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첫 임용을 본 아이들과의 이야기
크라잉넛을 통해 고정관념이 깨지며 지금처럼 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크라잉넛 한 뮤지션 때문에 그런 인식의 변화가 생겼겠는가. 그런 충격적인 만남이 있기까지 수많은 변곡점들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 의정이가 홍합탕의 홍합을 일일이 까줘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다.
장범준의 여수밤바다가 좋은 노래인 이유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자연스레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계속 이어졌다. 그 다음에 초대된 인물은 장범준이다. 버스커 버스커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솔로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에겐 ‘여수 밤바다’와 ‘벚꽃엔딩’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매년 4월이면, 그리고 여수에 내려가면 언제든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되어 있는 그다.
교수님은 “‘여수밤바다’라는 노래가 왜 좋은 노래인 줄 알아?”라는 깜짝 질문으로 포문을 열었다. 감미로운 선율에 연애가 맘대로 풀리지 않는 젊은 남자가 여수밤바다를 찾아가 서글픈 감정을 토로하는 노래로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노래이며, 사람들은 심심찮게 ‘여수시는 장범준 씨한테 상을 줘야 할 것 같네요.’라는 말을 할 정도로 여수를 대표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교수님처럼 이 노래가 어떤 부분에서 좋은 노래인지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이 질문을 듣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김형술 교수님은 “이 노래엔 여수에 대한 묘사는 전혀 나오지 않아요. 여수 밤바다 풍경을 노래한다던지, 여수의 풍광을 서술한다던지 하는 건 없어요. 그런데도 이 노래를 듣고 나면 ‘여수밤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에 이 노래가 좋은 노래인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 돌산과 연결되는 다리. 석양의 운치가 멋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소화시평 스터디를 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던 게 생각이 났다. 상권 69번엔 보령에 있는 영보정을 박은이 노래한 시와 이행이 평가한 말이 실려 있다. 이 부분을 해석할 때 교수님은 박은의 시를 면밀하게 풀이해주셨고 그 풀이를 듣는 순간 ‘영보정 한 번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박은은 이 시에서 영보정을 매우 환상적인 분위기로 그려내고 있었고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범선 같은 느낌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어찌나 시적 분위기가 압도적인지 정말 그곳에 가면 그런 게 느껴질까 싶어서 가고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장범준의 ‘여수밤바다’란 노래도 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여수밤바다에 가면 나도 저런 감상에 빠져들 수 있을까, 그리고 나의 이렇게 아픈 가슴도 치유받을 수 있을까 하는 심정을 자아내기에 좋은 노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영보정 시를 읽으니 정말 영보정이 가고 싶어졌다.
첫 임용을 본 아이들의 심정
나는 2006년도 12월에 첫 임용시험을 경기도에서 봤었다. 이미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그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그때의 경험은 나에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처럼 올해 첫 임용시험을 본 4학년 아이들의 소감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나에게도 그 순간만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듯 이들에게도 그런 감상은 전혀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향해 물어보니 아이들은 그때 느꼈던 것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며 이야기해주더라.
▲ 첫 임용시험을보러 갈때의 사진. 시험 때문에 수원이란 곳에 처음 왔다.
그렇게까지 긴장하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어리둥절하고 긴가민가한 생각도 있었을 테니 그 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을 것이다. 그리고 막상 시험이 끝나고 나면 그 당시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마치 포맷이나 한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올해 한문 임용고사는 예년에 비해 유형이 대폭 바뀌었다. 늘 교과교육학은 앞부분에 조금 나오는 식이고 대부분은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내용 파악은 제대로 됐는지 만을 묻는 방식이었던 데 반해, 올해는 전면에 교과교육학적인 지식을 물었으니 말이다. 단순히 암기했어야만 채워 넣을 수 있는 교수학습방법을 여러 곳에서 묻는 경우도 많았고 성취기준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번엔 유형이 대폭 바뀌어 많이 어려웠는데 다들 괜찮어?”라고 묻자 아이들은 첫 임용을 본 사람들답게 유형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풀만 했다고 말하더라. 첫 도전이지만 주눅 들지 않고 시험장에서 느껴지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마주하고 하나하나 풀어낼 수 있던 그 당당함에 박수를 보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처럼 당당하게 임하고 부딪힐 수 있다면 좋은 결과는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 올해 시험은 천안에 가서 봤다. 첫 임용부터 지금까지 무려 13년이나 흘렀는걸~ 깜놀^^;;
임용을 위한 한문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은성이가 “누군가는 많은 원문들을 봐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백문을 보며 원전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요?”라고 짐짓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문으로 임용을 보려는 사람은 이런 고민을 할 것이고, 나도 예전에 5년 동안 임용을 공부할 때나 작년부터 다시 임용을 공부하게 된 순간부터나 이런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분명한 건 여기엔 어떤 정답이란 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자신이 이 방법, 저 방법 모두 해보는 가운데 무엇이 더 맞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올 선생님은 『도올선생 중용강의』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中庸이 가르쳐 주는 것은, 여러분들이 자신의 인생을 생각할 적에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현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추구하고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가능성을 좁히지 말라는 겁니다. 끝까지 뻗어 나가서 이 시대의 위대한 석학, 인물, 기업가들이 되고 또한 자기의 가능성을 폭넓게 발휘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부터 이미 자기의 가능성을 좁혀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의 정신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무한하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포부를 원대하게 갖고 살며 무한히 뻗어나가라! 젊었을 때, 야망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가질수록 좋은 것입니다.
위의 말처럼 공부의 방식에도 첩경은 따로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지 하나는 명확히 해야 한다. 자신의 가능성을 좁히고 자신은 할 수 없을 거라 지레 선을 그어놓고 한정지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방식이든 그 방식을 택해 공부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한문에 대해 맛있다고, 재밌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런 순간들이 여러번 반복되다보면 한문에 대해 자신감도 생기고 그에 따라 합격도 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진 것만으로도 은성이 안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는 사실도 잘 알게 됐다. 열정이 있다면 그건 무엇이든 하게 만들 테니 걱정 말고 야망을 크게 가진 채 맘껏 뻗어나가자.
6시 30분에 만났지만 어느덧 이야기를 하다 보니 11시 30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올 겨울 들어 최고로 춥다던 날이었지만 술기운 탓인지, 좋은 사람들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눠 훈훈해진 탓인지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 우린 아쉬운 나머지 3차를 갔다는 건 안 비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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