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아수라장
‘워밍업’을 위한 퀴즈 하나 더, 『돈키호테』의 저자는? 세르반테스 정말 그렇다고 믿는가?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하게 있으면 그 사람은 분명,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럼 세르반테스가 아니냐구? 물론 제자는 세르반테스다. 그러나 『돈키호테』를 읽다보면 원저자가 따로 있고 세르반테스 자신은 마치 번역자인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대목들과 도처에서 마주친다. 처음엔 웃어넘기다가도 같은 말을 자주 듣다보면, 웬만큼 명석한(?) 독자들도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2부는 1부의 속편이 아니다. 1부에서 돈키호테가 한 기이한 모험들이 책으로 간행되어 사람들 사이에 널리 유포된 상황이 2부의 출발지점이다.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자신이 저지른 모험을 확인하기 위한 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이처럼 『돈키호테』는 기상천외의 모험담이기 이전에, 파격적인 언어적 실험이 난무하는 텍스트다.
잘 따져보면, 돈키호테는 광인이 아니다. 그의 명징한 이성은 고매하기 이를 데 없다. 기사담이란 기사담은 몽땅 암기하는 놀라운 기억력, 군중들 앞에서 이상과 자유에 대해 설파하는 도도한 웅변술, 치밀한 분석력 등은 거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그런 인물이 왜 ‘미치광이’가 되었냐구? 그건 순전히 그가 놓인 ‘자리’ 때문이다. 신부, 이발사 등 이른바 상식적인 인간들의 언어와 속담에 살고 속담에 죽는 시종 산초 판사의 분열적 언어 사이에 놓이는 순간, 돈키호테의 그 영웅적 수사학은 광인의 징표가 되어버린다. 오, 그 배치의 황당함이란, 비트겐슈타인의 말마따나, ‘언어는 단지 용법일 뿐’이라는 것을 돈키호테는 ‘온몸으로’ 증언해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층위를 지닌 말들이 펼치는 아수라장, 『돈키호테』의 저력은 무엇보다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 점에선 『열하일기』도 만만치 않다.
밤에 여러 사람과 술을 몇 잔 나누었다. 밤이 깊자, 취해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내 방은 정사의 맞은편인데, 가운데를 베 휘장으로 가려서 방을 나누었다. 정사는 벌써 깊이 잠들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담배를 막 피워 물었을 때다. 머리맡에서 별안간 발자국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도이노음이요(擣伊鹵音爾幺).” 대답소리가 이상하다. 다시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더 큰 소리로 대답한다. 소인은 “도이노음이요.” 이 소란에 시대와 상방 하인들이 모두 놀라 잠이 깼다. 뺨 갈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등을 떠밀어서 문 밖으로 끌고 가는 모양이다.
夜與諸君略飮數杯 更鼓已深 扶醉歸臥 與正使對炕 而中隔布幔 正使已熟寢 余方含烟矇矓 枕邊忽有跫音 余驚問汝是誰也 答曰 “擣伊鹵音爾幺” 語音殊爲不類 余再喝 “汝是誰也” 高聲對曰 “小人擣伊鹵音爾幺” 時大及上房廝隷 一齊驚起 有批頰之聲 推背擁出門外
알고보니 그는 밤마다 우리 일행의 숙소를 순찰하면서 사신 이하 모든 사람의 수를 헤아리는 갑군이었다. 깊은 밤 잠든 뒤의 일이라 지금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군이 제 스스로 ‘도이노음’이라 하다니, 정말 배꼽잡을 일이다.
盖甲軍 每夜巡檢一行所宿處 自使臣以下點數而去 每値夜深睡熟 故不覺也 甲軍之自稱擣伊鹵音 殊爲絶倒
우리나라 말로 오랑캐를 ‘되놈’이라 한다. 갑군이 ‘도이’라고 한 것은 ‘도이(島夷)’의 와전이고, ‘노음(鹵音)’은 낮고 천한 이를 가리키는 말, 즉 조선말 ‘놈’의 와전이요, ‘이요(伊幺)’란 웃어른에게 여쭙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조선 사람이 알아듣도록 ‘되놈이요’하고 말했던 것이다. 갑군은 여러 해 동안 사신 일행을 모시는 사이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말을 배웠는데, ‘되놈’이란 말이 귀에 익었던 모양이다. 한바탕 소란 때문에 그만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벼룩에 시달렸다. 정사역시 잠이 달아났는지 촛불을 켜고 새벽을 맞았다. 「도강록(渡江錄)」
我國方言 稱胡虜戎狄曰擣伊 盖島夷之訛也 鹵音者 卑賤之稱 爾幺者 告於尊長之語訓也 甲軍則多年迎送 學語於我人 但慣聽擣伊之稱故耳 一塲惹鬧 以致失睡 繼又萬蚤跳踉 正使亦失睡 明燭達曙
조선 사람들이 청나라 사람들을 낮춰 말하는 ‘되놈’이라는 욕설이 마치 보통명사처럼 전이되어 청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을 ‘도이노음’이라고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언어도 물을 건너면 이렇게 황당한 변칙적 전도가 일어나는 법이다.
반대 케이스도 있다. 역졸이나 구종군 따위가 배운 중국말 가운데 고린내, 뚱이 등이 있다. 고린내는 냄새가 심하다는 뜻인데, 고려 사람들이 목욕을 하지 않아 발에서 나는 땀내가 몹시 나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고, 뚱이는 ‘동이(東夷)’의 중국음으로 ‘물건을 잃었을 때, 동이가 훔쳤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그런데 조선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 채 나쁜 냄새가 나면, ‘아이, 고린내’하고,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쳤다고 생각될 때에는, ‘아무개가 뚱이야[不識此 聞臭之不善則稱高麗臭 疑人偸物則稱某也東夷]” 한다. 이처럼 대개의 여행기가 그렇듯이 『열하일기』에는 이질적인 언어들이 일으키는 충돌이 곳곳에서 속출한다.
연암은 특히 언어문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말들이 부딪히는 장면들을 예의주시한다. 「피서록(避暑錄)」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가 보기에 ’중국 사람들은 글자로부터 말 배우기로 들어가고[中國因字入語]‘, 조선인들은 ’말로부터 글자 배우기로 옮겨 가므로 중화와 이적의 구별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로 인하여 글자를 배운다면 말은 말대로 글은 글대로 따로 되는 까닭이다[我東因語入字 故華彛之別在此 何則 因語入字則語自語書自書].‘ 예를 들면 천자문을 읽을 때, 한날천(漢捺天)이라고 한다면, 이는 글자 밖에 다시 한 겹 풀이하기 어려운 언문이 있게 된다. 그러니 아이들이 애당초에 ‘한날’이란 무슨 말인 줄을 알지 못하니, 더군다나 천을 알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경전을 익히는 데 있어 이중적인 문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경서를 익히는 방법에서도 차이가 있다. 중국인들은 이른바 ‘글 외기’와 ‘강의하는 것’, 두 길이 있다. 처음 배울 때는 그저 사서삼경의 장구만 배워서 입으로 외고, 외는 것이 능숙해진 다음 스승께 다시 그 뜻을 배우는 걸 ‘강의’라 한다. 설령 죽을 때까지 강의하지 못하더라도 입으로 익힌 장구가 곧 날로 상용하는 관화(官話)가 된다. 그러므로 ‘세계 여러 나라 말 중에서도 중국말이 가장 쉽다[其實中國婦人孺子 皆以文字爲語 故雖目不識丁 而口能吐鳳]’.
언어에 대한 이런 식의 판단은 다른 부분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연경에 들어간 뒤에도 사람들과 더불어 필담을 해보면 모두 능란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며, 또 그들이 지었다는 모든 문편들을 보면 필담보다 손색이 있었다. 그때 비로소 우리나라에 글짓는 사람이 중국과 다른 것을 알았으니, 중국은 바로 문자로써 말을 삼으므로 경(經)ㆍ사(史)ㆍ자(字)ㆍ집(集)이 모두 입 속에서 흘러나오는 성어(成語)였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글을 짓는 자는 어긋나서 틀리기 쉬운 옛날 글자를 가지고, 다시 알기 어려운 사투리를 번역하고 나면 그 뜻은 캄캄해지고 말은 모호하게 되는 것이 이 까닭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런 이중성이 문명을 습득하는 데 적지 않은 장애가 된다고 간주한다. 이런 견해는 북학파 공통의 것이었고, 그 가운데 박제가(朴齊家)는 특히 과격하여 문명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중국어를 공용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어쨌든 조선어와 중국어, 두 언어 간 차이들은 수많은 해프닝을 일으키는데, 그중 압권이 다음 사건이다.
호행통관(護行通官) 쌍림(雙林)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호행통관이란 사신단을 호위하는 임무를 띤 청나라 관리다. 일종의 ‘보디가드’인 셈. 그러나 말이 ‘호행’이지 쌍림은 책문에 들어선 지 열흘이 되도록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조선말도 불분명한 데다 급하면 도로 북경말을 쓰고 으스대며 뻐기기 좋아하는, 좀 덜떨어진 인물이다. 첫 대면한 자리에서 연암은 그와 말대꾸를 하기 싫어 종이를 꼬아서 코를 쑤시는 등 딴청을 부렸다. 무시당한 쌍림이 ‘열받아서’ 나가버리자 일행들이 그와 사이가 나쁘면 앞으로 좀 재미없을 거라고 연암에게 귀띔한다. 연암도 왠지 께름칙하여 마음을 바꿔먹고 약간의 친절을 베푼다. 거기에 감동한 쌍림이 연암과 장복이를 자기 수레에 태워주는 선심을 쓴다(역시 좀 덜떨어진 게 틀림없다).
게다가 장복이를 불러서 오른편에 앉히고는, “내가 조선말로 묻거든 너는 관화로 대답하거라” 한다. 이렇게 해서 둘 사이의 국경을 넘는 희한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꼴을 지켜본 연암의 총평. 「일신수필(馹汛隨筆)」에 나온다.
쌍림의 조선말은 마치 세 살 먹은 아이가 ‘밥줘’를 ‘밤줘’하는 수준이고, 장복의 중국말은 반벙어리 말 더듬듯, 언제나 ‘에’ 소리만 거듭한다. 참, 혼자 보기 아까웠다. 게다가 어이없게도, 명색이 통관이라는 쌍림의 조선말이 장복의 중국말보다 못하다. 존비법을 전혀 모를뿐더러, 말 마디도 바꿀 줄 모른다.
一個東話的三歲兒索飯 似覓栗 一個漢語的 半啞子稱名 常疊艾 可恨無人參見 雙林東話 大不及張福之漢語 語訓處 全不識尊卑 且不能轉節
대화 내용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너, 우리 아버지를 본 적이 있느냐[你見吾父主麽]?” (쌍림, 이하 ‘쌍‘)
“칙사 나왔을 때 보았소이다[出敕時 吾瞧瞧了].” (장복, 이하 ‘장‘)
“우리 아버지 눈깔이 매섭지 않더냐[吾父主眼孔裏妖惡]?” (쌍)
“푸하하하. 하긴 마치 꿩 잡는 매의 눈깔 같더구먼요[如拿雉之鷹眼].”(장)
“너, 장가 들었냐[你入丈否]?” (쌍)
“집이 가난해서 여직 못 들었습죠[家貧未聘].”(장)
“하이고, 불상, 불상, 참말 불상하다[不祥].”(쌍)
“의주에 기생이 몇이나 되느냐[義州妓生幾個]?” (쌍)
“한 40~50명은 될 걸요[也有三五十個].” (장)
“물론 이쁜 기생도 많겠지[多有美的麽].” (쌍)
“이쁘다 뿐입니까. 양귀비 같은 기생도 있고, 서시(西施) 같은 기생도 있습지요[奢遮的 道甚麽 也有楊貴妃等物也 有西施等物].”(장)
“고렇게 이쁜 애들이 많았는데, 내가 칙사 갔을 때엔 왜 통 안 보인거지[有如此妓生 而出敕時 何不現身]?” (쌍)
“만일 보셨다면 대감님 혼이 구만 리 장천 구름 저 멀리로 날아가버렸을 겁니다요. 그리하여 손에 쥐었던 돈 만냥일랑 홀랑 다 털리고 압록강은 건너지도 못했을걸요[若一看見時 大監們魂飛九霄雲外 手裡自丟了萬兩紋銀子 渡不得這鴨綠江來哩].”(장)
“내 다음번 칙사를 따라 가거든 네가 몰래 데려와라[吾前頭隨敕時 你能悄悄地引來了].” (쌍)
“아이쿠! 그건 안 됩니다요. 들키면 목이 달아납죠[不完了 有人覺時 開頭也].” (장)
허무 개그, 이렇게 희희덕거리며 30리를 갔다. 연암이 보기에 장복이의 중국말은 겨우 책문에 들어온 뒤 길에서 주워들은 데 불과한데도 쌍림이 평생 두고 배운 조선말보다 더 낫다. 이유는 역시 우리말보다 중국말이 쉽기 때문이다.
쌍림과 장복이는 그래도 최소한의 소통이 되는 경우지만, 다음의 경우는 아예 완전 불통의 상황이다. 연암이 어떤 상점에 들어가 상점 주인 및 한 청년과 함께 대화를 시도했으나, 연암은 중국어가 안 되고, 두 청년은 한자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세 사람이 정좌한즉 천하에 더할 나위 없는 병신들이다. 다만 서로 웃음으로 껄껄거리고 지나가는 판이다[三人鼎坐 集天下之癈疾 而互以大笑彌縫].” 청년이 만주글자를 쓸 때 주인은 옆에서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않겠소[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하자, 연암은 “나는 만주 글을 모르오[吾不會滿字].” 하니, 청년은 “배운 것을 때로 복습하면 어찌 즐겁지 않겠소[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한다. 연암은 “그대들이 『논어』를 이처럼 잘 외면서 어찌 글자를 모르나[君輩能誦論語 何爲不識字]?” 하니, 주인은 “남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어찌 군자가 아니겠소이까[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한다. 『논어』 첫장 ‘학이편’의 그 유명한 트리아드(triad, 세 구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유붕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를 맥락도 없이 그저 읊조린 것이다.
연암은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그들이 외운 ‘학이편 석 장’을 글로 써 보였으나,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멍하니 들여다볼 뿐이다. 한문에는 완전 ‘깡통’이었던 것이다. 결국 세 사람은 대화를 나눈 게 아니라 독백을 한 셈이다. 이럴 수가! “이윽고 소낙비가 퍼부어서 옆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하기에 좋으나, 둘이 다 글을 모르고 나 역시 북경말에 서툴러서 어쩌는 수 없다[旣而大雨暴霔 傍無他喧 政合穩譚 而兩人者旣不識一字 余又官話極疎 無可奈何].”
영화로 치면 세 명의 남자가 소낙비 내리는 마루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는 장면이 연출된 셈이다. 돈키호테가 그랬듯이, 연암 또한 이런 배치하에서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만 날리는 신세를 면치 못한 것이다. 이 순간, 여행은 상이한 문법과 체계를 지닌 언어들이 충돌하는 아수라장이 된다. 연암은 이 아수라장의 연출자인 동시에 뛰어난 리포터다.
아, 보너스로 돈키호테에 대한 이야기 하나 더. 20세기 최고의 작가 보르헤스의 작품 중에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단편이 있다. 20세기의 작가 피에르 메나르가 『돈키호테』를 다시 쓴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메나르는 ‘뼈를 깎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돈키호테』의 몇 페이지를 그대로 베껴놓은 작품을 완성한다. 보르헤스는 이 작품이 원텍스트에 비해 ‘거의 무한정할 정도로 풍요롭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 황당한 궤변의 논거는? 세르반테스가 구사한 언어는 동시대의 평범한 스페인어지만, 20세기 프랑스 작가 메나르가 시도한 문체는 17세기 스페인의 고어체라는 것. 좀 괴상한 방식이긴 하나, 시대적 배치가 달라지면 동일한 언어도 전혀 다른 의미를 발산한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세르반테스와 보르헤스, 그리고 연암 박지원, 이들은 모두 ‘언어가 배치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탁월하게 간파한 ‘삼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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