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려말(麗末)의 시인(詩人)들
목은(牧隱)ㆍ포은(圃隱)ㆍ도은(陶隱) 등 이른바 삼은(三隱)을 전후한 시대에는 안정된 우리의 진귀(珍貴)를 맛보게 하는 많은 소인(騷人)들이 배출되었다. 그들을 일일이 적어 보일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높은 이름을 후세에까지 전하고 있는 일부만 보이면 다음과 같다.
박상충((朴尙衷)ㆍ권한공(權漢功)ㆍ민사평(閔思平)ㆍ신천(辛蕆)ㆍ전녹생(田祿生)ㆍ한종유(韓宗愈)ㆍ백문보(白文寶)ㆍ오순(吳珣)ㆍ최원우(崔元祐)ㆍ이공수(李公遂)ㆍ이달충(李達衷)ㆍ탁광무(卓光茂)ㆍ한수(韓脩)ㆍ정추(鄭樞)ㆍ설손(偰遜)ㆍ이인복(李仁復)ㆍ김구용(金九容)ㆍ유숙(柳淑)ㆍ이집(李集)ㆍ이존오(李存吾)ㆍ원천석(元天錫)ㆍ원송수(元松壽)ㆍ길재(吉再) 등이 려말(麗末)에서 선초(鮮初)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 성망(聲望)이 높았던 시인들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신천(辛蕆)의 「목교(木橋)」(七絶), 한종유(韓宗愈)의 「한양촌장(漢陽村庄)」(七絶), 이달충(李達衷)의 「낙오당감흥(樂吾堂感興)」(五古), 한수(韓脩)의 「야좌(夜坐)」(五律), 정추(鄭樞)의 「정주도중(定州途中)」(七絶)과 「오리동박헌납용진간재운부지(汚吏同朴獻納用陳簡齋韻賦之)」(五古), 설손(偰遜)의 「산중우(山中雨)」(五絶), 김구용(金九容)의 「범급(帆急)」(五律), 유숙(柳淑)의 「벽란도(碧瀾渡)」(五絶), 이집(李集)의 「한양도중(漢陽途中)」(五律) 등은 명편으로 알려진 것들이다.
신천(辛蕆, ?~1339 충숙왕 복위 8, 호 德齋)은 안향(安珦)의 문인(門人)으로 여말(麗末)의 주자학(朱子學) 수용과정에서 크게 기여하였으며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목교(木橋)」(七絶), 「평해동헌(平海東軒」(七律) 등이 여러 시선집(詩選集)에 보인다. 「목교(木橋)」를 보인다.
斫斷長條跨一灘 | 긴 가지 잘라서 여울에 걸치니 |
濺霜飛雪帶驚瀾 | 서리 뿌리고 눈 날리듯 놀랜 물살 이루네 |
須臾步步臨深意 | 잠깐 사이에 걸음걸음 깊은 데까지 이르는 뜻을 |
移向功名宦路看 | 공명 찾는 벼슬길에 빗대어 본다. |
환로(宦路)에 나아가는 것이 마치 깊은 여울에 걸쳐져 있는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음을 직절하게 말한 것이다. 기구(起句)와 승구(承句)의 상응이 선명하여 작자의 의도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세교(世敎)를 의식한 유가(儒家)의 작품이어서 문학의 효용적 기능을 확인하는 데 모자람이 없지만, 예술적인 단련은 찾아볼 수 없다.
한종유(韓宗愈, 1287 충렬왕13~1354 공민왕3, 자 師古, 호 復齋)는 충숙(忠肅)ㆍ충혜왕(忠惠王)의 복위 과정에서 원(元0나라를 내왕하며 왕권(王權) 수호에 공을 세웠으며 벼슬이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그의 시작(詩作)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대동시선(大東詩選)』 등에 전하고 있는 「한양촌장(漢陽村莊)」이 있을 뿐이다. 작품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十里平湖細雨過 | 십리 길 조용한 호수에 보슬비 지나가고 |
一聲長笛隔蘆花 | 한 가닥 피리 소리 갈대꽃 저 편에 들리네 |
直將金鼎調羹手 | 금솥에서 국 끓이던 그 솜씨로 |
還把漁竿下晚沙 | 도리어 낚시대 들고 저녁 모래밭으로 내려가네 |
젊은 시절에는 양화도(楊花徒)라 불리울만큼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재상이 되어서는 공명을 이루어 이름을 떨쳤다. 만년(晩年)에 고향으로 돌아가 한적(閑適)을 즐기며 쓴 작품이다. 재상의 여유를 한 눈으로 읽을 수 있으나 전구(轉句)가 지나치게 돌출하여 전편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있다. 재상의 경륜으로 낚시질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인(文人)의 경계(境界)와 다른 점이다.
이달충(李達衷, ?~1385 우왕11, 호 霽亭)은 성품이 강직하여 신돈(辛旽)의 전횡 시대에 신돈에게 직언을 하다가 파직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신돈이 주살(誅殺)된 후 다시 등용되어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지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고시(古詩)에 뛰어난 솜씨를 보여 「낙오당감흥(樂吾堂感興)」(五古), 「취가(醉歌)」(七古)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낙오당감흥(樂吾堂感興)」을 보기로 한다.
將行有河海 將涉無舟航 | 가려니 강과 바다 건너려니 배가 없네 |
要見我所思 欲往還彷徨 | 다만 생각하는 사람 보려함이나 가려다가 도리어 주저하네 |
才非傅說楫 世運亦未昌 | 재주는 부열의 노가 되지 못하고 세상의 운 또한 트이지 않네 |
潛光且竢命 妄動遭禍殃 | 빛 숨기고 천명을 기다려야지 망령되이 움직이다 재앙을 만날 걸세 |
『동문선(東文選)』에 전하고 있는 팔수(八首) 중 제 7수이다. 섭세(涉世)에 신중하여야 함을 스스로 경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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