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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한글역주, 제1장 주자학과 『효경간오』 - 송나라는 매스컴시대 본문

고전/효경

효경한글역주, 제1장 주자학과 『효경간오』 - 송나라는 매스컴시대

건방진방랑자 2023. 3. 29.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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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나라는 매스컴시대

 

 

앞서 말했듯이 주희45~6세 때에 학용장구(學庸章句)의 초고를 완성했다.

 

그리고 57세 때 효경간오를 썼다. 46세 때 탈고한 대학장구가 과연 어떠한 모습의 것이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주희는 대학장구에 대하여 각별한 애착을 지니고 끊임없이 수정작업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71세로 세상을 뜨기 사흘 전까지 대학장구에 수정을 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여튼 대학장구의 초고를 46세 때 탈고한 후 11년 후에 효경에 손을 대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각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주희가 사서(四書)새로운 유학운동의 시발점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우선 그의 정통론의 구상과 관련이 있다. 주자는 학문의 보편성을 매우 강조한 사람이다. 학문의 보편성이란, 우선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에게 즉 일반대중에게 학문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송대는 대운하가 활발히 가동되면서 남북이 하나로 소통되는 대상권을 형성하였고 농촌의 구석구석까지 화폐경제의 와중에 휩쓸려 들어갔다. 송의 수도 동경(東京) 개봉부(開封府)는 그러한 대동맥 루트의 심장에 해당되는 곳으로 성내 전체가 시장화 되어있는 화려한 메트로폴리스였다(과거 도시의 시장은 일부 구역에 제한되어 있었다).

 

이 대시장 도시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가장 획기적 사실은 문화상품의 시장화였다. 특히 서적이 오늘날의 책방에서처럼 상품으로서 유통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방대한 독서계층이 1억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송나라 인구의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송나라는 매스컴시대였다. 이러한 매스컴시대에는 사람들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원한다. 중국의 호한(浩瀚)한 정사(正史)를 다 읽는다는 것은 너무도 엄청난 일이다. 그래서 사마광은 그 방대한 분량을 다이제스트(digest, 분해)한다는 의미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지었는데, 자치통감만 해도 294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래서 주희는 문인(門人)에게 명하여 이를 다시 간략화시켜 59권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지었다. 이것은 당대의 사람들이 어려운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인용

목차

원문 / 呂氏春秋』 「孝行/ 五倫行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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