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장. 다섯 가지 달도(達道)와 세 가지 달덕(達德), 그걸 행하게 하는 하나의 근본인 성(誠)
天下之達道五, 所以行之者三. 曰君臣也, 父子也, 夫婦也, 昆弟也, 朋友之交也, 五者天下之達道也. 知ㆍ仁ㆍ勇三者, 天下之達德也. 所以行之者一也.
達道者, 天下古今所共由之路, 卽『書』所謂五典, 孟子所謂“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是也. 知, 所以知此也. 仁, 所以禮此也. 勇, 所以强此也. 謂之達德者, 天下古今所同得之理也. 一, 則誠而已矣. 達道雖人所共由, 然無是三德, 則無以行之. 達德雖人所同得, 然一有不誠, 則人欲間之, 而德非其德矣. 程子曰: “所謂誠者, 止是誠實此三者. 三者之外, 更別無誠.”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 一也.
知之者之所知, 行之者之所行, 謂達道也. 以其分而言, 則所以知者知也, 所以行者仁也. 所以至於知之ㆍ成功而一者, 勇也. 以其等而言, 則生知ㆍ安行者知也, 學知ㆍ利行者仁也, 困知ㆍ勉行者勇也.蓋人性雖無不善, 而氣稟有不同者, 故聞道有蚤莫, 行道有難易. 然能自强不息, 則其至一也. 呂氏曰: “所入之塗雖異, 而所至之域則同, 此所以爲中庸. 若乃企生知ㆍ安行之資爲不可幾及, 輕困知ㆍ勉行謂不能有成, 此道之所以不明不行也,”
(子曰)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
‘子曰’二字, 衍文.
○ 此言未及乎達德而求以入德之事. 通上文三知爲知, 三行爲仁, 則此三近者, 勇之次也. 呂氏曰: “愚者自是而不求, 自私者徇人欲而忘返, 懦者甘爲人下而不辭. 故好學非知, 然足以破愚; 力行非仁, 然足以忘私; 知恥非勇, 然足以起懦.”
○ 『近思錄』曰: “以其好學之心, 假之以年, 則不日而化矣. 後人不達, 以謂聖本生知, 非學可至, 而爲學之道遂失.”
知斯三者, 則知所以修身; 知所以修身, 則知所以治人; 知所以治人, 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
斯三者, 指三近而言. 人者, 對己之稱. 天下國家, 則盡乎人矣. 言此以結上文修身之意, 其下文九經之端也.
해석
天下之達道五, 所以行之者三. 曰君臣也, 父子也, 夫婦也, 昆弟也, 朋友之交 1也, 五者天下之達道也. 知ㆍ仁ㆍ勇三者, 天下之達德也. 所以行之者一也.
천하엔 달도(達道)가 다섯 가지에, 행동해야 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형과 동생, 벗과 벗의 사귐, 이 다섯 가지가 천하의 공통되지만 달성해야 하는 길입니다.
지(知)와 인(仁)과 용(勇), 이 세 가지는 천하의 공통되지만 달성해야 할 덕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행동하게 만드는 근본은 한 가지입니다.
達道者, 天下古今所共由之路,
달도(達道)는 천하고금의 공유하는 길로
卽『書』所謂五典,
곧 『서경』에서 말한 ‘오전(五典)’이고,
孟子所謂“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是也.
맹자가 「등문공」상4에서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말한 게 이것이다.
知, 所以知此也. 仁, 所以禮此也.
지(知)는 달도(達道)를 알게 하고, 인(仁)은 이것을 체현하게 하며,
勇, 所以强此也.
용(勇)은 이것을 힘쓰게 한다.
謂之達德者, 天下古今所同得之理也.
달덕(達德)이라 말하는 것은 천하 고금에 공통으로 획득해야 하는 이치다.
一, 則誠而已矣.
일(一)이란 것은 성(誠)일 뿐이다.
達道雖人所共由,
달도(達道)가 비록 사람들이 공유해야 하는 것이지만
然無是三德, 則無以行之.
삼덕(三德)이 없으면 행하여지지 않는다.
達德雖人所同得, 然一有不誠,
달덕(達德)이 비록 사람이 함께 획득해야 하는 것이지만 하나라도 성(誠)이 없으면
則人欲間之, 而德非其德矣.
인욕(人欲)이 끼어들어 덕이 덕이 아닌 게 된다.
程子曰: “所謂誠者,
정이천(程伊川)이 말했다. “이른바 성(誠)이란
止是誠實此三者.
오직 이 세 가지를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
三者之外, 更別無誠.”
세 가지 외엔 다시 별도의 성(誠)은 없다.”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 一也.
달도(達道)와 달덕(達德)에 대해 어떤 이는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이는 배워서 알고 어떤 이는 곤혹스럽지만 애써야만 압니다. 달도(達道)와 달덕(達德)에 대해 어떤 이는 편안히 행하고, 어떤 이는 이익이 된다고 하여 행하고 어떤 이는 억지로 힘써 행하니 공을 이룸에 이르러선 같습니다.
知之者之所知, 行之者之所行,
‘지지(知之)’라는 것의 아는 것과 ‘행지(行之)’라는 것의 행하는 것은
謂達道也.
달도(達道)를 말한다.
以其分而言,
그것을 나누어 말하면
則所以知者知也, 所以行者仁也.
알도록 하는 것은 지(知)이고 행하게 하는 건 인(仁)이다.
所以至於知之ㆍ成功而一者, 勇也.
그것을 알거나 공을 이룸에 이르러선 하나라고 하는 건 용(勇)이다.
以其等而言, 則生知ㆍ安行者知也,
그걸 등급으로 말하면 생지(生知)와 안행(安行)은 지(知)이고,
學知ㆍ利行者仁也,
학지(學知)와 리행(利行)은 인(仁)이며,
困知ㆍ勉行者勇也.
곤지(困知)와 면행(勉行)은 용(勇)이다.
蓋人性雖無不善, 而氣稟有不同者,
대저 사람의 본성은 선하지 않음이 없으나 기품(氣稟)이 같지 않기 때문에
故聞道有蚤莫, 行道有難易.
도를 들음에 빠름과 느름이 있고 도를 행함에 어렵고 쉬운 게 있다.
然能自强不息, 則其至一也.
그러나 스스로 힘써 멈추질 않을 수 있다면 이르게 되는 곳은 하나인 것이다.
呂氏曰: “所入之塗雖異, 而所至之域則同,
여대림(呂大臨)이 말했다. “들어가는 길은 비록 다르지만 도착하게 되는 영역은 같다.
此所以爲中庸.
이것이 중용이 된 까닭이다.
若乃企生知ㆍ安行之資爲不可幾及,
만약 생지(生知)와 안행(安行)의 자질을 바라면서도 거의 미칠 수 없다고 여기고
輕困知ㆍ勉行謂不能有成,
곤지(困知)와 면행(勉行)을 가벼이 여겨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면
此道之所以不明不行也,”
이것이 도(道)는 밝아지지 않고 행하여지지 않는 이유다.”
(子曰)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
배우길 좋아하는 것은 지(知)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습니다.
‘子曰’二字, 衍文.
‘자왈(子曰)’ 이 두 글자는 연문이다.
○ 此言未及乎達德而求以入德之事.
이 말은 달덕(達德)엔 미치지 못하나 덕에 들어가는 일은 구할 수 있다.
通上文三知爲知,
윗 문장은 생지(生知)와 학지(學知)와 곤지(困知)의 세 가지 지(知)를지(知)로 여기고,
三行爲仁,
안행(安行)과 리행(利行)과 면행(勉行)의 세 가지 인(仁)을 인(仁)으로 여기는 것을 통한다면
則此三近者, 勇之次也.
여기에 세 가지 가까운 것은 용(勇)의 다음 단계인 것이다.
呂氏曰: “愚者自是而不求,
여대림(呂大臨)이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옳다고 여겨 구하지 않고,
自私者徇人欲而忘返,
절로 이기적인 사람은 인욕(人欲)을 따라 돌아올 줄 모르며,
懦者甘爲人下而不辭.
나약한 사람은 사람 아래 있는 것을 달게 여겨 사양하질 않는다.
故好學非知, 然足以破愚;
그렇기 때문에 배움을 좋아하는 게 지(知)는 아니나 어리석음을 깨우칠 순 있고,
力行非仁, 然足以忘私;
힘써 행함이 인(仁)은 아니나 이기심을 잊을 수 있으며,
知恥非勇, 然足以起懦.”
부끄럼을 아는 게 용(勇)은 아니나 나약함을 일으킬 수 있다.”
○ 『近思錄』曰: “以其好學之心,
『근사록』에서 말했다. “호학하는 마음으로
수명을 빌려주어 늘려준다면 머지않아 성인의 경지에 이르러 변화할 수 있다.
後人不達,
후대 사람들은 도달하려 노력도 안 하면서
以謂聖本生知, 非學可至,
‘성인은 본래 생지(生知)의 자질로 배워도 이를 수 없다.’라 말해버리니,
而爲學之道遂失.”
배우려 하는 도(道)가 마침내 상실되었다.”
知斯三者, 則知所以修身; 知所以修身, 則知所以治人; 知所以治人, 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
이 세 가지를 알면 어떻게 수신(修身)해야 하는지 알게 되며, 수신(修身)을 알면 어떻게 사람을 다스려야 하는지 알게 되며, 사람을 다스릴 줄 알면 어떻게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지 알게 됩니다.
斯三者, 指三近而言. 人者, 對己之稱.
사삼(斯三)이란 삼근(三近)을 가리켜 말한다. 인(人)이란 자기에 대응하여 말한 것이다.
天下國家, 則盡乎人矣.
천하국가(天下國家)는 타인이 모인 곳이다.
윗 문장인 수신의 뜻을 결론지어 아래 문장의 구경(九經)의 단서를 일으킨 것이다.
인용
13. 지인용(知仁勇)
14. 앎과 행동의 세 가지 스타일
- '오륜(五倫)'이라는 말 자체는 중국역사에 있어서 명나라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희도 '인륜(人倫)'이라는 말을 썼을 뿐 '오륜'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오륜'이라는 용어는 명나라 沈易 이라는 사람이 童蒙에게 오륜의 도를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五倫詩』가 그 최초의 용례이며 명나라 선종의 御撰인 『五倫書』가 정통 12년(1447)에 상재되어 천하에 반포됨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중용한글역주』, 488~489쪽 [본문으로]
'고전 > 대학&학기&중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용 20장 - 4. 성(誠)과 성지(誠之)에 대해 (0) | 2021.09.23 |
---|---|
중용 20장 - 3.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인 구경(九經)과 그것을 실행하게 하는 성(誠) (0) | 2021.09.23 |
중용 20장 - 1. 정치의 기본은 수신(修身)을 통해 지천(知天)하는 것 (4) | 2021.09.23 |
중용 19장 - 효의 근본을 알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쉽게 알게 되리라(武王ㆍ周公, 其達孝矣乎!) (0) | 2021.09.23 |
중용 18장 - 근심이 없는 사람은 무왕이겠구나 (0) | 2021.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