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계씨와 맹씨의 중간 정도로는 공자를 대우하겠다
18-3. 제(齊)나라의 경공(景公)이 공자를 대우하려고 하면서 말하였다: “노나라의 대부 계씨(季氏)의 지위만큼은 내가 대우할 수 없지마는, 계씨와 맹씨(孟氏)의 중간 수준으로는 그대를 대우할 수 있겠소.” 18-3. 齊景公待孔子, 曰: “若季氏則吾不能, 以季ㆍ孟之閒待之.” 신하들의 반대가 일고 얼마 지나 다시 말하기를, “내가 늙었구료. 당신을 제대로 기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소.” 공자는 떠났다. 曰: “吾老矣, 不能用也.” 孔子行. |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의하면 이 사건은 공자의 생애의 전반부에 속하는 일로서 30대의 공자에게 일어났던 사건으로 기술되고 있다. 16-12에서도 언급했듯이 제나라의 경공(景公)은 BC 547년부터 BC 490 년까지 자그만치 58년간 재위한 인물이다. 그 아버지 영공(靈公)이 노나라로부터 부인을 취한 것이 BC 575년, 제 경공을 낳은 것은 BC 574년 아니면 BC 573년이다. 즉위 당시는 27세 였다. 「세가」의 기록대로라면, 공자가 노나라의 소공(昭公)과 함께 제나라에 간 것은 BC 517년이고 그가 노나라로 돌아온 것은 BC 515년으로 추정된다. 이 설을 따르면 공자가 경공을 만났을 때는, 경공의 나이는 59세 아니면 60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서막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공자의 젊은 시절의 행적에 관한 「세가」의 기술을 믿지 않는다. 여러 가지 정황이 그러한 연도에 정확히 맞아떨어지질 않는다. 그러나 어느 때인가, 공지는 경공을 만났고, 경공이 공자를 융숭히 대접하려 했으나 치열한 명재상 안영(晏嬰)의 반대로(그 외의 상황일 수도 있다) 마음 여린 경공은 나이를 핑계 대고 공자를 기용치 못했다. 젊은 날의 공자의 좌절을 그리고 있는 파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실력 있는 젊은이들이 학계나 정계나 재계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되는 상황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좌절의 상황을 연상하면서 이 장을 읽어야 할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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