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내를 끄집어내기 위한 동물적 감각
장사치들과의 밀회(?)가 수행원들의 감시를 따돌리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라면, 열하에서 만난 재야선비들과의 필담은 거의 비밀 지하조직과의 접선을 연상시키듯 팽팽한 긴장 속에서 진행된다. 잘 알다시피, 당시는 만주족 출신이 지배하던 시절이라 사회 전체에서 이른바 만족과 한족 사이의 갈등이 만연해 있었다. 「피서록(避暑錄)」을 보면, 만주인 기려천(奇麗川)은 나이가 스무살이나 많고 벼슬도 조금 높은 한족 출신 윤형산(尹亨山)을 노골적으로 멸시한다. 그런가 하면 연경에서 돌아와 한인들에게 기려천에 대해 물었을 땐, “점잖은 선비가 어찌 되놈의 새끼를 안단 말이오[士大夫安知靼子]” 한다. 그만큼 두 종족 사이의 알력이 심했던 것. 연암이 만난 이들은 주로 한인들인데, 연암은 이들의 심중을 떠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예컨대 자주 탄식소리를 내는 곡정(鵠汀) 왕민호(王民皥)에게 “선생은 평소에 어째서 자주 탄식을 하십니까[先生平居 何頻發嘆也]?”하니, 곡정은 “평생에 글을 읽어도 세상에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십중팔구이니, 어찌 이 병이 생기지 않겠습니까[平生讀書 千古不如意者 十常八九 安得不成此痞患]?”한다. 그러자 곧바로 “머리 깎는 봉변을 당했으니, 지사로서 이미 만 번은 탄식을 하였겠지요[頭厄已發 志士萬太息]”라며 말을 잡아챈다. 머리 깎는 봉변이란 만주족이 한족에게 강요한 변발(辮髮)을 의미한다. 황비홍의 ‘헤어스타일’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이마부터 머리 가운데 부분은 빡빡 밀고 뒷머리는 길게 땋아내린, 어찌 보면 세련되고, 어찌 보면 촌스럽기 짝이 없는 이 스타일은 훗날 신해혁명(1911년)으로 청왕조가 붕괴되기까지 만주족의 통치를 상징하는 문화적 징표로 기능하였다. 그러니 연암의 멘트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사안을 건드린 셈이다. 곡정은 얼굴빛이 변했다가 잠시 후 안색을 바로잡고는, 머리 깎는 봉변이라고 쓴 종이를 찢어서 화로에 던져버린다. 그런가 하면, 또 이런 장면도 있다.
이때 해는 이미 저물어 방 안이 침침하여 촛불을 켜놓은 상태였다. 내가 시구로 응대했다.
不須人間費膏燭 | 인간 세상에 굳이 촛불 켤 필요 있나 |
雙懸日月照乾坤 | 해와 달 쌍으로 걸려 천지를 비추는 것을 |
그러자 왕민호가 손사래를 치면서 먹으로 ‘쌍현일월(雙懸日月)’ 네 글자를 지워버린다. 대개 일ㆍ월을 쌍으로 쓰면 명(明)자가 되기 때문이다.
是時日已暮 炕內沈沈 故已喚燭矣 余曰 不須人間費膏燭 雙懸日月照乾坤 鵠汀搖手 又墨抹雙懸日月 葢日月雙書 則爲明字
명(明)자가 무슨 죄가 있다고? 만주족에 의해 붕괴된 명왕조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글자 하나도 예사롭게 넘기지 못하는 이 대목은 마치 한국현대사를 옥죄었던 ‘레드 콤플렉스’가 연상될 정도다. 그만큼 당시 지식인들에게 있어 명청(明淸)의 교체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물론 연암 같은 조선 지식인들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들이 당면한 딜레마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다. 청왕조는 한족 선비들을 길들이기 위하여 송나라 때 체계를 이루고, 원나라 이후 중국의 정통이념이 된 주자학(朱子學)을 통치철학으로 표방하는 한편, 『사고전서(四庫全書)』라는 방대한 작업을 추진한다. 역대 유학의 방대한 체계를 정리하는 이 작업에 뛰어들어야 하는가 마는가? 실로 곤혹스런 질문임에 틀림없다.
연암이 ‘무엇이 금서(禁書)인가’하고 운을 떼는 것은 그들을 이 문제로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 질문에 곡정은 정림(亭林) 고염무(顧炎武), 서하(西河) 모기령(毛奇齡), 목재(牧齋) 전겸익(錢謙益) 등의 문집 수십 종을 써서 보이고는 곧 찢어버린다. 그러자 연암은 “저 영락제(永樂帝, 명나라 황제) 때에 천하의 군서를 수집하여 『영락대전』 등을 만들되, 당시의 선비들로 하여금 머리가 희도록 붓을 쉴 사이 없게 했다더니, 지금 『도서집성(圖書集成)』 등의 편찬도 역시 그런 뜻인지요[永樂時蒐訪天下群書 爲永樂大全等書 賺人頭白 無暇閒筆 今集成等書 並是此意否]”라고 정면돌파를 시도한다. 곡정은 곧 재빨리 붓으로 이 말을 지워버리며, “본조의 문치(文治) 숭상은 백왕(百王)들 중에서 탁월합니다. 그러니까 『사고전서』에 편입되지 않은 글이야말로 아무런 쓸 곳이 없겠습지요[本朝右文 度越百王 不入四庫 顧爲無用].”라며 논점을 비껴나간다.
이런 식의 ‘기싸움’은 필담 곳곳에서 재연된다. 사실 그의 잠행이 돋보이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예민한 촉수를 뻗쳐 끊임없이 금기를 건드리고 집요하게 그들의 깊은 속내를 끄집어내는 동물적 감각, 연암이 보기에 천하의 대세를 파악하기 위해선 이처럼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심층을 탐색하는 작업이 반드시 요청된다.
▲ 변발
변발은 만주족 특유의 헤어스타일이다. 만주족이 청을 세우고 나서, 중국의 모든 남성들에게 이 스타일을 강요했다. 때문에 한족 남성들은 청의 문화ㆍ제도 가운데 이 변발을 가장 치욕적인 것으로 여겼다. ‘소중화(小中華)주의’로 똘똘 뭉친 조선인들 역시 변발이야말로 야만의 상징이라고 간주했다. “권력은 신체를 통해 작동한다”는 걸 이보다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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