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운석(韻釋)의 시편(詩篇)
고려(高麗) 왕조(王朝)는 국초부터 유교치국(儒敎治國)을 표방했지만, 사상계를 지배한 것은 저급한 민간신앙(民間信仰)과 불교신앙(佛敎信仰)이었으며, 이러한 기본 성향(性向)은 주자학(朱子學)이 수입된 고려 후기에 이르러서도 변화의 진폭(振幅)은 크지 않았다.
그러므로 귀족적인 고려 왕조의 문화 풍토에서 배출된 불승(佛僧)들 가운데는 유가(儒家)의 관료적(官僚的) 발신(發身)에 필수과정인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산문(山門)에 들어간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이때의 유교는 기본유학(基本儒學) 즉 문학유교(文學儒敎)의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문학(文學) 수업(修業)은 단순한 종교인의 교양 이상의 것임은 물론이다. 의종(毅宗) 때에 있었던 무신란(武臣亂)으로 문사(文士)들이 수난을 당했을 때 글을 배우고자 하는 학도(學徒)들이 산사(山寺)에 찾아가 승복(僧服) 입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실은 이러한 사정을 해명하는 보족(補足)으로 충분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류(女流)와 세류(細流)의 시작(詩作)은 대체로 평이한 것들이 많아 초심자의 시학습에 도움을 주기도 하거니와 고려 일대(一代)를 통하여, 몸은 선문(禪門)에 맡겼지만 정감(情感)이 넘치는 시편을 남긴 승려들도 있다. 불가(佛家)의 종교적 신앙을 노래한 게송(偈頌)이나 설리시(說理詩) 말고도 넉넉히 문인시(文人詩)의 권역(圈域)에 들만한 시작(詩作)을 남긴 운석(韻釋)들도 많다. 시선집에서 뽑아 준 인물로는 종령(宗聆)ㆍ계응(戒膺)ㆍ대각(大覺)ㆍ조영(祖英)ㆍ혜문(惠文)ㆍ요일(寥一)ㆍ달전(達全)ㆍ천인(天因)ㆍ원감(圓鑑)ㆍ진정(眞靜)ㆍ선탄(禪坦)ㆍ탄연(坦然)ㆍ굉연(宏演)ㆍ월창(月窓)ㆍ나옹(懶翁)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 가운데서도 특히 달전(達全)ㆍ천인(天因)ㆍ원감(圓鑑)ㆍ진정(眞靜)ㆍ선탄(禪坦)ㆍ굉연(宏演) 등이 여러 편의 가작(佳作)을 남기고 있다.
달전(達全, ?~?)은 그 생평(生平)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의 시편은 각종 시선집에서 공통적으로 4편이나 뽑아주고 있으며, 이들이 모두 칠언고시(七言古詩)인 것으로 보아 그의 장처(長處)가 칠언고시에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시선집에 뽑힌 그의 대표작으로는 「차운제현국부(次韻諸賢菊賦)」(七古), 「등연경호천사구층대탑(登燕京昊天寺九層大塔)」(七古), 「차이하장진주운(次李賀將進酒韻)」(七古), 「송이원수부진(送李元帥赴鎭)」(七古) 등이 있다.
다음이 「등연경호천사구층대탑(登燕京昊天寺九層大塔)」이다.
龍蛇窟深如夜黑 | 용과 뱀의 굴이 깊어 밤처럼 어두운데 |
日光斜穿滴不滴 | 햇빛이 뚫어도 스며들지 못하네. |
躋攀上了天下白 | 붙잡고 기어오르니 천하가 하얗고 |
紅埃腥風一時窮 | 붉은 티끌 비린 바람이 한꺼번에 없어지네. |
眼中一粟大元國 | 눈 앞에는 대원국(大元國)도 한 낱 좁쌀 같은데 |
莾莾茫茫是何色 | 아득하고 아득한 저것 무슨 빛깔인가? |
血肉之身天外飛 | 속세의 육신이 하늘 밖으로 날아가니 |
仙耶佛耶何處歸 | 신선인가 부처인가 어디로 돌아갈까? |
원래 고조(古調) 장편(長篇)은 힘을 바탕으로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거니와, 특히 이 작품은 섬세하게 다듬는 것은 엄두도 내지 않아 무잡(蕪雜)하리 만큼 절로 힘차다. 승과 속 어느 쪽에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주선(住禪)의 처지는 가리우지 못하고 있다.
천인(天因, 1205희종 1~1248고종 35)의 속성(俗姓)은 박씨(朴氏), 시호(諡號)는 정명(靜明)이다.
17세에 진사(進士)가 되었으나 문과(文科)에는 실패하여, 후일 만덕산(萬德山) 백련사(白蓮寺)의 제 2세가 되었다. 『청명국사시집(靜明國師詩集)』3권과 『청명국사후집(靜明國師後集)』 1권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려로서는 충지(沖止) 다음으로 많은 작품이(17편) 각종 시선집에 선발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차운원상인산중작(次韻院上人山中作)」(五古), 「유사선암유작(遊四仙嵓有作)」(五古), 「차운답지(次韻答之)」(七古) 등의 고시(古詩)가 여러 선발책자에 두루 뽑히고 있어, 그의 고조장편(古調長篇)에 대한 능력을 짐작케 한다.
「유사선암유작(遊四仙嵓有作)」을 보인다.
仙遊邈已遠 嘉境轉幽寂 | 신선 놀던 옛 자취 아득히 이미 먼데 아름다운 경개는 더욱 그윽하네. |
晴川碧如藍 石蘚暖於席 | 맑은 시내는 쪽빛처럼 푸르고 돌이끼는 깔개보다 따뜻하네. |
逍遙能幾時 俛仰忽陳迹 | 소요한들 그 얼마나 할 수 있으리요?? 쳐다 보는 사이에 홀연 묵은 자취되리라. |
淹留非不佳 但恐日易夕 | 오래 머무는 것 좋아하지 아니함 아니지만 다만 해가 쉬 저물까 저어하노라. |
사선(四仙)이 놀던 곳에 올라 감회를 서술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선미(禪味)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고시(古詩)에서 항용하는 고사(故事)의 원용이 자연스러워 부착(斧鑿)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제 7구의 ‘사앙홀진적(使仰忽陳迹)’은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에 보이는 ‘전날 좋아하던 것이 잠깐 사이에 이미 묵은 자취가 되어버렸다[向之所欣, 俛仰之間, 以爲陳迹].’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원감(圓鑑, 1266 원종7~1292 충렬왕18)의 속성(俗姓)은 위(魏), 명(名)은 법환(法桓)으로 뒤에 충지(沖止)로 개명하였다, 호(號)는 복암(宓庵), 원감(圓鑑)은 그의 시호(諡號)이다. 사대부(士大夫)의 집안에서 태어나 문과(文科)에도 급제하였다.
충지(沖止)의 시작(詩作)은 각종 시선집에서 19수를 선발하고 있어 승려로서는 가장 많은 것이 되고 있으며, 특히 「한중잡영(閑中雜詠)」, 「우중수기(雨中睡起)」, 「차박안찰항제밀성(次朴按察恒題密城)」 등은 여러 선발 책자에서 모두 뽑아 주고 있다. 선사(禪師)의 신분이면서도 선속(禪俗) 어느 쪽에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한중(閑中)의 정취(情趣)를 노래한 시작(詩作)들이 읽는 이의 안광(眼光)을 사로잡는가 하면, 어지럽게 널려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예사롭게 보아넘기지 아니하고 삶의 구석구석까지 비판하고 있는 운어(韻語)들은 그의 시 세계의 폭이 얼마나 넓은 것인가를 알게 해준다.
「한중잡영(閑中雜詠)」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捲箔引山色 連筒分澗聲 | 주렴 걷어 올려 산빛 끌어 들이고 대통 이어 산골 물소리 나누어 갖는다. |
終朝少人到 杜宇自呼名 | 아침 내내 찾아오는 사람 드문데 소쩍새만 스스로 제 이름 부르네 |
이 작품은 문인시의 수준으로도 손색이 없다. 오언시(五言詩)에는, 시의 잘 되고 못됨을 결정짓게 하는 일자(一字)가 있다고 하여 이를 시안(詩眼)이라 부르기도 하거니와, 승구(承句)의 ‘연통분간성(連筒分澗聲)’의 ‘분(分)’은 『장자(莊子)』의 ‘도분(道分)’을 연상케 한다. 대나무 통을 이어 산골 물소리를 ‘나누어 가진다’는 ‘분(分)’이야말로 말로써 나타내기 어려운 경지를 탁 트이게 말해주고 있다. 특히 결구(結句)의 ‘자명호(自呼名)’은, 사물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아간다는 만유(萬有)의 이치를 깨우쳐 주고 있어 조용한 감동을 준다.
진정(眞靜, ?~?)의 이름은 천책(天𩑠)이고 진정(眞靜)은 그의 호이다. 그러나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진정(眞靜)의 이름도 천책(天𩑠)이므로 양자간의 이동(異同)이 분명치 않다.
다만 『청구풍아(靑丘風雅)』에 의하면 진정(眞靜)이 만덕사(萬德寺)에서 『호산록(湖山錄)』을 남긴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의 천책(天𩑠)은 진정(眞靜)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대표작 「안봉사(安峯寺)」는 다음과 같다.
幽徑幾多曲 亂山千萬重 | 그윽한 길 몇 굽이더냐 어지러운 산들 천만겹이네. |
靑纏訪古利 白佛餘淸風 | 푸른 행전으로 옛절을 찾으니 흰 불진에 맑은 바람 분다. |
皓月掛虛閣 閑雲低碧空 | 흰 달은 빈 누각에 걸렸고 한가로운 구름 푸른 하늘에 나직하네. |
踈慵不掃地 殘葉滿庭紅 | 게을러 땅도 쓸지 않아 흩어진 단풍잎 온 뜰에 붉구나. |
불승(佛僧)들의 시작(詩作)이 대체로 그러하거니와 이 작품 역시 말이 적고 조직이 단조로워 읽는 이로 하여금 상쾌감을 주기도 한다.
선탄(禪坦, ?~?)은 곡성인(谷城人)으로 시(詩)에 능하고 거문고를 잘 탔다는 사실밖에는 그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다.
작품으로는 「와병(臥病)」(七絶), 「능가산중(楞伽山中)」(七絶), 「차보문사(次普門寺)」(七律) 등이 시선집에 전한다.
「와병(臥病)」을 보인다.
鞍馬紅塵半白頭 | 홍진 세상에서 말 타고 다니며 머리가 세었는데 |
楞伽有病早歸休 | 능가산이 그리워 일찍이 돌아 왔네. |
一江煙雨西山暯 | 온 강에 비 내리고 서산에 해 저무는데 |
長捲踈廉不下樓 | 성긴 발 늘 걷어둔 채 누각을 내려오지 않는다. |
승려의 시작답게 구법(句法)이 까다롭지 않아 초심자의 시 학습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작자의 심정과 처지를 평면적으로 읊조리고 있을 뿐이다.
굉연(宏然, ?~?)의 호(號)는 죽간(竹澗), 자세한 행적은 미상이며 시(詩)에 능하여 문집을 남겼다고 한다. 12편에 이르는 시작(詩作)이 각종 시선집에 전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유자청궁(遊紫淸宮)」을 보인다.
洪涯先生舊所隱 | 홍애선생이 옛날에 숨었던 곳 |
階下碧桃花飄零 | 뜰 아래는 벽도화가 흩날리누나. |
夜光出井留丹藥 | 야광이 우물에서 나와 단약에 남아 있고 |
春露浥松生茯苓 | 봄 이슬이 소나무에 젖어 복령이 돋았네. |
天女或携綠玉杖 | 선녀들은 녹옥장을 짚고 있기도 하고 |
仙人自讀黃庭經 | 신선들은 스스로 황정경을 읽고 있네. |
隣寺歸來不五里 | 이웃 절에서 돌아오는 길 오리도 안되는데 |
回頭望斷煙冥冥 | 머리 돌려도 보이지 않고 연기만 아득하네. |
도관(道觀)으로 보이는 차청궁(紫淸宮)에서 놀다가 절로 돌아오면서 지은 것이다. 신선들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을 뿐 선사(禪師)로서의 자기 모습은 잊어버리고 있다. 특별히 다듬은 솜씨를 찾아 볼 수 없어 공졸(工拙)을 논할 수 있는 부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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