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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위정 제이 - 7. 잘 봉양해드리는 게 효도의 완성은 아니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위정 제이 - 7. 잘 봉양해드리는 게 효도의 완성은 아니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2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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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잘 봉양해드리는 게 효도의 완성은 아니다

 

 

2-7. 자유가 효를 여쭈었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요즈음 효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봉양하는 것만을 일컫는 것 같다. 허나 개나 말을 가지고 이야기 해도 또한 봉양해주기는 마찬가지인데, 공경함이 없다면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겠느냐?”
2-7.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우선 이 장의 질문자인 자유(子游, 쯔여우, Zi-you)선진(先進)편에서 언급한 사과십철(四科十哲)에 자하()와 함께 문학(文學)에 능한 인물로 공문(孔門)에서 비교적 중후한 위치를 차지하는 제자이다. 나이도 35세 연하, 45세 연하의 두 설이 있으나, 사마천의 기록대로 45세 연하로 보통 설정하고 있다. 열전에는 오()나라 사람으로 되어 있고, 공자가어』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에는 노()나라 사람으로 되어 있다. 내가 생각키에 노인(魯人)이라 함도 일리가 있다. 자유(子游)는 공자(孔子)의 사후 공자(孔子) 교단을 처음으로 리드한 인물로 추정될 뿐 아니라, and thus an ideal choice to head the first Confucian school in BC 470, OA(The Original Analects) 289, 혹설에 의하면 예기』 「단궁이 자유 문하(門下)에서 성립한 문헌이라 말할 정도로 그의 공문(孔門) 내 위치가 높은 사실은 그가 노() 나라 사람으로 곡부(曲阜) 공문(孔門)의 인사이더(insider) 노릇을 해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방증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유(子游)는 자(), 그의 성()은 언()이고 그의 명()은 언()이다. 그러므로 그의 본명을 말할 때는 언언(言偃, 옌 옌, Yan Yan)이라 한다. 후대의 맹자, 순자같은 문헌에서는 공자 사후 공문에서 가장 유력한 제자로 항상 자하(子夏), 자장(子張), 자유(子游) 삼인(三人)을 꼽는다. 논어자장(子張)편은 이 들에 관한 이야기를 집약적으로 취급하고 있다증자(曾子)와 자공(子貢)이 주인공으로 첨가된다. 순자는 자유씨(子游氏)의 천유(賤儒)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게으름만 피우며 일하기를 꺼려하고, 염치없이 마시고 먹기만을 좋아하며, 한다는 말이 군자란 본래 힘쓰는 일은 하지 않는 법이다 라고 하니, 이는 바로 자유학파의 고루한 모습이다.

偸儒憚事, 無廉恥而耆飮食, 必曰君子固不用力, 是子游氏之賤儒也.

 

 

그러나 이러한 순자의 비평은 후대 자유학파가 상례(喪禮)에 능한 사람들로서 여기저기 장사 지내는 데 불려다니면서 공짜로 얻어먹기만 좋아하는 어떤 소인유(小人儒)적인 폐단을 과시한 측면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진다. 자유학파계열에서 단궁(檀弓)」 「중니연거(仲尼燕居)」 「예운(禮運)그리고 곡례(曲禮)」 「예기(禮器)」 「교특생(郊特牲)」 「옥조(玉藻)가 성립했다는 설이 있으므로 하여튼 자유는 고문헌의 전문가로서 예에 밝은 사람이었다. 자장편의 1214장의 내용은 그러한 측면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논어에 비쳐지는 자유의 모습은 순자가 비판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자유는 스승의 말을 실천하는데 추호도 게으름이 없는 사람이며 무엇보다도 그는 매우 훌륭한 행정가였다(a judicious administrator). 자유(子游)는 무성(武城)의 읍재(邑宰)로서 활약했으며, 그는 부하들을 다스리는데 매우 분별력이 있었으며(6-12), 민심을 예악(禮樂)으로 다스려 매우 예술적인 분위기를 조성 하여 공자의 상찬을 얻었다(17-4). 예기』 「예운편에 나오는 대동(大同)사회이상은 바로 이러한 자유의 사회적 실험(social experimentation)에서 얻은 아이디 어가 발전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가 일찍이 무성재(武城宰)로서 활약했다는 사실은 그가 본시 탁월한 무인(武人)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대체적으로 자유는 공자의 유랑시대 말기 때 공자를 만나 공문에 들어온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공자가 송나라, 진ㆍ채에서 감금되는 등 여러 곤욕을 치렀을 때 자유는 탁월한 무술로써 공자일행을 보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십철(四科十哲)의 한 사람으로 자하와 더불어 문학(文學)에 능한 것으로 꼽히는데 이때 문학이란 고문헌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문학의 재주는 일시에 습득되는 것이 아니므로 자유는 문ㆍ무를 겸비한 탁월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시ㆍ서ㆍ예ㆍ악을 정비할 때도 자유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그는 공자사후에 공자교단을 리드하는 한 거물(巨物)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무성의 통치자로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여 민중들에게 감화를 주었던 것도 문ㆍ무를 겸비한 그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그에 관한 기억은 무()의 측면은 사라지고 문()적인 측면, 즉 예의 전문가로서의 이미지만 남게 되었다. 우리가 공자학단의 사람들을 생각할 때 반드시 무()적 측면도 함께 기억해야 그 바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금지효자(今之孝子)’라는 표현은 자로(子路)20금지종정자(今之從政者)’와 같은 표현양식으로 치자(治者)가 살고 있는 당대에 대한 폄하의 뜻이 내포되어있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요즈음 사람들은 이라 말할 때는 과히 긍정적인 맥락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 장의 해석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그 첫째 해석은 요즈음의 효도라 하는 것은 물질적 봉양만을 능사로 아는데, 개나 말도 인간을 잘 봉양할 줄 안다는 것이다. 맹인견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보통 똥개도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할 줄 알고, 집을 지킬 줄 알고, 주인이 오면 반가워할 줄 안다는 것이다. 말도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식에게 인간다운 경건한 정이 결여되어 있다면 과연 개ㆍ말이 인간에게 봉양하는 것이나, 인간이 효도한다 하면서 물질적 봉양만을 일삼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냐는 것이다. 이것은 고주(古 注)에 인용된 포씨(苞氏)의 설이다[苞氏曰, 犬以守禦, 馬以代勞, 能養人者也].

 

그 또 하나의 설은 고주(古注)에도 소개가 되어 있고, 주자가 따르고 있는 해석 방식으로, ‘지어견마(至於犬馬), 개능유양(皆能有養)’의 양()의 목적을 개ㆍ말로 보는 것이다. ‘지어(至於)’……으로 말할 것 같으면탄따오(談到), 지앙따오(講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부모를 봉양하는데 물질적 봉양만을 일삼는다면, 개나 말도 사람이 기르기는 매한가지인데, ()이 없으면 뭔 차이가 있느냐는 반문이다. 이러한 해석을 취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은 양()의 두 대상이 부모(父母)와 견마(犬馬)가 되므로, 부모(父母)를 견마(犬馬)와 동일시하는 불경스러움이 내포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 또한 공자 언어의 본래적 힘, 그 생명력을 희석시키는 후대 경건주의의 가치관으로써 왜곡시켜서는 아니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부모를 모시는 일(serving)’개돼지를 기르는 일(feeding)’을 동일한 차원에서 비유함으로써 오히려 내가 인간인데 이럴 수가 있겠냐 하는 반성을 촉발시키는데 공자 언어의 생기발랄함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개나 말도 죽어서 인간에게 식량을 제공하는데……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또 개나 말도 자기 부모를 봉양할 줄 아는데……라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모두 합당치 않은 억지춘향일 뿐이다.

 

이 장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효()의 본질이 복종이나 의무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에 있다는 사실이다. ()은 진지함이요, 경건한 마음이요, 공경스러운 태도이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적인 교감의 세계이다. ()이 없다면 그것은 부모를 모신다 하는 일이 개돼지를 기르는 차원의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갈파하는 공자의 양식() 속에서, 바로 오늘 우리세태의 정곡을 찌르고 있는 공자의 깨우침에 우리는 소스라치게 되는 것이다.

 

지어견마 개양유양(至於犬馬 皆能有養)’에서 양()의 대상
출처 ()의 대상 해석
논어주소(論語注疏) 犬馬 / 견마가 모든 사람을 잘 봉양해주는데
논어집주(論語集註) / 犬馬 사람이 모든 견마를 잘 봉양하는데
독논어찰기(讀論語札記) 犬馬 / 犬馬 견마가 견마를 모두 잘 봉양하는데

 

 

()’은 거성이다. ‘은 피열(彼列) 반이다. 자유(子游)’는 공자 제자이다. 성이 언()이고 이름이 언()이다. ‘()’이란 음식을 공봉(供奉)하는 것을 일컫는다. 개나 말도 사람이 먹여주는 것을 기다리니 또한 공봉을 받는 것이다. 이 장은 사람이 개나 말을 기를 적에도 다 공양함이 있거늘 그 부모를 공양한다 하면서 공경하는 마음이 미치지 아니 한다면 개나 말을 공양하는 것과 뭐가 다를 것이 있느냐, 함을 말한 것이다. 불경의 죄를 심하게 말씀하신 것이니 우리를 깊게 경계하신 것이다.

, 去聲. , 彼列反. 子游, 孔子弟子, 姓言, 名偃. , 謂飮食供奉也. 犬馬待人而食, 亦若養然. 言人畜犬馬, 皆能有以養之, 若能養其親而敬不至, 則與養犬馬者何異. 甚言不敬之罪, 所以深警之也.

 

호인이 말하였다: “세속적으로 부모님을 섬긴다 하는 것은 잘 공양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님의 은혜를 믿고 사랑에 기대어 점점 불경한 데로 흐르게 되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것은 결코 작은 과실이 아니다. 자유는 성문(聖門)의 고제(高弟)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인께서는 그 사랑에 기댐이 공경을 넘을 것을 걱정하여 이것으로 깊이 경계하여 일깨우신 것이다.”

胡氏曰: “世俗事親, 能養足矣. 狎恩恃愛, 而不知其漸流於不敬, 則非小失也. 子游聖門高弟, 未必至此, 聖人直恐其愛踰於敬, 故以是深警發之也.”

 

 

항상 가까운 사이에서는 부지불식간에 경()을 상실케 되는 것이 우 리가 살면서 크게 경계해야 할 점이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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