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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공야장 제오 - 9. 재아, 낮잠을 자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공야장 제오 - 9. 재아, 낮잠을 자다

건방진방랑자 2021. 6. 24.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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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재아, 낮잠을 자다

 

 

5-9.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가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할 수가 없다. 내 재여에 대하여 뭔 꾸짖을 일이 있겠는가?”
5-9.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처음에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 나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 나는 재여 때문에도 이 같은 습관을 고치게 되었노라.”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논어전편을 통하여 재여는 공자에게 미움을 사는 제자의 모습으로 거의 일관되게 그려지고 있다. 재여의 자()는 자아(子我)이며 보통 재아(宰我)라고 불리어진다. 재아에 관해서는 이미 팔일(八佾)21에서 충분히 거론되었다. 재아가 애공에게 주나라 사람들이 사()로 밤나무를 쓴 것은 백성들을 전율케 하려 한 것이라고 대답한 것에 대하여, 공자가 재아를 심책(深責)하는 장면이 실려있다. 재아에 대한 공자의 책망이 얼마나 준엄하고 격렬한 것이었나 하는 것은 본 장에 더욱 더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재아는 사과십철(四科十哲) 중 자공(子貢)과 더불어 언어(言語)로 꼽힌 인물이다. 그리고 초소왕(楚昭王)이 서사(書社)의 땅 7백리로써 공자를 봉()하려 했을 때 영윤(令尹) 자서(子西)가 그것을 저지하여 소왕에게 간하기를 과연 공자가 거느리고 있는 훌륭한 제자들만한 인물들을 당신이 거느리고 있느냐고 반문하는 장면이 세가에 실려있다. 그때에도 재아는, 자공, 안회, 자로와 함께 공자를 보필하는 대표적인 제자로 손꼽히었다. 그리고 재아는 탁월한 관료()의 재질을 가진 자로서 묘사되고 있다[王之官尹有如宰予者乎?]. 재아는 유능한 정치인으로서 언변이 뛰어난 인물이 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한 재아를 공자가 그토록 미워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낮잠이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좋은 건강유지법의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재아가 낮잠을 잔 사실에 대해 공자가 퍼부은 욕지거리는 좀 도가 지나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낮잠이란 자서는 아니 되었던 상황에서 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었을 것이다. 공자와 제자들이 같이 공부하는 공()의 자리에서 재아 혼자 코를 골며 곯아 떨어졌을 것이다.

 

썩은 나무[朽木]는 조각할 수 없다[不可雕也]. 부슬거리는 썩은 거름흙으로 발라 올리는 담[糞土之牆]은 도저히 흙손질할 수가 없다[不可朽也]라는 것은, 소질이 나쁜 인간은 도저히 교육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후목(朽木)이란 도저히 조각하기에는 이미 다 물러빠진 나무요, 분토(糞土)란 찰기가 전혀 없는 부슬부슬한 개흙이다. 그런 소재를 가지고는 어떠한 가공이 불가능한 것이다. 공자가 자공을 가리켜 기()라 하고, 또 호련(瑚璉)이라 한 것(5-3)과 동일한 맥락에서 그 의미가 료해될 수 있다. 호련이란 아름다움 게 조각한 그릇이다. “내 재여에 대하여 뭔 꾸짖을 일이 있겠는가[於予與何誅]?”라는 말은 꾸짖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꾸짖어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며, 꾸짖을 가치조차 없다는 의미의 극심한 꾸짖음이다.

 

이러한 공자의 준엄한 꾸짖음에 대하여 재여의 주침(晝寢)’이라는 사건이 너무도 걸맞지 않는 가벼운 해프닝이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많은 주석가들이 주침 그 자체의 해석을 달리 하려고 노력했다. 우선 에도의 유자 소라이(荻生徂徠)는 하나의 가설을 제시한다.

 

 

제후에게는 정침이 있고 연침이 있는데, 선비에게는 단지 침이 있을 뿐이다. 이때 침이란 내당을 말하는 것이다. 밤이 되어야 선비는 이 내당에 누울 수가 있다. 그러므로 밤에 눕는 것을 침이라 한다. 그런데 재여주침(宰予晝寢)’을 했다는 것은 대낮에 침실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낮에 침실에 있었다는 것은 대저 말로 옮길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자가 그토록 심하게 야단친 것이다.

諸侯有正寢燕寢, 士唯有寢, 今之內堂也. 夜則臥于此, 故謂夜臥爲寢也. 宰予晝寢, 晝處于寢也. 書處于寢, 蓋有不可言者焉. 故孔子深責之.

 

 

다시 말해서 재여는 대낮에 세미나를 하고 있는 시간에 자리를 피해 내당의 침실로 도망가 어떤 여인과 섹스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가설이기는 하나 과연 그랬을까?

 

두 번째의 다른 해석은 주침(晝寢)’화침(畵寢)’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대낮 주()자를 그림그릴 화()자의 와전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재여가 자기 집의 침실을 신분에 걸맞지 않게 화려한 벽화로 장식한 사실에 대한 공자의 꾸지람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리고 또 어찌 보면 재아가 제자들이 자는 침실에다가 춘화(春畵)와 같은 요상한 그림을 그리다가 발각이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여튼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은 끝이 없다. 다산(茶山)은 이러한 종종의 가능성에 대하여 점잖은 자기해석을 제시한다. 다산(茶山)은 먼저 침()이 꼭 잠잔다는 뜻으로만 해석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은 그냥 눕는다는 뜻이며 흥(, 일어나다)과 짝을 이루는 말이라고 한다. ‘잔다는 것은 매(), 그것은 오(, 깨다)와 짝을 이룬다고 한다[寢興寤寐, 各爲一對, 不可混也]. 그러므로 말한다.

 

 

피곤이 극도에 달하면 대낮이라도 당연히 잠시 수면을 취해야 하는 것이요 그것은 오히려 야단칠 일이 못 된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빈둥빈둥 드러 누워 딴짓하고 있으면 그 허물은 더 중한 것이다.

然疲困至極, 當晝暫眠猶之可也. 若無故偃臥, 其咎彌重矣.

 

 

우리는 여기서 다산의 인간적 관용성을 읽을 수 있다. 피곤에 대한 생리적 휴식을 나무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학문에 뜻을 둔다하는 자가 공부는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흐트러진 삶의 자세에 대한 공자의 분노라는 것이다. 또 다산은 송()나라 왕무(王楙)라는 사람의 설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장주인(長洲人), 자는 면부(勉夫) 그의 저서 야객총서(野客叢書)에 실려있다.

 

 

재여주침한 것을 공자께서 꾸짖으셨다 할 때의 침이란 것은 침실을 말한 것이다. 대저 낮에는 당연히 외실에서 거처해야 하고, 밤에는 당연히 내 실에서 거처해야 하는 것이다. 재아가 대낮에 내실에 거처했다는 것은 그 가 배움에 근본적으로 뜻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몹시 꾸짖으신 것이다. 그것은 비단 낮잠을 잤다는 것만을 일러 야단치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찌 공자의 문하에 유한다 하는 사람이 낮잠을 잔다는 이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

宰予晝寢, 夫子譏之. 寢者, 寢室也. 蓋晝當居外, 夜當居內, 宰我晝居內, 未必留意於學. 故夫子譏之, 非謂其晝眠也. 游夫子之門, 安有晝眠之理!

 

 

다산은 일관되게 주침을 낮잠을 잔 사실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라이(荻生徂徠)처럼 대낮에 침실에서 섹스를 한 것으로 해석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소라이의 말대로 대낮에 침실에 있었다는 사실만을 인정한다. 그것은 낮에 있어서는 아니 되는 곳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학문에 뜻을 두는 자의 생활방식에 대한 공자의 꾸지람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해야할 시 간에 공부는 하지 않고 내당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삶의 자세를 공자는 몹시 못 마땅하게 여긴 것이라는 것이다. 배움의 의지가 박약한 것이라고 간주된 것이다. 이 모든 논의는 실상 예기』 「단궁상에 실려있는 다음과 같은 기사에 근거하고 있다.

 

 

대저 선비가 대낮에 내당에 거처하면, 어디가 편찮은가 하고 병문안할 수가 있다. 그리고 밤에 외당에 거처하면, 돌아가신 분이 있는가 하고 조문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친상과 같은 대단한 변고가 아니면 함부로 밖에서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재계를 하거나 병으로 드러눕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면 낮이건 밤이건 내당에 처박혀 있는 짓을 하지 않는다.

夫晝居於內, 問其疾可也; 夜居於外, 弔之可也; 是故君子非有大故, 不宿於外; 非致齊也, 非疾也, 不晝夜居於內.

 

 

그러나 나는 이러한 모든 논의가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재여주침(宰予晝寢)’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느낌대로 그냥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공자의 재여에 대한 꾸지람의 준열함은 여기서 상세히 논의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파편의 성립 자체가 공자 당대의 현장기록이 아니라 후대의 어떤 의도성 있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정확한 의미맥락을 규정한다는 것은 애초에 포기되어야 할 사태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가 전목(錢穆)의 말대로 후대의 공자학단 내에서 공자와 재여의 관계를 매우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케 만드는 어떤 역사적 정황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승이 간곡한 심정으로 제자에게 진리를 설파하고 있는 자리에서 제자가 대낮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상황은 물론 준열한 꾸지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재여의 모습은 단순한 낮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닫혀있음의 문 제다. 여기서 졸림깨임의 반대이며, ‘깨임은 거저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앞에 마음을 열고 감수성 있게 모든 사태를 수용하는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깨임은 인()이며, 졸림은 불인(不仁)이다. 아무리 생리적으로 졸리다 하더라도 스승이 진리를 설파하는 자리에서 졸 수는 없는 것이다.

 

깨임 졸림
() 불인(不仁)

 

둘째 번 자왈(子曰)’ 이후에 나오는 문장을 호인(胡寅)은 연문(衍文)으로 보았으나 다산의 말대로 그것은 반드시 연문으로 볼 필요는 없다[, 未必然].

 

이 공자의 멘트는 분명 앞의 사건과 연속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담대멸명(澹臺滅明)이라는 인물을 그 겉 인상만을 취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가 나중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공자가 자신의 실수를 자인하는 상황과 대조적으로, 이 언급은 공자가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가 나중에 부정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는 사례로서 잘 인용되는 말이다. 한 사람의 말만 듣고도 그 실천력을 믿을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재여로 인하여 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말을 듣고 과연 그가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가를 유심히 살펴본 후에야 사람을 평가하는 신중한 삶의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실천력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시(改是)’는 문자 그대로 이를 고치었다로 해석되는 것이지만, ‘이와 같이 고치게 되었다라는 뜻도 내포할 수 있다.

 

 

는 허구(許久) 반이다. ‘()’로 발음한다. ‘()’는 평성이다. 이하는 용례도 같다. 주침(晝寢)’이란 대낮에 자는 것을 일컫는다. ‘()’는 썩은 것이다. ‘()’는 그림을 새겨넣는 것이다. ‘()’는 흙손질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 말씀하신 것은, 사람의 지기(志氣)가 흐리멍텅해지고 나태해지면 도무지 가르침을 베풀 수 없다는 것이다. ‘()’는 어기사이다. ‘()’는 책망함이다. 책망할 건덕지도 없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를 깊이 책망하신 것이다.

, 許久反. , 音汙. , 平聲, 下同. 晝寢, 謂當晝而寐. , 腐也. , 刻畫也. , 鏝也. 言其志氣昏惰, 敎無所施也. , 語辭. , 責也. 言不足責, 乃所以深責之.

 

()’은 거성이다. 재여는 평소 말을 잘하였으나, 그 말에 행실이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재여의 일로 인하여 나의 이러한 잘못을 고치게 되었다고까지 하시니, 이는 또한 거듭 경계하신 것이다.

, 去聲. 宰予能言而行不逮, 故孔子自言於予之事而改此失, 亦以重警之也.

 

호인이 말하였다: “‘자왈(子曰)’은 연문인 듯하다. 연문이 아니라면 재여를 야단치신 그 날에 하신 말씀은 아닐 것이다.”

胡氏曰: “ ‘子曰疑衍文, 不然, 則非一日之言也.”

 

범순부가 말하였다: “군자는 배움에 있어서 매일매일 부지런히 힘써 죽은 후에나 그만둘 수 있다. 그러면서도 행여 따라가지 못할까 두려워하거늘, 재여는 낮잠을 잤으니, 그 스스로 포기함이 무엇이 이보다 더 심하겠는가? 그러므로 부자께서 책망하신 것이다.”

范氏曰: “君子之於學, 惟日孜孜, 斃而後已, 惟恐其不及也. 宰予晝寢, 自棄孰甚焉, 故夫子責之.”

 

호인이 말하였다: “재여는 의지로써 기운을 통솔하지 못하고 편안하게 게으름을 피웠다. 안락히 노는 기운이 승()하고 경계하는 심지가 느슨해진 것이다. 옛 성현은 일찍이 게으름과 편안함을 두렵게 여기고, 부지런히 힘쓰며 쉬지 않고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데 힘쓰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이것이 바로 공자께서 재여를 깊게 책망하신 이유이다. ‘청언행(聽言行)’이란 성인께서 유독 이 사건 이후로 이렇게 되신 것도 아니고, 또한 이 사건 때문에 모든 배움의 길에 있는 자들을 의심케 되신 것도 아니다. 특별히 이 사건으로 인하여 가르침을 세워, 뭇 제자들에게 경종을 울려 그들로 하여금 말에 신중하고 행동에 민첩하게 하려 하신 것일 뿐이다.”

胡氏曰: “宰予不能以志帥氣, 居然而倦. 是宴安之氣勝, 儆戒之志惰也. 古之聖賢未嘗不以懈惰荒寧爲懼, 勤勵不息自强, 此孔子所以深責宰予也. 聽言觀行, 聖人不待是而後能, 亦非緣此而盡疑學者. 特因此立敎, 以警辟弟子, 使謹於言而敏於行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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