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는 굳센 사람을 보질 못했다
5-1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아직도 참으로 강(剛)한 자를 보지 못하였다.” 5-10. 子曰: “吾未見剛者.” 어떤 사람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신장(申棖)이 있지 않습니까?” 或對曰: “申棖.”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신장은 항상 욕심이 앞서는 사람이니 어찌 그를 강하다 하리오?” 子曰: “棖也慾, 焉得剛?” |
고주는 신장(申棖)을 단지 노(魯)나라 사람이라고만 했을 뿐 그 외의 정보를 주지 않았다[苞氏曰: “申棖, 魯人也”]. 신장(申棖)이라는 사람이 과연 공자의 제자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주자는 신장(申棖)을 ‘제자성명(弟子姓名)’이라 했으나 별 근거는 없다. 『공자가어』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에는 신(申)씨 성을 가진 제자로서 신적(申績: 자字, 자주子周)이라는 인물을 들고 있고, 『사기(史記)』 「열전」에는 신당 (申黨: 자字, 주周)이라는 인물을 들고 있다. 따라서 역대주석가들이 사기의 신당(申黨)이나 『가어』의 신적(申績)은 신장(申棖)을 오기(誤記)한 것이며, 따라서 신장(申棖)은 자(字)가 주(周)인 인물로서 공자의 가까운 제자 중의 한 사람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신장(申棖)을 공자의 제자로 보는 것은 필연적 정당성을 확보할 길이 없다. 신장(申棖)은 『논어』에서 단지 본 장에 단 한번 짤막하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공야장(公冶長)」의 1장 ~ 13장의 성격이 공자의 가까웠던 제자들에 대한 평어(評語)를 집약적으로 수록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보면 신장(申棖) 또한 가까웠던 제자그룹의 한 사람으로 추정하는 것도 큰 무리가 없을 수도 있다. 아마도 신장(申棖)은 노나라 사람이긴 해도 그 조상은 신(申)나라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었을 것이다. 신(申)은 장공(莊公) 6년(BC 688) 초(楚)나라 문왕(文王)에 의하여 정벌되었다.
본 장의 맥락에서 본다면 ‘강(剛)’하다고 하는 인간의 덕목은 공자에게 있어서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강(剛)이란 단지 강(强)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강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그 인품의 강직함, 굳셈(steadfastness) 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자는 말한다.
강이란 견강불굴의 뜻이니, 사람이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보지 못하였다고 탄식하신 것이다.
剛, 堅强不屈之意, 最人所難能者, 故夫子歎其未見.
『상서(尙書)』 「고요모(皐陶謨)」에는 인간의 행실을 아홉 가지 덕(德)으로 총괄하여 말한다. 그 중 하나에 ‘강이색(剛而塞)’이란 표현이 들어있다. 채침(蔡沈)은 ‘강건이독실야(剛健而篤實也)’라는 주석을 달아 놓았다. 그리고 「홍범(洪範)」에는 구주(九疇)의 여섯 번째 범주로서 군주의 삼덕(三德)을 제시하는데, 정직(正直)과 강극(剛克)과 유극(柔克)을 말하고 있다. 강극(剛克)이란 사람을 강직함으로써 다스리는 것 이요, 유극(柔克)이란 사람을 부드러움으로써 다스리는 것이다.
이러한 강(剛)함의 표본으로서 어떤 사람이 신장(申棖)이라는 인물을 제시하였다. 여기 ‘혹대왈(或對曰)’의 ‘대(對)’는 그러한 공자의 탄식에 대하여, 그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자는 신장(申棖)이라는 인물이 강(剛)하기는 하여도 그의 강(剛)함이 어떤 개인적 욕망이나 사사로운 욕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한 인간의 견강불굴한 자세가 어떤 구체적인 합목적성의 욕망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진정한 강(剛)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강(剛)이란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을 벗어나는 대공(大公)의 보편적 기준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시경』의 대아(大雅), 「문왕유성(文王有聲)」이란 시는 문왕(文王)이 훌륭한 덕성을 갖춘 군주라는 것을 찬양하고 있다. 제3장에 ‘욕(欲)’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築城伊淢 | He repaired the walls along the old moat: |
作豐伊匹 | His establishing himself in Fung was according to the pattern of his forefathers, |
匪棘其欲 | It was not that he was in haste to gratify his wishes; |
遹追來孝 | It was to show the filial duty which had come down to him. |
王后烝哉 | A sovereign true was our royal prince! -레게 역- |
성을 쌓고 옛 도랑을 따라 수리하고
풍을 일으키되 선대의 규모에 걸맞게 하고
그 개인의 욕심을 빨리 채우려하지 아니하고
그에게 전해 내려온 효를 실천하시었다.
우리 문왕은 참으로 훌륭한 군주이시도다! - 도올 역 -
이 시는 문왕이 도성(都城)의 토목공사를 일으키는 것도 그의 개인적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편안한 삶의 패턴을 존중하며 무리하게 확대하거나 신축하는 욕심꾸러기 짓을 하지 않으니 참으로 위대한 군주라는 것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과 같이 토목공사가 실수 요와 관계 없이 단지 정부예산을 늘리고 경기부양책의 현명치 못한 수단으로 자행되고 있는 세태에 비교하면, 참으로 인욕(人欲)을 버리고 천리(天理)를 존(存)한다고 하는 구체적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명시(詩)라 아니할 수 없다.
『역(易)』의 손괘(損卦, ䷨)의 「대상전(大象傳)」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산(☶) 아래 연못(☱)이 있는 형상이 곧 손괘의 모습이다. 군자는 이 형상을 본받아 분노를 억누르고 욕망을 질식시킨다.
山下有澤損. 君子以懲焚窒欲.
손괘(損卦)를 상하괘(上下卦)로 나누어 보면 위의 괘는 간괘(艮卦, ☶)로 산(山)을 상징하고, 아랫배는 태괘(兌卦, ☱)로 택(澤)을 상징한다. 「대상전」은 바로 ‘산 아래 연못이 있다[산하유택(山下有澤)]’이라는 형상(大象)으로써 이 괘를 해설하고 있는 것이다. 「단전(彖傳)」에는 ‘손하익상(損下益上)’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이 괘가 태괘(泰卦, ䷊)에서 온 것이라는 통설에 의한 것이다. 즉 태괘(泰卦)의 아랫괘에서 양효를 하나 덜어 윗괘에다가 보탠 형국이라는 것이다. 「대상전(大象傳)」 역시 이 괘는 낮은 연못의 흙을 퍼내어 위에 있는 산에다가 그 흙을 보탠 형상이라는 식으로 풀고 있는 것이다(정의正義).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이 괘를 본받아 자기의 내면적 근원으로부터 덜어낼 것을 덜어내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분노를 징계하고, 욕심을 질식시키는 자계(自戒)의 교훈을 이 괘로부터 얻는다는 것이다. 즉 「대상전(大象傳)」은 이 ‘던다’의 의미의 손괘(損卦)를 우리의 분노와 욕망을 억제시킨다는 도덕적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또 『예기』의 「예운」편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있다.
사람의 정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희ㆍ노ㆍ애ㆍ구ㆍ애ㆍ오ㆍ욕을 일컬음이다. 이 일곱 가지는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할 수 있는 것이다.
何謂人情? 喜ㆍ怒ㆍ哀ㆍ懼ㆍ愛ㆍ惡ㆍ欲, 七者弗學而能.
「예운」편의 이 유명한 기사는 우리나라 조선왕조의 최대논쟁인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의 ‘칠정(七情)’의 전거가 된 구절이다. 칠정(七情)이란 희ㆍ노ㆍ애ㆍ구ㆍ애ㆍ오ㆍ욕과 같은 감정의발출이다. 이 감정은 배우지 않아도 능(能)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들면,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이나, 목수질을 하는 것은 반드시 습득이라고 하는 공부(工夫, Discipline)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울고 웃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개가 짖고 꼬리를 흔드는 것이 학습을 통하지 않아도 가능한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 칠정(七情)의 덕목 중의 하나로 ‘욕(欲)’이 끼어 있지만, 보통 ‘인욕(人欲)’이라는 것은 이 덕목 중의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칠정(七情) 즉 인정(人情)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예운」편에서는 인정(人情)은 인의(義), 인리(人利)와 대비되었는데 이때 인정(人情)과 인의(人義), 인리(人利)가 결코 대적적인 관계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 인정(人情)을 다스리고, 인의(人義)를 닦는 것이 곧 예(禮)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인정(人情)을 잘 파악하여 인의(人義)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 곧 성인지치(聖人之治)의 근본이라고 갈파한다[必知其情, 辟於其義]. 여기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 타이완출신의 감독 리안(李安)이 영화제목으로 쓴 ‘음식남녀(飮食男女)’라는 말이다. 결국 인간의 욕망이 모두 음식남녀지간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음식남녀(飮食男女), 인지대욕존언(人之大欲存焉)’
욕(欲)에 관한 중국철학사의 모든 논의에 가장 핵심이 되는 전거를 제공한 문장은 바로 『예기』 「악기」 중에 실려 있다. 이 「악기」 문장의 해석으로써 송유(Sung-Confucianism) 즉 주자학(Zhuxiism)이 성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그대로의 모습은 고요하다. 이것이 태어난 대로의 하늘의 본성이다. 그런데 대상적 물의 세계를 느끼게 되면서 그 고요함이 깨지고 동하게 되는 것이 곧 본성의 욕망이다. 대상이 나에게 이르면 나의 인식 능력은 그것을 파악한다. 그런 후에 그것은 좋고 싫음의 감정으로 구체화 된다. 좋고 싫음이 내면에서 절도를 잃어버리고, 외면에서는 앎이 계속 물에 유혹을 받으며, 그것을 내 몸이 돌이켜 반성하지 못하면 곧 천리가 멸하 게 되는 것이다. 대저 물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끝이 없고, 사람의 좋고 싫음이 절제를 상실하면, 이것은 곧 물이 나에게 오고, 내가 곧 물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곧 물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물의 노예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천리를 멸망시키고 인욕을 궁진시킨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人生而靜, 天之性也. 感於物而動, 性之欲也. 物至知知, 然後好惡形焉. 好惡無節於內, 知誘於外, 不能反躬, 天理滅矣. 夫物之感人無窮, 而人之好惡無節, 則是物至而人化物也. 人化物也者, 滅天理而窮人欲者也.
이 유명한 「악기」의 문장 속에는 바로 주자학의 ‘존천리거인욕(存天理去人欲)’이라는 테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주자학의 근원이 바로 이 「악기」의 해석에 있었다는 것은 쉽게 파악이 된다. 많은 후대의 학자들이 주자학의 주정주의(王靜主義)적 발상의 근원이 불교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선불교적(先佛敎的, pre-Buddhistic) 경전인 이 「악기」의 구절 속에는 주정주의적 발상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이러한 의문점은 최근 죽간문헌의 발굴로 많은 문제가 해소되었다. 전국시대 중기만 해도 성정(性情)에 관한 개념적 논의나 고도의 코스몰로지를 설파하는 체계적 논의가 난숙해 있었다는 것이 문헌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이 「악기」의 대전제는 바로 ‘인생이정(人生而情), 천지성야(天之性也)’라는 한마디에 압축되어 있다. 즉 인간의 태어난 본래적 모습이 정(靜)하다는 것이다. 이 정(靜)이 곧 천성(天性)이라는 것이다. 정(靜)을 천성(天性)으로 보는 것은 중국 철학적 인성관의 대전제에 매우 어긋나는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열반적정(涅槃寂靜)’이나 기독교적인 초월주의를 모든 사유의 근본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의 본질 그 자체를 동(動)으로 보지않고 정(靜)으로 보아야 하며, 정(靜)이 동(動)에 선행(先行)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정(靜)이 동(動)에 대하여 가치론적으로 우위를 점유하며, 동적(動的)인 세계는 정적(靜的)인 세계에 대하여 타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그러면 모든 인간의 수행(修行)의 목표는 동적인 세계에서 정적(靜的)인 세계로 회귀 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것은 유교적 세계관의 본질을 흐려버리는 위험한 발상이다. 즉 정(靜)과 동(動)이 이원화(二元化)되고, 동(動)에 관계되는 모든 것이 죄악시될 뿐이기 때문이다. 「악기」의 이 구절은 분명 이러한 오해의 소지를 충분히 떠안고 있다. 주자학의 도덕주의도 바로 이 「악기」의 해석의 오류에서 출발한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란 감(感)하고 동(動)하는데 그 존재이유가 있다. 생명은 곧 감동(感動)이다. 그런데 이 감동(感動, 느끼어 움직임)을 「악기」의 저자는 욕(欲)의 세계로 보았다. 감동의 주체는 나의 생명이다. 그런데 감동의 유발적 대상은 물(物)이다. 그런데 이 물(物)은 곧 과학적 대상으로서의 자연(自然)이 아니라, 인성(人性)의 고요함을 파괴하는 도덕적인 악(惡)으로서의 물(物)이라고 본 것이다. 정(靜)의 상태에는 욕(欲)이 생겨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정(靜)을 깨뜨리는 것은 물(物)의 도래다. 물(物)이 도래하면 인간의 감수성은 그것을 파지하여 호ㆍ오라는 감정으로 그것을 틀 지워낸다. 호오가 생기면서 곧 인간의 욕망의 세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동적(動的)인 욕망의 세계가 어떤 절도를 상실하면 천리(天理)를 멸(滅)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호오가 절도를 상실하면, 인간은 도덕적 주체성을 상실하게 되므로, 그러한 인간은 곧 물(物)로 화(化)해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이라는 도덕적 주체가 아니요, 대상적 물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화물(人化物)’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물화는 곧 인욕(人欲)을 궁진(窮盡)케 하고 천리(天理)를 멸망(滅亡)케 한다는 것이다.
여기 분명 「악기」의 저자는 인간의 천성을 정(靜)한 것으로 파악하는 주정주의(Quietism)의 세계관을 표방하고 인간의 욕망을 그 정(靜)을 깨뜨리는 동(動)으로 보며, 그 동(動)의 유발자를 물(物)로 보고, 인간이 그 물(物)에 종속되는 현상을 인간의 물화(物化)라고 명명한다. 인간의 물화(物化)는 천리(天理)를 멸(滅)하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상실하는 타락의 극치라고 파악한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 너무도 불교적인 세계관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악기」의 주정주의는 불교적인 주정주의로 해석될 수 없다. 즉 「악기」의 ‘인생이정(人生而靜)’의 정(靜)은 단지 방편적인 설정이며, 그 정(靜)이 곧 동(動)과 이원화되는 정(靜)은 아니다. 그 정(靜)은 곧 동지정(動之靜)일 뿐이요, 동(動)의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는 정(靜)이다. 다시 말해서 「악기」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욕(欲) 그 자체가 아니라 욕(欲)의 발현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 그 욕(欲)의 감동(感動)형태가 곧 인간을 물(物)에 예속시키는 방식으로 발현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단지 악(惡)은 감동(感動)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요, ‘무절(無節)’에 있는 것이다. 즉 절도의 공부의 결핍에 있을 뿐이다. 그것을 ‘불능반궁(不能反躬)’이라 표현한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분명 감동(感) 이후의 사태다. 인간의 정감이나 모든 행위가 감(感)하여 동(動)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감동(感動)은 반드시 호오(好惡)와 결부되어 있다. 사물의 객관적 인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 그 자체가 인간에게 있어서는 호오(好惡)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도덕적임을 회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악기」에 관한 논의는 매우 심도 있게 여러 측면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주정주의적 이원론의 발상 속에서 파악될 수는 없는 것이다. 주자는 너무 그것을 주정주의적으로 해석했고 따라서 주자학이 불교의 윤리적 니힐리즘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불교적 세계관의 틀 속에서 도덕주의를 확립하는 구조로 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신유학의 아이러니며, 그 아이러니의 실마리를 이 「악기」의 문장이 제공했던 것이다.
공자가 신장의 강직함이 욕(欲)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진정한 강직함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욕(欲) 자체의 부정이 아니라 단지 욕(欲)의 발출방식이 자사적(自私的)으로 이루어져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이다. 공자(孔子)는 천리(天理)를 위하여 인욕(人欲)을 버려야 한다는 그러한 발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공자(孔子)에게 있어서 인욕(人欲)은 소중한 것이다. 「악기」의 저자에게 있어서도 감동(感動)의 성욕(性欲)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을 인간다웁게 만드는 것이요, 악(樂)이라고 하는 인간의 화(和同)의 예술의 본질을 형성하는 것이다. 곽점초간문헌은 ‘희노애비의 기가 곧 성이다[喜怒哀悲之氣, 性也]’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에서 공자가 욕(欲)에 대하여 언급한 것 때문에 신유학의 도덕적 엄숙주의(moral rigorism)는 크게 해석의 전거를 얻었다. 그러나 욕(欲)에 대한 공자의 생각과 주희의 생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공자는 째즈의 달인, 주희는 이를테면 고지식한 공무원인 셈이다.
욕(慾)은 욕(欲)과 같은 글자이다.
‘焉’은 어건(於虔) 반이다. ○ ‘강(剛)’은 굳세고 강하여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니, 사람으로서 능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아직 보지 못하였다고 탄식하신 것이다. ‘신장(申棖)’은 제자의 성(姓)과 명(名)이다. ‘욕(慾)’이란 기욕이 많은 것이다. 기욕이 많으면 강함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焉, 於虔反. ○ 剛, 堅强不屈之意, 最人所難能者, 故夫子歎其未見. 申棖, 弟子姓名. 慾, 多嗜慾也. 多嗜慾, 則不得爲剛矣.
○ 정이천이 말하였다: “사람이 욕(慾)이 있으면 강(剛)할 수가 없고, 강하면 욕에 굴하지 않는다.”
○ 程子曰: “人有慾則無剛, 剛則不屈於慾.”
사현도가 말하였다: “강과 욕은 아주 상반되는 것이다. 외물을 능히 이기는 것을 강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강은 항상 만물의 위에 떳떳하게 펼쳐져 있다. 사물에 가리워 늘려있는 것을 욕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항상 만물의 아래에 꾸부정하게 있다. 예로부터 뜻이 있는 자는 적었고, 뜻이 없는 자는 많았으니 부자께서 아직 보지 못하였다고 하신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신장 의욕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람됨이 외면적으로 강직하게 보이면서도 속셈으로는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 승부의 계산이 있는 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므로 혹자가 이 때문에 강하다고 여긴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욕(慾)되는 것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
謝氏曰: “剛與慾正相反. 能勝物之謂剛, 故常伸於萬物之上; 爲物揜之謂慾, 故常屈於萬物之下. 自古有志者少, 無志者多, 宜夫子之未見也. 棖之慾不可知, 其爲人得非悻悻ㆍ自好者乎? 故或者疑以爲剛, 然不知此其所以爲慾爾.”
‘기위인(其爲人), 득비행행자호자호(得非悻悻自好者乎)’구문 중 ‘행행(悻悻)’은 『맹자』 「공손추」 하12에 용례가 있고, ‘자호(自好)’는 「만장」 상9에 용례가 있으나, 그 『맹자』의 의미맥락과 사현도의 문장은 별 관련이 없다. 이에 대한 해석은 『주자어류』 권28에 실려있다: ‘悻悻者, 外面有崛强之貌, 便是有計較勝負之意, 此便是慾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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