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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11. 자유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토끼를 기다린 농부 본문

책/철학(哲學)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11. 자유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토끼를 기다린 농부

건방진방랑자 2021. 5. 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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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자유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네 선생 이야기

 

 

송나라 사람이 장보라는 모자를 밑천 삼아 월나라로 장사를 갔다. 그런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그런 모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宋人資章甫而適越, 越人斷髮文身, 無所用之.

 

요임금이 천하의 사람들을 다스리고 바다 안의 정치를 평정했다. 그런데 막고야라는 산, 분수의 북쪽에 살던 네 명의 선생을 만나고 나서, 그는 멍하니 천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소요유9

堯治天下之民, 平海內之政. 往見四子藐姑射之山, 汾水之陽, 窅然喪其天下焉.

 

 

토끼를 기다린 농부

 

장자에는 송나라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간혹 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장자 본인이 만든 이야기를 만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장자는 송나라 출신이거든요. 송나라는 상나라의 유민들이 세운 전국시대의 작은 제후국입니다. 그래서인지 송나라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전통을 중시했다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보자면 현실감각을 찾아보기 힘든 사람들로 유명했습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송나라 출신들은 바보나 멍청이의 대명사가 되고 맙니다.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편에 나오는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고사를 아시나요?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토끼[]를 기다린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어떤 농부가 밭일을 하고 있는데, 토끼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얼떨결에 토끼 고기를 얻은 농부는 밭일을 포기하고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기 시작합니다. 다른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죠. 바로 이 농부도 송나라 사람이었습니다. 한비자는 송나라 농부의 사례를 통해 전통을 묵수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처럼 당시 송나라 사람들만큼 공개적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로 송나라 사람들이 바보거나 멍청이였을까요?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수주대토 고사에 등장하는 송나라 농부가 생각이 없다기보다 생각이 너무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토끼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일회적 사건을 심각하게 고민할 뿐만 아니라 밭일과 토끼잡이 사이에서 효율성까지 따집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보인 자기 사유에 대한 확신이죠. 그는 자기 판단을 확신하고서 과감히 밭일을 접으니까요.

 

송나라 사람이 지킨 나무 그루터기는 단순히 전통이나 통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것은 토끼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사건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지킨 나무 그루터기는 그가 옳다고 판단한 자신의 생각이었던 겁니다. 한비자는 나무 그루터기를 지킨 송나라 농부를 잘못 읽어냈습니다. 송나라 농부는 고지식해서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비유를 하자면, 송나라 사람은 이것저것 재느라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촉이 발동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믿고 밭일을 포기하는, 무모함에 가까운 그 경쾌함을 떠올려보세요. 송나라 사람들은 단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각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실천하는 과감성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일회적 사건을 일회적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오히려 그로부터 일반적 법칙을 끌어내고 그것을 현실에 과감히 적용합니다. 평범한 바보나 멍청이는 이런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창조적인 과학자나 비판적인 지식인만이 그렇게 할 수 있죠. 송나라 출신들은 주어진 관념이나 상식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분명 그들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것은 개별 사건들로부터 법칙을 찾으려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송나라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수정할 여지도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것은 그가 자신의 생각을 현실에 적용해보기 때문입니다.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던 송나라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곧 깨달을 것입니다. 효율성을 따져 밭일을 접은 그입니다.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는 나무 그루터기 지키기를 그만둘 겁니다.

 

장자도 송나라 출신입니다. 사건들에 민감하고 생각이 많지만 뭔가 결정하면 곧바로 실천하는 사람이었죠. 통념이나 상식을 생각 없이 따르기보다는 주어진 사건에 촉을 세우고 그로부터 기존 통념과 상식을 넘어서고자 사유를 거듭하는 철학자, 그가 바로 송나라적인, 너무나도 송나라적인장자였습니다. 그래서 송나라 사람이 등장하는 장자의 이야기들을 송나라 출신에 대한, 한비자나 당시 전국시대의 편견에 입각해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하면 송나라 철학자가 송나라 출신들을 조롱하니, 장자가 일종의 자학 개그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통념에 사로잡혀 현실에 매몰된 사람들, 당연히 별다른 생각이 없는 사람들보다 송나라 출신들은 더 바람직한 덕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보처럼 보이고 멍청해 보일 만큼 생각이 많고 과감했을 뿐입니다. 비록 실패할지라도 그들에게 새로운 사유와 삶의 전망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송나라 출신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려 했죠. 그래서 장자가 쓴 송나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송나라 출신이라는 그의 핸디캡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송나라 출신이라는 자부심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장자는 송나라적인 것마저 넘어서려고 합니다. 송나라 사람들이 빠질 수밖에 없었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나아가 일반화 자체의 논리마저 비판적으로 성찰하니까요. 바로 이것이 송나라적이지만 송나라적이지만은 않았던 장자 사유의 특징일 것입니다. 지금 읽어볼 네 선생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송나라적인 것이 무엇인지 혹은 송나라적인 것을 극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이야기도 없으니까요

 

 

 

 

인용

목차 / 장자 / 타자와의 소통 / 선입견

10. 텅 빈 하늘의 바람 소리 / 12. 보편적인 것은 없다

토끼를 기다린 농부

내가 나로 강렬하게 서는 순간

천하를 잃어 땅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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