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임금으로부터 유유히 흘러온 유학의 흐름
凡三章.
堯曰: “咨! 爾舜! 天之曆數在爾躬. 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此堯命舜, 而禪以帝位之辭. 咨, 嗟歎聲. 曆數, 帝王相繼之次第, 猶歲時氣節之先後也. 允, 信也. 中者, 無過ㆍ不及之名. 四海之人困窮, 則君祿亦永絶矣, 戒之也.
舜亦以命禹.
舜後遜位於禹, 亦以此辭命之. 今見於「虞書大禹謨」, 比此加詳.
曰: “予小子履, 敢用玄牡, 敢昭告于皇皇后帝: 有罪不敢赦. 帝臣不蔽, 簡在帝心. 朕躬有罪, 無以萬方; 萬方有罪, 罪在朕躬.”
此引『商書』「湯誥」之辭. 蓋湯旣放桀而告諸侯也. 與『書』文大同小異. 曰上當有湯字. 履, 蓋湯名. 用玄牡, 夏尙黑, 未變其禮也. 簡, 閱也. 言桀有罪, 己不敢赦. 而天下賢人, 皆上帝之臣, 己不敢蔽. 簡在帝心, 惟帝所命. 此述其初請命而伐桀之辭也. 又言君有罪非民所致, 民有罪實君所爲, 見其厚於責己薄於責人之意. 此其告諸侯之辭也.
周有大賚, 善人是富.
賚, 來代反.
○ 此以下述武王事. 賚, 予也. 武王克商, 大賚于四海. 見「周書武成」篇. 此言其所富者, 皆善人也. 「詩序」云“賚所以錫予善人”, 蓋本於此.
“雖有周親, 不如仁人. 百姓有過, 在予一人.”
此「周書太誓」之辭. 孔氏曰: “周, 至也. 言紂至親雖多, 不如周家之多仁人.”
謹權量, 審法度, 修廢官, 四方之政行焉.
權, 稱錘也. 量, 斗斛也. 法度, 禮樂ㆍ制度皆是也.
興滅國, 繼絶世, 擧逸民, 天下之民歸心焉.
興滅繼絶, 謂封黃帝, 堯ㆍ舜, 夏ㆍ商之後. 擧逸民, 謂釋箕子之囚, 復商容之位. 三者皆人心之所欲也.
所重: 民ㆍ食ㆍ喪ㆍ祭.
「武成」曰: “重民五敎, 惟食喪祭.”
說, 音悅.
○ 此於武王之事無所見, 恐或泛言帝王之道也.
○ 楊氏曰: “『論語』之書, 皆聖人微言, 而其徒傳守之, 以明斯道者也. 故於終篇, 具載堯舜咨命之言, 湯武誓師之意, 與夫施諸政事者. 以明聖學之所傳者, 一於是而已. 所以著明二十篇之大旨也. 『孟子』於終篇, 亦歷敍堯ㆍ舜ㆍ湯ㆍ文ㆍ孔子相承之次, 皆此意也.”
해석
凡三章.
모두 세 장이다.
堯曰: “咨! 爾舜! 天之曆數在爾躬. 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요임금이 “아! 너 순아. 하늘의 점지함이 너의 몸에 있으니 진실로 가운데를 잡아라. 사해가 곤궁해지면 하늘의 봉록이 영원히 끊기리라.”라고 말씀하셨다.
此堯命舜, 而禪以帝位之辭.
이것은 요임금이 순에게 명하여 왕의 지위를 선양할 때의 말이다.
咨, 嗟歎聲.
차(咨)는 감탄하는 말이다.
曆數, 帝王相繼之次第,
역수(曆數)는 제왕이 서로 계승하는 차례로
猶歲時氣節之先後也.
세시와 기후와 절기의 선후 같은 것이다.
允, 信也.
윤(允)은 진실로라는 말이다.
中者, 無過ㆍ不及之名.
중(中)은 지나치지도 미치지 않음도 없음을 명칭한 것이다.
四海之人困窮, 則君祿亦永絶矣,
사해의 사람들이 곤궁해지면 임금의 봉록 또한 영원히 끊어지니,
戒之也.
순임금이 이것을 경계한 것이다.
○ ‘논어’ 20편의 마지막 ‘요왈(堯曰)’ 편의 제1장은 전설상의 성군인 이제삼왕(二帝三王)의 정치에 대해 서술했는데 그 가운데 첫 부분이다. ‘요왈’ 편은 세 개의 장(章)에 불과하고 체제도 다른 편과 다르다. 그래서 ‘논어’의 본편이 아니라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논어’의 첫 번째 ‘학이(學而)’편이 학규(學規)이고 마지막의 ‘요왈’ 편은 정치 강령과 군자의 요결(要訣)을 말하여 수미가 조응한다.
요 임금은 순 임금에게 제위(帝位)를 평화적으로 물려주었는데 이를 선양(禪讓)이라 한다. 선양의 때에 요 임금은 위와 같이 당부했다고 하며, 순 임금은 또 우(禹) 임금에게 선양할 때 이 훈화를 전했다고 한다. 훈계의 핵심은 ‘윤집기중(允執其中)’이다. 중(中)은 중도(中道)를 말하니 ‘진실로 그 중도를 잡아라’라는 뜻이다. 단, 이 말은 ‘상서’의 어구를 점철(點綴)한 듯하다. 현행 ‘상서’ 우서(虞書)의 ‘대우모(大禹謨)’에는 ‘윤집궐중(允執厥中)’이라 나온다. 뜻은 같되 지시사인 기(其)가 궐(厥)로 되어 있다.
차(咨)는 감탄어이다. 역수(曆數)는 제왕이 제위나 왕위를 얻는 순서에 담겨 있는 명운(命運)이다. 춘하추동이나 24기(氣), 12절(節)에 순서가 있듯이 제위나 왕위에 오르는 일도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뜻에서 쓰는 말이다. 사해(四海)는 천하의 동서남북에 있다는 바다를 말하되 보통 사해의 안인 천하를 가리킨다. 천록(天祿)은 하늘이 주어준 복록(福祿)으로 천자가 될 명운(命運)을 말한다.
작고하신 한 대통령의 유품 중에 ‘윤집기중(允執其中)’의 휘호가 있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 나오는 어구이다. 제왕이나 지도자의 철학으로서 대단히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舜亦以命禹.
순임금이 또한 우에게 명하셨다.
舜後遜位於禹, 亦以此辭命之.
순임금이 후에 우에게 지위를 선양할 때에도 또한 이 말로 명했다.
今見於「虞書大禹謨」, 比此加詳.
이젠 「우서 대우모」에 보이니 여기에 비하면 더 자세하다.
曰: “予小子履, 敢用玄牡, 敢昭告于皇皇后帝: 有罪不敢赦. 帝臣不蔽, 簡在帝心.
“나 소자 리(履)는 감히 검은 희생을 사용하여 감히 크고도 크신 상제께 밝히며 사룁니다. ‘죄가 있는 사람을 제가 감히 용서하지 못합니다. 상제님의 신하들을 가리지 못해 인물을 간택함이 상제님의 마음에 달려 있나이다.
此引『商書』「湯誥」之辭.
이것은 『상서』 「탕고」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蓋湯旣放桀而告諸侯也.
대체로 탕왕이 이미 걸을 추방하고서 제후들에게 말한 것이다.
與『書』文大同小異.
『상서』의 문장과 대략 같지만 세부적으론 다르니,
曰上當有湯字.
‘왈(曰)’ 위에 마땅히 ‘탕(湯)’자가 있어야 한다.
履, 蓋湯名.
리(履)는 대개 탕왕의 이름이다.
用玄牡, 夏尙黑,
검은 희생을 사용한 것은 하나라는 검은색을 숭상했으니
未變其禮也.
그 체제가 변하지 않은 것이다.
簡, 閱也.
간(簡)은 낱낱이 가려 선발하는 것이다.
言桀有罪, 己不敢赦.
’걸왕에게 죄가 있으니 내가 감히 용서해줄 수 없고
而天下賢人, 皆上帝之臣, 己不敢蔽.
천하의 어진 사람들은 모두 상제의 신하들로 내가 감히 가리지 못한다.
簡在帝心,
낱낱이 선발하는 것은 상제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
惟帝所命.
오직 상제의 명대로 하겠다.’는 말이다.
此述其初請命而伐桀之辭也.
이것은 처음에 상제에게 명을 청하며 걸왕을 정벌할 때의 말을 기록한 것이다.
○ ‘요왈(堯曰)’편의 제1장이되 이번에는 은나라 탕왕(湯王)의 말이다. ‘상서’ 가운데 상서(商書) ‘탕고(湯誥)’에 나오는 말을 끌어왔다. 탕왕이 하(夏)나라 걸(桀)을 추방하고 제후에게 포고했다는 말이다.
소자(小子)는 하늘에 대해 자신을 낮추어 말한 것이다. 리(履)는 탕왕의 이름인 듯하다. 감(敢)은 겸손한 뜻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현모는 흑색의 수컷 소이다. 탕왕이 상제에게 제사지낼 때 검은 희생을 쓴 것은 앞서의 하(夏)나라가 흑색을 숭상하였으므로 그 예(禮)를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하나라는 전쟁 때 흑마를 타고 희생은 흑색을 사용했으나 은나라는 전쟁 때 백마를 타고 희생은 백색을 사용했다고 한다. 소(昭)는 밝고 분명하게라는 뜻이다. 황황(皇皇)은 광대함을 형용한다. 후제(后帝)는 천제(天帝)로 후(后)는 군(君)이란 뜻이다.
유죄(有罪)는 여기서 하나라의 걸(桀)을 암암리에 가리킨다. 제신(帝臣)은 천하의 어진 이를 말한다. 불폐(不蔽)는 덮어둘 수 없다는 말이니 등용한다는 뜻이다. 간(簡)은 열(閱)의 뜻을 지닌다. 걸은 죄가 있으므로 내가 감히 용서해 줄 수 없고 천하의 어진 이는 모두 상제의 신하이므로 내가 감히 엄폐하지 못하되 그 간열(簡閱)은 상제의 마음에 달려 있어 나는 오직 상제의 명령을 따른다고 밝힌 것이다.
유교식 제사의 축문은 ‘維(年號幾年)歲次干支 幾月干支朔 幾日干支 孤子某 敢昭告于顯考(某官封諡)府君’으로 시작하는데 그 ‘감소고우(敢昭告于)∼’의 형식은 ‘상서’의 ‘탕고(湯誥)’편과 ‘논어’의 ‘요왈(堯曰)’편에 나와 있었던 형식이다. 참고로 덧붙인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朕躬有罪, 無以萬方; 萬方有罪, 罪在朕躬.”
제 몸에 죄가 있는 것은 만방 때문이 아니고 만방에 죄가 있는 것은 죄가 제 몸에 있기 때문이다.”
又言君有罪非民所致,
또한 ‘임금이 죄가 있는 것은 백성에 의한 것이 아니고,
民有罪實君所爲,
백성에게 죄가 있는 것은 실제로 임금이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見其厚於責己薄於責人之意.
자기를 꾸짖는 것에 심하게 하고 남을 꾸짖는 것엔 너그러웠음을 볼 수 있다.
此其告諸侯之辭也.
이것은 제후에게 고한 말이다.
○ ‘요왈(堯曰)’편의 제1장으로 탕왕(湯王)의 말이 이어진다. 이것도 ‘상서’ 가운데 상서(商書) ‘탕고(湯誥)’에 나오는 말을 끌어온 것이다. 앞서 탕왕은 하(夏)나라 걸(桀)을 추방하고는 죄 있는 걸을 내가 감히 용서해 줄 수 없고 천하의 어진 이는 내가 감히 엄폐하지 못하되 그 간열(簡閱)은 상제의 마음에 달려 있어 나는 오직 상제의 명령을 따를 뿐이라고 밝혔다.
여기서는 군주가 죄가 있는 것은 백성들의 소치(所致)가 아니요, 백성이 죄가 있는 것은 실로 군주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을 책함을 후하게 하고 남을 책함을 박하게 하는 뜻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탕이 걸을 정벌한 후 제후에게 고한 말이다. 짐궁(朕躬)은 ‘나의 몸’이다. 무이(無以)는 관계없다는 뜻이다. 만방(萬方)은 모든 곳이란 말로 천하의 백성을 가리킨다.
옛날 군주는 천재지변이나 내란, 외침이 있으면 민심을 달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글을 지어 발표했다. 천자의 경우라면 그것을 죄기조(罪己詔)라 하고 제후 왕의 경우라면 그것을 죄기교서(罪己敎書) 혹은 죄기서(罪己書)라 한다. 이를테면 당나라 덕종(德宗)은 주희(朱熹)의 반역을 피하여 봉천(奉天)으로 파천해 죄기조를 내렸다. 조선의 선조는 왜병이 침략하여 의주로 파천했을 때 죄기교서를 선포하고 사신을 팔도에 보내 의병을 일으키게 했다.
어떤 군주는 정세를 모면하려는 미봉책에서 죄기(罪己)를 가장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 민심은 더욱 이반(離叛)했다. 성호 이익은 ‘왕언(王言)’이란 글에서 도리를 어기는 온갖 행위는 모두 어지러운 말에서 지어진다고 말하고 “군주가 말을 냈다가 번복하고 앞에 한 말은 좋고 뒤에 한 말은 악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준신(準信)할 수 없게 한다면 어찌 옳겠는가”라고 경고했다. 아픈 말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周有大賚, 善人是富.
주나라에선 크게 주는 것이 있어 선인(善人)들이 부유해졌다.
賚, 來代反.
○ 此以下述武王事.
여기서부터 이하의 문장은 무왕의 일을 기술한 것이다.
賚, 予也.
뢰(賚)는 준다는 것이다.
武王克商, 大賚于四海.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크게 사해에 줬으니,
見「周書武成」篇.
「주서 무성」편에 보인다.
此言其所富者, 皆善人也.
이것은 부유해진 사람이 모두 선인이란 말이다.
「詩序」云“賚所以錫予善人”,
「시서」에서 ‘뢰(賚)는 선인에게 준다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蓋本於此.
대체로 여기에 근본한 것이리라.
○ 무왕(武王) 때의 일을 서술했다. 무왕이 은나라 주(紂)를 정벌하고 하늘에 맹세한 말 가운데 일부이다. 무왕의 맹세는 ‘상서’의 주서(周書) ‘무성(武成)’에 나온다.
주유대뢰(周有大賚)는 ‘무성(武成)’에는 ‘대뢰우사방(大賚于四方)’이라 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하늘이 주나라에 부여한 커다란 선물이 있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자는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사해에 크게 선물을 내린 것이라고 풀이했다. 선인시부(善人是富)도 착한 사람이 이에 많아졌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것이 곧 하늘이 주나라에 부여한 큰 선물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주자는 주나라가 선물을 내려 착한 사람이 이에 부유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정약용은 주자의 설을 따랐다. 여기서도 주자의 설을 따른다.
심언광(沈彦光)은 산의생(散宜生)이 무왕을 칭송하는 형식에 가탁해서 지은 ‘수만방루풍년송(綏萬邦屢豐年頌)’에서 노래했다.
往在紂時 黎民阻飢 왕재주시 여민조기 |
지난날 은나라 주왕 때는 백성들이 고초를 겪고 굶주려서 |
泣血鼠思 我后御宇 읍혈서사 아후어우 |
피눈물 흘리며 근심 걱정하더니, 우리 군주께서 천하를 다스리매 |
民安物阜 善人是富 민안물부 선인시부 |
백성은 편안하고 물자는 풍부하여 착한 사람들이 이에 부유하게 되었다 |
그러나 사마천은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말했다. 천도는 편애하는 일 없이 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고 하지만 공자의 제자 가운데 가장 학문을 좋아하던 안연(顔淵)이 가난 속에 요절한 것은 어째서인가? 도적의 두목인 도척(盜跖)은 사람을 매일 죽이고 수천의 도당을 조직하여 나쁜 짓을 해댔어도 천수를 누린 것은 어째서인가? 천도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천도는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雖有周親, 不如仁人. 百姓有過, 在予一人.”
“비록 지극히 가까운 친척이 있더라도 어진 사람만 못하고 백성들이 잘못이 있다면 나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此「周書太誓」之辭.
이것은 「주서 태서」의 말이다.
孔氏曰: “周, 至也.
공안국(孔安國)이 말했다. “주(周)는 지극하다는 것이다.
言紂至親雖多,
주왕이 지극히 가까운 친척이 비록 많았지만
不如周家之多仁人.”
주나라에 어진 사람이 많은 것만 못했다.”
○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紂)를 정벌할 때 맹세한 말 가운데 일부이다. 무왕의 맹서는 ‘상서’의 주서(周書) ‘태서(泰誓’에 나온다.
주자에 따르면 주친(周親)은 지극히 가까운 친척이란 뜻으로 은나라 주(紂)에게 미자(微子)ㆍ기자(箕子)ㆍ비간(比干)과 같이 지친(至親)이 있었지만 주(紂)의 탐악(貪惡)을 구제하지는 못한 사실을 뜻한다. 불여인인(不如仁人)은 어진 사람이 있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니 주(周)나라에 어진 현신(賢臣)이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자부한 말이 된다. ‘상서’의 문맥에서는 이쪽이 옳다.
단, 공안국(孔安國)의 옛 해설에 따르면 주친(周親)은 ‘주나라 희씨(姬氏)의 친척’이고 인인(仁人)은 미자(微子)ㆍ기자(箕子)ㆍ비간(比干)을 가리킨다. 즉, 무왕이 전쟁을 마치고 수레에서 내리기 전에 황제(黃帝), 요(堯), 순(舜)의 후예를 봉(封)하고 수레를 내려서는 미자(微子)를 봉한 후 기자(箕子)를 풀어주고 비간(比干)을 정표(旌表)했으나 친척을 분봉(分封)하는 일에는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정약용도 이 설을 따랐다.
여일인(予一人)은 군주인 나 자신을 말한다. 백성들의 과실은 책임이 나 한 사람에게 있다는 말로 앞서 탕왕(湯王)이 ‘만방유죄(萬方有罪)는 죄재짐궁(罪在朕躬)하니라’라고 한 말과 같다. 다만 ‘상서’의 주는 과(過)를 ‘꾸짖음’으로 보고 오늘날 백성들이 나를 꾸짖어 내가 상(商)의 죄를 바로잡지 않는다고 말한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상서’의 본문으로 보면 탕왕의 말은 자신을 책망한 것이고 무왕의 말은 ‘지금 나는 상나라를 치러 반드시 갈 것이다’라고 결심한 것이어서 서로 다르다.
옛 주석은 복잡하지만 인재 등용에서는 친족보다 어진 사람을 존중해야 하며 그 어진 사람이 국가의 명운을 지키리란 사실을 말했다고 보면 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謹權量, 審法度, 修廢官, 四方之政行焉.
저울질과 무게 다는 행위를 삼가고 법도를 살피며 무너진 관청을 수리하니 사방에서 정치가 실행되었다.
權, 稱錘也. 量, 斗斛也.
권(權)은 저울질이다. 량(量)은 수량의 척도인 말과 휘다.
法度, 禮樂ㆍ制度皆是也.
법도(法度)는 예악과 제도가 모두 이것이다.
○ 요 임금의 선양(禪讓) 때 훈사(訓辭), 탕 임금의 죄기(罪己), 무왕(武王)의 은나라 정벌 때 서약(誓約)을 서술했다. 여기서는 성군이 정치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때 근권량(謹權量), 심법도(審法度), 수폐관(修廢官)을 우선 중시했다는 점을 말했다. 이 이하를 무왕(武王)의 정치에만 해당한다고 풀이하는 설도 있다.
권(權)은 저울과 추, 즉 칭추(秤錘)이다. 량(量)은 부피와 양을 재는 되로 두곡(斗斛)을 말한다. 권량(權量)을 삼간다는 것은 도량형(度量衡)의 기준을 일정하게 하여 물물교환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게 한다는 뜻이다. 심(審)은 심의(審議)로 분명히 밝혀서 존폐(存廢)를 제대로 판단하는 일을 말한다. 법도(法度)는 법률(法律)ㆍ제도(制度)ㆍ예악(禮樂) 등 정치사회의 질서를 가리킨다. 수폐관(修廢官)은 앞서 폐지된 관직을 다시 살펴서 현인(賢人)을 등용하는 일이다. 사방(四方)은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기내(畿內)의 바깥 사방을 말하는데 제후(諸侯)의 영지를 가리킨다.
도량형을 엄밀하게 규정하게 하는 것은 물자 유통의 통일성과 효율성을 가져오고 사람 사이의 신뢰를 강화한다. 예악과 법제를 상세하게 규정하는 것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또 필요한 관직이거늘 이러저런 이유로 없어진 관직을 부활하는 일은 행정을 효율화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요왈(堯曰)’편은 이 세 가지가 중앙의 군주에 의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사방의 제후가 다스리는 영지까지도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지방분권을 제창하는 현대정치의 관점과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도량형, 예악과 법제, 관청의 중앙조직을 지방에 강제하라는 뜻이 아니다. 중앙에서 이 세 가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방정치가 올바로 이루어지겠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興滅國, 繼絶世, 擧逸民, 天下之民歸心焉.
멸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세대를 이으며 은둔자를 천거하자 천하의 백성이 귀의했다.
興滅繼絶,
‘멸망한 나라를 부흥시키며 끊어진 세대를 잇는다’는 것은
謂封黃帝, 堯ㆍ舜, 夏ㆍ商之後.
황제와 요와 순, 하나라와 상나라의 후손을 봉해준다는 말이다.
擧逸民, 謂釋箕子之囚,
‘은둔자를 천거한다’는 것은 감옥에 있던 기자를 풀어주고
復商容之位.
상용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三者皆人心之所欲也.
세 가지는 모두 사람 마음에 하고 싶은 것이다.
○ 여기서는 주나라 무왕(武王)의 초기 정사(政事)를 서술함으로써 정치의 요체를 말하고 있다.
흥멸국(興滅國)은 멸망한 나라의 자손을 찾아내어 후예(後裔)로서 부흥시켜 줌을 말한다. 계절세(繼絶世)는 본종(本宗)의 자손이 끊어진 집안을 부흥시켜줌을 말한다. 일민(逸民)은 은둔해 있는 어진 사람을 말한다. 귀심(歸心)은 진심으로 귀의(歸依)함이다. 언(焉)은 종결사이면서 ‘∼에로’의 뜻을 포함한다.
멸망한 나라를 일으켜주고 끊어진 대를 이어주었다는 것은 무왕이 상(은)나라를 이기고 수레에서 내리기 전에 황제(黃帝), 요(堯), 순(舜)의 후손을 봉(封)하고 수레에서 내린 후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의 후손을 봉한 것을 말한다. 숨은 사람을 등용했다는 것은 갇혀 있던 기자(箕子)를 석방하고 상용(商容)의 마을에 경의를 표해 그 지위를 회복해준 일을 말한다. 주자는, 이 세 가지는 모든 사람이 원하던 바이기에 민심이 무왕에게 돌아왔다고 풀이했다.
고려 말인 1374년 9월에 공민왕이 시해되고 우왕이 즉위한 후, 목은 이색은 죽은 충숙왕의 부인으로서 82세의 고령이던 왕대비를 대신하여 명나라 측에 우왕의 즉위를 인정해 달라고 압박하는 진정표(陳情表)를 작성했다. 국가의 위세를 보존하기 위해 고심했던 뜻이 다음 표현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멸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주고 끊어진 세대를 이어 주는 것이야말로 성인의 위대한 정사(政事)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본국의 경우는 아직 나라가 멸망하지도 않았고 세대가 아직 끊어지지도 않았음에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곧 ‘요왈(堯曰)’편의 이 구절을 이용해서 우왕의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는 뜻을 전달한 것이다. 고전을 외교문서에 활용한 방식이 정말로 탁월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所重: 民ㆍ食ㆍ喪ㆍ祭.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백성과 식량과 초상과 제사다.
「武成」曰: “重民五敎,
「무성」에서 말했다. “백성의 다섯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기되
惟食喪祭.”
오직 식량과 초상과 제사인 것이다.”
○ 주나라 무왕(武王)의 정사(政事)를 서술함으로써 정치의 요체를 말했다.
이 글은 ‘서경’ ‘무성(武成)’편에서 ‘중민오교(重民五敎)하되 유식상제(惟食喪祭)라 하니라’라고 해서 ‘백성의 오교(五敎, 五倫)를 중히 여기되 식량과 상례와 제례를 함께하였다’고 한 말과 유사하되 앞부분이 다르다. ‘무성’편에서는 오교(오륜)를 중시한 것과 백성의 식량과 상례, 제례를 함께한 것을 병렬시켰으나 ‘요왈’의 이 장에서는 정치에서 중시한 것이 백성의 식량과 상례, 제례였다고 했다. 정약용은 ‘무성’편은 후대의 위작으로, 문제의 구절은 ‘요왈’의 이 구절을 변형시킨 것이라고 보았다.
기자(箕子)가 지었다는 ‘洪範(홍범)’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여덟 가지를 팔정(八政)이란 이름으로 정리했다. 곧 식(食)ㆍ화(貨)ㆍ사(祀)ㆍ사공(司空)ㆍ사도(司徒)ㆍ사구(司寇)ㆍ빈(賓)ㆍ사(師)이다. 음식 재물 제사를 먼저 꼽은 것은 ‘요왈’편이 식량 상례 제례를 중시한 것과 통한다. 정약용은 양생송사(養生送死)를 존중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백성이 자신의 부모를 살아계실 때 잘 봉양하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제대로 장사 지내고 제사를 올려 유감이 없도록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공자가 백성의 식량을 중시했다는 사실은 ‘안연(顔淵)’편에 나타나 있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사(政事)의 요체를 묻자 공자는 풍족한 양식과 군대의 양성과 백성의 믿음을 거론했다. 또 부득이 하나씩 버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우선 군대를 버리고[去兵] 다음에 양식을 버리되[去食] 백성의 믿음은 버릴 수 없다고 대답했다. 백성의 믿음을 중시하되, 양식과 군대의 둘을 비교하면 양식이 더 중하다고 본 것이다. 정책 수립에서 백성의 생계 안정을 가장 앞세워야 한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너그러우면 백성을 얻고 믿음직스러우면 백성이 의지하고 민첩하면 공이 있고 공평하면 기뻐한다.
說, 音悅.
○ 此於武王之事無所見,
이것은 무왕의 일에 보이지 않으니
恐或泛言帝王之道也.
아마도 혹 제왕의 도를 널리 말한 듯하다.
○ ‘논어’ ‘요왈(堯曰)’편 제1장의 마지막으로, 제왕의 도를 말했다.
처음의 관즉득중(寬則得衆), 신즉민임(信則民任), 민즉유공(敏則有功) 세 구절은 ‘양화(陽貨)’편의 ‘자장문인(子張問仁)’ 장(章)에서 공자가 인(仁)에 대해 말한 내용과 겹친다. 그래서 세 구절은 연문(衍文, 군더더기 어구)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양화(陽貨)’편에 보면 자장이 인(仁)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공(恭)ㆍ관(寬)ㆍ신(信)ㆍ민(敏)ㆍ혜(惠)의 다섯 가지를 천하에 실행하면 그것이 인(仁)이라고 대답하고, 그 아래서 이렇게 부연했다. ‘공즉불모(恭則不侮)하고 관즉득중(寬則得衆)하고 신즉인임언(信則人任焉)하고 민즉유공(敏則有功)하고 혜즉족이사인(惠則足以使人)이니라.’ 공손하면 모욕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게 되며 성실하면 남이 나를 의지하고 민첩하면 공적을 세우고 은혜로우면 충분히 사람을 부릴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의 공즉열(公則說)은 군주가 공평무사(公平無私)하면 백성들이 모두 만족하여 기뻐한다는 뜻이다. 설(說)은 열(悅)과 같다.
‘요왈(堯曰)’편은 후대에 덧붙인 듯하고 그 취지도 ‘논어’의 중심사상과 조금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양시(楊時)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논어’는 모두 성인의 은미(隱微)한 말씀인데, 제자들이 전하고 지켜 이 도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편에서는 요임금과 순임금이 명령하신 말씀, 탕왕과 무왕이 군사들 앞에서 맹세한 뜻, 그리고 정사(政事)에 시행한 일들을 자세하게 기재하여 성학(聖學)이 전하는 바가 이렇게 한결같음을 밝혔다.” ‘요왈(堯曰)’편이 오히려 ‘논어’ 전체의 대지(大旨)를 드러내어 밝혔다고 본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발언이다.
요컨대, 위정자라면 공관신민혜(恭寬信敏惠)의 다섯 가지 덕목에 公을 추가한 여섯 가지 덕목을 지니도록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 楊氏曰: “『論語』之書, 皆聖人微言,
양시(楊時)가 말했다. “『논어』라는 책은 모두 성인의 은미한 말로
而其徒傳守之, 以明斯道者也.
제자들이 전하고 지켜 이 도를 밝혔다.
故於終篇, 具載堯舜咨命之言,
그러므로 마지막 장에서 요와 순이 감탄하고 명령한 말과
湯武誓師之意, 與夫施諸政事者.
탕왕과 무왕이 군대에 맹세한 뜻, 정사에 시행된 것을 모두 실어
以明聖學之所傳者, 一於是而已.
성인이 전하려는 것이 이것에 한결같다는 것을 밝혔다.
所以著明二十篇之大旨也.
20편의 큰 뜻을 드러내어 밝힌 것이다.
『맹자』의 마지막 편에서
亦歷敍堯ㆍ舜ㆍ湯ㆍ文ㆍ孔子相承之次,
또한 일일이 요와 순과 탕과 문과 공자가 서로 계승한 차례를 서술했으니,
皆此意也.”
모두 이런 뜻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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