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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공야장 제오 - 6.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떠나고 싶어라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공야장 제오 - 6.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떠나고 싶어라

건방진방랑자 2021. 5. 2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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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떠나고 싶어라

 

 

5-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의 도가 실현되지 않는구나. 뗏목을 타고 바다에 둥둥 떠 있고 싶다. 이럴 때 나를 따르는 자는 오직 유(: 자로의 이름) 이겠지?”
5-6. 子曰: “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其由與.”
 
자로가 이 말을 듣고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 시었다: “유는 용맹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 나를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는 사리를 헤아리는 바가 부족하다.”
子路聞之喜. 子曰: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논어는 자로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우리가 공자를 성인이라 부른다면, 진정으로 우리가 아성(亞聖)이라 부를 사람은 안회보다도 자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공자는 자로와 더불어 역사에 등장하였고 자로와 더불어 역사에서 사라졌다. 자로의 태어남은 곧 공자의 태어남이었고, 자로의 죽음은 곧 공자의 죽음이었다. 안회가 공자의 데미안이었다면 자로는 공자의 분신이었다. 자로의 삶의 역정이 곧 공자의 삶의 여정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부담없이 의지하고 싶은 인간에게는 항상 짜증을 부리게 마련이다. 공자와 자로의 관계를 보면, 공자는 항상 자료를 나무라고 꾸짖고 또 짜증을 부린다. 공자는 자로에게 자못 신경 질적이다. 그런데 보통의 인간관계는 자주 나무라고 짜증을 부리면 멀어지고 소원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로는 공자가 짜증을 낼수록 더욱 충직해지고 더욱 가깝게 다가가고 더욱 깊게 자기를 반성한다. 자로에게 있어서 공자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자기에게 무어라 하든, 절대적인 존경과 충성을 바쳐야 할 우뚝 선 태산이었다. 그리고 공자에게 있어서 자로는 더 없는 삶의 위로였다. 자로는 고난의 동반자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드라마틱한 내면의 영적 대화가 이 장의 한 씬의 컷들을 구성하고 있다. 보통 승부부해(乘桴浮海)’라고 불리우는 이 장은 논어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많은 대화의 소재를 제공하는, 매우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장으로 회자되어 왔다.

 

먼저 도불행(道不行), 승부부우해(乘桴浮于海)’라는 말 속에는 공자의 세류(世流)에 대한 깊은 절망감이 전제되어 있다. 뗏목의 의미에 해당되는 부()라는 글자에 관한 가장 권위있는 마융(馬融)의 고주를 살펴보자.

 

 

부는 대나무와 통나무를 엮어 물 위에 띄우는 것이다. 그 중 큰 것은 벌이라 하고, 작은 것을 부라고 하는 것이다.

, 編竹木也. 大者曰筏, 小者曰桴也.

 

 

그러니까 부()작은 뗏목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우해(浮于海)’를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데, 이러한 해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작은 뗏목이란 조그만 호수 위나 작은 강 위에 떠 있을 수는 있어도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그러한 성격의 기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표현이 성립하였다는 것은 공자의 당대에 이미 황하나 양자강에 뗏목을 이용하여 물자를 수송하는 유통방식이 유행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시대의 제()나라의 부()가 근해의 염업에 의존하였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해변 연안의 돛을 단 뗏목(coastal sailing rafts)의 운송기능에 한정되는 것이다.

 

많은 주석가들이, 그리고 특히 우리나라의 일부 고대사 사학도들이 이 공자의 뗏목항해[승부부해(乘桴浮海)]가 실제로 산동성 곡부지역에서 본다면 결국 황해를 건너서 있는 조선땅에 대한 동경의 염을 나타낸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리고 자한13에서 공자가 구이의 땅에 살고 싶어했다[욕거구이(欲居九夷)]’라고 한 표현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 구절을 해석하여, 그 구이(아홉 오랑캐 족속)의 땅의 전범이 바로 은나라의 현인인 기자(箕子)가 봉해져서 인현지화(仁賢之化)를 실현한 이상향, 도둑이 없어 문을 닫을 필요가 없으며, 부녀자들이 정숙하고 음탕한 기운이 없으며, 천성이 유순하며 예의가 바르고, 기자가 가르쳐 준 양잠과 직조기술로 풍요로운 이상향의 나라인 조선(朝鮮)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하곤 한다. 실제로 고주소들이 이 구이의 땅으로서 현도(玄菟), 낙랑(樂浪), 고려(高麗, 구려句麗)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여기 승부부우해(乘桴浮于海)’라는 표현을 실제로 뗏목을 타고 황해를 건너는 모험을 강행하는 항해의 의미로 해석할 수가 없다. 우선 부()는 마융의 고주대로 작은 뗏목을 의미하며, 작은 뗏목으로는 도저히 바다를 가로지르는 항해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장이, ()가 행()하여지지 않는 실망감 때문에 바다 건너 오랑캐의 땅으로 이민이나 가버려야겠다고 하는 구체적인 도피주의적 이미지 (an escapist idea)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여기 부우해(浮于海)’라는 표현은 구체적인 목적지를 향해 항해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막막한 대해(大海)에 둥둥 떠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항해의 의미가 아니라 정처 없이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이미지인 것이다. 이것 은 공자의 공상이요 환상이요 몽상이다. 이것은 도불행(道不行)’이라고 하는 절망감에 상대적으로 상정된 공상인 것이다.

 

이상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강렬한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항상 공상의 여백이 있다. 공상의 여백이 없으면 이상주의자들은 모두 미치광이가 되고 만다. 현실은 결코 이상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자는 현실에 대하여 강렬한 집착을 가지고 살았다. 자기의 실존적 힘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강렬한 믿음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러한 믿음이 끊임없이 공자의 삶에 안겨준 것은 좌절이요 실망이요, 세계가 결코 나로 인하여 도덕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 절망이었다. 이러한 절망의 순간에 다가오는 것은 공상이요, 예술이요, 종교적 천명이다.

 

도가 행하여지지 않는 구나[도불행(道不行)!’이란 표현은 그러한 공자의 삶을 엄습하는 치열한 절망감의 한 표현이다. 이에 대한 뗏목이나 타고 바다에 둥둥 떠 있기나 할까[승부부우해(乘桴浮于海)]?’라는 표현은, 그 절망감에 반사적으로 비쳐지는 공상이다. 그 공상의 핵심에 있는 것은 바다라는 상징물이다. 여기 바다라는 것은 미래의 기약이 없는 혼돈이요 카오스(Chaos). 그것은 육지의 질서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공간인 동시에, 그것은 미지의 암흑이요 무질서요 죽음이다. 바다는 매력적인 자유의 공간인 동시에 가공스러운 죽음의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순간에 나를 따를 자는 오직 나의 사랑하는 유()일 뿐일 것이다. 유는 자로의 실명이다. 그러한 절망과 도피와 죽음의 순간에 나를 동반해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로서 유(자로)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충직한 자로의 입장에서 본다면 눈물겨운 우정(友情)이요 인정(認定)이요 상찬(賞讚)이다. 자로는 정말 기뻤을 것이다. 나의 스승님, 나의 삶의 모든 것인 사부님께서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다니! 자로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우직한 자로의 기쁨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때 공자는 무어라 말했던가?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이 구절은 정말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다. 특히 마지막 종구인 무소취재(無所取材)’라는 표현의 애매모호함 때문에 이 전체맥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수없는 주소들이 쏟아졌다. 우선 대표적인 정현의 고주부터 살펴보자!

 

 

자로는 실제로 부자께서 항해를 하시려 하는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 용맹을 좋아함이 나를 뛰어 넘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무소취재(無所取材)’라는 의미는 단지 뗏목의 재목을 구할 길도 없는데!’라는 의미이다. 자로 녀석이 공자의 미묘한 뜻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였으므로 공자가 뗏목 재목 운운하여 그를 희롱한 것이다. 또 하나의 설은 이러하다. 자로는 공자께서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기만 했다. 그리고는 일체 다시 딴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공자께서 그 용기를 가상히 여겨, 나를 뛰어넘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딴사람을 취하지 않으리라고 감탄을 발하신 것이다. 이것은 곧 자로 이외의 딴사람은 데려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옛 글자에 재()와 재()는 같이 쓰였다.

子路信夫子欲行, 故言好勇過我也. 無所取材者, 言無所取桴材也. 以子路不解微言, 故戲之耳. 一日, 子路聞孔子欲乘桴浮海便喜, 不復顧望. 故孔子歎其勇曰過我, 無所復取哉! 言唯取於己也. 古字材哉同耳.

 

 

문맥에 약간의 애매한 구석이 있으나 나는 이 정현주에 대한 상세한 황간의 소가 있으므로, 그 소의 해설에 따라 명료하게 해석하려고 노력하였다. 황간의 소에 따르면 이 구절은 다음의 두 가지 설로 압축된다.

 

 

1)

무소취재(無所取材)’()’를 상식적인 문자의 의미대로, 그것을 뗏목의 재목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런 뜻이 된다. 공자는 승부부해(乘桴浮海)’를 단지 공상적으로 말한 것이다.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우직한 자로는 공자가 실제로 위험한 뗏목 항해를 감행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자로는 그 위험한 항해에 자기가 동행자로서 뽑혔다는 사실에 대해 기쁘기만 했고, 공자의 공상적 발언에 담긴 비애로운 심정은 전혀 이해하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자로에게 그 호용(好勇)은 나를 뛰어넘는다고 일단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 말끝에 임마! 나는 지금 뗏목 재목도 구할 길이 없는데!’라고 희롱했다는 것이다. 즉 그 미언대의(微言大義)를 알아듣지 못하는 자로를 희학적으로 꾸짖었다는 것이다.

 

여기 문맥상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공자집단의 무사적 성격이 다. ‘호용이 나를 뛰어넘는다[호용과아(好勇過我)]’라는 표현은 공자 자신이 호용에 대한 자만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용맹스러운 것을 좋아한다는 의미에서는 공자 자신이 그것을 자신의 실천덕목으로서 평소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헌문5인한 자는 반드시 용맹스럽다[인자(仁者), 필유용(必有勇)]’이라 한 표현이 이를 뒷받침한다. ()의 오리지날한 의미에는 전 사의 덕목적 차원이 항상 같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둘 점이다. 그러므로 호용과아(好勇過我)’란 말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뗏목으로 항해하겠다는 자로의 호용(好勇)이 자신의 호용(好勇)을 뛰어넘는다고 상찬한 것이다.

 

 

2)

두 번째의 설은 무소취재(無所取材)’()’()’와 동자로 보아 감탄 구문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취할 바가 없도다[무소취재(無所取哉)]!’라는 의미가 된다. 추상적으로 이것은 자로의 인품에서 취할 바가 없다고 폄하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주(鄭注)나 황소(皇疏)는 그것을 자로에 대한 공자의 폄하가 아니라 오히려 공자가 자로의 호용을 상찬하시면서, 너 외로는 딴사람은 데리고 가지 않겠다는 격려와 허여의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다[言將我入海, 不復取餘人哉!]. 너의 호용이 나의 호용을 뛰어넘는구나! 그래! 너만 데리고 가마!

 

재미있게도 우리나라의 다산(茶山)은 바로 이러한 정주의 두 번째 설을 취한다. 공자가 자로를 폄하한 맥락은 전혀 없다고 다산은 강변한다. 다산은 공자와 자로의 우정을 다음과 같은 감동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공자의 속뜻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 조각의 뗏목에 몸을 실어 만리길의 바다를 건너간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요, 죽음의 땅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를 행하기 위한 구도의 길이라기만 한다면 나 홀로라도 가겠다고 하면서, 자로라면 반드시 나를 따르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자로가 도를 실천하는 데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나이라는 것을 허여하신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자로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도 스승을 따르리라는 확신을 표방하신 것이다. 한 성인과 한 현인의 의기가 서로 투합하는 바가 천년이 지난 오늘 우리로 하여금 감격케 하는데, 어찌 자로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오? 자로의 기쁨은 곧 자신을 알아주는데 대한 기쁨인 것이다.

孔子之意, 若曰乘一片之桴, 涉萬里之海, 此是危險, 必死之地. 然苟以行道之故, 吾將獨行, 則由也必從之. 一則許子路心熱於行道, 一則知子路舍命而從師. 一聖一賢, 意氣相許, 千載之下, 尙令人感激, 子路安得不喜? 喜者, 喜其知己也.

 

 

3)

황간은 정현의 두 가지 설 외로, 또 하나의 기발한 제3의 설을 소개하고 있다.

 

 

또 하나의 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공자가 도가 행하여지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곧 자신의 도가 세상에 펼쳐지지 않음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작은 뗏목을 타고 거대한 바다로 들어가는 것과도 같은 끝내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이치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은 공자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공자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 또한다 그들의 도가 실현되지 않음을 공자가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나를 따르는 자 또한 나 때문에 그러하다고 공자는 독백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자로는 공자가 나 때문에라고 말했을 때, 때문에 자 를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것이 곧 자기 이름을 말한 것인 줄 알고 곧 기뻐 날뛰었던 것이다. 이에 공자는 자로가 그 미묘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노골적으로 지적하여 야단치기가 좀 미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은미하게 희 롱하여 말하기를, 너의 호용이 나의 호용을 뛰어는 넘는다만, 나는 뗏목을 만들 재목을 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又一家云, 孔子爲道不行, 爲譬言我道之不行. 如乘小入於巨海, 終無濟理也. 非唯我獨如此, 凡門徒從我者道皆不行, 亦竝由我故也. 子路聞我道由, 便謂由是其名, 故便喜也. 孔子不欲指斥其不解微旨, 故微戲曰, 汝好勇過我, 我無所更取材也.

 

 

이 해석은 물론 무지하게 재미있다. 때문에 유()자와 자로의 이름인 유() 자의 쌍관적 의미(pun)를 가지고 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너무 명백한 문맥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상의 세 가지 해석을 모두 취하지 않는다. 나는 이 장의 문맥을 보다 소박하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동경대학 은사이신 후쿠나가 미쯔지(福永光司) 선생은 그의 생애 말년에 중국의 북방문명과 남방문명의 특징을 말[]과 배[]라는 개념으로써 함축적으로 표현하였다(福永光司, 文化文化, 京都: 人文書院, 1996). 말과 배는 고대사회에 있어서 교통수단의 대표적인 두 양태일 것이다. 그런데 말은 우리가 타서 우리의 의지대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배는 물론 우리가 우리의 의도대로 항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는 함수가 너무도 많다. 풍랑을 만나면 풍랑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 혼돈의 법칙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에는 수직적(vertical) 인식구조가 있지만 배에는 수평적 (horizontal) 인식구조가 있다. 말을 코스모스적 상징이라고 한다면 배는 카오스적인 상징이다. 말은 짝수를 중시하며 배는 홀수를 중시한다. 홀수는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혼돈의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노자삼생만물(三生萬物)’을 말한 것이다. 말은 강의(剛毅)의 덕목을 강조하지만 배는 유연(柔軟)의 덕목을 중시한다. 말의 처세태도는 직선적이지만 배의 처세태도는 곡선적이다. 말은 유위(有爲)를 모든 사고의 기저로 놓고 있으며 배는 무위(無爲)를 모든 사고의 기저로 놓고 있다. 말은 우()를 숭상하며 배는 좌()를 숭상한다. 말은 신화적 표현이 남성적이며 배는 신화적 표현이 여성적이다. 결론적으로 말의 문화는 인간을 똑똑하고 현명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배의 문화는 인간을 어리석고 바보스럽게 바라본다.

 

나는 말한다. 코스모스의 배면에는 카오스가 있으며, 인간의 현명함의 배면에는 반드시 어리석음이 있게 마련이다. 공자의 도불행(道不行), 승부부우해(乘桴浮于海)’라는 표현에는 이러한 인간의 어리석음과 우주의 카오스에 대한 동경이 서려있는 것이다. 공자는 차라리 말의 인간이다. 그는 결코 배의 인간이 아니다. 말의 문화를 유가가 대변한다면 배의 문화는 도가가 대변하는 것이다. 배의 문화란 장자가 말하는 ()’의 철학이요, 임제(臨濟)가 말하는 유희삼매(遊戱三昧)’의 경지인 것이다. 불타를 만나면 불타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무궁한 천지의 일기(一氣)에 심()을 유()하는 자유자재의 삼매를 말하는 것이다. 공자와 같은 말의 인간일수록 배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이요, 현세적 도()에 대한 책임감이 강할수록 바다라는 카오스적 해방감에 대한 동경이 용솟음치는 것이다. 여기 바다에 둥둥 떠 있고 싶다라는 표현은 이러한 공자의 실존적 동경의 염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카오스적 세계로 진입할 때, 공자는 안회와 같은 코스모스적 인간을 데리고 갈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카오스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대지의 품과도 같은 카오스적 인간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공자는 말한다: “이럴 때 나를 따르는 자는 오직 유이겠지[종아자(從我者), 기유여(其由與)]?” 이 순간의 자로의 감격은 다산이 말한 대로 이천여 년을 격한 오늘에도 그 전율이 생생하게 우리의 가슴을 저민다. 그러나 자로의 감격은 너무도 충직한 것이다. 공자를 모시고 외로운 바다로 간다는 그 일념에만 매달려 있었다. 공자의 절망감과 처절한 고독의 몸부림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공자는 또다시 짜증을 낸다. ‘유는 용맹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 나를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는 사리를 헤아리는 바가 부족하다[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이 최종적인 나의 해석은 주자의 신주와 상통한다. 주자는 무소취재(無所取材)’()’()’로 해석하였다.

 

 

부자께서 자로의 용맹함은 칭찬하셨으나 자로가 사리를 잘 헤아려 의에 맞게 하지 못함을 꾸짖으신 것이다.

夫子美其勇, 而譏其不能裁度事理以適於義也.

 

 

()’라고 발음한다. ‘()’()’는 둘 다 거성이다. ‘()’는 평성이다. ‘()’()’와 동일하다. 옛날에는 이 두 글자가 서로 차용되었다. ()’는 뗏목이다. 정이천이 말하였다: “바다에 떠있고 싶다는 탄식은 공자께서 천하에 어진 임금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서 하신 말씀이다. 자로는 의()에 용감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나를 따라올 수 있는 자는, 하고 말씀하신 것은 가설적인 언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자로는 그것이 실제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부자께서 자기와 더불어 한다는 것만 좋아 날뛰었다. 그러므로 부자께서는 그 용기를 아름답게 여기시면서도 사리를 헤아려[裁度] (: 적절한 상황)에 맞게 판단하지 못하는 것을 기록하신 것이다.”

, 音孚. , , 並去聲. , 平聲. , 與裁同, 古字借用. , 筏也. 程子曰: “浮海之歎, 傷天下之無賢君也. 子路勇於義, 故謂其能從己, 皆假設之言耳. 子路以爲實然, 而喜夫子之與己, 故夫子美其勇, 而譏其不能裁度事理, 以適於義也.”

 

 

정이천의 해석이 간결하고 대의를 얻었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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