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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왕수인 - 호방한 정신과 섬세한 정신 사이에서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왕수인 - 호방한 정신과 섬세한 정신 사이에서

건방진방랑자 2022. 3. 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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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방한 정신과 섬세한 정신 사이에서

 

 

주희장재, 정호, 정이 등의 선배 유학자들의 뒤를 이어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는 학풍에 주춧돌을 놓았던 위대한 유학 사상가입니다. 그는 월인천강(月印千江)으로 비유되는 거대한 형이상학 체계를 구축했고, 이에 걸맞은 수양론도 체계화했습니다. 그의 수양론 가운데 한 축을 이루었던 것이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 공부였습니다. 젊은 시절 왕수인은 주희가 권고한 격물치지 방법을 맹신했던 적이 있지요. 그의 일화에서 보았듯이, 대나무의 이치를 탐구하려던 그의 계획7일 만에 좌절되고 맙니다.

 

성인이 되려는 왕수인의 이런 치열한 노력과 자기 검증 자세는 마침내 그를 주희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유학의 창시자로 우뚝 서게 해주었습니다. 왕수인의 새로운 유학을 흔히 심학(心學)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그의 유학 사상이 마음이 가야만 외부의 사물은 사물로서의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마음과 무관한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찰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왕수인의 유학 사상은 심학’, 주희의 유학 사상은 이학(理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주희는 천 개의 강을 비추는 하나의 달 즉 이()를 직관하려고 했던 사상가였기 때문이지요.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았듯이, 왕수인의 유학 사상은 유명한 사구교(四句敎)의 네 가지 가르침 속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구교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던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왕수인의 사구교에는 어떤 균열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 구절과 나머지 세 구절 사이에 놓여 있지요. 첫 번째 구절의 가르침은 마음의 본모습에는 선이나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탁 트인 마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마음의 본모습이 어떤 특수한 사물이나 사태에 매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흐리멍덩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지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왕수인의 호방한 유학 정신을 느끼게 됩니다. 높은 산 위에서 탁 트인 전경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영혼의 모습을 말입니다.

 

그러나 사구교의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가르침에는 왕수인의 호방한 정신, 또는 대인(大人)의 기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두 번째 가르침에서부터 선과 악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내면의 세계가 열리니까요. 이 점에서 양지(良知)라는 개념이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악을 행할 수도 있다는 검열 의식을 반영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부단히 검열하는 고독한 내면의 세계는 왕수인의 호방한 마음과 사뭇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흥미로운 것은 사구교의 후반부 가르침, 즉 내면의 고독한 검열의 세계는 뒤에 정약용의 유학 사상에서 다시 출현한다는 점입니다. 정약용은 마치 왕수인이 양지에 대해 말한 것과 유사하게 천명지성의 힘에 대해 강조합니다.

 

 

오직 이 천명지성(天命之性)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데, 매번 하나의 일을 만날 때마다 그 선과 악이 앞에 있으니 성()이 향하고자 하는 바를 한결같이 따르면 어긋나거나 그릇됨이 없게 될 것이다. 매씨서평』 「염씨고문소증초4: 25~6

唯是天命之性, 樂善而恥惡, 每遇一事, 其善惡在前, 一循此性之所欲向, 則可無差誤. 梅氏書平』 「閻氏古文疏證抄4: 25~6

유시천명지성, 낙선이치악, 매우일사, 기선악재전, 일순차성지소욕향, 즉가무차오.

 

 

정약용에게 천명지성이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내면의 선천적 반성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왕수인이 사구교(四句敎)의 세 번째 구절에서 이야기했던 양지와 매우 유사하지요. 더구나 왕수인도 양지를 곧 천명지성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점이 부분적으로 일치하는 것을 단지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정약용은 천명지성이라는 선천적 반성 능력을 따르면 우리가 악을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왕수인이라면 이런 공부를 바로 치양지(致良知)’의 개념으로 설명했을 것입니다. 그에게 치양지는, 양지가 선이라고 판단한 것을 실천하고, 악이라고 판단한 것을 거부하는 공부를 의미했으니까요.

 

왕수인의 유학 사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면, 그의 사유 안에 잠재되어 있는 균열을 숙고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그는 우주가족의 이념을 연상시키는 정호의 호방한 정신을 분명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왕수인은 치열하게 자기 내면을 검열하려는 정약용의 섬세한 정신도 아울러 갖고 있었지요. 어떻게 서로 이질적인 듯한 두 가지 사유가 그의 사상에서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에게 호방한 정신과 섬세한 정신은 어떻게 통일되어 있었던 것일까요? 이 문제는 아마 왕수인의 전습록을 꼼꼼히 넘겨보면 이해 가능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작업이기에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두고, 이제 조선의 유학자들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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