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혼(雄渾)ㆍ호방(豪放)으로 일세(一世)에 이름을 드날린 이규보(李奎報)ㆍ이색(李穡)ㆍ정몽주(鄭夢周)의 시작(詩作) 가운데에서도 호방(豪放)한 것으로 정평(定評)이 나 있는 작품들은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 선발하지 않았으며 또한 완려(婉麗)ㆍ신경(新警)한 것도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완려(婉麗)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온 이규보(李奎報)의 「하일즉사(夏日卽事)」도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정몽주(鄭夢周)의 칠언율시(七言律詩) 가운데서도 「정주중구 한상명부(定州重九 韓相命賦)」나 「중구일제익양수이용명원루(重九日題益陽守李容明遠樓)」 등도 모두 질탕(跌宕)ㆍ호방(豪放)한 작품으로 후세의 칭송을 받았지만 역시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는 뽑아주지 않았다.
김종직(金宗直)의 시작(詩作)은 선발책자(選拔冊子)에 뽑히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30수를 넘거니와 그 가운데서 특히 「차제천정운(次濟川亭韻)」(七絶), 「보천탄즉사(寶泉灘卽事)」(五絶), 「낙동역(洛東驛)」(五律), 「불국사(佛國寺)」(五律), 「차청심루(次淸心樓)」(七律), 「박숙보은사하증주지우사(泊宿報恩寺下住持牛師)」(七律), 「복룡도중(伏龍途中)」(七律), 「한식촌가(寒食村家)」(七律), 「봉대곡(鳳臺曲)」(五古), 「영금강산간일출(營金剛山看日出)」(七古), 「삼월이십삼일입경(三月二十三日入京)」(五律) 등 10여편이 각종 시선집(詩選集)에서 모두 선발되고 있어 편수로 따지면 서거정(徐居正)을 오히려 능가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代表作)으로 꼽히는 「보천탄즉사(寶泉灘卽事)」는 다음과 같다.
桃花浪高幾尺許 | 도화 뜬 물결이 몇자나 높았길래 |
狠石沒頂不知處 | 낭석(狼石)은 꼭지가 잠기어 있는 곳을 모르겠네. |
兩兩鸕鷀失舊磯 | 쌍쌍이 나는 물새는 옛집을 잃고 |
銜魚飛入菰蒲去 | 고기 물고 문득 수초 사이로 들어가네. |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叟詩話)』 26번에서 이 작품을 가장 높은 것으로 평(評)하고 있거니와 애써 꾸미거나 호기(豪氣)를 부리지 않은 그의 ‘엄중(嚴重)’을 높이 산 것임에 틀림없다 할 것이다. 물론 전편에 우의(寓意)가 짙게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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