 아닌 것이다.
所與雖多, 人亦不懷其惠矣.
주는 것이 비록 많더라도 사람들이 또한 은혜를 생각하지 않는다.
項羽使人, 有功當封,
항우가 사람을 부림에 공로가 있어 마땅히 봉해주며
刻印刓, 忍弗能予,
새긴 인장이 닳았는데도 차마 줄 수 없었고,
卒以取敗, 亦其驗也.
마침내 패망을 취했으니 또한 이것의 증험이다.
○ 尹氏曰: “告問政者多矣,
윤순(尹淳)이 말했다. “정치를 물어 알려준 경우가 많지만
未有如此之備者也.
이와 같이 갖추어진 경우는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제왕의 다스림에 이어서 기록하였으니 부자의 정치하는 것을 알 만하다.”
○ ‘논어’ ‘요왈(堯曰)’편 제2장에서 자장(子張)은 공자에게 어떻게 해야 정사(政事)에 종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공자는 오미(五美)를 높이고 사악(四惡)을 물리치면 정사(政事)에 종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장(子張)이 오미(五美)에 대해 묻자 공자는 그 내용을 자상하게 부연(敷衍)했고 자장(子張)이 또 사악(四惡)에 대해 묻자 공자는 역시 그 내용을 위와 같이 부연했다.
사악(四惡)은 무엇인가. 학(虐), 포(暴), 적(賊), 그리고 유사(有司)의 인(吝)이다. 학(虐)은 어질지 못하고 잔혹(殘酷)함, 포(暴)는 차츰차츰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함, 적(賊)은 각박하게 해침, 유사(有司)의 린(吝)은 재정 사무를 맡은 자처럼 인색함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학(虐)은 백성을 교육시키지 않고서 범죄를 저지르자마자 죽이는 일, 포(暴)는 백성에게 평소 주의를 주어 지도하지 않고는 실적을 보이라고 강요하는 일, 적(賊)은 명령을 제때 내리지 않고서는 백성에게 기한을 지키라고 재촉하는 일, 유사(有司)의 린(吝)은 내주어야 할 관물(官物)을 아깝게 여겨서 내주지 않는 일을 가리킨다.
정치를 유사(有司)처럼 인색하게 했던 예로 주자(朱子)는 항우(項羽)의 일을 들었다. 항우는 공로자에게 봉작(封爵)을 내릴 때 인장(印章)을 금방 주지 않아 인장의 글자나 테두리가 문드러질 정도였다고 한다. 항우는 결국 이 때문에 패망했다. 국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을 제때 실행하지 못하는 것도 유사(有司)의 린(吝)에 해당하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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