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발견
아시다시피 프로이트는 철학자가 아닙니다. 그를 철학자로 다루는 철학사 책을 만나기도 그다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는 철학에, 특히 근대철학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매우 간단한 단 하나의 개념 때문입니다. ‘무의식’이라는, 너무도 유명한 개념 말입니다. 이 개념은 근대철학의 기초였던 ‘주체’를 그리하여 주체철학 전체를 해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프로이트가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파괴 효과는 사실 무의식이란 개념 하나만으론 이루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건 어쩌면 다양한 증거와 임상적 사례들, 그리고 정신분석학이란 독자적인 학문을 창출해낸 체계적이고 강력한 개념들과 이론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을 겁니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의식 개념의 변화와 발전만을 간략히 다루려고 합니다. 그것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단계, ‘무의식’을 발견합니다. 그는 대학을 마친 뒤 프랑스의 유명한 생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샤르코(J. M. Charcôt) 밑에서 공부를 합니다. 샤르코는 최면술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 당시에 베른하임(H. Bermhein)이라는 의사가 최면술 요법을 통해 아주 주목할 만한 발견을 합니다. 그는 어떤 여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최면이 깬 후에 우산을 펴도록 시켰답니다. 그랬더니 최면에서 깬 그 여자는 우산을 들고 펴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베른하임이 시치미를 떼며 왜 우산을 폈냐고 물었더니 그 여자는 그 우산이 자기 것인지 보려고 했다는 겁니다(물론 집요하게 계속 캐물은 결과, 누군가가 시킨 것 같다는 대답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최면 상태에서 암시받은 행동을 최면이 깬 후에도 하게 되는 현상을 ‘후최면 효과’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기가 왜 하는지 모르는 채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 여자는 나름대로 이유를 대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라 단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식되지 않지만 사고하고 행동하는 일이, 곧 의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전혀 의식되지 않은 채 판단하는 영역이 사람의 정신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신 안에 있지만 의식되지 않는 영역을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그 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J. Breuer)라는 동료 의사와 함께 히스테리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런 현상이 히스테리 환자에게도 나타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브로이어의 환자 가운데 안나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 여자는 히스테리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히스테리의 근본 원인은 안나 역시 모르고 있었는데, 브로이어는 최면 상태에서 그녀에게 지속적으로 캐물어 그 원인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그녀에게 말해 주었더니 히스테리 증상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처럼 모르던 원인을 알아내 그걸 알려줌으로써 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을 ‘카타르시스 요법’이라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여기서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는 무의식이 최면술이나 히스테리 환자처럼 특별한 경우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무의식의 존재를 일반적인 게 아니라 우연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 레메디오스 바로(Remedios Varo), 「정신분석가의 집을 나오는 여자」
스페인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레메디오스 바로의 그림이다. 문패에 Dr, FJA (아마도 Freud, Jung, Adler의 이니셜일 게다)라고 적힌 정신분석가의 집에서 나오는 여자의 손에는 ‘아버지’임이 틀림없는 남자의 얼굴이 거꾸로 들려 있다. 그 밑에는 조그만 우물이 있다. 거기다 버리고 가라는 뜻일까? 이 여자도 버리려고 하는 듯하다. 바로는 아버지를 이처럼 떨구어 버리면,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면, 정신적 질환(신경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로 상징되는 사회적 질서 전체와 결별하는 것이 되진 않을까? 정신병의 시작? 결국 우리는 아버지에 매여 있어도 문제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도 문제다. 여인의 머리에는 머리카락 대신 아버지 수염 같은 ‘기운’이 꿈틀대며 뻗쳐 있다. 뜯어내도 남아 있는 아버지의 흔적처럼, 그리고 또 하나의 얼굴이 외투처럼 그 신체를 감싸고 있다. 두 얼굴의 시선은 각각 좌우로 엇갈려 있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난 ‘본능’, 혹은 ‘거시기’를 보호하고 통제하는 자아의 옷일까? 아니면 내면의 무의식을 감추고 있는 의식의 껍데기일까? 정신분석가의 문 밑에서 은밀히 흘러나와 여인의 발목을 잡고 있는 희끄무레한 연기는, 아버지 대신 정신분석가의 손에 사로잡힌 운명을 암시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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