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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1. 철학을 위한 찬가, 장자 무용의 철학자 본문

책/철학(哲學)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1. 철학을 위한 찬가, 장자 무용의 철학자

건방진방랑자 2021. 5. 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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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대지를 뛰어올라

 

 

1. 철학을 위한 찬가

황천 이야기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네.”

장자가 말했다.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에 관해 함께 말할 수 있네. 세상이 넓고도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쓸모가 있는 것은 발을 디딜 만큼의 땅이네. 그렇다면 발을 디디고 있는 땅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땅을 모조리 파고들어 가 황천에까지 이른다면, 그 밟고 있는 땅이 사람에게 쓸모가 있겠는가?”

혜시가 쓸모가 없지라고 대답했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음이 쓸모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네.” 외물7

惠子謂莊子曰: “子言無用.”

莊子曰: “知無用而始可與言用矣. 夫地非不廣且大也, 人之所用容足耳, 然則廁足而墊之致黃泉, 人尙有用乎?”

惠子曰: “無用.”

莊子曰: “然則無用之爲用也亦明矣.”

 

 

장자, 무용의 철학자

 

장자를 읽다 보면 우리는 장자(莊子, BC 365? ~ BC 270?)가 항상 쓸모 있음보다는 쓸모없음, 달리 말해 소용(所用)’보다는 무용(無用)’을 중시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장자를 무용의 철학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장자의 무용 개념은 이를 강조하는 다양한 일화들마다 그 의미와 강조점을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무용 개념을 획일적으로 정의하려 하기보다는 무용을 강조하는 다양한 일화들의 문맥에 집중하는 편이 좋습니다. 처음으로 살펴볼 것은 황천 이야기에 등장하는 무용 개념입니다. 황천 이야기는 장자가 자신의 사유와 자신의 이야기가 무용해 보이지만 사실 엄청나게 쓸모 있음을 역설하는 대목에서 등장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쓸모를 기준으로 무언가를 평가하곤 합니다. 저만 해도 어린 시절에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그거 하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라는 말이었습니다. 개발독재 시절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바보야! 중요한 것은 경제야라는 슬로건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으니까요. 2,500여년전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03 ~ BC 221)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아니면 국가든 생존과 경쟁이 최고의 화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슬로건은 상징적입니다. 어떻게 하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까? 이 논리는 개개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죠. 어떻게 하면 개인은 부유하고 강해질 수 있는가?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불리던 사상가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들의 말을 따르면 국가나 개인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 ()’라는 말이 등장한 겁니다. 자신들이 주창한 길을 따르면 성공한다는 발상입니다. 유가의 도, 법가의 도, 묵가의 도, 도가의 도, 혹은 공자의 도, 맹자의 도, 묵자의 도, 노자의 도, 한비자의 도 등등은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습니다. 결국 제자백가의 사상 대부분은 소용(所用)’, 쓸모 있음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들의 도를 따르면 쌀도 나오고 밥도 나온다는 논리였죠. 이런 와중에 부국강병의 논리 자체를 문제 삼고 이를 극복하려 한 소수의 사상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 주자가 바로 장자였습니다. 쓸모가 사실은 우리 삶을 파괴할 수 있고, 쓸모없음이 오히려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고 그는 역설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장자의 사유는 두 부류에게 환영받았습니다. 바로 생존과 경쟁의 논리에 의구심을 품었던 지적인 사람들, 그리고 패배했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힌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승자와 소용의 논리를 지향하던 대부분의 제자백가들은 당연히 장자를 비난했고 심지어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한마디로 경제적인 것을 부정하니 비현실적이고, 패자를 승자가 되도록 격려하지 않으니 무책임하다는 겁니다.

 

사실 생존과 경쟁의 논리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 세계의 논리이자 승자독식을 인정하는 냉혹한 논리입니다. 그러나 동물 세계에서도 생존과 경쟁의 논리는 주로 다른 종들 사이에서 적용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생존과 경쟁의 논리를 인간이 같은 인간 종에게 적용하면서 비극은 발생합니다. 부국강병을 꿈꾸던 당시 국가를 생각해보세요. 개인의 쓸모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국가입니다. 쓸모를 갖추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고 마침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쓸모 있음을 입증하면 국가는 우리를 고용하고 돈을 줍니다. 쓸모가 더 클수록 우리는 직급이 높아지고 더 많은 돈을 얻습니다. 그렇지만 이 과정을 통해 지배와 착취를 공고히 하는 것은 국가라는 사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가 원하는 인간으로 개조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우리는 상명하복 체제에 포섭되어 길들여집니다. 언젠가 지배체제의 최고 정점에 이르기를, 즉 재상이나 군주가 되기를 꿈꾸면서 말이죠. 같은 종에는 지배와 복종 관계를 강요하지 않는 다른 동물 종과 같은 품격을 인간은 회복해야 합니다. 당연히 경쟁이 양산하는 대부분의 패자들은 자신을 비하할 필요가 없습니다. 패배는 이미 구조적으로 예정된 것이니까요. 오히려 패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좋은 출발점에 서 있게 되죠. 상명하복, 경쟁과 승자, 그리고 쓸모의 논리에서 가장 멀리 있으니까요. 패자라는 절망을 딛고 꿋꿋하게 살아가다 보면, 생존과 경쟁의 가치 외에 삶의 다른 가치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에 떨어져도 따뜻한 밥을 먹이는 어머니, 혹은 실직을 해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배우자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명문대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고, 내가 돈을 벌기에 배우자가 나를 사랑한 것도 아니었던 겁니다. 나의 쓸모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견, 그것은 생존과 경쟁과 무관한 다른 가치가 있음을 증명합니다.

 

 

 

 

인용

목차 / 프롤로그 / 2. 사랑의 비극을 막는 방법

장자 / 타자와의 소통

장자, 무용의 철학자

내가 밟은 땅만 남기고 모조리 파낸다면

쌀도 밥도 안 나오는 일들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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