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기본부터 탄탄하게
6a-20.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예(羿)【활의 명인. 4b-24에 기출】가 사람 들에게 활쏘기를 가르칠 때는 반드시 활시위를 당기는 법의 수련에 집중케 한다. 따라서 활을 배우려는 자는 또한 반드시 활시위를 당기는 법, 그 원칙에 집중하고 과녁에 맞냐 안 맞냐에 신경을 써서는 아니 된다. 6a-20. 孟子曰: “羿之敎人射, 必志於彀; 學者亦必志於彀. 대목수는 사람들에게 목수일을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콤파스와 곡척을 다루는 원칙에 집중케 한다. 따라서 목수일을 배우려는 사람은 또한 반드시 콤파스와 곡의 원칙을 배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大匠誨人, 必以規矩; 學者亦必以規矩.” |
이것 또한 16장의 전작과 인작의 논의와 유사하다. 원칙을 중시한다는 면에서 4a-1과도 유사하다. 천작(天爵)과 인작(人爵)의 문제에서는 결과주의보다는 동기주의가 도덕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인작을 얻기 위해서 천작을 닦는 것이 아니라, 천작을 닦다보면 인작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는 것이다. 활쏘기나 목수일에 있어서도 그 원칙에 집중하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의 논의는 우리의 학습과정에 있어서 기본 커리큘럼이 중 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논의로서 해석될 수도 있다.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현란한 독서만 하고 사고의 기본을 다지는 인식론이나 우주론이나 윤리학 논리학의 기본적 훈련을 무시하면 항상 뜬구름 같은 허황된 생각만을 하게 된다. 모든 공부는 그 기본원칙을 반복적으로 습득하는 기초를 착실히 닦아야 한다. 그것을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과학도 인문학의 바탕이 없이는 진정한 과학이 될 수가 없다. 물론 인문학도 과학의 기초적 사유를 흡수함으로써 인문학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도덕적 행위나 품성도 그 도덕의 기본적 원칙을 반복적으로 깨닫는 데서 배양되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맹자에게 깔려있는 것이다. 맹자는 참으로 위대한 사상가라 아니 할 수 없다.
이것으로써 「고자」 상편이 다 끝났는데, 이 「고자」 상 한 편이야말로 내 일생일대의 도전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대학교 때 『맹자』와 『노자』를 읽었는데, 『노자』는 매우 명료하게 머리에 들어왔는데 『맹자』는 매우 몽롱한 채로 머리에 남아있었다. 당시 학우들은 오히려 『맹자』는 쉽게 이해가 되는데 『노자』는 도무지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사정이 달랐다. 『맹자』는 매우 일상적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서 논리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애매한 점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노자』는 공포스러웠지만 명료했고 『맹자』는 평범했지만 모호했다. 나는 요번에 「고자」 상편을 주해하면서 내 머릿속에 찜찜하게 남아있던 모호한 문제들을 명료하게 그 사유의 실가닥을 잡아 풀어버렸다. 자그마치 40여년 동안 내 머릿속에 끼어있었던 안개를 확 걷어버린 것 같은, 매우 청명한 기운이 감돈다.
『맹자』는 한 장 한 장이 모두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열의 전체적 느낌이 맹자라는 역사적 인간의 사유의 심화과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부적으로는 예외도 있겠지만,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은 그의 삶의 현장적 르뽀라고 한다면, 「이루」→「만장」→「고자」→「진심」으로의 진행은 맹자라는 인간의 사유의 심화과정이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자」 편의 철학적 탐색이야말로 맹자라는 인간의 ‘도덕주체론’을 둘러싼 온갖 사색과 논변의 금자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고자」의 성론(性論)을 도외시하고 우리는 맹자의 왕도론이라는 정치철학만을 말할 수는 없다. 「고자」 상편은 맹자의 인식론, 도덕형이상학의 추뉴(樞紐)라 말할 수 있다. 나는 「고자」 상편을 주해하면서 나의 몸철학의 가설들의 근거를 확고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인간 맹자에게 감사의 염(念)을 표한다.
觀其氣色樂莫樂 | 보리타작 하는 사람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라 |
了不以心爲形役 | 쓸데없는 마음 씀새로 고통당하는 육신들이 아니로다 |
樂園樂郊不遠有 | 낙원낙교 어디 먼 데 있으랴! |
何苦去作風塵客 | 무상 일로 고통스럽게 벼슬길을 헤매리오? -정약용, 「타맥항(打麥行)」 |
▲ 다산이 『맹자요의(孟子要義)』(1814, 53세)를 집필한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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