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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10. 텅 빈 하늘의 바람 소리, 우리는 바람과 같다 본문

책/철학(哲學)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10. 텅 빈 하늘의 바람 소리, 우리는 바람과 같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1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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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바람과 같다

 

안성자유는 모든 소리에는 구멍과 바람이 존재론적으로 선행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그는 마치 최상의 음악일 것 같은 하늘의 피리 소리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죠. 하늘에는 대나무 관과 같은 구멍도 혹은 나무나 산, 땅이 품고 있는 다양한 구멍들과 같은 구멍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바람이 거센 날 하늘에서는 분명 소리가 들려옵니다. 물론 인뢰(人籟)와 지뢰(地籟)에서 나는 소리처럼 나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소리는 아닙니다. 간헐적이고 순간적으로 아주 날카롭게 혹은 아주 조용하게 소리가 들리다 어느새 소멸합니다. 잠시의 틈을 주지 않고, 또 앞에 들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가 등장하지요. 하늘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 즉 천뢰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면, 알 타이(Altay)산맥이나 티베트고원에 서서 바람을 맞는 장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알타이나 티베트 출신은 아닐지라도 장자는 그곳을 여행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긴 목적이 없는 여행, 소요유의 달인인 장자가 알타이나 티베트 방향으로 자기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을 리 없지요. 소요유11편을 보면 이우(犛牛)라는 특이한 소가 등장합니다. 털이 많은 검은 소를 말합니다. 장자는 이 소를 마치 대붕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그 크기가 하늘을 드리운 구름 같았다[其大若垂天之雲].” 흰 구름 사이로 모습이 아른거리는 거대한 소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나요. 바로 야크입니다. 구름과 눈을 벗 삼아 고산을 배회하는 검은 소 야크입니다. 야크와 함께 있었다는 것은 장자가 그만큼 바람과 함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바람 소리를 들었을 것임을 말해줍니다.

 

지금도 히말라야나 티베트에는 불경이 적힌 타르초(tharchog)와 바람의 말이 그려진 룽따(lungta)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불교 전통과 결합되었다 해도 이만큼 그곳은 대대로 바람과 그 소리가 중시되는 곳이었죠. 물론 중국의 높은 산에서도 천뢰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테지만 그 소리는 산의 많은 구멍들과 나무 구멍들이 내는 소리와 뒤섞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해발 5,000~6,000미터 이상 고산 혹은 그 정상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무도 자라지 않고 산의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만년설로 메워진 히말라야 고산들을 생각해보세요. 하늘에는 수천의, 아니 수만의 바람들이 만들어져 야생마들처럼 온갖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바람들은 부딪히기도 하고 스치기도 할 겁니다. 바로 이 순간 천뢰는 소리를 내게 됩니다. 구멍과 마주침의 존재론이 위태로워지는 순간입니다. 구멍은 없고 바람들만 있는데 소리가 나니까요. 그러나 안심해도 좋습니다. 마주침의 존재론은 여전히 유지됩니다. 그것도 더 근사하고 우아하게 이제 구멍과 바람의 마주침 대신 바람과 바람의 마주침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물론 소리가 나려면 구멍은 불가피합니다. 마주친 바람 중 어느 하나가 구멍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다른 바람과 부딪혀 순간적으로 움푹 패어 그만큼 구멍을 갖게 된 바람을 상상해보세요. 바로 그때 바람들이 소리를 내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바람은 어떤 바람과 마주치느냐에 따라 구멍의 역할 도하고 계속 바람의 역할도 하는 것입니다.

 

천뢰(天籟)에 조바심을 쳤던 사랑스러운 제자에게 스승은 말합니다. “만 가지로 다르게 소리를 내지만 자신으로부터 나오도록 해서 모두 자신이 취한 것이라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바람들이 바람으로 있다가 어느 순간 구멍이 되는 역동적인 장면을 떠올리면, 남곽자기의 말은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사실 장자의 눈에는 인뢰(人籟)의 구멍도 그리고 지뢰의 구멍도 너무 사물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죠. 마치 마주침과 무관하게 실체처럼 존재하는 것 같으니까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대나무의 빈 공간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속이 꽉 찬 죽순을 보세요. 나무의 구멍들이나 산이나 땅의 구멍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마주 침에 의해 팬 겁니다. 구멍은 소리가 생기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 구멍을 실체화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천뢰가 이것을 가르쳐준 겁니다. 바람이면서 구멍일 수도 있는 바람! 바람 안의 구멍과 구멍 안의 바람! 자신을 비운다거나 아니면 자신을 잃는다고 할 때 우리가 구멍이 되는 것은 맞습니다. 이제 타자를 그 구멍에 담아 타자와 소통하는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멍의 상태를 실체화하거나 절대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대나무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도 아니니까요. 차라리 우리는 바람과 같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우리의 마음은 바람과 같은 것이며, 나아가 바람과 같은 것이어야만 합니다. 구멍이 되어 바람을 맞아 소리를 낼 수도 있고, 바람이 되어 누군가의 구멍에 들어가 그 구멍에 어울리는 소리를 낼 수도 있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장자가 바람의 철학자인 이유입니다. 바람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이제 남곽자기, 그러니까 장자가 던진 화두가 풀어지셨나요. “그렇게 소리 나도록 한 것은 그 누구인가!” 오늘도 타르초와 룽따는 촤르르 파르르 웁니다.

 

 

 

 

인용

목차 / 장자 / 타자와의 소통 / 공생의 필살기

9. 타자와 함께 춤을 / 11. 자유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잃었다

바람의 소리는 어디서 생긴 걸까

우리는 바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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