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춘
춘(椿)
매우 오래 사는 나무로,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상고(上古)에 대춘(大椿)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8천 세를 봄으로 삼고 8천 세를 가을로 삼는 영목(靈木)이다.” 하였다. 장수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춘각(春脚)
봄의 다리(春脚)는 ‘다리 달린 봄날(有脚陽春)’의 준말로서 어진 정치를 하는 지방수령을 말한다.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 “송경(宋璟)이 태수가 되어 백성을 사랑하니 당시 사람들이 모두 다리 달린 봄날이라 했다.” 하였다.
춘경(春鏡)
봄단장하는 거울, 즉 춘장경(春妝鏡)의 준말이다. 맹호연(孟浩然)의 춘정(春情) 시에 “청루의 주렴에 아침 햇살 비치니, 분 연지 봄단장에 거울을 재촉하네[靑樓曉日珠簾映 紅粉春妝寶鏡催].” 하였다.
춘경(春卿)
이규보(李奎報)의 자(字)이다.
춘경백수(春卿百首)
춘경은 고려(高麗) 시대 문장가인 이규보(李奎報)의 자인데, 이규보가 특히 부안현(扶安縣)의 모든 경치를 두고 읊은 시가 많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춘관(春官)
예부(禮部)의 별칭이다.
춘균등연촉(椿菌等延促)
현상적 차별성은 절대적 지평(地平) 위에서 볼 때 모두 녹아 없어진다는 말이다. 대춘(大椿)은 1만 6000년을 산다는 나무 이름이고, 조균(朝菌)은 아침에 생겨나 곧바로 시들어버리는 버섯 이름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춘년(椿年)
춘수(椿壽)와 같은 뜻으로 곧 오래 삶을 말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상고 때 대춘(大椿)이 있었는데, 8천 년으로 한 봄을 삼고 8천 년으로 한 가을을 삼는다.” 하였다.
춘년어혜고(椿年語蟪蛄)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쓰르라미는 여름 한철에만 생겨났다가 없어지기 때문에 봄과 가을을 모르는데 저 8천 년이나 오래 묵은 춘나무를 어찌 알겠느냐.” 했는데, 얕은 식견으로는 깊은 도량을 모른다는 비유이다.
춘니홍착개(春泥鴻着介)
기러기가 앉았던 진흙에 남은 발자국은 곧 없어진다는 뜻이다.
춘당(椿堂)
살아 계신 남의 아버지를 말한다.
춘당(春塘)
창경궁(昌慶宮) 안에 있는 대(臺)를 이른다. 왕실에 경사가 있을 때 임금이 이곳에 나아가 임시로 문무과(文武科)의 시험을 보이던 곳이다. 춘당대시(春塘臺試).
춘당초(春塘草)
남조(南朝) 송(宋)의 사영운(謝靈運)이 평소에 족제(族弟) 사혜련(謝惠連)을 마주 대하면 좋은 시가 지어졌는데, 언젠가 영가현(永嘉縣)의 못가에서 시를 지으려고 해도 하루종일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다가 갑자기 꿈속에서 혜련을 보고 ‘못가에는 봄풀이 돋아나누나(池塘生春草).’라는 시귀를 지었다고 한다. 『송서(宋書)』 卷五十三 「사혜련전(謝惠連傳)
춘대(春臺)
날씨가 좋은 봄날에 올라가서 좋은 경치를 바라다보는 곳으로, 태평성대를 말한다.
춘란추국(春蘭秋菊)
봄의 난초나 가을의 국화. 각기 특색이 있어 어느 것이 낫다고 할 수 없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춘령(春欞)
춘(春)자는 춘(椿)자와 같이 쓰인 것인데 8천 년을 봄으로 삼고 8천 년을 가을로 삼는다는 신령한 나무이다. 흔히 남의 장수를 축복할 때 인용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춘로추상출척(春露秋霜怵惕)
군자(君子)는 봄에 이슬이 내리거나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그것을 밟아 보고는 반드시 돌아간 어버이를 위하여 슬픈 마음이 생긴다는 데서 온 말이다. 『예기(禮記)』 「제의(祭義)」
춘명문(春明門)
당(唐) 나라 서울 장안성(長安城)의 동남쪽에 있는 성문의 하나이다. 백낙천(白樂天)의 「송장산인귀숭양시(送張山人歸嵩陽詩)」의 “춘명문 밖 높다란 성 그곳을 곧바로 내려가면 그게 바로 숭산길일세[春明門外城高處 直下便是嵩山路].”를 인용하였다.
춘모계(春暮稧)
동진(東晉) 때 왕희지(王羲之)가 영화(永和) 9년인 계축년 3월 상사(上巳)일에 회계(會稽)의 난정(蘭亭)에 모여서 군현(羣賢) 소장(少長)과 함께 계(稧)를 닦은 고사에서 온 것이다. 『난정집서(蘭亭集序)』
춘몽파(春夢婆)
『후청록(侯鯖錄)』에 “동파 노인(東坡老人)이 창화(昌化)에 있으면서 등에 큰 바가지를 지고 전야(田野)에 행음(行吟)하고 다닐 때, 70세나 되는 한 노파(老婆)가 동파에게 ‘한림 학사(翰林學士)로 있었던 옛날의 부귀는 일장춘몽이라오.’하자, 동파가 그 말을 옳게 여겼는데, 이때부터 그 마을 사람들이 이 노파를 춘몽파라고 불렀다.” 하였다.
춘반(春盤)
입춘일(立春日)에 춘병(春餠)과 생채(生菜)를 만들어 먹는 것을 말한다.
춘방(春坊)
①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동궁(彤弓) 즉 세자궁(世子宮)을 가리킨다.
② 태자(太子)의 궁전인 춘궁(春宮)을 달리 일컫는 말이다.
춘번(春幡)
① 봄이 왔음을 뜻하는 깃발. 입춘일(立春日)에 문앞에 세워 봄이 돌아온 상징으로 삼았음.
② 금(金)ㆍ은(銀)ㆍ나(羅)ㆍ채(綵) 등으로 만든 꾸미개, 즉 번승(旛勝)을 이른다. 옛날 입춘일(立春日)이면 이것을 백관(百官)들에게 나누어주어서 이를 복두(幞頭) 위에 달고 입조(入朝)하여 하례를 올리게 하였는데, 하례를 마치고 나서는 각각 이를 복두 위에 단 채로 귀가(歸家)했다고 한다.
춘복성(春服成)
“봄 3월에 봄 옷이 이미 되었거든 관자 5, 6명과 동자 6, 7명과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 바람 쏘이고, 읊으며 돌아오리이다.” 증점(曾點)이 공자(孔子) 앞에서 뜻을 말한 말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춘복초성려경지(春服初成麗景遲)
공자(孔子)가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하라 하였더니 다른 제자들은 모두 정치에 뜻을 두었으나, 증점(曾點)만은 “늦은 봄,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어른 5~6명과 동자 6~7명과 함께 기수(沂水)에 목욕하고 무우(舞雩)에 바람 쏘이며 시를 읊고 돌아오겠습니다.” 하니 공자는 외물(外物)에 구하지 않는 그의 높은 뜻을 허여하였다. 여기서는 이것을 두고 지은 시를 말한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춘부장(椿府丈, 春府丈)
살아 계신 남의 아버지를 말한다.
춘빙루화(春氷鏤花)
얼음에 꽃을 아로새기면 이내 녹아 없어져버리듯이 가치를 남기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참고로 송 나라 황정견(黃庭堅)의 송왕랑(送王郞)이란 시에 “모래를 쪄서 미음을 지음에 끝내 배부르지 않고, 얼음에 문자를 아로새기면 헛되이 공교로울 뿐이라네[炊沙作糜終不飽 鏤氷文字費工巧].”하였다.
춘사(春社)
입춘(立春)이 지난 뒤 5일째 되는 무일(戊日)에 풍년을 기원하여 토지신에게 지내는 제사.
춘성(春城)
덕원(德源)의 옛 이름이다.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의 어향(御鄕)으로서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된 곳이다.
춘수하채무(椿樹下彩舞)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춤을 추는 것을 말한다. 참죽나무는 아버지를 가리킨다.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나이 70세에 부모가 아직 살아 있었으므로 항상 꼬까옷을 입고 어린아이 시늉을 해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북당서초(北堂書鈔)』 卷129
춘수훤화(椿樹萱花)
춘나무와 원추리꽃. 춘나무는 부친을 비유하고 원추리는 모친을 비유한 것이다.
춘앵(春鶯)
당(唐)의 악곡사명(樂曲詞名) 중에 춘앵전(春鶯囀)이 있다.
춘유각(春有脚)
당(唐) 송경(宋璟)이 백성을 사랑하므로 그때 사람들이 모두 송경을 “다리 있는 따스한 봄”이라 일렀다.
춘인추사(春蚓秋蛇)
글씨가 가늘고 꼬부라져서 필세(筆勢)가 약함을 비유한 말이다.
춘일사천유(春日斜川游)
도연명(陶淵明)이 나이 37세 되던 해 정월 5일에 율리(栗里)와 가까운 사천(斜川)에 나가 노닐면서 지은 ‘유사천(遊斜川)’이라는 유명한 시가 전해온다. 『도연명집(陶淵明集)』 卷2
춘장(春場)
봄날 교외(郊外)의 빈터. 구양수(歐陽修)의 「공자시(公子詩)」에, “下馬春場鷄鬪距 鳴弦初日鷄驚媒”라고 보인다.
춘장(椿丈)
살아 계신 남의 아버지를 말한다.
춘조(春曹)
예조(禮曹)의 별칭이다. 이준(李埈)이 인조(仁祖) 10년에 예조 참의(禮曹參議)로 임명되었다가 이듬해 휴가를 얻어 고향인 상주(尙州)로 내려간 뒤, 인조 13년에 사은(謝恩)하러 서울로 올라오다가 충주(忠州)에 이르러 병 때문에 글을 올리고 다시 시골로 돌아가 6월에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춘주(春酒)
겨울에 빚은 술. 봄에 빚어서 겨울에 익은 술이라고도 한다. 『시경(詩經)』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춘주를 만들어 오래 살기를 빈다” 하였다.
춘첩자(春帖子)
① 옛날 궁중(宮中)에서 입춘(立春)이 되면 황제ㆍ황후ㆍ태자의 궁에다 모두 축하하는 시를 써서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 한다.
② 입춘(立春)에 대궐 안 기둥에 써붙이는 주련(柱聯)을 말한다. 이는 본디 제술관(製述官)에게 명하여 하례(賀禮)하는 시를 지어 올리게 한 다음 종이에 써서 붙인 것이다.
춘초구(春草句)
진(晉) 나라 사령운(謝靈運)이 지은, “못에 푸른 풀이 났다[池塘生靑草].”는 유명한 시는, 그의 죽은 아우 사혜련(謝惠連)을 꿈에 보고서 영감이 생겨서 지었다 한다.
춘초애왕손(春草哀王孫)
고향땅을 떠난 사람의 수심을 불러일으키는 정경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회남소산(淮南小山)이 지은 『초사(楚辭)』인 「초은사(招隱士)」의 “왕손의 노닒이여 돌아가지 않고, 봄풀이 자람이여 우거졌도다[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에서 온 말이다.
춘총(春蔥)
봄의 여린 파잎처럼 가냘픈 미인의 손을 비유한 말이다.
춘추(春秋)
공자(孔子)가 노(魯) 나라 사(史)에 의거(依據)하여 지은 경(經). 필법(筆法)이 엄정(嚴正)하여 공자 자신도, “후세에 나를 알아줄 것도 그 춘추(春秋)며, 나를 죄 줄 것도 그 춘추(春秋)이다[知我者其惟春秋乎! 罪我者其惟春秋乎].”고 술회(述懷)했다 한다. 춘추(春秋)는 노 은공(魯隱公)에서 시작하여 애공(哀公)에서 끝났는데 그 기간이 2백 42년이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춘추곤월엄(春秋袞鉞嚴)
춘추(春秋)의 필법(筆法)은 포폄(褒貶)이 매우 엄격하여, 한 글자의 포양이 곤룡포(袞龍袍)보다 영광스럽고 한 글자의 폄척이 부월(斧鉞)보다 엄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고사성어고(故事成語考)』 「문사(文事)」
춘추오패(春秋五覇)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5인의 패자(覇者)를 뜻하는 고사성어다.
춘추필법(春秋筆法)
오경(五經)의 하나인 춘추(春秋)와 같이 비판의 태도가 썩 엄정함을 이르는 말이다. 대의명분을 밝히어 세우는 사실의 논법을 일컫기도 한다.
춘치자명(春雉自鳴)
‘봄철의 꿩이 스스로 운다’는 말로, ‘시키거나 요구하지 아니하여도 제풀에 하는 것’을 말한다.
춘팔천(椿八千)
춘나무란 상고 시대에 8천년을 봄으로 삼고 8천 년을 가을로 삼았다는 최장수의 나무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춘풍제상(春風齊相)
춘추 때 제(齊)나라의 현상(賢相) 안영(晏嬰). 어진 이로 유명했다.
춘풍추우(春風秋雨)
봄철에 부는 바람과 가을에 내리는 비. 곧 지나가는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춘훤(椿萱)
남의 부모를 함께 높여 부른다. 춘(椿)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대춘(大椿)으로 아버지를 뜻하고, 훤(萱)은 『시경(詩經)』 위풍(衛風) 「백혜(伯兮)」에 나오는 훤초(諼草)로 어머니를 말한다.
춘휘보하방(春暉報何方)
맹동야(孟東野)가 어머니를 생각한 시에, “한 치 풀의 마음(寸草心)으로 봄날 빛 은혜를 갚기 어렵네.” 하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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