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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애노희락의 심리학, 제1부 사상인의 기본 성정, 제4장 보편 / 특수, 주관 / 객관 - 2. 주관 / 객관: 직관과 주관 본문

책/철학(哲學)

애노희락의 심리학, 제1부 사상인의 기본 성정, 제4장 보편 / 특수, 주관 / 객관 - 2. 주관 / 객관: 직관과 주관

건방진방랑자 2021. 12. 2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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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주관

 

특수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다수 의견의 지나친 강조에 대한 반발로 보편이라는 것을 이데올로기의 하나로 취급해버리듯이, 보편 상식의 교조적 강조에 대한 반발심리를 가지는 사람은 객관성을 맹목적 답습 정도로 여긴다. 직관력이 강한 사람이 주로 그렇다. 기존의 합의된 기준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존의 기준을 토대로 쌓아 올린 객관성의 가치를 인정할 이유가 없다. 직관이 강한 사람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기준, 새로운 가치관을 객관을 내세워 검증하려 들면

게 기존의 상식으로 검증이 되느냐며 비웃을 뿐이다.

 

태양 기운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일에 강하다. 사상의학의 원본은 상당히 어렵다. 아무런 설명 없이 대뜸 천기(天機)에는 넷이 있으니 천시(天時), 세회(世會), 인륜(人倫), 지방(地方)이다라고 시작된다. 계속 그런 식이다. “사람에는 넷이 있으니 이러이러하다. 이 넷을 각각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으로 부른다.” 그냥 그걸로 끝이다. 보통의 한의학 책이라면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이 나오고, 태극이 동해서 음양이 나오며 음양이 변하여 사상으로 갈라지고..”하는 설명이 구구절절이 나온다.

 

맞는지 틀리는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잘 모를지라도, 어쨌든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한다. 그런데 태양인인 동무(東武)의 글은 그런 것이 없다. “그냥 넷이야. 넷이 되는 이치를 설명한다고 되냐?” 이런 식이다(물론 원문에 그런 말은 없다).

 

굳이 기존의 보편에서 출발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내가 제시하는 곳에서 시작하라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 주관을 제시했다. 이를 어떻게 증명할까? 새로운 제시이므로 객관으로는 검증이 안 된다. 논리를 따질 기준 자체가 아직 없는 것이다. 증명이 불가능할 때 사례들에 적용해보아서 제시된 내용이 맞을 가능성을 확인한다. 즉 객관이 주관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특수화, 구체화가 주관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직관과 감각은 인식 기능이고, 감성과 사고는 판단 기능이라고 했다. 직관의 결과인 주관은 감각의 대상인 특수로 보완이 되어서 인식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주관이 많은 사례로써 검증이 되면, 비로소 사람들의 지지가 생겨난다. 사람의 지지를 넓게 반복적으로 얻은 내용은 비로소 감성화된다. 많은 사람에게서 감성화된 주관이 보편인 것이다. 그렇게 보편화된 기준이 있어야 비로소 객관이 적용될 곳이 생겨난다. 감성이 지향하는 보편과 사고가 지향하는 객관이 어울려 비로소 판단이 완성된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사회진화론이 아주 논리적일까? 그것은 직관의 소산일 뿐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엥겔스의 태음적인 노력이 뒷받침되면서 사람들이 그럴듯하다고 인식할 만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그 인식하에 비로소 사회주의 철학, 공산주의 철학이 생겨나고, 사회주의적 감성, 공산주의적 감성이 생겨난다이 이야기는 공산주의 철학과 사상의학을 같이 공부한 사람이 정리해준 내용이다. 사실은 인용부호 안에 들어가야 하는 내용인데, 정리해준 사람이 이름을 밝히려 하지 않아서 그냥 본문으로 처리했다. 그 외에 로자 룩셈부르크는 어떻고, 트로츠키는 어떻고, 레닌은 어떻고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공부가 짧아서 다 이해가 안 되기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생략했다.

 

주관의 예로서 동무(東武) 선생님이나 마르크스 등을 언급하니, 태양인의 직관은 거의 천재의 수준이고 바로 핵심을 찍어내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으로 보인다. 태양인 독자가 읽으면 아주 기분이 좋겠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주관이 객관에 비해 낮은 가치라고 여기는 분위기를 바꾸려는 의도로, 태양인 중에서도 천재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예로 들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주관은 객관보다 왜곡된 주장인 경우가 많기는 하다. 태양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태양인의 주관은 옳을 확률이 다른 체질보다는 확실히 높다. 왜 그럴까?

 

태양인의 귀가 천시(天時)에 밝아서 세상 사람이 서로 사기 치는 것을 잘 듣는다고 했다. 바로 그런 이유다. 수학 문제 같은 것을 보면 정답이 딱 정해져 있다. 정답은 하나다. 하지만 틀린 답은 무지하게 많다. 답을 숫자로 쓰게 되어 있는 수학시험을 채점해보면 별의별 희한한 답이 다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계산을 해서 그런 답이 나왔을지 궁금해질 정도다. 보면 뻔히 틀린 답을 태연히 적어 내는 아이들도 제법 많다. 꼭 수학 선생님이 아니라도, 상식이 있는 어른이 보면 그건 틀린 답이라는 것은 바로 보인다. 비록 정답이 무엇인지 계산할 수 없는 경우라도 틀렸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치다. 직관으로 정답을 딱 찍는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틀린 답을 보고 틀렸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훨씬 쉽다.

 

태양인의 직관은 옳은 부분을 찾아내는 능력보다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는 쪽에 더 강하다. 천시(天時)에 맞느냐 안 맞느냐, 사기냐 아니냐, 이걸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태양인의 주관이란 사실은 아주 작은 부분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틀린 부분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꾸준히 그런 식으로 틀린 부분을 제거해 나가다보면 언젠가는 틀리지 않은 핵심이 남게 된다. 거기까지 도달하면 위에서 예로 든 동무(東武)마르크스처럼 세상에 대해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제거하고 남은 부분은 아주 앙상하다. 그러니 그냥 말 몇 마디, 선문답 같은 이치 몇 개로 툭 던져진다.

 

비교해서 말하자면 태음인이 구체성을 중시한다는 것은 맞는 사례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나가는 것이고, 태양인이 주관을 중시한다는 것은. 틀린 적용을 하나씩 하나씩 뛰어넘는 것이다. 태음인이 덜 쌓인 것을 다 쌓였다고 주장하면 이상한 길로 빠진다. 태양인이 뛰어넘기에 빠져서 옳은 것들을 뭉터기로 툭툭 버려나가기 시작하면 그릇된 길로 접어든다. 각각의 체질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그른 것이 조금 끼어 있다고 옳은 것도 함께 버린다면, 남은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일 수밖에 없다.

 

한동안 머리 아픈 딱딱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태양, 소음 기운이 지향하는 바가 구체적 사실이 아니라 원리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태양 기운, 소음 기운에 대한 이야기가 아무래도 소양, 태음에 관한 이야기보다 좀 딱딱해진다. 글을 봐도 그렇다. 태양인이나 소음인의 글은 좀 딱딱하다. 물론 대중을 향한 글은 좀 다르다. 나름대로 감성에 호소하는 화려함도 좀 섞고, 사례도 약간씩 넣어 그럭저럭 읽을 만하게 쓰려고 노력들을 한다. 하지만 논쟁이 붙으면 전혀 달라진다. 논쟁의 상황이 되면 서로 자기가 능하고 유리한 곳에 서서 싸우려 하기 때문에 직관의 영역, 사고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상대를 그리로 끌어들여서 싸우려고 애쓴다.

 

소음인끼리, 태양인끼리, 또는 소음인과 태양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정말 머리 아픈 경우가 많다. 굳이 읽어보고 이해하려 들면 정말 머리에서 쥐가 난다. 요즘은 인터넷 게시판 문화가 발달해서 그런 논쟁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골치 아픈 논쟁을 보면 무조건 눈 돌릴 것이 아니라, 어떤 기운들이 어떻게 부딪히는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공부가 많이 될 것이다. 어느 게시판에 가서 아이디 누구와 누가 어떤 주제로 싸웠던 논쟁을 보면 그런 기운들의 부딪힘이 기가 막히게 잘 나타나고 있다고 적절한 사례들을 제법 여러 개 제시할 수 있는데, 개인의 사생활 보호상 여기에 못 적는 것이 유감이다.

 

보편/특수, 주관/객관이라는 주제로 한 이야기를 정리할 겸, 마지막으로 각 체질이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모습을 각각 한 단어로 정리해보자.

 

태양인은 자신 있게 주장한다. 소양인은 강하게 주장한다. 태음인은 끈질기게 주장하는데, 소음인은 집요하게 주장한다. 각각의 단어의 느낌이 느껴지는가? 주관을 내세우는 모습, 보편이라고 주장하는 모습,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이미는 모습, 객관적이라며 고집하는 모습이 잘 묘사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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