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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술 한시 특강 - 3. 훅하고 들어가 좌중을 압도한 16세기 한시 이야기 본문

연재/배움과 삶

김형술 한시 특강 - 3. 훅하고 들어가 좌중을 압도한 16세기 한시 이야기

건방진방랑자 2021. 12. 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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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훅하고 들어가 좌중을 압도한 16세기 한시 이야기

 

 

나에게 만약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시 특강을 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한시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한 후에 내가 하고 싶은 얘길 풀어가겠다고 말할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니 만큼, 알지 못하는 세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강의는 전주대에서 전주시민 대상으로 마련하여 진행되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한시의 세계로 빠져들다

 

 

그런데 형술쌤은 훅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16세기부터 중국에서 유행한 복고파 시와 전후칠자(前後七子)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런 부분에서 도입부는 161월에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던 동섭쌤의 강의와 무척이나 비슷했다. 자신에 대해, 그리고 오늘 말할 주제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천천히 설명해주는 방식을 택하기보다, 마치 선불교의 선문답처럼, 마치 맹자의 촌철살인처럼 훅 치고 들어가니 말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한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데, 교육에 대해 교육학으로 배운 게 전부인데, 거두절미하고 한시의 흐름에 대해 곧바로 들어가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무너뜨려야 한다며 기존의 교육학을 비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순간 난 누구? 여긴 어디?’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 자리 왠지는 모르지만 버텨내기 힘들 것 같다는 버거운 심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 상황에 내몰리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아주 자연스럽게 강의 내용에 빠져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과 노래방에 가면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음치에 가까운 나의 목소리를 코러스로 넣고 싶다는 용기가 생기듯, 동섭쌤의 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나도 교육학의 자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고, 형술쌤의 한시 특강을 듣고 있노라면 한시 그까이 것하는 자신감이 샘솟을 것 같다. 분명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게 맞는데 이상하게도 가깝게 느껴지는 착각의 늪에 서서히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두 쌤의 강의스타일이 비슷하다.     

 

 

 

당나라 시풍이 우세를 떨치며 개성이 사라진 한시들

 

한시는 삼국 시대에 본격적으로 쓰여진 이후 송나라 시풍이니, 당나라 시풍이니 하는 논쟁을 무수히 거치며 16세기를 맞이했다. 이때엔 송나라 시풍(이지적이고 철리적인 시풍)은 잠시 주춤하고 당나라 시풍(정감적이고 눈에 풍경을 그리듯 써내려가는 시풍)이 한바탕 유행을 선도한 시기였다.

 

그런데 당나라 시풍의 기본 배경엔 시적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그런 시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러니 우리처럼 한자를 빌려 문학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더욱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이고, 함부로 지을 수 없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자책까지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쐐기를 박듯 중국 송나라 학자 엄우가 쓴 창랑시화(滄浪詩話)같은 책에선 아예 대놓고 시란 별도의 재능이 있는 것이지 책과는 관련이 없다. 시는 별도의 의취(意趣)가 있는 것이지 이치와는 관계가 없다[夫詩, 有别材, 非關書也; 詩有别趣, 非關理也].”라고 주장하며 선천적인 시 재능론까지 힘주어 외치는 상황까지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시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선천적 재능도 재능이지만, 한문이란 낯선 문자체계를 완벽히 습득해야 했고 그걸 잘 배합하여 시적 규칙에 맞춘 시를 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당나라 시를 거의 모방하는 수준으로 시를 써나가게 됐고 그래서 정철이 지은 가을날에 짓다[秋日作]와 같은 시의 경우엔 재밌는 일화까지 생겼다. 아예 중국종이에 써서 성혼에게 보여주며 작가가 누군지 알 수가 없구료?”라고 말하자, 성혼은 한참 보더니 만당(晩唐) 때 지어진 시입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조선 사람 정철이 지은 시임에도 그걸 한참이나 보고 나서 기껏 한다는 말이 조선의 시가 아닌 만당 시인의 시라고 평가할 정도였다니. 그만큼 시의 개성은 사라졌고, 어떤 시를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사라진 채 무작정 흉내내기에 바빴던 시기의 웃픈 일화라 할 수 있다.

 

 

 

 

 

 

인용

목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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