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조선전기(朝鮮前期)의 다양한 전개(展開)
조선(朝鮮)은 그 창업과 동시에 성리학(性理學)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함으로써 문학관념에 있어서도 주자학(朱子學, 思想儒敎)이 문학 위에 군림하는 재도관(載道觀)이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효용적인 문학관은 결코 문학의 생산을 방해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며 도리어 문학의 내질(內質)에 있어서는 김창협(金昌協)의 말과 같이 시를 보면 그 사람까지도 알게 하는 다양한 전개를 보인다. 다만 국초(國初)에는 문(文)은 고명(誥命)ㆍ장주(章奏)와 같은 관각문자(館閣文字)를 필요로 했으며 시(詩)에 있어서도 새 왕조의 위업과 서울의 새 풍물을 읊조린 가영(歌詠)ㆍ송도(頌禱)의 사(辭)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지 모른다. 권근(權近)ㆍ정도전(鄭道傳)ㆍ조운흘(趙云仡)ㆍ이첨(李詹)ㆍ정이오(鄭以吾)ㆍ유방선(柳方善) 등의 시편이 각종 선발책자에 자주 뽑히고 있지만, 이 가운데 유방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조(前朝)에서 과거로 입신(立身)하여 양조(兩朝)에 벼슬한 관료의 전형이다. 시단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앞 시대에서 숭상한 송시학(宋詩學)의 영향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걸출한 시인의 배출을 보지 못하였지만 정이오(鄭以吾) 등이 중당(中唐)의 고품(高品)을 제작하여 국초(國初)의 시단에 당시(唐詩)의 멋을 과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순수하게 조선 왕조의 토양에서 생장하여 조선 전기의 문풍을 일으킨 인물로는 성현(成俔)과 김수온(金守溫)을 비롯하여 서거정(徐居正)ㆍ이승소(李承召)ㆍ강희맹(姜希孟)ㆍ김종직(金宗直)ㆍ성현(成俔)ㆍ김시습(金時習) 등을 들 수 있다. 서거정(徐居正)과 김종직(金宗直)은 각각 그들이 편찬한 『동문선(東文選)』과 『청구풍아(靑丘風雅)』를 통하여 그들이 지향하는 시세계의 경계를 간접으로 드러내보였다. 특히 김종직(金宗直)은 그의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 스스로 시대의 풍상에서 멀리 떨어져 ‘호방(豪放)’과 ‘신경(新驚)’을 거부하고 엄중(嚴重)ㆍ방달(放達)한 시관(詩觀)으로 일관하고 있어 시사(詩史) 연구에 중요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그리고 초매(超邁)한 김시습(金時習)의 시세계는 그만이 도달할 수 있는 독자적인 세계를 열고 있다. 시 말고는 따로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시를 위하여 시를 쓰는 낭비를 일삼게 되었으며 시가 없으면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에 관한 모든 것도 시로써 해명한 보기 드문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시업(詩業)이 다양하게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은 중종대(中宗代)를 전후한 시기이다. 박은(朴誾)ㆍ이행(李荇)ㆍ정사룡(鄭士龍) 등 이른바 해동강서시파(海東江西詩派)의 출현을 보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시는 200년 동안 소식(蘇軾)ㆍ황정견(黃庭堅)의 영향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거니와 중종조(中宗朝)에 이르러 조선조의 시업(詩業)이 크게 떨치면서 강서시파(江西詩派)와 비슷한 시풍이 유행하여 박은(朴誾)ㆍ이행(李荇)ㆍ정사룡(鄭士龍) 등이 서로 시의 경향을 같이 하면서 신풍(新風)을 일으키는 데까지 이르렀으며 특히 박은(朴誾)과 이행(李荇)은 조선조(朝鮮朝) 제일대가(第一大家)로 칭송을 받기도 하였다. 이들이 기상기구(奇想奇句)를 즐겨 하는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시풍(詩風)을 숭상하여 조선조 제일의 시인으로 기림을 받았다면 이는 곧 우리나라 시인들의 수준이 이때에 이르러 높은 경지에 이르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이들과는 달리 이주(李胄)ㆍ박상(朴祥)ㆍ신광한(申光漢)ㆍ나식(羅湜)ㆍ임억령(林億齡)ㆍ김인후(金麟厚) 등은 수준 높은 당법(唐法)으로 당시의 시단을 다채롭게 하여준다. 박상(朴祥)ㆍ임억령(林億齡)ㆍ김인후(金麟厚)는 호남시단(湖南詩壇)의 선구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거니와 특히 임억령(林億齡)과 김인후(金麟厚)는 그 인품이 고매하여 시도 사람과 같다는 평을 받고 있다. 칠언율시(七言律詩)에 특장을 보인 정사룡(鄭士龍)은 다음 시기의 노수신(盧守愼)ㆍ황정욱(黃廷彧)과 더불어 관각(館閣)의 대수(大手)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른바 ‘호소지(湖蘇芝)’ 삼가(三家)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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