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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강신주의 장자수업, 3부 등불을 불어 끄고 - 34. 대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간 까닭(시남 선생 이야기) 본문

책/철학(哲學)

강신주의 장자수업, 3부 등불을 불어 끄고 - 34. 대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간 까닭(시남 선생 이야기)

건방진방랑자 2021. 5. 1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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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대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간 까닭

시남 선생 이야기

 

 

시남의료(市南宜僚)가 노()나라 군주를 만났는데, 그에게 근심하는 낯빛이 있었다. 시남 선생이 말했다. “그대는 어찌 근심스러운 낯빛이십니까?”

市南宜僚見魯侯, 魯侯有憂色. 市南子曰: “君有憂色, 何也?”

 

노나라 군주가 말했다. “선대 천자들의 통치술을 배우고 선대 군주들의 유업을 닦아 귀신을 공경하고 현인을 존중하고 배운 것을 몸소 실천하기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지만, 우환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魯侯曰: “吾學先王之道, 修先君之業; 吾敬鬼尊賢, 親而行之, 無須臾離居. 然不免於患, 吾是以憂.”

 

시남 선생이 말했다. “우환을 없애는 군주의 기술은 얕습니다. 풍성한 털의 여우와 아름다운 털의 표범이 숲속에 살면서 바위굴에 숨어 있는 것은 그의 고요함입니다. 밤에 움직이고 낮에는 머무는 것은 그의 경계함입니다. 비록 배고프고 목마를지라도 숨어 있다 멀리 강과 호숫가에서 먹이를 구하는 것은 그의 안정됨입니다. 그런데도 그물과 덫의 우환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다만 그들의 가죽이 재난을 부른 겁니다. 지금 군주께 노나라는 그 가죽과 같은 것뿐이겠습니까? 바라건대 군주께서도 육체를 도려내 가죽을 벗어 버리며 마음을 씻어 욕망을 없애버려 아무도 없는 들판에 노닐도록 하십시오. 월나라 남쪽에 건덕의 국가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순진하고 소박하며 사사로움이 적고 욕망도 드뭅니다. 일할 줄은 알지만 저장할 줄은 모르고 남에게 무엇을 주고도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의무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예식은 어떻게 수행하는지도 모릅니다. 멋대로 부주의하게 행동하는 것 같지만, 모든 경우에 품격이 있습니다. 살아서는 즐겁고 죽어서는 풍장을 좋아합니다. 바라건대 군주께서도 국가를 떠나 사회를 버리고 길을 친구 삼아 떠나십시오.”

市南子曰: “君之除患之術淺矣! 夫豐狐文豹, 棲於山林, 伏於岩穴, 靜也; 夜行晝居, 戒也; 雖飢渴隱約, 猶且胥疏於江湖之上而求食焉, 定也. 然且不免於罔羅機辟之患, 是何罪之有哉? 其皮爲之災也. 今魯國獨非君之皮耶? 吾願君刳形去皮, 灑心去欲, 而游於無人之野. 南越有邑焉, 名爲建德之國. 其民愚而朴, 少私而寡欲; 知作而不知藏, 與而不求其報; 不知義之所適, 不知禮之所將. 猖狂妄行, 乃蹈乎大方. 其生可樂, 其死可葬. 吾願君去國捐俗, 與道相輔而行.”

 

노나라 군주가 말했다. “그곳에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고 또 강과 산으로 막혔는데, 내게는 수레도 배도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君曰: “彼其道遠而險, 又有江山, 我無舟車, 奈何?”

 

시남 선생이 말했다. “군주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머물지 않은 것을 배와 수레로 삼으십시오.”

市南子曰: “君無形倨, 無留居, 以爲君車.”

 

노나라 군주가 말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아득히 멀고 아무도 없는데 내가 누구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겁니까? 내게는 양식도 없어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그곳에 도달하겠습니까?”

君曰: “彼其道幽遠而無人, 吾誰與爲鄰? 吾無糧, 我無食, 安得而至焉?”

 

시남 선생이 말했다. “비용을 적게 쓰고 욕망을 줄이면 비록 양식이 없더라도 풍족할 수 있습니다. 군주께서 강을 건너 바다에 떠가시면, 되돌아보아 바닷가가 보이지 않게 되고 더 나아가면 배가 어디에 이를지 모르게 될 겁니다. 군주를 전송하는 이 들이 모두 바닷가에서 되돌아갈 때쯤, 군주께서는 이로부터 더 멀리 나아가셨을 겁니다. 타인을 소유한 자는 그것에 연루되고, 타인에 소유된 자는 근심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임금은 타인을 소유하거나 혹은 타인에 소유되지 않으려 했던 겁니다. 바라건대 군주께서는 연루됨과 근심을 제거하고 홀로 길을 따라 크게 광막한 국가에서 노니십시오.”

市南子曰: “少君之費, 寡君之欲, 雖無糧而乃足. 君其涉於江而浮於海, 望之而不見其崖, 愈往而不知其所窮. 送君者皆自崖而反. 君自此遠矣! 故有人者累, 見有於人者憂. 故堯非有人, 非見有於人也. 吾願去君之累, 除君之憂, 而獨與道游於大莫之國. 산목2

 

 

국가로부터 벗어난 사람들

 

장자는 우리에게 인식론적 도전장을 던집니다. 장자는 우리가 모종의 인식론적 장애물을 갖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니까요. 그건 바로 국가주의입니다. 국가가 국민의 재산과 자유를 보호하는 장치라고 믿거나, 혹은 국가는 야만이 아닌 인류 문명의 총화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국가주의자입니다. 물론 국가주의는 인류의 역사가 수렵·채집 생활에서 유목생활로, 그리고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발전했다는 통속적 관념으로 뒷받침됩니다. 국가주의자는 농경생활이 유목생활보다 안정적인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했고, 정착생활로 집중된 재산과 인명을 외부 약탈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탄생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인류학과 고고학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정착생활과 농경생활이 20만년동안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인류에게 아주 늦게 찾아온 혁명인 건 맞습니다. 성곽, 궁궐, 기록 문자 등의 유적과 유물이 말해주는 것처럼, 기원전 3100년경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최초의 국가들이 우후죽순으로, 아니 전염병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탄생합니다. 그런데 이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정착·농경생활이 이루어진 지 4,000여 년이 훨씬 지나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고고학에서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국가기구가 없었던 정착·농경 사회가 두 강 유역에서 최소 4,000년 동안 지속되었던 겁니다. 더군다나 국가가 탄생한 뒤에도 국가와 무관하게 유지되었던 정착·농경사회가 훨씬 더 많았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주의가 지구의 패권을 차지하기 시작했던 서기 1600년 대에도 지구의 3분의 1정도 영역에 국가라는 걸 몰랐던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었으니, 기원전 2000년대나 기원전 1000년대는 말할 필요도 없죠. 정착·농경사회가 국가 탄생의 필요조건인 건 맞습니다. 그러니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동안 인류는 국가를 본 적도 없었던 겁니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대부분 인류에게 정착·농경사회는 여러모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았을 겁니다. 도망가지 못할 정도로 뒤뚱거리는 오리를 잡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겁니다. 여기서 약탈자는 고민하게 됩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먹을 것인가, 아니면 거위를 길러 황금알을 반영구적으로 얻을 것인가? 문제는, 거위를 기르려면 약탈자도 정착생활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궁궐을 짓고, 성곽을 만들고, 세금도 계산하고, 농지도 관리해야 합니다. 설령 지배자가 되더라도 수렵·채집 생활이 주던 자유를 포기해야만 합니다. 묘한 아이러니죠. 자신도 거위가 되지 않으면 거위를 기를 수 없으니까요. 정착·농경 혁명에서부터 국가가 탄생하기까지 4,000여 년의 기간은 약탈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길러야 할지를 고민했던 시간이었던 겁니다. 약탈자가 고뇌를 거듭하던 4,000년 동안 정착·농경 사회는 목축 기술도 발달시키게 됩니다. 농경과 목축은 정착사회를 떠받치는 두 다리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축 사육이 목축으로, 그리고 목축이 유목으로 가는 건 시간문제였다는 사실입니다. 말을 만나는 순간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더 이상 뒤뚱거리지 않고 하늘을 나는 독수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기원전 2000년경부터 농경·목축의 정착생활을 하던 중앙아시아의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기마술이 정점에 이른 기원전 1000년경, 불행히도 중앙유라시아에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영역에 시작된 전대미문의 기술, 인간 가축화의 기술이 들어옵니다. 기원전 1000년 전후 오아시스 주변 정착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던 스키타이 국가의 탄생이 그 증거일 겁니다. 이제 정착생활을 하던 중앙유라시아 초원의 사람들은 지배와 예속의 상태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유목생활에 완전히 뛰어들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고고학과 인류학은 국가주의자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수렵·채집생활에서 유목생활로, 그리고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인류의 삶이 변한 것이 아니라, 목축을 경작과 아울러 했던 정착생활이 유목생활을 낳았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유목생활을 지탱하는 기마술은 이중적으로 작용합니다. 하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약탈하려는 약탈자의 힘을 강화할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거위가 아니라 독수리가 되어 국가기구로부터 탈주하는 자유인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중앙유라시아에서 말은 지배의 도구이자 동시에 자유의 도구였던 겁니다. 스키타이처럼 유목국가를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유목국가마저 넘어설 것인가? 중앙유라시아 유목민들은 매번 이 갈림길에 서 게 되죠. 어느 경우든 당시 유목민들의 삶은 중앙유라시아 서쪽 끝과 동쪽 끝 정착 농경민들보다 나았습니다. 정착민들을 약탈하는 스키타이의 길을 따라도 삶이 풍족했고, 스키타이를 포함한 일체 국가로부터 벗어난 진정한 유목인의 삶도 충분히 풍족했던 겁니다.

 

 

 

국가의 길과 유목의 길

 

크리스토퍼 벡위드(Christopher Beckwith, 1945~)는 주저 중앙유 라시아 세계사(Empires of the Silk Road)에서 말합니다. “유목민들 은 거대 농업 국가들의 농경민에 비해서 대개는 훨씬 쉽게 먹거리를 구했고, 훨씬 편하게, 훨씬 오래 살았다. 중국 지역으로부터 동쪽 스텝 지역으로 유출되는 인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들은 주저 없이 초원의 삶이 더 낫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로 많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훈족이나 다른 중앙유라시아 민족에게 넘어갔을 때, 그들이 고향에 있을 때보다 더 잘 살았고 더 좋은 대접을 받았다.” 여기서 벡위드가 주목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이 물질적 이익 때문에 유목생활에 뛰어드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복종을 강요하는 체제를 거부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내하고 유목생활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중앙유라시아에는 많았기 때문입니다. 스키타이의 길이 아니라 반대의 길을 만들려는 사람들, 습격과 약탈의 도구가 아니라 탈주와 자유의 동반자로 말을 탔던 사람들입니다. 중앙유라시아의 팽팽한 긴장, 스키타이의 삶과 진정한 유목민의 삶 사이의 긴장은 중국 대륙까지 파장을 미칩니다. 잊지 마세요. 중앙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초원길이나 사막 길은 실크 등 사치품들만 오갔던 것이 아닙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기르는 방법도 오갔던 길, 즉 국가의 길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동시에 그 길을 통해 유목국가나 유목제국마저 벗어던지려는 자유인들의 고뇌와 꿈도 함께 들어오게 됩니다. 장자가 천하의 북쪽에서 자유의 공기를 느낀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기원전 300년경 중국 전국시대에 살았던 그는 영역을 넓혀가려는 영토국가의 야욕에 맞서고자 했던 거의 유일한 철학자였으니까요.

 

장자의 시대에는 점 단위로 산재했던 국가가 면 단위로 확장하면서 중국 대륙 내부에 산재해 있던 자유로운 정착사회들이 위기에 빠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야()라 불리는 지역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예속과 복종을 강요하는 국가가 싫으면 누구나 야인(野人)이 될 수 있었죠. 더군다나 흔히 천하라고 불리던 중국 대륙 북쪽에는 오아시스 주변부를 장악했던 유목국가와 더불어, 그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국가를 벗어나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곳이 네 선생 이야기에서 네 선생이 살고 있던 지역입니다. 복종과 예속을 강요하는 순간, 말을 타고 가축들과 함께 떠나버리는 유목민들의 공간이지요. 동시에 중국 대륙 남쪽 지역, 월나라 남쪽 지역에는 국가기구와 무관하게 수렵·채집 생활과 아울러 정착·농경생활을 하는 사회들이 존재했습니다. 하긴 아열대에 가까운 이 지역에 국가기구가 작동하기란 힘든 일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쌀, , 보리, 옥수수 등 4대 주류 곡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거대하고 획일적인 농지도 필요 없고, 아울러 대규모 인력이 집중될 일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약탈자가 경작지를 점령해도 빼앗긴 경작지 옆에는 먹거리가 지천에 널린 풍요로운 숲들이 있으니, 이곳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입니다. 강 유역 비옥한 땅이나 오아시스 주변 지역을 벗어나면 척박한 땅이 펼쳐져 그만큼 농경지에 연연했던 정착민들만 이 국가의 지배를 감내하는 법입니다. 한마디로 월나라 남쪽 지역은 인력을 동원하거나 세금을 부과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곳이었던 겁니다.

 

장자는 이 모든 상황을 몸소 보았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입니다. 정착·농경국가가 강요하는 위계질서로부터 벗어난 공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 구만리 상공을 나는 대붕이 되어 내려다보면, 농경국가는 그야말로 거대한 도화지에 찍힌 작은 점처럼 드물었던 시대입니다. 장자의 소요유는 바로 이 현실과 맞닿아 있었던 겁니다. ‘시남선생 이야기는 바로 이 문맥에서 읽어야 합니다. 국가화가 진행되는 중국 대륙과는 달리 국가기구가 작동하기 거의 불가능했던 곳에서, 특히 월나라 남쪽 상황을 알고 싶은 인류학자나 고고학자가 군침 흘릴 만한 풍경이 펼쳐지니까요. 말은 없지만, 아니 말을 탈 필요 없이 조금만 걷거나 뛰면 예속과 복종 없는 정착생활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곳. 장자의 눈에는 이곳 천하 남쪽이 자유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국가의 길과 유목의 길 사이에서 고민했던 천하의 북쪽보다 상황이 더 나아 보였을 겁니다. 어쩌면 대붕이 북쪽 아득한 곳에서 비상해 남쪽 아득한 곳으로 날아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 였는지 모릅니다. 이야기는 노나라 군주가 시남 선생에게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면서 시작됩니다. 세습으로 노나라 최고 실권자가 되었지만, 노나라 군주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전국시대는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의 시대였습니다. 밖으로는 다른 국가들이 노나라를 집어삼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안으로는 다른 귀족들이 자신의 권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권좌에서 쫓겨나 필부가 되거나 심하면 목숨마저 잃을 위기였던 겁니다. 아무리 선대 천자들의 통치술을 배우고 선대 군주들의 유업을 닦아 귀신을 공경하고 현인을 존중해도위기감이 사라지지 않으니, 노나라 군주의 걱정은 깊어만 갔던 겁니다.

 

 

 

지배하지도 말고 복종하지도 말라

 

우환을 없애는 군주의 기술은 얕다고 평가하며, 시남 선생은 노나라 군주에게 우환을 없애는 근본적인 방법을 제안합니다. 그 핵심은 군주의 지위를 버리라는 것, 지배와 피지배로 구성된 국가기구를 벗어나라는 겁니다.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남 선생은 풍성한 털의 여우와 아름다운 털의 표범을 비유로 듭니다. 아무리 조심하고 경계해도 여우나 표범은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들의 털가죽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값비싼 털가죽을 얻기 위해 여우나 표범을 사냥합니다. 결국 여우나 표범은 자기 털가죽을 벗겨내거나 보잘것없게 훼손해야 합니다. 물론 여우나 표범이 그렇게 할 리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노나라 군주가 국가를 떠나거나 군주라는 지위를 버리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여우나 표범이 자기 가죽을 스스로 도려내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큼 힘든 일일 겁니다. 그러나 시남 선생이 제안한 근본 대책은 정확합니다. 국가라는 억압 사회가 작동하면 누구나 군주가 되려는 본능을 가지게 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구나 CEO나 대주주가 되려는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남 선생의 말대로 노나라는 여우나 표범의 가죽과 같은 것뿐이 아니라그 이상으로 귀한 겁니다. 군주의 자리는 모든 허영과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희소한 자리니까요. 시남 선생은 노나라 군주에게 군주라는 지위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노나라 군주는 다른 국가나 혹은 내부 경쟁자들의 사냥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육체를 도려내 가죽을 벗어버리며 마음을 씻어 욕망을 없애버리는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남 선생은 노나라 군주를 격려하기 위해 저 남쪽 멀리에 있는 자유로운 공동체, 지배와 피지배라는 위계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공동체를 소개합니다.

 

바로 건덕의 국가[建德之國]’로 불리는 마을입니다. ‘건덕(建德)’은 매력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국가로 번역한 ()’은 국가기구를 상징하기보다 상형문자 전통대로 목책 등 울타리로 둘러싸인 마을을 가리킨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남 선생은 담담히 건덕지국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일할 줄은 알지만 저장할 줄은 모르고 남에게 무엇을 주고도 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의무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예식은 어떻게 수행하는지도 모릅니다. 멋대로 부주의하게 행동하는 것 같지만, 모든 경우에 품격이 있습니다. 살아서는 즐겁고 죽어서는 풍장을 좋아합니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 1950~)가 강조했던 코무니타스(communitas) 개념이 연상되는 묘사입니다. 2008정치적인 것의 용어들(Termini della politica)에서 그는 말합니다. “원래 커뮤니티(community)라는 용어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커먼(common)이라는 말이 사적 소유(one‘ own)에 대한 반대말이라는 걸 알려면 사전을 넘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커먼은 사적 소유가 아닌 것, 혹은 누구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에게 혹은 적어도 다수에게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동일자가 아니라 타자를 가리킨다. 라틴어 코무니타스(communitas)의 어원을 추적하면, 우리는 이에 대한 증거를 갖게 된다. 이 용어는 다른 사람에 대한 선물이나 의무를 의미하는 무누스(munus)에서 유래한 말이다.” 소수가 부나 권력을 독점하지 않은 곳, 커먼과 무누스가 살아 있는 곳, 지배계급이 없으니 그들이 강요한 의무나 예식이 무력화되는 곳, 대다수가 비굴하지 않고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는 곳, 지배와 복종에서 자유롭기에 삶이 누구나 즐거운 곳, 피라미드나 고분을 만들어 지배자의 위엄을 과시하지 않는 곳, 새나 짐승 혹은 벌레에게 시신을 맡기는 곳. 바로 이곳이 코무니타스로서 매력을 세우는 마을입니다. 노나라 군주가 이 코무니타스에 살게 되면, 그의 모든 고민이 봄눈 녹듯 사라지리라는 건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시남 선생은 거듭 국가를 떠나 사회를 버리고 길을 친구 삼아 떠나라고촉구했던 겁니다.

 

노나라 군주는 주저합니다. 사실 그가 원했던 것은 근심 걱정 없이 군주의 자리를 향유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애당초 노나라 군주는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고 또 강과 산으로 막혔는데, 내게는 수레도 배도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가고는 싶은데 가기 힘들다는 변명이자 핑계입니다. 노나라 군주의 속내를 모를 리 없는 시남 선생이고 장자입니다. 그러나 시남 선생은 우직하게 말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머물지 않은 것을 배와 수레로 삼으면된다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정착민의 허영과 안주가 아니라 유목민의 자유와 모험을 가슴에 품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국가를 버릴 생각이 없는 노나라 군주는 핑계를 대며 다시 빠져나가려 합니다. “내게는 양식도 없어 배고파도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그곳에 도달하겠습니까?” 이 정도면 대화를 중단하는 것이 옳지만, 시남 선생은 노나라 군주에게 핑곗거리를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비용을 적게 쓰고 욕망을 줄이면 비록 양식이 없더라도 풍족할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공동체, 코무니타스로 가는 데 일체의 핑계를 제거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입니다. 국가기구 혹은 지배와 복종 관계는 불가피한 현실이 아니냐는, 혹은 코무니타스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 아니냐는 변명, 2,500년 뒤 우리의 비겁한 변명마저 사전에 막겠다는 장자의 사자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노나라 군주에게는 어떤 말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걸 장자는 잘 압니다. 장자가 자유인의 슬로건을 밝히면서 시남 선생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이유입니다. “타인을 소유한 자는 그것에 연루되고, 타인에 소유된 자는 근심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임금은 타인을 소유하거나 혹은 타인에 소유되지 않으려 했던 겁니다.” 누구도 지배하려 하지 말고,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말라! 지배와 복종이 없는 코무니타스를 구성하라! 불행히도 시남선생과 장자의 외침은 공허하게 흩어집니다. 대붕이 훌쩍 날아갔던 그 남쪽 바다, 그 끝은 이렇게 외롭게 방치되고 맙니다. 떠나면 죽을 것 같기에 떠나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 장자의 안타까움은 이렇게 깊어만 갑니다. 대붕의 한숨입니다.

 

 

대다수가 비굴하지 않고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는 곳,

지배와 복종에서 자유롭기에 삶이 누구나 즐거운 곳, 

피라미드나 고분을 만들어 지배자의 위엄을 과시하지 않는 곳,

새나 짐승 혹은 벌레에게 시신을 맡기는 곳. 

 

인용

목차 / 장자 / 타자와의 소통

33. 비교하지 않아야 보이는 것들 / 35. 살토 모르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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