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라말려초시의 성격과 만당의 영향 - 1. 라말려초시의 일반적 성격, 2) 여조시의 창시자들(박인량)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라말려초시의 성격과 만당의 영향 - 1. 라말려초시의 일반적 성격, 2) 여조시의 창시자들(박인량)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08:46
728x90
반응형

 박인량(朴寅亮, ? ~1096 숙종 1, 代天, 小華)은 문종(文宗)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ㆍ순()ㆍ선()ㆍ헌()ㆍ숙() 오조(五朝)를 역사(歷事)하였다. 문종(文宗) 이후 숙종(肅宗)까지의 70여년은 최충(崔沖)ㆍ이자연(李子淵)ㆍ김근(金覲)을 정점으로 하는 최()ㆍ이()ㆍ김() 삼성(三姓)이 전성하였으나 그 밖에도 박인량(朴寅亮)ㆍ김인존(金仁存, ) 같은 명사(名士)들이 있어 국교(國交)에 기여하였다. 김인존(金仁存)도 시재(詩才)가 있었다고 하나 동문선(東文選)에 칠언율시 2편이 전하고 있을 뿐이며 특히 박인량(朴寅亮)은 문사(文辭)가 아려(雅麗)하여 송()과 요()에 보내는 고주표장(告奏表狀)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한다. 문종 29(1075)진정표(陳情表)를 요주(遼主)에게 올려 국경 분쟁을 끝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문종 34(1080)에 송()에 사신으로 갔을 때 동행했던 김근(金覲)과 함께 척독(尺牘)ㆍ표장(表狀)ㆍ제영(題詠)이 송인(宋人)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양인(兩人)의 시문집(詩文集)을 간포(刊布)하여 소화집(小華集)이라 했다 한다.

 

()의 문화가 절정에 이르기 시작한 원풍년간(元豊年間, 神宗)에 이러한 찬양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단림(馬端臨)문헌통고(文獻通考)에도 박인량(朴寅亮)ㆍ김제(金梯)ㆍ이강손(李絳孫) 등의 창화시집(唱和詩集)고려시(高麗詩)삼권(三卷)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시작(詩作)으로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것은 오자서묘(伍子胥廟)(七絶)사송과사주귀산사(使宋過泗州龜山寺)(七律)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오자서묘(伍子胥廟)절강(浙江)(청구풍아(靑丘風雅))으로, 사송과사주귀산사(使宋過泗州龜山寺)금산사(金山寺)(보한집(補閑集)권상 20)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두 편 다 봉사도중(奉使途中)에 지은 것이므로 중국에도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오자서묘(伍子胥廟)는 다음과 같다.

 

掛眼東門憤未消 눈을 뽑아 동문(東門)에 걸어도 분이 풀리지 않아
碧江千古起波濤 절강(浙江)의 푸른 물결 천고(千古)에 파도 치네.
今人不識前賢志 지금 사람 옛 어진 이의 뜻을 알지 못하여
但問潮頭幾尺高 밀물 높이 몇 자인가 그것만 묻네.

 

최자(崔滋)보한집(補閑集)권상(卷上)에 따르면 사행(使行) 도중(途中) 절강(浙江)에 이르렀을 때 바람이 불어 파도가 크게 일어 일어났는데 그때 마침 강변에 오자서(伍子胥)의 사당이 있는 것을 보고 이 시()를 지어 조상(弔喪)하였더니 잠깐 사이에 바람이 걷히며 배가 건너갈 수 있었다고 한다[須臾風霽船利涉].

 

오자서(伍子胥)가 참소(讒訴)를 입어 죽게 되었을 때 자기의 눈을 뽑아 동문(東門)에 걸어두면 월()이 오()를 멸()하는 것을 보리라고 한 고사(故事), 절강(浙江)의 조수(潮水)가 격렬한 것이 자서(子胥)의 분기(憤氣)가 그렇게 한 것으로 믿고 있는 전래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시로써 옮겨놓은 것이 이 작품이다. 때문에 웅장(雄壯)ㆍ쇄락(灑落)한 작품으로 정평(定評)되고 있다. 청구풍아(靑丘風雅)에는 벽강(碧江)’절강(浙江)’으로 되어 있다.

 

 

사송과사주귀산사(使宋過泗州龜山寺)는 다음과 같다.

 

巉巖怪石疊成山 험한 바위 괴상한 돌 겹친 그대로 산인데,
上有蓮坊水四環 위에 연당(蓮塘)이 있어 물이 사방으로 둘렀네.
塔影倒江飜浪底 () 그림자 강()에 거꾸러져 물결 밑에 일렁이고
磬聲搖月落雲間 풍경소리 달을 흔들어 구름 사이에 떨어진다.
門前客棹洪濤疾 문 앞의 나그네 배에 파도가 급한데
竹下僧碁白日閑 대나무 아래 중의 바둑은 대낮에 한가롭다.
一奉皇華堪惜別 사신의 임무를 띤 몸 이별을 어쩔 수 없어
更留詩句約重攀 시 한 수 남기고 다시 오기 기약하네.

 

이 작품은 오자서묘(伍子胥廟)와는 달리 수식에 용공(用工)하고 있어 만당(晩唐)의 섬교(纖巧)를 확인케 한다. 경련(頸聯)이 가구(佳句)로 불리고 있으며 대구(對句)의 조성이 특히 돋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백운소설(白雲小說)5보한집(補閑集)권상(卷上)에ㆍ동인시화(東人詩話)권상 2 등 초기의 시화ㆍ비평서에 모두 언급되고 있으며 최치원(崔致遠)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 박인범(朴仁範)경주용삭사(涇州龍朔寺)와 더불어 중국에서 인정받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특히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는 함련(頷聯)과 경련(頸聯)방여승람(方輿勝覽)에 등재(謄載)된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어 이러한 사실을 확인케 한다. 그러나 함련(頷聯)탑영도강변낭저 경성요월낙운간(塔影倒江飜浪底 磬聲搖月落雲間)’은 당() 고병(高騈)산정하일(山亭夏日)() 중에서 녹수음몽하일장 누대도영입지당(綠水陰濃夏日長 樓臺倒影入池塘)’점화(點化)란 것이 아닌가 의심냄직하다. “문전객도홍파급門前客棹洪波急홍파급(洪波急)’은 후대의 시선집(詩選集)에서 홍도질(洪濤疾)’로 고쳐서 전하기도 한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