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세
세(世)
30년을 1세라 한다. ☞ 원회운세(元會運世)
세가(稅駕)
달리는 말의 멍에를 풀어 쉬게 한다. “사물이 극하면 쇠하나니, 나는 멍에를 풀 바를 모르노라[物極則衰 吾未知所稅駕也].” 『사기(史記)』
세간강륵(世間韁勒)
세상일에 얽매이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세간손익(世間損益)
상평이 일찍이 『주역(周易)』의 손괘(損卦)와 「익괘(益卦)」를 읽고는 탄식하기를 “부귀가 빈천한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내가 알았다마는, 삶과 죽음 중에 과연 어떤 것이 나은지는 아직 알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한다.
세갈(細葛)
가는 올로 짠 베옷.
세갑만은황(洗甲挽銀潢)
은하수이다. 은하수를 끌어다가 무기인 갑옷과 칼과 창을 깨끗하게 씻어 간직해 두었다는 말이다.
세객(說客)
교묘하고 능란한 말솜씨로 각처를 유세(遊說)하고 다니는 사람. 제국(諸國)의 군주(君主)가 저마다 패자(覇者)를 지향하며 패도정치(覇道政治)를 펼쳤던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책사(策士)ㆍ모사(謀士) 또는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세객이 많았음.
세검정(洗劍亭)
창의문에서 북쪽으로 5리 거리에 있다. 세검(洗劍)은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앞두고 김유(金瑬)ㆍ이귀(李貴) 등이 그곳에 모여 거사(擧事)를 모의한 다음 그 물에 칼을 씻어 칼집에 넣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세군(細君)
원래 제후(諸侯)의 부인을 뜻하였는데, 동방삭(東方朔)이 자신의 처를 세군이라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뒤로부터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한 무제(漢武帝)가 관원들에게 하사한 고기를 동방삭이 허락도 받지 않고 칼로 잘라 집으로 가져가자 무제가 자기 비판을 하도록 명하였는데, 이에 동방삭이 “허락도 받지 않다니 이 얼마나 무례한가. 칼을 뽑아 잘랐으니 이 얼마나 씩씩한가. 많이 가져가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청렴한가. 돌아가 세군에게 주었으니 이 얼마나 인자한가[歸遺細君 又何仁也].”라고 하자, 무제가 그만 웃고 말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 卷65 「동방삭전(東方朔傳)」
세군용기합단청(洗群龍驥合丹靑)
출중한 문장 실력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 나라 화가 조패(曹覇)의 유명한 그림 솜씨와 불우한 신세를 읊은 두보(杜甫)의 「단청인(丹靑引)」이라는 시에 “잠깐 사이 대궐 안에 진짜 용마를 그려 놓자, 만고의 보통 말들 깨끗이 씻겨 없어졌네[須臾九重眞龍出 一洗萬古凡馬空].”라는 표현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13
세기(世紀)
제왕세기(帝王世紀)를 말한다. 진(晉) 나라 황보밀(皇甫謐)이 지었는데 총 1권.
세기군평(世棄君平)
한 나라 시대에 엄군평(嚴君平)이란 사람이 학식과 포부를 가지고 세상에 나오지 아니하고 점치는 것을 생계로 삼으면서, 세상에서 군평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군평이 세상을 버린다고 하였다.
세난(說難)
‘신하가 말로써 임금의 마음을 회유하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한비자(韓非子)』의 편명이다.
세념(世念)
세속의 명리(名利)에 관한 생각을 말한다.
세답족백(洗踏足白)
① 남의 빨래를 하였더니 제 발이 희어졌다. ‘남을 위하여 한 일이 자기에게도 이득이 있다’는 뜻이다,
② ‘일을 하고 아무런 보수도 얻지 못하였을 때’를 비유하기도 한다.
세뢰(洗罍)
‘세(洗)’는 관기(盥器)이고, ‘뢰(罍)’는 술그릇이다.
세류(細柳)
세류영(細柳營)으로 한 문제(漢文帝) 때에 주아부(周亞夫)가 군사를 주둔시켰던 군영이다. 군령이 아주 엄하였기 때문에 후에 모범적인 군영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사기(史記)』 卷 57 「주발세가(周勃世家)」 오늘날의 섬서(陝西) 함양시(咸陽市) 서남 지방이다.
세류영(細柳營)
한 문제(漢文帝)때 주아부(周亞夫)가 장군이 되어 세류(細柳)에 군사를 주둔시켜 흉노의 침입을 방비하고 있을 때, 문제가 군사들을 위문하기 위해 영문(營門)에 이르렀으나 군령(軍令)이 없다는 이유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사자에게 부절(符節)을 들려 들여보내 장군에게 지시한 뒤에야 들어갔다. 문제(文帝)가 엄숙한 그 군율에 탄복하면서 ‘진짜 장군(眞將軍)’이라고 찬탄했다 한다. 『사기(史記)』 「강후세가(絳侯世家)」
세류정분애([細柳淨氛埃]
전쟁 없이 군영(軍營)을 잘 다스릴 것이라는 뜻이다. 세류영은 곧 세류에 있는 군영의 이름인데, 한 문제(漢文帝) 때 주아부(周亞夫)가 장군이 되어 이곳에 진(陣)을 쳤을 적에, 그 군영의 규모와 군기가 다른 군영에 비해 월등하므로, 순시차 나왔던 문제가 크게 감동하였다 한다. 『한서(漢書)』 「주아부전(周亞夫傳)」
세린(細鱗)
농어(鱸魚)를 말한다. 소식(蘇軾)의 「후적벽부(後赤壁賦)」에 “입은 크고 비늘은 가늘어서 모양이 송강의 농어와 같다[巨口細鱗 狀如松江之].” 한 말에서 기인한 것이다.
세망(世網)
세상살이에 계루(係累)되는 일을 말한다.
세모(歲暮)
① 깊은 겨울.
② 한 해가 저물어 설을 바로 앞둔 때.
세미(世美)
세제기미(世濟其美)의 준말로, 전대(前代)의 미덕을 후대에서 계승하는 것을 말한다. 『좌전(左傳)』 文公 18年
세병(洗兵)
① 군대(軍隊)를 젖게 한다는 것은 곧 대장(大將)이 출정(出征)하는 것을 말한다. 위 무제(魏武帝)의 병요(兵要)에 의하면 “대장이 출정하려고 할 때 비가 내려서 의관(衣冠)을 적시는 것을 세병(洗兵)이라 한다.”고 하였다.
② 병기를 깨끗이 씻어 거두어 두는 것으로, 전쟁이 끝난 것을 말한다.
세병마(洗兵馬)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시 싸움이 없다는 표시로서 무기와 말을 깨끗이 씻는 것을 이른다.
세병정(洗兵亭)
선조(宣祖) 36년(1603)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충무(忠武)에 창건한 세병관(洗兵館)을 가리킨다.
세병하미만(洗兵河未挽)
갑병은 갑옷과 무기로, 갑병을 씻는다는 것은 곧 전쟁을 그만둠을 뜻하는데, 두보(杜甫)의 세병행(洗兵行)에 “어떻게 하면 장사를 얻어 은하수를 끌어다가, 갑병을 깨끗이 씻어 길이 쓰지 않을꼬[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 한 데서 온 말이다. 『두소릉집(杜少陵集)』 卷六
세부(世婦)
후궁(後宮)의 여관(女官). 정원이 27명이다.
세사(細思)
곰곰이 생각하다.
세서례(洗書禮)
책씻이. 옛날 책을 한권 다 읽고 나면 떡을 해서 나누어 먹던 일. 원래는 어린이들이 서당(書堂)에서 책 한 권을 떼면 부모들이 떡을 해주어 같이 나누어 먹게 하던 데에서 유래된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남조(南朝) 송(宋)의 유의경(劉義慶)이 찬하였고 양(梁) 유효표(劉孝標)가 주석을 달았다. 원명은 세설(世說)로 고대소설집이다. 유의경세설, 세설신서라 불렀으나, 북송(北宋) 이후로 현재의 명칭이 되었으며, 「덕행(德行)」ㆍ언행(言行)부터 혹닉(惑溺)ㆍ구극(仇隙)까지의 36문(門)으로 나눈 3권본으로 정해졌다. 지인소설(志人小說)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선행하는 동류의 재료와 진(晉)나라 배계(裵啓)의 어림(語林)이나 곽반(郭頒)의 위진세어(魏晉世語) 등을 바탕으로 하여, 유의경을 중심으로 한 문인들이 선택, 수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지식인과 중세 호족(豪族)의 생활태도를 생기발랄한 콩트식으로 묘사하였으며, 한말부터 위ㆍ진 무렵의 귀족계급 주변의 사상ㆍ풍조를 후세에 상세히 전하고 있다. 양(梁)나라 유효표(劉孝標)의 주(註)는 나중에 없어진 사료(史料)를 풍부하게 인용하여 육조(六朝) 때의 동류(同類)의 주석인 송나라 배송지(裵松之)의 삼국지주(三國志注), 북위(北魏) 역도원의 수경주(水經注)와 함께 존중된다. 그 밖에 명(明)나라 왕세정(王世貞)의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 등이 있다. 현재 왕조(汪藻)의 서록(敍錄)을 곁들인 송판(宋版; 尊經閣本)이 진정(秦鼎)의 주해 세설전본(世說箋本)과 함께 이용되고 있다.
세성(歲星)
동방(東方)의 목성(木星). 궤도대로 잘 가면 군주(君主)가 복이 있고 농사가 잘 되며 그렇지 못하면 백성들이 질병이 많다고 한다. 『사기(史記)』 天官書 注 / 한(漢) 나라 동방삭(東方朔)이 무제(武帝)를 섬기던 18년 동안에는 세성(歲星)이 하늘에 보이지 않다가 그가 죽고 나자 비로소 하늘에 다시 나타났으므로 무제가 후회하며 탄식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세성재세(歲星在世)
한 무제(漢武帝) 때 동방삭(東方朔)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있는 18년 동안에는 세성이 보이지 않았다가 그가 죽은 뒤에 세성이 다시 나타났다 하여, 그의 전신(前身)이 세성이었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세세(世世)
거듭된 세대, 대대(代代)
세세(歲歲)
해마다
세세향류전(細細香留篆)
가느다랗고 구불구불한 전서의 획이 마치 향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는 데서 한 말이다.
세속오계(世俗五戒)
세속에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승려 원광(圓光)이 화랑(花郞)에게 일려준 다섯 가지 계율. 원광이 중국 수(隋)나라에서 불법(佛法)을 구하고 귀국한 후, 화랑 귀산(歸山)과 추항(箒項)이 찾아가 일생을 두고 경계할 금언(金言)을 청하자, 원광이 아래 다섯 가지 계율을 주었다고 한다. 이는 뒤에 화랑도의 신조가 되어 화랑도가 크게 발전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세수강표(世修降表)
오대(五代) 때 촉(蜀) 나라 사람 이호(李昊)가 네 번이나 항복하는 표문(表文)을 기초(起草)한 것을 기롱하는 말이다. 전촉(前蜀)이 당(唐) 나라에 항복할 때 이호가 그 표문을 기초하였으며, 후주(後周)가 송(宋) 나라에 항복할 때도 역시 이호가 그 표문을 기초하자, 당시 어떤 사람이 그의 집 문에 몰래 ‘대대로 항복하는 표문을 기초한 이가의 집(世修降表李家)’이라고 써 붙여 놓았다. 『송사(宋史)』 卷479 世家列傳 李昊
세심(洗心)
‘마음의 번루(煩累)를 깨끗이 씻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세아전백만(洗兒錢百萬)
안녹산을 황제의 수양 아들이라고 말한 지 이레(七日) 되는 날, 안녹산을 궁중으로 데려다가 아이를 씻긴다고 하여 양귀비가 궁녀들과 같이 수놓은 어린애 옷같이 만들어서 입히고, 포대기로 싸고 하면서 웃고 떠들어대니, 황제가 들어가 보고 아이 씻는 돈(洗兒錢) 백만(百萬)을 하사하였는데도, 안녹산은 돌아가서 곧 반기를 들었으므로, 백만 전(錢)으로 도망치는 것을 샀다고 조롱한 것이다.
세악(細樂)
아주 맑고 가는 악성(樂聲)을 말한다.
세야순풍호(勢若順風呼)
풍부한 학식을 바탕으로 적절한 비유와 표현을 구사하여 잘 알아듣게 한다는 말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높은 산 위에서 손짓을 하면 팔이 더 길어진 것도 아닌데 먼 데에서도 잘 볼 수 있고, 바람결을 타고서 소리 지르면 목소리가 더 커진 것이 아닌데도 더 뚜렷이 들을 수가 있다[而招, 臂非加長也, 而見者遠; 順風而呼, 聲非加疾也, 而聞者彰].”라고 하였다.
세어(世語)
『세설신어(世說新語)』. 남조(南朝) 송(宋)의 유의경(劉義慶)이 지었다.
세요척계(細腰尺髻)
남이 좋아한다고 자기를 희생해가며 무턱대고 따름. 마원(馬援)의 아들 요(廖)가 명덕황후(明德皇后)에게 상소하기를, “전(傳)에 이르기를, ‘오왕(吳王)이 검객(劍客)을 좋아하니 상처입은 백성들이 많았고, 초왕(楚王)이 세요(細腰)를 좋아하니 궁중에는 굶어 죽은 사람이 많았다.’ 하였으며, 또 장안(長安)에서 하는 말들이 ‘성안에서 상투 높은 것을 좋아하니 사방에서 한 자씩이나 높아졌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세원우(洗寃雨)
이 태조(李太祖)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가 오랫동안 부묘(祔廟)되지 못했다가 현종(顯宗) 10년(1669)에 부묘되었다. 이날 정릉(貞陵)에 제사를 지냈는데 갑자기 큰 소나기가 내렸으므로 사람들이 원통함을 씻은 비라 하여 세원우라 일컬었다.
세월여류관아생(歲月如流觀我生)
서능(徐陵)이 양복야(楊僕射)에게 준 글에 “세월이 물 흐르듯 빠르니, 반생(半生)이 얼마나 남았으랴.” 한 데서 인용된 말인 듯하다.
세유(繐維)
영위(靈位)에 치는 휘장을 말한다.
세유백락연후유천리마(世有伯樂然後有千里馬)
세상에 백락(伯樂)이 있어야 천리마(千里馬)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재능(才能)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 진가(眞價)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재능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그대로 썩어 버린다. 한유(韓愈), 「잡설(雜說)」
세율기운모(歲律旣云暮)
소동파(蘇東坡)가 친구에게 보내는 단찰(短札)에, “해는 저물었다. 죽창(竹窓)에 푸른 등불이 깜박이는데, 이 풍취의 반을 그대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한 문구가 있다.
세의훈옥(勢倚熏屋)
지붕 위에 있는 쥐를 연기를 피워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세이(洗耳)
요 임금 때에 허유(許由)의 고사. 요 임금이 천하를 허유에게 맡기려 하니, 받지 않고 영수(潁水)의 양지쪽 기산(箕山) 아래에 숨었다. 또 불러 구주(九州)의 장관(長官)으로 삼으려 하니 허유가 듣지 않고 귀를 더럽혔다 하여 영수에서 씻었다 한다. 『사기(史記)』 「연세가(燕世家)」
세이불문진세사(洗耳不聞塵世事)
요(堯)가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사양하였으나 받지 않고 영수(穎水)에 가서 더러운 말을 들은 귀(耳)를 씻었다.
세전(細氈)
좋은 자리
세정(世情)
세태와 인정.
세존(世尊)
석가세존(釋迦世尊).
세진영(洗塵纓)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滄浪)의 물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는 말이 있다.
세진환하석(勢盡還下石)
무정한 인심을 비유한 말이다. 한유(韓愈)의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 의하면 항간의 주식(酒食) 친구들은 조그마한 이해 관계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되어버리고, 게다가 하나가 함정에 빠지면 구해주기는커녕 도리어 함정으로 밀어넣고 또 돌을 떨어뜨리기까지 한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창려집(昌黎集)』 卷三十二
세초(洗草)
실록의 편찬이 완료된 뒤에 그 초고(草稿)를 없애 버리는 일로, 자하문(紫霞門) 밖에 있던 조지서(造紙署)에서 사초(史草)를 물에 씻어 흐려버리고 그 종이는 다시 제지(製紙)하여 썼다.
세한(歲寒)
추운 계절, 즉 역경(逆境)을 말한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하여, 난세를 당하여야 군자의 절의(節義)를 볼 수 있음을 비유하였다.
세한고절(歲寒孤節)
세월이 추워진 후에도 홀로 지키는 절개.
세한맹(歲寒盟)
절조(節操)를 변치 않겠다는 굳은 맹세를 말한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의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송백이 그 푸른빛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세한(歲寒)은 어지러운 세상에 비유한 것이요, 송백은 절조를 상실하지 않은 군자에 비유한 것이다. 즉 어지러운 세상에도 절개를 잃지 말자는 맹서를 말한 것이다.
세한삼우(歲寒三友)
겨울철 관상용인 세 가지 나무. 곧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를 말한다. 송죽매(松竹梅)
세한송백(歲寒松柏)
날씨가 추워진 후의 송백.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한겨울에도 변색되지 않기에 날이 추워져야 그 지조(志操)와 절개(節槪)가 굳음을 보여주는 진가(眞價)가 드러난다. 군자는 역경에 처하여도 지조와 절의를 굳게 지켜 변치 않음
세한심(歲寒心)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꿋꿋이 서 있는 송백(松柏) 같은 마음.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계절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조락하는 것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하였는데, 이는 어려운 시기를 만나야 군자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변치 않는 절조를 의미한다.
세한연후지송백(歲寒然後知松栢)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송백의 진가를 알게 된다. 즉, 지조와 절개가 굳은 사람은 어려운 상황이 되어야 구별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 유의어: 질풍지(疾風知勁草)
세한의(歲寒意)
역경에 굴하지 않고 절조를 지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추운 계절이 돌아온 뒤에야 송백(松柏)이 끝까지 푸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라고 하였다.
세한정(歲寒情)
어떠한 역경을 만나더라도 절개를 꿋꿋하게 지키는 마음을 말한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추운 겨울이 닥친 뒤에야 솔과 잣나무가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안다.” 하였다.
세한조(歲寒操)
세한은 세한송백(歲寒松柏)의 준말이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추운 겨울철을 지내보아야 송백이 나중에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는데, 후세 시문(詩文) 가운데 이 말로 역경(逆境) 속에서 지조를 변치 않은 사람을 비유하였다.
세한후조(歲寒後凋)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나는 해가 저물어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마른다는 것을 알았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하여, 군자의 굳은 지조는 환난(患難)을 당해야 알 수 있음에 비유한 말이 있다.
세화(歲畵)
정초에 대궐에서 쓰던 그림. 화공(畵工)들로 하여금 미리 그 해에 소용될 그림들(인물ㆍ화훼ㆍ누각 등)을 그려 놓게 한 다음, 그림을 아는 재상에게 명하여 그 작품들의 등급을 매기게 하여 우선 대궐에서 얼마간을 쓰고, 나머지는 재상들이나 근신(近臣)에게 나눠 주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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