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본(最古本)과 조선조 효경인 『효경대의』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효경』 판본 중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홍무(洪武) 6년, 그러니까 공민왕 22년(1373)의 발문과 간행기가 붙어있는 목판본 『효경』인데 이것은 백낙천 「장한가(長恨歌)」의 주인공이며 양귀비와 로맨스를 속삭인 사람으로 유명한 당 현종이 직접 주석한 『어주효경(御注孝經)』 계열의 금문 효경 텍스트로서 사료된다【이재영(李宰榮)의 석사논문 ‘조선시대 효(孝)사상의 전개와 『효경(孝經)』의 간행’에 언급되어 있으나 자세한 서지정보가 없다. 불행하게도 이재영과 연락이 안 닿아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다. 귀중본일 것이다. 이러한 고판본에 대한 영인작업과 함께 치밀한 고증학적 연구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임화보(林華甫)의 찬주(纂註)와 서[序, 1216], 조씨진덕재(曹氏進德齋)의 서문[1217], 그리고 당현종의 서문이 실려있다고 했는데 후학들의 연구를 기대한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오면 ‘효경’이라는 말은 거의 『효경대의(孝經大義)』라는 책명과 구분 없이 쓰여졌다. 그러니까 『효경』은 『효경대의』의 줄임말일 뿐이다.
『효경대의』란 어떤 책인가? 이것은 원나라 때 동정(董鼎, 똥 띵, Dong Ding)【정확한 생몰년은 미상이나 주희(朱熹)의 사위인 황간(黃幹), 그리고 주희의 문인인 반간선생(槃澗先生) 동수(董銖)에게 사숙(私淑)한 송ㆍ원 교체기의 학자. 주자학을 황간에게 직접 배운 개헌(介軒) 동몽정(董夢程)의 족제(族弟)이기도 하다. 요주(饒州) 파양군(鄱陽郡) 사람, 현재는 강서성 파양호 동편에 있다. 자(字)는 계형(季亨), 별호(別號)는 심산(深山), 한 선생의 설에 얽매이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제가(諸家)의 학설을 박채(博採)하였다고 한다. 송원학안(宋元學案) 권89, 개헌학안(介軒學案)을 통해 그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이 쓴 책이다.
그런데 왜 조선왕조의 사람들은 『효경』하면 동정의 『효경대의』만을 읽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효경대의』가 주자가 지은 『효경간오(孝經刊誤)』라는 책을 크게 발양(發揚)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참 이상하기도 하다. 조선왕조의 사람들이 주자의 권위를 존숭(尊崇)한다면 주자가 산정(剛定) 한 주자의 텍스트를 직접 읽을 것이지, 왜 그 제자를 사숙한 손자뻘의 마이너한 사상가의 작품을 읽는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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