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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1. 철학을 위한 찬가, 쌀도 밥도 안 나오는 일들의 위대함 본문

책/철학(哲學)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1. 철학을 위한 찬가, 쌀도 밥도 안 나오는 일들의 위대함

건방진방랑자 2021. 5. 1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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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도 밥도 안 나오는 일들의 위대함

 

장자는 자신의 사유가 무용하다는 조롱에 맞서 당당하기만 합니다. 그는 무용함이야말로 자신의 철학이 체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인간을 위한 것임을 입증하는 지표라고 기염을 토하죠. 수많은 철학을 위한 변명중에서 장자의 변명은 압권입니다. 철학을 위한 장자의 변명은 장자 본인의 철학을 넘어 인문적 사유 일반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시나 소설, 나아가 철학 저작마저 상품의 논리에, 다시 말해 소용의 논리에 포획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물론 그 핵심에는 판매량과 인지도 증대를 도모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철학과나 사학과 등 인문계열 학과들이 인문콘텐츠학부나 문화 교양학부 등으로 흡수, 소멸되는 시대이니 말해 무엇합니까. 인문학이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는 현상을 저지하기는커녕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전공을 팔아버린 선생들도 많죠. 심지어 인문학을 지탱하는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시인이나 철학자마저 자신들 저작의 쓸모를 고민합니다. 바로 이때, 장자의 당당함은 우리 시대를 향한 죽비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국가나 자본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밥도 나오지 않고 쌀도 나오지 않는쓸모없는 일들을 많이 할수록 우리 삶은 행복하니까요. 시도 글도 그리고 사유도 그리해야만 합니다.

 

시인이나 철학자는 농산물을 생산해 판매하는 농부라기보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과 같습니다. 물론 텃밭에서 나는 상추나 고추를 먹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상추나 고추를 팔지는 않습니다. 남들은 농사를 제대로 지으라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농약을 쓰라고 유혹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텃밭을 지키려는 사람은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텃밭을 일구는 행위는 쓸모에 전적으로 종속된 행위가 아니니까요. 그저 땀 흘리는 것이, 땅 냄새와 풀 냄새, 혹은 짧은 시간 동안 풍기는 꽃 냄새가 좋을 뿐입니다. 이마의 땀을 근사하게 만드는 싱그러운 바람도 좋고요. 텃밭을 가꾸는 사람에게 밭에서 자라는 것들은 소용이 적고 무용이 많습니다. 시들어버리는 것도 많고 벌레의 공격을 받은 것들도 많습니다. 간혹 다른 사람과 나누기는 하지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말 테니까요. 누군가 맛나게 먹고 행복해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상추나 고추를 받고 그 대신 우유를 갖다 주는 사람도, 혹은 돈을 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사양하다 안 되면 우유나 돈을 받으면 그만입니다. 시인의 시와 철학자의 글은 텃밭을 일군 사람이 이웃에게 건네는 상추나 고추 같은 겁니다. 좋아서 한 일의 결과이고, 그 결과물을 이웃들에게 건넨 것이니까요.

 

시인이나 철학자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철학을 위한 장자의 변명을 삶을 위한 변명으로 읽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성적이 좋은 아이여서, 품이 덜 드는 아이여서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쓸모가 있는 아이, 동년배보다 쓸모가 더 큰 아이라는 것이 사랑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입시에 실패할 때, 취업에 실패할 때, 혹은 정리해고라도 당했을 때 여러분의 아이가 여러분을 떠나거나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무용으로 아이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아이는 죽지 않고 여러분을 찾아올 테니까요. 아무런 쓸모가 없어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편도 아내도 무용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바람도 물도 그리고 새도 물고기도 무용으로 좋아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언젠가 병들고 나이 들어 쓸모는커녕 주변에 짐이 되는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주변에 여러분을 쓸모로 평가하지 않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것, 바로 이것이 무용을 강조했던 장자의 진정한 속내였을 것입니다.

 

 

 

 

인용

목차 / 프롤로그 / 2. 사랑의 비극을 막는 방법

장자 / 타자와의 소통

장자, 무용의 철학자

내가 밟은 땅만 남기고 모조리 파낸다면

쌀도 밥도 안 나오는 일들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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