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金時習)
有黑衣白衣二童, 手把文卷而出. 一黑質靑字, 一白質朱字. 張于生之左右以示之. 生見朱字, 有名姓. 曰: “現住某國朴某, 今生無罪, 當不爲此國民.”
生問曰: “示不肖以文卷, 何也?” 童曰: “黑質者, 惡簿也. 白質者, 善簿也. 在善簿者, 王當以聘士禮迎之; 在惡簿者, 雖不加罪, 以民隸例勑之. 王若見生, 禮當詳悉.” 言訖, 持簿而入.
須臾飆輪寶車, 上施蓮座. 嬌童彩女, 執拂擎盖, 武隸邏卒, 揮戈喝道. 生擧首望之, 前有鐵城三重, 宮闕嶔峩, 在金山之下, 火炎漲天, 融融勃勃. 顧視道傍人物於火燄中, 履洋銅融鐵, 如蹋濘泥, 生之前路可數十步許, 如砥而無流金烈火, 蓋神力所變爾.
해석
有黑衣白衣二童, 手把文卷而出.
말이 끝나자 검은 옷과 흰옷을 입은 두 동자가 손에 문서를 가지고 나왔다.
一黑質靑字, 一白質朱字.
하나는 검은 문서에 푸른 글자로 썼고, 다른 하나는 흰 문서에 붉은 글자로 쓴 것이었다.
張于生之左右以示之.
동자가 그 문서를 박생의 좌우에서 펴 보기에 들여다보았더니,
生見朱字, 有名姓.
붉은 글자가 보였는데 박생의 성명이 씌어져 있었다.
曰: “現住某國朴某, 今生無罪,
“현재 아무 나라 박아무개는 이승에서 지은 죄가 없으므로,
當不爲此國民.”
이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
生問曰: “示不肖以文卷, 何也?”
박생이 물었다. “나에게 이 문서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童曰: “黑質者, 惡簿也.
동자가 말하였다. “검은 종이의 것은 악인의 명부이고,
白質者, 善簿也.
흰 종이의 것은 선인의 명부입니다.
在善簿者, 王當以聘士禮迎之;
선인의 명부에 실린 사람은 임금께서 선비를 초빙하는 예로써 맞이하십니다.
在惡簿者, 雖不加罪, 以民隸例勑之.
악인의 명부에 실린 사람도 처벌하지는 않지만, 노예로 대우하십니다.
王若見生, 禮當詳悉.”
임금께서 만약 선비를 보시면 예를 극진히 하실 것입니다.”
言訖, 持簿而入.
동자가 말을 마치더니, 그 명부를 가지고 들어갔다.
須臾飆輪寶車, 上施蓮座.
얼마 뒤에 바람을 타고 수레가 달려왔는데, 그 위에는 연좌(蓮座)가 설치되어 있었다.
嬌童彩女, 執拂擎盖,
예쁜 동자와 동녀가 불자(拂子)를 잡고 일산(日傘)을 들었으며,
武隸邏卒, 揮戈喝道.
무사와 나졸들이 창을 휘두르며 ‘물럿거라’고 외쳤다.
生擧首望之, 前有鐵城三重,
박생이 머리를 들고 멀리 바라보니 그 앞에 세 겹으로 된 철성(鐵城)이 있고,
宮闕嶔峩, 在金山之下,
높다란 궁궐이 금으로 된 산 아래 있었는데,
火炎漲天, 融融勃勃.
뜨거운 불꽃이 하늘까지 닿도록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顧視道傍人物於火燄中,
길가에 다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더니,
履洋銅融鐵, 如蹋濘泥,
불꽃 속에서 녹아내린 구리와 쇠를 마치 진흙이라도 밟듯이 밟으면서 다니고 있었다.
生之前路可數十步許,
그러나 박생의 앞에 뻗은 길은 수십 걸음쯤 되어 보였는데,
如砥而無流金烈火,
숫돌같이 평탄하였으며 흘러내리는 쇳물이나 뜨거운 불도 없었다.
蓋神力所變爾.
아마도 신통한 힘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인용
3화: 꿈속에서 지옥에 간 박생
5화: 염라의 극진한 대우와 자기소개
7화: 귀신에 대한 염라의 대답
9화: 제사에서 지천을 사르는 것과 간악한 사람도 용서해주냐는 물음에 대한 염라의 대답
10화: 49제와 절의 폐단을 물은 박생
12화: 윤회와 저승, 그리고 염라직 제안
13화: 임금의 도리와 역할에 대한 논의
14화: 왕위 선위를 승낙한 박생
15화: 박생의 최후
논문: 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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