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염라의 극진한 대우와 자기소개
김시습(金時習)
至王城, 四門豁開, 池臺樓觀, 一如人間. 有二美姝, 出拜扶携而入.
王戴通天之冠, 束文玉之帶, 秉珪下階而迎. 生俯伏在地, 不能仰視.
王曰: “土地殊異, 不相統攝, 而識理君子, 豈可以威勢屈其躬也?” 挽袖而登殿上, 別施一床, 卽玉欄金床也.
坐定, 王呼侍者進茶. 生側目視之, 茶則融銅, 果則鐵丸也. 生且驚且懼, 而不能避, 以觀其所爲. 進於前, 則香茗佳果, 馨香芬郁, 薰于一殿.
茶罷, 王語生曰: “士不識此地乎? 所謂炎浮洲也. 宮之北山, 卽沃焦山也. 此洲在天之南, 故曰南炎浮洲. 炎浮者, 炎火赫赫, 常浮大虛, 故稱之云耳. 我名燄摩, 言爲燄所摩也. 爲此土君師, 已萬餘載矣. 壽久而靈, 心之所之, 無不神通, 志之所欲, 無不適意. 蒼頡作字, 送吾民以哭之, 瞿曇成佛, 遣吾徒以護之. 至於三ㆍ五ㆍ周ㆍ孔, 則以道自衛, 吾不能側足於其間也.”
해석
至王城, 四門豁開,
왕성(王城)에 이르니 사방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池臺樓觀, 一如人間.
연못가에 있는 누각 모습이 한결같이 인간 세상의 것 같았다.
有二美姝, 出拜扶携而入.
아름다운 두 여인이 마중 나와서 절하더니, 모시고 들어갔다.
王戴通天之冠, 束文玉之帶,
임금은 머리에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허리에는 문옥대(文玉帶)를 띠였으며,
秉珪下階而迎.
손에는 규를 잡고 계단을 내려와서 맞이하였다.
生俯伏在地, 不能仰視.
박생이 땅에 엎드려 쳐다보지도 못하자,
王曰: “土地殊異, 不相統攝,
임금께서 말했다. “서로 사는 곳이 달라서 통제할 권리도 없을 뿐 아니라,
而識理君子, 豈可以威勢屈其躬也?”
이치에 통달한 선비를 어찌 위세로 굽히게 할 수가 있겠소?”
挽袖而登殿上, 別施一床,
임금이 박생의 소매를 잡고 전각 위로 올라와 특별히 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卽玉欄金床也.
옥난간에 놓인 금으로 만든 자리였다.
坐定, 王呼侍者進茶.
자리를 잡자, 임금이 하인을 불러 차를 올리게 하였다.
生側目視之, 茶則融銅,
박생이 곁눈질하여 보았더니, 차는 구리를 녹인 물이었고
果則鐵丸也.
과일은 쇠로 만든 알맹이였다.
生且驚且懼, 而不能避,
박생이 놀랍고도 두려웠지만 피할 수가 없었으므로,
以觀其所爲.
그들이 어떻게 하나 보고만 있었다.
進於前, 則香茗佳果,
하인이 다과를 앞에 올려놓자, 향긋한 차와 맛있는 과일의
馨香芬郁, 薰于一殿.
향긋한 향내가 온 전각에 퍼졌다.
茶罷, 王語生曰:
차를 다 마시자 임금이 박생에게 말했다.
“士不識此地乎? 所謂炎浮洲也.
“선비께선 이 땅이 어디인지 모르시겠지요. 속세에서 염부주(炎浮洲)라고 합니다.
宮之北山, 卽沃焦山也.
왕궁의 북쪽 산이 바로 옥초산(沃焦山)입니다.
此洲在天之南, 故曰南炎浮洲.
이 섬은 하늘과 땅의 남쪽에 있으므로, 남염부주(南炎浮洲)라고 부릅니다.
炎浮者, 炎火赫赫,
‘염부’라는 말은 불꽃이 활활 타서
常浮大虛, 故稱之云耳.
항상 공중에 떠 있기 때문에 불려진 이름이지요.
我名燄摩, 言爲燄所摩也.
내 이름은 염마로 불꽃이 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요.
爲此土君師, 已萬餘載矣.
내가 이 땅의 임금이 된 지가 벌써 만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壽久而靈, 心之所之, 無不神通,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영험해져, 마음 가는 대로 하여도 신통하지 않음이 없고,
志之所欲, 無不適意.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뜻대로 되지 않는 적이 없었습니다.
蒼頡作字, 送吾民以哭之,
창힐이 글자를 만들 때에는 우리 백성을 보내어 울어주었고,
瞿曇成佛, 遣吾徒以護之.
석가【구담(瞿曇): Gautama의 음역으로 석가의 성씨이다.】가 부처가 될 때에는 우리 무리를 보내어 지켜 주었소,
그러나 삼황(三皇)ㆍ오제(五帝)ㆍ주공ㆍ공자는 자기의 도를 지켰으므로,
吾不能側足於其間也.”
나는 그 사이에 바로 설 수가 없었소.”
인용
3화: 꿈속에서 지옥에 간 박생
5화: 염라의 극진한 대우와 자기소개
7화: 귀신에 대한 염라의 대답
9화: 제사에서 지천을 사르는 것과 간악한 사람도 용서해주냐는 물음에 대한 염라의 대답
10화: 49제와 절의 폐단을 물은 박생
12화: 윤회와 저승, 그리고 염라직 제안
13화: 임금의 도리와 역할에 대한 논의
14화: 왕위 선위를 승낙한 박생
15화: 박생의 최후
논문: 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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