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헤겔 : 정점에 선 근대철학
비판철학과 헤겔
헤겔은 ‘변증법’이란 이름이 살아 있는 한 그 이름을 잊기는 어려울 정도로 변증법적 사고를 체계화한 철학자로 유명합니다. 특히 헤겔의 제자임을 자처했던 맑스를 통해서, 그리고 맑스주의 내의 유수한 철학자들을 통해서 헤겔은 헤겔철학의 영역 밖으로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해 왔습니다. 20세기의 중반기까지, 그리고 일부 지역에선 지금까지도 헤겔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헤겔의 사상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며 걸쳐 있는 범위가 방대해서, 지금과 같은 자리에서 제대로 요약하는 것은 능력을 떠나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저 역시 이런 무리한 욕심은 애초부터 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와 관련해서 헤겔의 입론을 가능한 한 간략히 검토해 볼 생각입니다.
근대철학과 헤겔의 연관을 얘기하기 위해선, 피히테의 경우에도 그랬듯이 칸트철학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헤겔은 칸트의 비판철학을 비판함으로써,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피히테와 셀링을 비판적으로 섭취함으로써 자기 고유의 문제설정을 세웁니다. 여기선 일단 비판철학에 대한 헤겔의 비판을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봅시다.
첫째, 칸트는 사물 자체라는 현실과 인식 주체를 분리합니다. 이때 현실은 주체의 손이 가 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인식이란 서로 분리된 양자를 사후적으로 이어주는 과정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되면 사물 자체란 인식을 통해 표상되어야 할 어떤 것이 되지만, 그 표상이 올바른지의 여부는 (주체의) 의식 외부에선 확인될 수 없다는 난점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불가지론에 빠지는 거지요. 그렇다고 피히테처럼 ‘자아’안에 양자를 끌어넣음으로써 해결하는 주관주의 역시 대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현실(객관)과 주체를 통일시킬 수 있을 것인가?
둘째, 칸트는 진리의 기초를 확보하기 위해 ‘인식 이전의 인식능력’(선험적 능력)에 대한 연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헤겔은 ‘인식 이전의 인식능력’을 연구하는 것은 물에 들어가지 않고 수영을 배우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곤란하다고 봅니다. 인식능력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인식이기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인식에서 벗어나 인식능력을 연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인식, 참된 인식의 기초나 기준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 것인가?
이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헤겔은 자기의 고유한 길을 찾아냅니다.
‘절대정신’의 변증법
헤겔 역시 사물 자체와 주관, 현실과 주체를 분리시키지 않기 위해선 근원적인 통일을 처음부터 설정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피히테는 이 근원적인 통일을 ‘자아’를 절대화해서 만들어냈지요. 하지만 헤겔이 주목하는 건 오히려 친구였던 셸링의 방법입니다. 셸링 역시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절대자’라고 생각하며, 그런 절대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피히테의 생각처럼 자아가 비아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비아가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피히테와 달리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아를 근거로 자연을 도출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비판합니다. 오히려 주체-객체의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자연을 주체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즉 자연이 곧 주체요 정신이라고 보자는 겁니다.
셀링이 보기에 자연은 정신이자 동시에 자연 안에 있는 정신 자체의 산물인 물질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자연은 자신을 객체로 정립하는 주체로 간주됩니다. 자연은 곧 무한한 활동이지요. 주체-객체가 통일된 절대자란 바로 이 자연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개개의 현상들은 이 절대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지요. 이 현상들은 나름대로 하나의 ‘계열’(series)을 이루는데, 실재적인 게 우위를 차지하는 계열과 관념적인 게 우위를 점하는 계열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좁은 의미의 ‘자연’이 전자에 속하고, 정신이나 역사는 후자에 속합니다.
헤겔이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이러한 셸링의 발상법에 빚지고 있습니다. 즉 그 자체가 객체기도 한 주체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헤겔도 절대자, 절대정신이라고 합니다. 절대 ‘정신’인 것은 그 전체의 본성이 활동적이고 산출적이라는 점에서 주체로서의 정신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헤겔의 사상과 셸링의 사상에서 보이는 동일성 때문에 그 차이를 놓쳐선 곤란합니다. 셸링의 경우 정신은 자연과 직접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고, 그에 따라 자연의 변화와 법칙 속에서 정신의 운동을 발견하는 ‘자연철학’이 중요한 것이 됩니다. 반면 헤겔에게 절대자는 무엇보다도 우선 ‘정신’입니다. 이 정신은 스스로를 외화(소외)하여 자연, 사회, 역사 등의 객체(대상)가 됩니다. 자연, 사회, 역사는 이 정신의 표현인 셈이지요.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나 역사지요. 이 때문에 헤겔에게도 자연철학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회를 다루는 법철학이나 역사를 다루는 역사철학에 비하면 매우 부차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주저가 『정신현상학』이었음은 이런 점에서 시사적인 듯합니다.
▲ 우주론적 개념이 장식된 거울
헤겔은 모든 것을 대립과 모순을 통해 사유했다. 남과 북은 대립되고, 동과 서도 대립된다. 존재와 무, 남과 여, 자연과 인간 등등. 이런 식의 사유가 ‘변증법’의 기초다. 중국 당나라 때 만들어진 저 청동 거울에는 동서남북의 방향을 따라 원을 그리며 중국의 우주론적 상징들이 배열되어 있는데, 헤겔 말처럼 음양의 대립으로 우주를 사유했던 중국인의 사유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중앙의 원에는 청룡, 주작, 백호, 현무가 동에서 시작해 원을 그리며 배열되어 있고, 다음 원에는 북쪽의 쥐를 필두로 12간지 동물들이 차례로 새겨져 있으며, 그 다음 원에는 8괘가, 그 다음 원에는 별자리가, 마지막에는 시가 한 수 적혀 있다. 대립을 통해 사유하는 방법에 따르면 동과 서의 대립은 청룡과 백호가, 남북의 대립은 주작과 현무가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말할 것이다. 글쎄? 좀더 잘 아는 동물을 보자. 동쪽엔 토끼가 있고 서쪽에 닭이 있는데, 토끼와 닭은 대립하는가? 설마! 돼지와 뱀은? 들어보지 못했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위치를 항상 무언가의 대립을 통해서만 보는 것은, 중요한 차이를 단칼에 잘라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거친 칼날로 재단하는 것으로 귀착되기 쉽다. A가 B를 좋아하여 친하게 지내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일 텐데(우리는 얼마나 상이한 이유로 다른 친구들을 사귀는가!), 오직 그들의 성별만을 보아 연인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사람이 친해지는 것의 근저에서 오직 성욕만을 보는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은 폭력은 아닌지?
이처럼 사회나 역사로 전환된(외화된) 절대정신은 역사의 발전과정을 통해,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발전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 도달합니다. 이로써 절대정신은 다시 자기에게로 복귀(‘자기 내 복귀’)하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절대정신의 실현이란 목적을 향해 발전해 가는 ‘목적론적 과정’이라고 합니다.
알다시피 정신에서 대상으로, 그리고 다시 정신으로 돌아가는 이 원환운동, 그러나 끝날 때는 좀더 높은 단계로 고양되는 이 원환운동을 흔히 ‘부정의 부정’이란 말로 요약하지요. 이것은 정신과 대상의 변증법, 절대자의 변증법을 집약하고 있는 것이며, 헤겔의 체계 전체를 특징짓고 있는 ‘법칙’입니다.
요컨대 헤겔철학에서 절대자란 주관과 객관의 통일이지만, 이는 셀링철학에서와는 달리 ‘외화’와 ‘자기 내 복귀’라는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통일되어 가는 목적론적 과정입니다.
그러나 셀링과 헤겔 사이에는 좀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셸링에게는 자연과 정신이 무차별적으로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즉 그대로 두고 등호를 붙이면 되는 관계였지요. 그러나 헤겔의 경우는 동일성과 함께 ‘차이’를 포착하려고 합니다. 자연과 정신의 차이, 정신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단계상의 차이, 나아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차이를 자기 사상의 틀 안에 포섭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푸코나 들뢰즈 등의 철학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헤겔의 사상에서 차이란 오직 동일화시키는 힘(‘동일자’라고 합니다)인 절대정신에 포섭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여기에 포섭되지 않는 것은 배제되고 억압되고 맙니다. 이런 점에선 ‘차이’가 차이로서 인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헤겔에게 차이란 사실상 동일자의 포섭능력을 과시하는 요소일 뿐이며, ‘변장한 동일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는 그들이 계몽주의적 이성을 비판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 탈을 쓴 살람파수 원주민
살람파수(Salampasu) 원주민은 아프리카 킨샤사-콩고의 한 부족이다. 암흑같이 패인 눈, 드라큘라 같은 이빨, 부딪치면 머리가 뽀개질 듯한 이마, 송전탑을 닮은 머리 장식, 거기다 투박하지만 야만적인 느낌을 주는 칼까지 손에 들고 있다. 게다가 피부색은 얼굴을 가린 탈보다 더 뻘겋다. 그 앞에 얼굴이 창백한 가녀린 여인이나, 아니면 어여쁜 아이라도 한 사람 있다고 생각해 보라. 누가 대체 이 기이한 형상의 족속을 야만적인 미개인이라고 하지 않을 것인가! 인간의 위대한 특징이라는 이성 같은 것은 가면 뒤에도 없을 듯하고, 손에 든 칼은 주술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어 보인다. 이성과 대립되는 비이성, 합리와 반대되는 비합리, 과학과 반대되는 주술, 한마디로 문명과 반대되는 미개ㆍ야만, 그것이 이들을 보면서 서구의 합리적 이성이 느꼈던 생각이었다. 생활방식과 문화의 차이는 이렇듯 헤겔적인 문명과 야만, 이성과 비이성의 대립 속에선 야만과 비이성을 뜻할 뿐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들은 인간이란 범주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들은 이성을 갖지 못한 존재, 즉 동물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노예로 사용하는 것은 소나 말을 사용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만약 이들이 인간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야만과 미개, 비이성에서 벗어나 여호와(!)의 품 안에, 이성의 품 안에 들어가게 해주어야 하고, 문명의 빛을 쪼여서 비합리적이고 주술적이고 신비적인 모든 것을 녹여 없애 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성’ 안으로 동일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이성의 반성적 능력이고, 차이를 싸안는 이성의 포용력이다. 그것이 이들의 삶을 문명을 향해 ‘진보’하게 할 것이고, 이들의 머리를 과학으로 ‘계몽’해줄 것이다. 이를 헤겔은 ‘발전’이라고 불렀다. 발전이라구?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
그러면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은 진리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까요? 이와 관련해 우리는 헤겔이 말하는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헤겔에게 현실은 주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요? 다시 말해 인식의 대상은 주체 내부에 있는 것입니다. 이를 의식 내부에 있는 거라고 표현하지요. 이러한 사고법은 피히테에게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합니다. 모르는 것을 먹을 대상이라고 생각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을 먹을 수 있고,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헤겔은 지식을 “대상에 대한 주체의 연관”이라고 정의합니다. 물론 이것은 의식 내에서 만들어지는 연관입니다. 그렇지만 피히테와 달리 헤겔은 대상을 정립하는 게 곧 진리는 아니며, 따라서 지식이 진리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지식이 진리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칸트라면 여기에 개개의 지식이나 개개의 인식 이전에 존재하는 선험적 인식 능력을 기준으로 제시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헤겔은 인식 이전에 (진리의) 인식능력을 안다는 것은 물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으면서 수영을 할 줄 안다는 것처럼 어불성설이라고 합니다. 헤겔에 따르면 지식에 대한 평가기준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의식(시대의식)에 의해서만 마련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로써 헤겔은 지식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역사적 의식 속에서 진리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지구의 운동에 대한 물리학자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는 무엇으로 평가해야 할까요? 헤겔이 살던 19세기라면 당연히 뉴턴의 고전 물리학이 그 평가기준이 될 것입니다. 반면 중세 초기였다면 천동설이란 지식이 그 평가기준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의 기준은 이미 성립한 하나의 지식이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이미 옳다고 간주되는 지식이 말입니다. 헤겔은 스피노자의 말을 빌려 진리는 이미 가지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지식은 진리와 동일시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중세에는 천동설이 진리였고, 19세기에는 고전물리학이 진리였다고 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악순환에 접하게 됩니다. 지식의 평가는 진리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 기준은 지식이 제공한다는 악순환!
이 악순환은 앞서 우리가 근대적 문제설정의 딜레마라고 부른 것에서 연유하는 것입니다. 대상과 개념의 일치(진리됨)를 확인하고 보장해줄 믿을 만한 재판관이 있을 수 없다는 딜레마 말입니다. 그런데 헤겔은 이 딜레마를 빠져나갈 묘책을 강구합니다.
진리는 분명히 지식과 다르기에 대상-지식 관계의 외부에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상 자체가 의식 내부에 있는 거라면, 대상과 개념의 일치로 정의되는 진리 또한 의식 내부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상도 개념도 모두 의식 내부에 있기 때문이지요. 요컨대 진리는 지식의 외부에 있지만, 의식 내부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식 내부에 지식과 지식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두 들어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의식은 자기 내부에 진리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의식이 이 기준으로 지식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 지식은 대개 그 시대에는 진리로 간주되던 지식이 되겠지요. 결국 의식이 발전함에 따라, 진리의 기준이 되었던 지식 자체도 의식이 스스로 검사하고 다시 평가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는 의식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을 의식 스스로 다시 검사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입니다(‘자기의식’). 결국 진리란 이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 자체를 돌이켜 검사하고 정정해 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란 의식 혹은 “정신 자신의 내적인 관계”라고 말합니다.
헤겔에게 이 의식이나 정신이란 어떤 개인의 의식이나 정신을 가리키는 게 아님은 앞서 말했지요. 그것은 스스로 운동하는 절대자요 절대정신입니다. 따라서 헤겔은 진리란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진리의 기준을 계속 정정해 가는 과정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확인하고 보증해 주는 것은 발전해 가는 절대정신 자신인 것입니다.
▲ 페루 마추픽추의 잉카 문명 유적
사실 다른 피부, 다른 모습을 가진 인종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서나 발견된다. 그러나 그것을 이성과 비이성,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대립’으로 포착하여 배제해야 할 어떤 것으로 보거나 아니면 계몽시켜 동일화시켜야 할 것으로 보는 것은, 더구나 그것을 철학으로까지 ‘승화’시킨 것은 서구 근대문명에 독특한 요소다.
그런데 거기에는 약간 곤란한 문제가 있다. 인도나 중국의 거대한 문명은 물론, 야만족이라고 생각해서 노예로 부리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던 아메리카 인디언에게도 마야ㆍ아즈텍ㆍ잉카 같은 거대한 문명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서구와는 다른 종류의 이 이질적인 문명은 과연 문명인가 야만인가? 마야인들은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제물로 바친다는 이유로 야만으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자신들과 너무도 다르지만 ‘문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저 이질적인 세계를 대체 어째야 할 것인가?
헤겔은 여기에 묘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미개와 야만에서 문명과 이성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중간 단계들이요 역사적 형태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담과 이브에서 시작해 서양 근대세계로 끝나는 이성의 역사적 발전 안에, 저 이질적인 세계들을 발전 단계에 따라 시간적으로 배열한다. 그리고 그것을 ‘역사철학’이라고 불렀다. 이런 점에서 헤겔식의 역사철학이란 발전이라는 관념을 이용해 이성이 정점에 자리잡은 역사 안에 이질적인 세계를 담는 방법이었던 셈이고, 따라서 결국 ‘발전’하면 서구의 문명을 닮게 되는 ‘동일화’ 과정임을 입증하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근대철학을 정점에 올리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이러한 헤겔의 사상은 스피노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입니다. 우선 셸링의 자연철학 자체가 그렇습니다. 자연을 정신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자연을 실체의 양태로 간주하는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유추한 것입니다. 헤겔에게 절대자(절대정신)란 스피노자식으로 표현하면 ‘실체’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외화되어 만들어내는 자연, 사회, 역사는 스피노자 개념에서 ‘양태’에 해당되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스피노자의 실체/양태 개념을 주체와 객체의 통일성을 이루어가는 목적론적 과정에 적용한 것입니다.
다른 한편 지식과 진리에 대한 변증법 역시 그렇습니다. 헤겔은 진리에 대한 판단에 앞서 진리의 기준을 미리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스피노자의 명제를 받아들여, 의식이 자기 내부에 진리의 기준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란 개념으로 전환시킵니다. 따라서 이제 진리는 절대정신이 자기의식에 도달하는 과정과 동일한 것이 됩니다. 이래서인지 셸링은 물론 헤겔도 스스로 스피노자주의자로 자처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적용’은 스피노자의 근본적 문제의식에서 벗어나는 ‘변형’입니다. 스피노자가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든다고 보아 거부했던 주체와 객체라는 근대적 범주의 통일과 화해를 위해 실체와 양태란 개념이 복무하게 된 셈입니다. 연장과 사유라는 속성의 일치란 명제 역시 주체와 대상의 일치란 명제로 전환됩니다. 나아가 헤겔은 이를 ‘절대정신의 자기실현’이라는 목적론적 과정에 포섭시켰는데, 이러한 목적론은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명시적으로 비판하며 거부했던 것입니다. 진리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주체와 대상을 분할한 근대철학이 이 양자를 통일시킬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는 데 스피노자의 명제가 변형되어 사용된 것입니다.
이렇게 스피노자의 사상은 근대적 문제설정에 포섭되어 근대적 딜레마의 해결에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 근대화된 스피노자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근대적 문제설정에서 처음부터 빗겨나 있었던 스피노자가 예전에는 이해되지 못하고 외면당했다면(‘죽은 개’ 취급을 당했지요), 절정에 오른 근대철학자들에 의해 비로소 주목받고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셈입니다. 그러나 이는 스피노자의 사상이 근대적 문제설정 안에 포섭되지 않는 한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근대화’라는 비용을 치러야 했던 것입니다.
헤겔철학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칸트에 의해 다시 부흥의 기치를 높이 든 근대철학을 정점에 올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저도 그러한 평가에 동의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철학을 ‘절정에 선 근대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또한 근대철학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개념과 장치 들을 개발해 냈습니다. 특히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은, 그것이 목적론적 과정으로서 간주되고 있다는 점에선 근본적인 난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의 역사적 정정과정 속에서 진리를 파악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이전의 독단주의를 비판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 다비드,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대관식,
19세기 대표적인 궁정화가였던 다비드(Jacques Louis David)는 나폴레옹이 부인과 함께 황제로 등극하는 대관식(1804년 12월) 장면을 저렇게 멋드러지게 그렸다. 아마도 젊어서 한때 프랑스혁명에 열광했기 때문일 테지만, 그리고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을 독일에, 아니 유럽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아서 그랬을 테지만, 헤겔 역시 나폴레옹이야말로 이성이 외화되어 발전해 가는 역사의 종점에 있는 인물이라고 보았다. 헤겔에게 나폴레옹은 일종의 절대정신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프로이센 역시 동일한 역사 안에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종점이요, 문명과 이성의 절대적 발전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철학은 국가와 하나가 된다. 국가철학, 철학적 국가, 누구나 자기가 사는 시대를 이전의 어떤 시대보다 발전되고 진화된 시대라고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의 잣대로 삼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특징이지만, 인류의 모든 것을 다 싸안고자 했던 거대한 역사철학을 구성해낸 헤겔은 그런 식의 발상을 조금도 쑥스러워 하지 않고 철학화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끝까지 밀고 간다. 남은 일은 이제 역사가 거기서 멈춰주는 일이었다. “오, 시간이여, 이대로 멈추어다오! …… 어, 멈춰, 멈춰 달라니까!”
‘철학의 종말’, 근대철학의 종말
그렇지만 근대적 문제설정 안에 있었던 헤겔로선 또 다른 딜레마를 절감하게 됩니다. 진리란 스스로 돌아보며 자기가 갖고 있는 기준을 계속 정정해 가는 과정이라는 헤겔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헤겔이 생각해낸 이 진리의 기준 역시 이후 정정되고 폐기될 수 있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헤겔 자신이 제시한 진리의 기준은 초역사적으로 타당하다고 하는 순간, 진리의 기준이 정정되어 가는 과정을 통찰한 헤겔 자신의 진리 개념은 장벽에 부닥칩니다.
이는 논리적인 난점이지만, 사실 진리 개념에 대한 입론을 제출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난점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진리기준 자체의 정정 과정을 파악하는 입론의 현실성이요 효과니까요. 그러나 확고한 진리를 추구하는 근대적 문제설정 속에 있던 헤겔에게 이 난점은 결코 방치되어선 안 될 것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즉 그는 진리의 정정과정이라는 자신의 진리기준만은 절대적 진리의 자리에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방법은 어떤 것인가? 헤겔에게 그건 매우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진리와 지식의 변증법은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라는, 절대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목적론적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헤겔 자신의 주장이야말로 절대정신의 실현을 목격한 지식이라고 한다면, 예컨대 그 과정의 종착점에 이른 지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정될 이유가 없는 절대적 진리가 됩니다. 절대정신이 실현되는 과정을 다 목격한 사상, 따라서 절대적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러면 하나의 전제가 필요했습니다. 즉 헤겔의 지식이 형성된 당시야말로 절대정신이 실현되는 역사의 종착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절대정신의 실현을 목격한 지식이란 주장이 통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제 그는 자기가 살던 시대를 절대정신이 완성되는 시대라고 정의하며, 프로이센 국가를 그 실현을 책임지는 국가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어떤 철학도 절대정신 완성 과정의 ‘증인’인 헤겔의 사상을 뛰어넘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철학은 ‘종말’을 고하게 된 것입니다! ― 단 헤겔의 사상 안에서만 말입니다.
그 결과 근대적 독단론의 비판인 ‘진리의 지속적인 정정과정’이란 명제는 헤겔 자신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정반대의 독단적 명제로 전환됩니다. 자신의 주장을 절대적 진리로 정립하기 위해 그는 역사마저도 완성켜 버린 것이고, “프로이센 국가 만세”를 외치게 된 것입니다. 이는 헤겔 자신에게 이르러선 자신의 명제가 반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역사 속에서 진리의 기준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지식이 검사되는 게 아니라 헤겔의 진리 기준을 위해 역사가 완성이란 이름을 얻고 지식의 정정도 중지되는 그런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이라는 헤겔의 명제는 사실 두 가지 선택지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종결된 지식, 완전한 진리란 없고 지속적인 정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절대정신 실현의 목적론적 과정을 통해 절대적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중 전자가 갖는 비판적인 효과가 긍정적인 만큼 후자가 갖는 독단적인 효과는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근대적 문제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헤겔로선 절대적 진리란 목적을 포기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목적론과 독단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엥겔스는 헤겔철학에서 완성된 ‘체계’와 혁명적인 ‘변증법’이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며, 결국은 체계의 완성을 위해 변증법을 굴복시킨다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선택지는 근대철학이 갖고 있는 근본적 딜레마를 다른 형태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이란 결코 확인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 진리란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인정해야 하거나(첫번째 선택지), 아니면 “내가 곧 진리니라 요14:6”는 확인할 수 없는 선언을 반복하는 것(두번째 선택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절대정신의 철학은 어떤 철학적 효과를 가져왔을까요?
앞서 차이가 동일성으로 환원된다는 것은 보았습니다. 차이가 그처럼 환원되는 한, 모든 개체는 이제 그것이 갖는 보편성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즉 개별성은 보편성으로 환원됩니다. 또한 모든 변화는 절대정신의 목적론적 운동에 포섭되며,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됩니다. 즉 변화는 목적으로 환원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연ㆍ사회ㆍ역사를 절대정신의 소외로 파악함으로써, 그것은 이제 관념으로 환원되게 됩니다. 헤겔철학은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기에 그 안의 어떠한 내용도 절대적인 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환원 전체가 절대적인 것으로 됩니다. 완성된 근대철학, 절정에 선 근대철학은 자신이 포섭할 수 없는 것은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 전능한 이성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엥겔스의 말처럼, 이로써 철학은, 아니 최소한 근대철학은 ‘종말’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 길레이, 「플럼 푸딩이 위험하다」(The Plum-Pudding in Danger)
헤겔의 역사철학은 목적론적 과정으로 발전한다. 목적론은 뒤에 나타난 사건으로 앞에 있었던 사건을 설명한다. 즉 ‘목적’을 원인으로 간주한다. 사실 이렇게 설명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최종의 ‘목적’을 위해 있었던 것이 된다. 건축공이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자르듯이, 프랑스 혁명은 나폴레옹을 왕좌에 오르게 하기 위해 발생했던 것이고, 마리 앙트와네트는 프랑스 혁명을 위해, 아니 나폴레옹을 위해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마리 왕비가 알지도 못했던 나폴레옹을 위해서 그랬을까만, 그것은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 역사가 개인의 의식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반대로 개인의 모든 것이 역사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역사의 목적에 봉사한다. 자신이 알든 모르든 간에, 헤겔은 역사의 목적이 이성이기에, 이런 현상을 ‘이성의 책략’이라고 부른다. 영국 수상 피트와 나폴레옹이 지구를 난도질하고 있는 길레이(James Gillray)의 이 그림 또한, 절대정신이 국가를 지배하는 저 역사의 목적/종점을 위해 이성이 마련한 무수한 책략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에 따르는 침략과 강탈? 그것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죽어가는 사람들? 그것도 이성의 실현을 위한 희생이고, 이성의 책략 안에 있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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