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과
과갈(瓜葛)
인척(姻戚) 관계.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처럼 서로를 의지하는 친족 관계나 사회적 인간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과경(過庚)
복이 지나다. 삼복(三伏)은 언제나 경일(庚日)이므로 과경이라 하였다.
과공비례(過恭非禮)
지나치게 공손(恭遜)한 것은 예(禮)가 아니라는 데서, 지나친 공손은 도리어 실례(失禮)가 된다는 말이다. 지나치게 공손하면 아첨이 되는 것이니 무슨 일이나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다.
과기(瓜期)
참외가 익을 시기란 뜻으로, 어떤 직무를 띠고 멀리 나가있던 벼슬아치들이 임기가 만료되어 돌아오게 되는 것, 부임하였다가 교대하는 시기를 말한다. 제 나라 양공이 연칭(連稱)과 관지부(管至父)를 규구(葵丘)로 보내어 지키게 하면서 ‘외가 익을 때 보내니 명년 외가 익을 때 교대시키겠다.’고 약속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좌전(左傳)』 莊公 八年
과기염염징황일(瓜期苒苒徵黃日)
한(漢) 나라 때 황패가 영천태수(潁川太守)가 되어 큰 치적(治績)을 올리고 바로 경조윤(京兆尹)으로 징소(徵召)되었던 일을 가리킨다. 『한서(漢書)』 卷八十九
과대망상(誇大妄想)
턱없이 과장하여 그것을 믿는 망령된 생각. 사실보다 과장하여 지나치게 상상하는 이치에 닿지 않는 망령된 생각을 말한다.
과두(科斗)
과두(蝌蚪)로서 서체의 일종이다. 과두문자(蝌蚪文字)의 준말로 전문(篆文) 이전에 사용된 가장 오래된 글자로서 글자의 획이 올챙이 모양과 같이 생긴 것을 말한다.
과두문자(蝌蚪文字)
「설문해자서(說文解字序)」에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이었던 창힐(肹頡)이 새의 발자국을 보고서 처음으로 서계(書契)를 창조하였다[黃帝之史倉頡 見鳥獸蹏迒之迹 知分理之可相別異也 初造書契].”라 하였는데, 모양이 올챙이와 같다 하여 과두문자(蝌蚪文字) 또는 과두조전(蝌蚪鳥篆)이라 한다.
과두시절(蝌蚪時節)
개구리가 올챙이였던 시절이라는 뜻으로, 현재가 과거에 견주어 대단히 발전된 경우에 그 발전되기 전의 과거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라(蜾蠃)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완(小宛)」에 “나나니벌(蜾蠃)은 토봉(土蜂)으로, 뽕나무벌레를 물어다 나무 구멍에 둔 지 7일이 되면 뽕나무벌레가 나나니벌 새끼로 화한다.”라고 하였다.
과라명령(蜾蠃螟蛉)
나나니나 명령(螟蛉)은 예의나 따지는 도덕군「자로(子路)」 하찮은 사람을 가리킨다. 유령(劉伶)의 주덕송에 “두 도덕군자가 옆에서 모시고 서 있는데, 마치 나나니나 명령과 같았다[二豪侍側焉, 如踝蠃之螟蛉].”라 하였다. 「주덕송(酒德頌)」
과령문장(過嶺文章)
당(唐) 나라 백낙천(白樂天)이나 소동파(蘇東坡)처럼 한때 곤경에 처했던 시문의 대가들과 같은 문장이라는 말이다. 조정에서 밀려나 좌천될 적에 산 능선을 넘어가면서 지은 시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낙천의 ‘초폄관과망진령(初貶官過望秦嶺)’이라는 시와 동파의 ‘과령 2수[過嶺二首]’ 및 ‘과령기자유(過嶺寄子由)’라는 시가 유명하다. 『백락천시집(白樂天詩集)』 卷15·『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45
과만(瓜蔓)
오이 넝쿨이 한창 뻗어나간다는 뜻으로 “삼월도화수 오월과만수(三月桃花水 五月瓜蔓水)”처럼 보통은 음력 5월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과만수(苽蔓水)
5월의 물을 이른다. 5월에 오이 덩굴이 뻗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한다.
과맥전대취(過麥田大醉)
밀 밭을 지나는데 밀로 만든 누룩을 생각하고 취하게 됨. 즉,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을 놀리는 말이다.
과문불입(過聞不入)
아는 사람의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아니함을 이른다.
과물탄개(過勿憚改)
잘못을 깨닫거든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 / 『논어(論語)』 「학이(學而)」ㆍ「자한(子罕)」
과반무인향자상(裹飯無人餉子桑)
급한 처지를 돌봐 줄 친구 하나 없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자여(子輿)와 자상(子桑)이 친구로 지냈는데, 장맛비가 열흘이나 계속되자, 자상의 처지를 생각하여 자여가 밥을 싸 들고 먹여 주러 찾아갔다[裹飯而往食之].”라고 하였다.
과보(夸父)
신화 속에 나오는 사람이거나 부족의 명칭이라고도 한다. 과보가 제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해를 쫓아가고자 하여 우곡(嵎谷)까지 쫓아갔는데, 목이 마르자 하수(河水)와 위수(渭水)의 물을 마셨으나 물이 부족하였다. 이에 다시 대택(大澤)의 물을 마시려고 하였는데,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중도에서 목이 말라 죽었다. 『산해경(山海經)』과 『회남자(淮南子)』에 과보국(夸父國)에 관한 기록이 보이는데, 그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거인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과보갈(夸父渴)
과보는 고대 신화의 인물이다. 과보가 태양을 쫓아가다가 목이 말라서 하수(河水)와 위수(渭水)의 물을 먹고, 다시 북쪽의 대택(大澤)을 먹으려고 하였으나 도착하기 전에 목이 말라 죽었다. 그가 버린 지팡이가 살아서 등림(鄧林)의 숲이 되었다. 『산해경(山海經)』 「해외북경(海外北經)」
과보력갈(夸父力竭)
과보(夸父)가 태양을 쫓아가다가 목이 마르자 하수(河水)와 위수(渭水)의 물을 마시고 그것도 부족하여 북쪽으로 대택(大澤)에 가서 들이켰는데, 급기야는 갈증이 나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는 신화가 전해 온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과보추일(夸父追日)
자기의 역량(力量)을 모르고 큰일을 계획함을 이르는 말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과보축일(夸父逐日)
과보는 명계(冥界)의 신 후토(后土)의 후예로, 거인이었다. 그는 북방 황야의 성도(成都) 재천산(載天山) 위에 사는데, 귀에는 누런 뱀 두 마리를 걸고, 손에도 누런 뱀 두 마리를 쥐고 다녔다. 과보는 큰 걸음을 내딛어서 타는 듯 붉은 태양을 뒤쫓아갔는데, 태양이 산으로 지는 우곡(禺谷)에서 마침내 태양을 따라잡았다. 그러나 이때, 그는 참기 힘든 갈증을 느끼고 곧장 달려가서 황하(黃河)와 위하(渭河)의 물을 마셨다. 강물을 다 마셔버린 후에도 그는 여전히 갈증을 참을 수 없어 즉시 다시 북방의 큰 호수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그는 그곳까지 가지 못한 채 목이 말라 죽고 말았다. 과보가 죽을 때 그의 지팡이를 버리자 이 지팡이는 갑자기 변해 푸른 나뭇잎에 과실이 주렁주렁한 복숭아숲을 이뤘다. 과보가 해를 쫓는 이 신화는 『산해경(山海經)』의 「해외북경(海外北經)」과 「대황북경(大荒北經)」에 보인다.
과보하장(夸父荷杖)
과보는 사람 이름이다. 『산해경(山海經)』 해외 북경(海外 北經)에 “과보가 해를 쫓아가다가 8일 만에 목이 말라 하위(河渭)에서 물을 먹고 부족하여 북쪽 대택(大澤)으로 물을 마시러 가다가 이르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가 짚고 간 지팡이가 화해서 등림(鄧林)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 인용: 叢石亭觀日出, 소화시평 상83, 소화시평 상88, 소화시평 하21
과부적중(寡不敵衆)
적은 수효로는 많은 수효를 대적하지 못함을 이른다. / 유의어: 중과부적(衆寡不敵)
과분(瓜分)
땅을 신하에게 나누어 줌. 과분은 오이를 쪼개듯 땅을 나누어 봉함을 뜻한 말이다. / 인용: 進三國史略箋(권근)
과비(夸毗)
소인배(小人輩)를 지칭하는 말이다. 과는 과장의 뜻이고 비는 빌붙음의 뜻으로, 소인이란 큰 소리로 과장하지 않으면 반드시 유언(諛言)으로 아첨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에 “과비하여 위의를 미란시키지 말라[無爲夸毗, 威儀卒迷].”라고 하였다.
과비자(夸毗子)
사람에게 아첨을 떨며 출세욕에 눈이 먼 자들을 가리킨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
과상청승(瓜上靑蠅)
원미지(元微之)는 처신이 깨끗하므로 재상이 되어 조당(朝堂)에 모였을 때에 마침 참외를 먹는데 파리가 날아와서 붙으니, 무원형(武元衡)이 파리를 쫓으며 “이 따위가 어디서 와서 여기에 모여드느냐.”라 하였다. 그것은 원미지를 욕한 것이었다.
과송벌수(過宋伐樹)
공자(孔子)가 조(曺)를 떠나 송(宋)을 지날 때 제자들과 더불어 큰 나무 아래서 예(禮)를 익혔더니, 송의 사마(司馬) 환퇴(桓魋)가 공자를 죽이고자 그 나무를 찍고 뽑았다. 『사기(史記)』 卷47 「공자세가(孔子世家)」
과송액(過宋厄)
송 나라를 지나갈 때 액을 당했다는 뜻이다. 공자(孔子)가 송 나라를 지나갈 때 송 나라의 사마(司馬) 환퇴(桓魋)가 죽이려고 벼르자 평민의 복장으로 변장하여 위기를 넘겼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과시환(裹屍還)
한(漢) 나라 마원(馬援)의 말에 “대장부는 마땅히 전장에서 죽어서 말(馬)가죽에 송장을 싸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라고 하였다.
과신라(過新羅)
한 생각을 일으키면 그 순간에 진정한 도의 체득과는 거리가 있게 된다는 ‘동념즉괴(動念卽乖)’의 뜻과 같은 말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한 승려가 금강 일척전(金剛一隻箭)에 대해서 물으니, 조사(祖師)가 ‘벌써 신라를 지나갔다(過新羅國去)’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소식(蘇軾)의 시에도 “나의 삶 역시 자연의 변화 따라 밤낮으로 물처럼 흘러가나니, 찰나(刹那)의 한 생각이 신라를 이미 지나간 것을 깨닫겠노라[我生乘化日夜逝 坐覺一念逾新羅]”라는 표현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17 「백보홍(百步洪)」
과아(夸娥)
옛날 선인(仙人)의 이름이다. 산을 등에 지고 옮겼다는 신력(神力)의 소유자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설화에 등장한다. 상제(上帝)가 과아씨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태행(太行)·왕옥(王屋) 두 산을 지게 해서 하나는 삭주(朔州)의 동쪽에 갖다 놓고, 하나는 옹주(雍州)의 남쪽에 갖다 놓았다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과아씨(夸娥氏)
북산(北山)의 우공(愚公)이 앞에 산이 가로막혀 통행이 불편하였으므로 가족들과 함께 산을 옮기려고 매일 흙더미를 덜어내었는데, 이에 감동한 천제(天帝)가 신력(神力)의 소유자인 과아씨를 내려보내 그 산을 등에 업고 다른 곳에 옮기게 했다는 설화와 신선이 산다는 발해(渤海) 동쪽의 삼신산이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으며 가라앉기도 하고 떠다니기도 하므로 천제가 열다섯 마리의 큰 자라에게 명하여 이를 떠받치게 했다는 설화가 있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과애복상(過哀卜商)
복상(卜商)은 공자의 제자인데 자(字)는 자하(子夏)이다. 자하가 그 아들을 굶기고 애통하여 눈이 멀었다.
과여불급(過如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과연진(誇燕秦)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에 “연(燕) 나라와 진(秦) 나라에는 천 그루의 밤나무 숲이 있다[燕ㆍ秦千樹栗].”라고 하였다.
과와(夸媧)
과아(夸蛾)와 여와씨(女媧氏)로 전설적인 인물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원래 태행(太行)·왕옥(王屋) 두 산은 기주(冀州)의 남쪽과 하양(河陽)의 북쪽에 있었는데 상제(上帝)는 과아씨의 두 아들을 명하여 두 산을 져다가 하나는 삭동(朔東)에, 하나는 옹남(雍南)에 갖다 놓게 했다.”라 하였으며 “또 하늘에 구멍이 뚫렸으므로 여제(女帝)인 여와씨가 오색 돌을 달구어 때웠다.”라 하였다.
과용서(戈舂黍)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예법을 따르지 않고 시서만 가지고 일을 하면, 마치 손가락으로 하수(河水)를 헤아리고 창으로 기장을 찧는 것처럼 일을 성취하기 어렵다[不道禮憲, 以詩ㆍ書爲之, 譬之猶以指測河也, 以戈舂黍也, 以錐飡壺也, 不可以得之矣].”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과운금루(過雲金縷)
옛날 진청(秦靑)이 노래를 잘 불러, 그 소리가 가는 구름을 멈추게 하였다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이다. 모든 사물이 정도(正道)를 지나침은 도리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즉 사물은 중용을 중히 여겨야 됨을 이른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 유의어: 과여불급(過如不及).
과이분분만규성(過耳紛紛萬竅聲)
조정에 어려운 일이 발생하여 별별 의논과 주장들이 난무하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큰 땅덩어리가 숨을 내뿜는 것을 바람이라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모르지만 일단 일어났다고 하면 만 개의 구멍이 노하여 부르짖기 시작한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號].”라는 말이 있다.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하고서 고치지 않는 것을 이른다.
과이불개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을 ‘잘못’이라 하는 것이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마라. 즉 남의 의심을 받을 짓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외밭에 신을 들여놓지 않음. 곧 남에게 의심을 살만한 일은 하지 않음의 비유.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과 같은 뜻의 말이다.
과전이하(瓜田李下)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자두나무 밑에선 갓을 고쳐 신지 말라.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이다.
과정(苽亭)
고려 의종(毅宗) 때 정서(鄭敍)의 호이다. 정서는 고려조에서 벼슬이 내시랑중(內侍郞中)에 이르고 재예(才藝)가 있어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환자(宦者)들의 모략을 받아 동래(東萊)로 유배되어 오랫동안 풀리지 않자, 금곡(琴曲)을 지어 타며 뜻을 붙였는데, 그 가사(歌詞)가 매우 처량하여 뒷사람들이 이를 과정곡(瓜亭曲)이라 불렀다.
과정훈(過庭訓)
“공자(孔子)가 일찍이 혼자 서 계신데, 아들 이(鯉)가 뜰을 지나니, 공자가 그에게 ‘시(詩)를 공부하느냐[學詩乎].’라고 물으며 가르침을 베풀었다” 한다. 『논어(論語)』 「계씨(季氏)」
과제약적자(科第若摘髭)
아주 쉽게 과거 급제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한유(韓愈)가 최립지(崔立之)에게 부친 시에 “해마다 과거 급제를 따내되 턱 밑의 수염을 뽑듯 하누나[連年收科第 若摘頷底髭]”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 卷五』
과조(瓜棗)
한(漢) 나라 때 방사(方士) 이소군(李少君)이 일찍이 해상(海上)에서 노닐다가 선인(仙人) 안기생(安期生)을 만났는데, 안기생은 크기가 마치 오이(瓜)만한 대추(棗)를 먹고 있더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
과즉물탄개(過卽勿憚改)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뜻으로, 어떤 잘못을 범했을 때는 그 즉시 바르게 고치라는 말이다. 『논어(論語)』 「학이(學而)」ㆍ「자한(子罕)」 / 유의어: 과물탄개(過勿憚改)
과체(瓜遞)
임기가 차서 벼슬이 갈림을 말한다.
과축(薖軸)
『시경(詩經)』 위풍(衛風) 「고반(考槃)」 편에 나오는 말로, 한가한 은퇴 생활을 말한다.
과탈자(夸奪子)
명리(名利)만을 좇는 무리들을 말한다.
과파(戈波)
이 두 글자는 서법(書法)의 과법(戈法)과 파법(波法)을 가리키는 말로서, 글씨 쓰는 것을 이른 말이다.
과피접(瓜皮艓)
과피선. 소선(小船)의 일종이다.
과하마(果下馬)
키가 작아 ‘과일나무 아래’로도 다닐만한 말(馬). 키가 작은 조랑말 따위로서 타고서 과실나무 밑으로 지날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었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과하참(果下驂)
아주 작은 말을 이른다. 과수(果樹)의 밑을 다니기에 알맞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혁지시(裹革之屍)
말가죽에 싼 시체.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시체를 말한다.
과혁초심(裹革初心)
나라를 위해 적과 싸워 장렬하게 전사한 뒤 말가죽에 싸여 돌아오려고 했던 당초의 마음이란 뜻이다.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사나이는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어 말 가죽에 시체를 싸 가지고 돌아와 땅에 묻혀야 한다[男兒要當死于邊野 以馬革裹尸還葬耳].”라고 말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卷24 「마원열전(馬援列傳)」
과호교렵(誇胡校獵)
한 성제(漢成帝)가 호인(胡人)에게 뻐기려고 사냥터인 장양궁(長楊宮)에 가서, 군민으로 하여금 사방에서 짐승을 쫓게 해 대량으로 잡은 뒤, 사웅관(射熊館)에 이들을 풀어놓고는 호인에게 맨손으로 잡도록 한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 下
과휘일(戈揮日)
노 양공(魯陽公)이 한(韓) 나라와 싸울 때에 날이 저물어 가므로 창으로 해를 휘둘러 삼사(三舍)를 멈추게 했다 한다. 『사문유취(事文類聚)』 「천도부(天道部)」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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