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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효경한글역주, 제1장 주자학과 『효경간오』 - 『예기』 「중용」은 그대로, 『예기』 「대학」은 재구성 본문

고전/효경

효경한글역주, 제1장 주자학과 『효경간오』 - 『예기』 「중용」은 그대로, 『예기』 「대학」은 재구성

건방진방랑자 2023. 3. 29.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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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기』 「중용(中庸)은 그대로, 예기』 「대학(大學)은 재구성

 

 

중용장구의 경우 예기31편의 중용(中庸)과 비교해보면 거의 텍스트의 변형이나 가감이 없이, 있는 순서대로 장을 33개로 나누어 배열했다. 본시 중용(中庸)에도 텍스트의 이질적 요소가 융합된 느낌이 있고, 한서』 「예문지에 예가(禮家)로 분류되어 수록된 중용설(中庸說)2편이라는 서물이 의문부호로 남아있기 때문에, 텍스트 비평의 시각에서 본다면 중용(中庸)텍스트 그 자체의 정합성(整合性)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누가 보아도 전반의 중용론(中庸論)과 후반의 성론(誠論)은 그 텍스트의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주희가 이것을 변형없이 그대로 수용했다고 하는 것은 중용(中庸)을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서 간주하고서 일관되게 주해하고자 하는 웅혼한 해석학적 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중용(中庸)과 성()을 하나의 연속적 코스몰로지(Cosmology)의 틀 속에서 일관되게 해석할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용의 경우 주희의 해석에 대한 반발이 크지 않다. 최소한 기존 텍스트를 있는 모습대로 온전하게 보전했기 때문이다. 

 

中庸論 2~11, 13 ~ 20(在下位) 자사 or 자사학파
誠論 16, 20(在下位)~ 전국 or 한대

  

그러나 대학(大學)의 경우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예기속의 대학(大學)의 텍스트가 있는 그대로 읽기에는 문장의 연결구조나 사상의 흐름에 좀 문제가 있다는 의문은 주자 이전에 북송 사상가들에 의하여 이미 제기되었다. 그래서 대학(大學)의 텍스트의 순서를 재배치하는 작업을 감행한 사람이 있었다.

 

이정집(二程集)에 보면 예기(禮記)부문에 명도선생개정대학(明道先生改正大學)’이천선생개정대학(伊川先生改正大學)’이라는 두 텍스트가 실려있다. 이 두 텍스트는 대학(大學)이라는 텍스트를 자기의 생각에 따라 재배치한 것인데, 형 명도의 재배치와 동생 이천의 재배치가 사뭇 다르다.

 

이러한 사례에 용기를 획득한 주자는 대학(大學)이라는 텍스트를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매우 강렬한 욕망을 느꼈을 것이다주희39세에 정씨유서(程氏遺書)를 편집했는데 이즈음에 대학(大學)재구성의 의욕이 생겨났다, 신약성서27서에서 요한계시록이 신앙에 혼동을 주는 문헌이라고 짤라내버리고 사도 바울의 서한 중에서 위작이라고 판명된 것들을 제거하고, 공관복음서가 아닌 요한복음이 후대의 교회에서 성립한 문헌이라고 하여 파기하여 신약을 새롭게 구성한다면 가톨릭교황청에서는 당장 그를 화형에 처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송대에 이러한 어제(御製) 경전에 대한 민간학자들의 임의적 재구성이 허락될 수 있었다는 것은 중국 송대 사회가, 당대 비잔틴제국이 사라센과 버겁게 대결하고 있는 틈새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십자군이 만행과 약탈과 월권적 점유를 일삼고 있었던 야만의 서구라파사와 비교하면 참으로 개명(開明)한 근대사회의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주자의 경전 재구성은 확고한 인류 근대정신의 발로였다

 

 

 

 

인용

목차

원문 / 呂氏春秋』 「孝行/ 五倫行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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